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45

2022.06.24

자중지란 유럽 방산업계… K-방산 ‘퀀텀 점프’ 눈앞

독일, 프랑스와 차세대 전차 사업 갈등에 ‘KF51 판터’ 독자 개발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2022-06-2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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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로사토리(Eurosatory) 2022’에 참가한 한화디펜스(왼쪽)와 현대로템의 부스. [사진 제공 · 한화디펜스, 사진 제공 · 현대로템]

    ‘유로사토리(Eurosatory) 2022’에 참가한 한화디펜스(왼쪽)와 현대로템의 부스. [사진 제공 · 한화디펜스, 사진 제공 · 현대로템]

    전 세계 군사 전문가와 방위산업계의 이목이 유럽 최대 규모 방산전시회 ‘유로사토리(Eurosatory) 2022’에 쏠렸다. 프랑스 정부와 지상장비협회가 6월 13~17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한 이번 유로사토리에 세계 방산업체 1800여 곳이 참여해 뜨거운 수주 경쟁을 벌였다. 격년제 행사인 유로사토리는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취소돼 올해 4년 만에 열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의 안보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을 받았다. 주요 방산업체는 저마다 개발한 첨단 장비를 전시해 바이어의 관심을 끌었다.

    ‘특별국방기금’ 조성 나선 독일

    독일 ‘KF51 판터’ 전차. [사진 제공 · 라인메탈]

    독일 ‘KF51 판터’ 전차. [사진 제공 · 라인메탈]

    이번 행사에서 각국 군 관계자로부터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은 업체는 단연 독일 라인메탈(Rheinmetall)이다. 라인메탈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안보 위기의 최대 수혜주로 불릴 만큼 주가가 상승했다. 최근 독일이 1000억 유로(약 136조 원)의 ‘특별국방기금’을 조성해 사실상 재무장을 선언했고, 다른 나라의 무기 주문도 밀려든 결과다. 라인메탈이 유로사토리에서 공개한 다양한 무기 중 자체 개발한 차세대 전차 ‘KF51 판터(Panther)’가 특히 이목을 끌었다.

    KF51 판터는 독일군의 현용 주력 전차 레오파르트2 차체를 개량하고, 새로 개발한 대형 포탑을 얹은 모델이다. 기존 전차와 다른 설계 방향에 따라 파격적 콘셉트가 적용됐다. KF51 판터는 독일제 전차 최초로 자동장전장치를 도입했다. 주무장인 130㎜ 활강포의 위력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표준인 120㎜ 활강포보다 위력이 50% 이상 높다는 게 개발사 측 설명이다. 포탑 후면에 설치된 드론 발사기로 정찰·공격용 ‘배회 드론(loitering drone)’ 4기를 발진시킬 수도 있다. 전차장과 포수, 조종수, 드론 조작수 등 전체 승무원은 4명이다.

    라인메탈의 주장만 놓고 보면 KF51 판터는 현재 세계 최강 전차다. 주포는 현존하는 모든 전차 장갑을 꿰뚫을 수 있고 장갑판은 그 어떤 대전차 무기의 공격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스펙상 무적의 전차를 자처하는 KF51 판터에 많은 전문가는 당장 ‘호평’보다 ‘물음표’를 달았다. 지금 시점에 왜 라인메탈이 신형 전차를 내놓았느냐는 질문이다.

    현재 라인메탈은 독일 크라우스 마페이 베그만(KMW), 프랑스 넥스터시스템스 등 방산업체와 함께 차세대 전차 개발 사업 ‘MGCS(Main Ground Combat System)’를 진행하고 있다. 2015년 KMW가 넥스터시스템스에 합병됐기에 라인메탈은 MGCS 사업에서 사실상 독일 측 주(主)계약자다. MGCS 사업이 추진되는 가운데 라인메탈이 KF51 판터라는 신형 전차를 내놓은 것은 ‘딴 주머니’를 찬 셈이다. 실제로 MGCS 컨소시엄 측은 이번 유로사토리에서 EMBT(Enhanced Main Battle Tank)라는 모델을 따로 출품했다. 기존 르클레르 전차와 레오파르트2 전차 부품을 반반씩 합친 묘한 형상 탓에 세련된 디자인의 KF51과 비교됐다.



    무기 개발 둘러싼 EU ‘밥그릇 싸움’

    영국·독일·이탈리아·스페인이 공동 개발한 전투기 ‘유로파이터 타이푼’. [뉴시스]

    영국·독일·이탈리아·스페인이 공동 개발한 전투기 ‘유로파이터 타이푼’. [뉴시스]

    그렇다면 라인메탈이 차세대 전차 공동 개발 사업과 별개로 KF51 판터를 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유럽 국가들의 공동 무기체계 개발사(史)에 ‘밥그릇 싸움’ 그림자가 드리워 있기 때문이다. 외견상 서유럽 국가들은 유럽연합(EU)이라는 공동체를 대단히 중시하는 듯하다. 하지만 정작 회원국 간 공동 사업에선 밥그릇 싸움이 벌어지기 일쑤다. 특히 무기 공동 개발에서 심각한 갈등이 표출된다. 공동 개발 자체를 두곤 어렵지 않게 합의점에 이르지만 무기체계의 목표 성능과 제원 설정, 사업 추진 형태, 지분, 일감 배분, 완성된 무기체계 구매 할당량 등을 두고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식이다. 이런 분쟁 끝에 합의가 깨져 서로 다른 무기를 만들거나 겨우 합의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완성품을 만들어낸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만든 공동 개발 결과물은 ‘망작(亡作)’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1990년대 독일, 프랑스가 미국 아파치를 능가하는 공격헬기를 만들겠다며 내놓은 ‘타이거(Tiger)’ 공격헬기는 높은 획득 비용과 비싼 유지비, 최악의 가동률, 기계적 신뢰성으로 악명이 자자했다. 납기 지연과 후속 군수지원 불량으로 호주는 타이거 헬기를 도입하고 10년 만에 전량 조기 퇴역을 결정하기도 했다. ‘유럽판 블랙호크’를 만들겠다며 독일·프랑스·이탈리아·네덜란드가 달려들어 만든 ‘NH90’ 다목적 헬기는 20년째 납품만 기다리다 계약을 취소한 국가가 여럿이다. 실제 납품된 기체도 결함이 심각해 조기 퇴역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21세기 전장을 제압할 최강 전투기를 만들자며 영국·독일·이탈리아·스페인이 의기투합한 ‘유로파이터 타이푼(Eurofighter Typhoon)’은 현재 극히 낮은 가동률을 보이고 있다. 개발을 주도하고 유로파이터 타이푼의 핵심 생산 설비가 들어선 독일에서도 가동률은 5%에 불과하다. 결국 개발에 참여한 나라조차 최초 약정한 개발 물량을 타국에 떠넘기거나 위약금을 물고 계약을 취소해 참담한 실패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방위산업 ‘큰손’ 폴란드 내친 독일

    서유럽 국가들의 무기체계 공동 개발 프로젝트에 잡음이 많은 것은 결국 각국의 동상이몽 때문이다. 개발비 부담을 줄이고자 다른 나라를 파트너로 끌어들였지만 사업 주도권이나 양산 일감을 양보하기 싫다는 과욕이 사업을 망쳤다. 기획 단계부터 서로 다른 요구 탓에 목표 성능이 너무 높게 설정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압도적 비교 우위를 점한 기업이 없어 일감 분배도 비효율적으로 이뤄졌다. 가령 전투기 레이더에 들어가는 부품을 한 기업이 모두 생산해 파트너 국가들에 납품하면 품질도 균일하고 규모의 경제로 단가도 낮출 수 있다. 그런데 유럽 국가들이 공동 개발한 무기는 참여국 간 일감을 배분해야 한다는 이유로 같은 부품을 여러 회사가 생산한다. 이 경우 생산 단가는 비싸고 부품 규격이나 품질은 제각각이라 신뢰할 수 없다. 유럽 각국은 이런 악순환을 수십 년째 계속해오면서도 밥그릇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유럽에선 영국·프랑스가 차세대 극초음속 미사일을, 독일·프랑스가 차세대 전차(MGCS)와 차세대 전투기(FCAS)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하나같이 초기 단계부터 잡음을 내며 수년째 제자리걸음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양국 외교장관이 언쟁을 벌이며 공동 개발 합의 파기 직전까지 갔다 겨우 협상 테이블로 돌아왔다. 차세대 전투기 사업은 프랑스 다쏘(Dassault)와 독일 에어버스(Airbus)가 몇 달째 서로 비난하는 성명을 내며 충돌하고 있다. MGCS 사업도 내홍을 겪고 있다. 이 사업은 기획 단계부터 독일과 프랑스가 파열음을 냈다. 최근 양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빨라도 20년은 있어야 전차를 공동 개발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마저 나온다. MGCS를 두고 독일과 프랑스가 충돌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누가 사업 주도권을 쥐고 누가 더 많은 일감을 가져갈 것인지라는 민감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MGCS 사업은 폴란드라는 ‘큰손’을 파트너로 끌어들이는 데 실패했다. 폴란드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한 독일의 몽니 탓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재 독일군과 프랑스군은 MGCS 사업을 통해 각각 200대가량 물량만 도입할 예정이라 양산 수량은 400대에 그칠 전망이다. 앞서 살펴본 무기 공동 개발 및 제작 사례처럼 두 나라가 서로 다른 요구사항을 내놓고 부품도 따로 생산할 가능성이 높다. 획득비용과 유지비용이 동급 전차보다 크게 상승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전역에 군비 증강 바람이 불더라도 가격만 비싸고 후속 군수지원도 제대로 안 되는 무기가 잘 팔릴 리 없다. 한국 방위산업은 바로 이 부분을 파고들어야 한다.

    폴란드는 이번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의 군사적 팽창을 가장 우려하는 나라가 됐다. 러시아와 사실상 한 몸인 벨라루스와 국경을 맞댄 NATO 최전선 국가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최근 군 규모를 2배 이상 확대하고 대규모 무기 도입 사업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폴란드의 대규모 군비 증강엔 EU와 NATO에서 입지를 확실히 굳히겠다는 정치적 동인(動因)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적극적인 군사 지원으로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제고하기 시작했다.

    NATO 정상회의, K-방산 물결 발판으로 삼아야

    폴란드가 최근 발표한 무기 획득 구상을 살펴보면 대부분 기술 도입 및 현지 생산 조건을 내걸었다. 독일과 프랑스가 폴란드의 군비 증강을 견제하며 기술 이전을 꺼리자 폴란드는 한국과 협력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폴란드는 거의 모든 지상 장비 품목에 엄청난 구매 수량을 제시하는 등 적극적인 기술 도입 의사를 밝히고 있다. 폴란드 언론은 K2 전차 일부 직도입과 현지화 버전 K2PL의 현지 대량 생산이 사실상 확정된 듯한 뉘앙스로 보도하고 있다. K9 자주포 차체는 물론, K9 완제품과 K10 탄약장갑차 도입 가능성도 거론된다. 폴란드 군비청은 한국과 차륜형 장갑차에 더해 AS-21 레드백 장갑차 기술 도입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거나 검토 중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FA-50 전투기 도입도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한국은 바로 이런 기회를 잡아야 한다. 폴란드와의 방산 협력은 유럽 전체를 K-방산 물결로 휩쓸 절호의 기회다. 서유럽 선진국들이 공동 개발 이슈로 이렇다 할 무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고, 상황도 한국에 우호적이다. 6월 29~30일(현지 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NATO 정상회의에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선 최초로 참석한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과 NATO 방위력 개선 문제가 논의될 이번 회의가 K-방산 ‘퀀텀점프’의 발판이 될 수 있도록 정부와 국내 방산업계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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