주간동아 1254

2020.08.28

탈모 치료제는 ‘희망 고문’, 그래도 진화한다 [궤도 밖의 과학-28]

5000년 전부터 존재했던 탈모 치료의 역사, 지금도 멈추지 않아

  •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입력2020-08-19 09:5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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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청난 힘을 얻었더니 머리카락이 빠진 애니메이션 속 히어로 ‘원펀맨’. [히어로 협회 본부 제작사]

    엄청난 힘을 얻었더니 머리카락이 빠진 애니메이션 속 히어로 ‘원펀맨’. [히어로 협회 본부 제작사]

    ‘탈모 치료를 위한 획기적인 치료법 나오나.’, ‘드디어 탈모치료제 개발 실마리를 찾아냈다.’ 몇 년째 거의 같은 제목으로 나오는 기사 제목 이야기다. 심지어 토씨 하나 달리하지 않고 그대로 재탕하기도 한다. 또 기사를 읽어보면 어김없이 ‘아직 실용화 단계로 접어들기 위한 과제가 남아있지만‘이라는 익숙한 핑계가 달려있다. 계속되는 희망 고문으로 고통 받는 인구는 이미 국내에서 1000만 명, 가까운 중국에서는 2억5000만 명을 넘어섰다. 이제는 뭔가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을까. 스스로 운전하는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누비고 있고, 최초의 민간 유인우주선이 국제우주정거장에 도킹하는 시대니 말이다.
     
    놀랍게도 탈모에 대한 스트레스는 현대인들만의 고통이 아니었다. 5000년 전, 고대 이집트에서 종이 대신 사용했던 파피루스에는 악어 기름이나 하마의 배설물로 만든 탈모 치료용 연고에 대해 적혀있다. 유난히 머리숱과 자신감이 부족했던 이집트의 왕 파라오들은 가발 없이는 절대 백성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 역시 자신의 탈모를 해결하기 위해 아편과 고추 등 여러 재료를 섞어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슬픈 결말은 그의 초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마에 염소 오줌을 발라보았고, 로마의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듬성듬성한 부분을 가리기 위해 억지로 월계관을 쓰고 다녔다. 심지어 탈모를 신이 내린 형벌이라 믿고, 가여운 사람들을 위로하기는커녕 오히려 남몰래 비난하던 시기도 있었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탈모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월이 머리카락 대신 지혜를 주었다며 상황을 스스로 합리화하기도 했다. 쉽게 말해서, 어느 시대건 모두가 해볼 만큼은 다 해봤다는 뜻이다. 

    탈모에 과학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우선 명확하게 정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보통 탈모란 모발이 있어야 할 부위에 없거나 빈약한 상태를 말한다. 하루에 80∼100개 미만으로 적당히 빠져야 할 머리카락이 그 이상 빠진다면 탈모가 온다. 안타깝게도 아직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스트레스, 환경오염, 식습관, 다이어트, 운동 부족, 음주, 흡연, 혈액순환, 영양 불균형, 약물 부작용 등 그럴싸한 후보는 꽤 있다. 물론 가장 강력한 후보는 유전이지만, 그 외의 주요 원인을 찾기 위해 미국 오하이오 주의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교의 연구팀은 남녀 일란성 쌍둥이들을 조사했다. 그 결과 흡연이나 스트레스는 탈모를 불러왔지만, 신기하게도 적절한 음주나 커피의 섭취는 탈모 억제에 도움이 됐다. 운동하지 않는 남성도 탈모의 위험성이 컸지만,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자주 야외운동을 하는 것 역시 좋지는 않았다. 제한된 집단을 통해 도출된 결과였지만, 어느 정도 그럴싸한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고혈압 약에서 나온 탈모치료제

    탈모를 위한 꽤 다양한 치료방법이 있지만 크게 먹고, 바르고, 심는 세 가지 방법으로 나뉜다. 사실 먹는 약은 처음부터 탈모 치료가 주목적이 아닌, 전혀 다른 문제를 계기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1974년 도미니카 공화국의 살리나스 마을에서는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여자로 태어난 아이가 사춘기가 지나자 소년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원인은 호르몬 문제였다. 보통 태아는 임신 8주차가 되면 성별을 알 수 있다. 남자아이라면 ’5알파-환원효소‘가 남성호르몬의 일부를 더 강력하게 바꿔주고, 바뀐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이 생식기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은 마을의 아이들은 유전적 돌연변이로 ‘5알파-환원효소’가 부족했고, 결국 사춘기가 되어서야 모자라던 남성호르몬이 충분해지면서 생식기가 발달한 것이다. 신기한 건, 이러한 유전적 질환을 겪었던 환자들은 전립선이 작았고, 남성의 중요한 고민거리였던 여드름이나 탈모가 없었다. 원래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은 머리 쪽의 모낭에 탈모를 일으켰는데, 이게 제대로 생성되지 않자 머리숱이 풍성해진 것이다. 여기서 착안해과학자들은 전립선 비대증 약을 만들어냈고, 탈모 치료라는 부작용을 적극 활용한 먹는 치료제 ’피나스테라이드‘가 탄생했다. 물론 새로운 모낭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빠지는 것을 방지하는 원리다보니, 모발이 모두 빠져서 모낭이 위축된 상태라면 효과가 없었다.

    생전 탈모 해결에 도전한 히포크라테스. [미국 국립 의학 도서관]

    생전 탈모 해결에 도전한 히포크라테스. [미국 국립 의학 도서관]

    바르는 약도 처음부터 탈모치료제로 개발된 게 아니다. 원래 고혈압 약으로 개발된 ‘미녹시딜’이라는 약을 먹은 일부 환자에게서 원치 않는 털이 자라는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혈액이 좁아터진 혈관 속을 이동할 때 압력이 센 것이 고혈압인데 이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혈관을 넓히는 약을 먹었더니 영양 공급이 술술 잘돼서 머리카락마저 신나게 자란 것이었다. 이 같은 효과가 머리에만 털이 나도록 유도하려고 유효 성분을 농축해 만든 바르는 치료제는 가려움이나 각질, 피부염 등의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피나스테라이드와 함께 의학적으로 공인됐다. 

    하지만 먹거나 바르는 두 치료 방식 모두 모근에게 힘내라고 응원하는 수준이지, 죽은 모근을 살려내진 못했다. 그 한계를 넘기 위해 등장한 새로운 방식이 바로 모발이식이다. 정확히 말하면 모발을 이식한다기보다 그 뿌리인 모낭을 채취해 이식하는 방식이다. 탈모의 원인인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은 주로 정수리나 이마 쪽에 피해를 주기 때문에, 다행히 숱이 많이 남아있는 뒷머리에서 모낭을 뽑아 비어있는 부위에 심으면 된다. 말은 쉽지만 보통 일이 아니다. 우선 모낭 채취부터 이식까지 일일이 수작업으로 진행되기에, 비용도 문제지만 시간도 굉장히 오래 걸린다. 돈 내는 환자도 힘들고, 돈 받는 의사도 힘들다. 한 번에 열 올씩 심는 장비가 개발되기도 했지만, 시술과정에서 약간의 편의를 위한 개선이며, 여전히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한 단계 진화한 탈모 정복의 꿈

    남아있는 수학계의 밀레니엄 난제와 탈모 중 무엇이 먼저 정복될지는 미지수라고 할 정도로, 탈모 해결의 체감 난이도는 무시무시하다. 새로운 약이나 기술들이 나오고는 있지만, 주로 쥐를 활용한 실험 결과가 많고, 확실한 근거는 아직 부족하다. 그럼에도 몇 가지를 소개하겠다. 우선 ‘혈소판 풍부 혈장’ 치료는 자신의 혈액을 뽑아 원심 분리하여 농축된 혈장 성분을 다시 탈모 부위에 투여하는 시술법으로, 어차피 내 몸에서 나온 거라 부작용은 거의 없지만 효능 면에서는 검증이 필요하다. 비슷한 방식으로는 복부나 엉덩이 등에서 뽑아낸 지방에서 줄기세포를 추출, 배양한 후 두피에 주사하는 시술도 있다. 얼핏 뱃살도 빼고, 머리카락도 나는 일석이조의 방식처럼 들리지만, 역시 실용화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모발 성장에 중요한 세포인 ‘모유두세포’를 채취해서 이식했더니, 머리카락이 새로 자라나는 현상이 발견됐다. 몸에서 이 녀석을 많이 뽑아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태어날 때부터 개수가 정해져있다. 갖고 있던 뒷머리를 이식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두피로부터 채취도 어렵고, 배양 조건도 까다로우며, 증식도 쉽지 않다. 결정적으로 증식 과정에서 모발 성장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버린다. 하지만 최근 저산소 환경에서 배양했더니 증식과 발모 촉진 능력이 크게 증가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쥐로 계속 실험 중이다. 

    이젠 화학이나 생물학적 방법뿐만 아니라 공학적 방법까지 동원된다. 저출력 레이저나 특정 파장의 발광 다이오드, 혹은 펄스 형태의 전기적 자극으로 모낭을 자극해 모발을 증식시킨다. 이 경우, 별도의 충전설비나 배터리가 문제가 되는데 신체의 작은 움직임으로 아주 약한 전기를 생산하는 나노 발전기를 이용하면 배터리 없이도 리를 모낭을 자극해 탈모를 극복할 수 있다. 

    기독교 경전인 성경에는 삼손이라는 비극적인 영웅의 이야기가 나온다. 엄청난 괴력을 가졌던 그는 힘의 원천인 머리카락을 빡빡 밀면서 한순간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이렇게 가공할만한 능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소모적인 약점이던 모발이 시대의 변화와 함께 그 자체로써 충분히 훌륭한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소중한 모발을 잃는 순간, 누구도 견줄 수 없는 세계 최강의 힘을 얻게 된 영웅도 나타났을 정도니까 말이다. 존재하는 모든 적을 주먹 한 방으로 처치하는 애니메이션 주인공 ‘원펀맨’은 힘을 얻었더니 머리카락이 빠지는 증상을 통해 모발의 소중함과 탈모의 어마어마한 기회비용을 대변한다. 

    ‘희망은 모든 악 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고통을 연장시키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과학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이 말처럼 희망고문으로 인류를 괴롭혔을지도 모른다. 포기를 모르는 과학자들마저 원망스러울 수도 있다. 이제 실질적인 성과로 보여줄 차례다. 제발.

    궤도_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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