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40

2022.05.20

라면 1등 농심, 14년 만에 다시 대기업집단 지정

수직계열화로 내부거래 비중 높아… 계열분리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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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현숙 기자

    life77@donga.com

    입력2022-05-2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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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심그룹이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신규 지정되면서 그동안 제기돼온 계열분리 여부에 재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뉴스1]

    농심그룹이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신규 지정되면서 그동안 제기돼온 계열분리 여부에 재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뉴스1]

    국내 라면 시장 1위 기업 농심그룹이 5월 1일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신규 지정됐다. 공시대상기업집단은 자산총액 5조 원 이상 기업집단으로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지정한다.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 및 소속 회사 수는 지난해(71개, 2612개) 대비 각각 5개, 274개 증가했다. 농심은 지난해 기준 자산총액 5조500억 원으로 집계돼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신규로 이름을 올렸다. 2008년 공시대기업집단 기준이 자산총액 2조 원에서 5조 원으로 늘면서 제외됐다 14년 만에 다시 포함된 것이다.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따라 기업집단 현황, 대규모 내부거래, 비상장회사의 중요 사항, 주식 소유 현황 등을 공시해야 한다. 또한 일감 몰아주기(사익편취) 금지 등 각종 규제도 적용받는다. 특히 지난해 말 개정된 공정거래법에 따라 대기업집단 총수 일가 지분율 20% 이상인 상장사·비상장사와 그 회사가 지분 50%를 초과해 보유한 자회사의 내부거래가 금지된다.

    내부거래 해소 발등에 불

    농심그룹은 ‘신라면’으로 대표되는 라면을 중심으로 식품을 생산하는 농심에 다른 계열사들이 스프와 포장재 등을 공급하며 수직으로 이어진 구조를 갖추고 있다. [사진 제공 · 농심, 뉴스1]

    농심그룹은 ‘신라면’으로 대표되는 라면을 중심으로 식품을 생산하는 농심에 다른 계열사들이 스프와 포장재 등을 공급하며 수직으로 이어진 구조를 갖추고 있다. [사진 제공 · 농심, 뉴스1]

    식품업계는 제조업과 비교해 영업이익률이 낮다 보니 거래비용 절감 등 경영 효율화를 위해 사업 수직계열화(제품 생산부터 판매까지 필요한 회사들을 계열사로 만드는 것)를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 농심그룹은 라면을 중심으로 식품을 생산하는 농심에 다른 계열사들이 스프와 포장재 등을 공급하며 수직으로 이어진 구조를 갖췄다. 재계에서는 전문화된 사업에 맞춰 수직계열화가 잘된 대표 사례로 꼽는다. 하지만 그만큼 계열사 간 의존도가 높아 일감 몰아주기 논란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5월 1일부터 공시대상기업집단에 포함돼 각종 규제를 받게 되면서 내부거래에 더욱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농심그룹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농심그룹은 지난해 말 기준 상장사 4개(농심홀딩스, 농심, 율촌화학, 유투바이오), 비상장사 40개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이 중 공정위의 적용을 받는 계열사는 농심홀딩스, 태경농산, 율촌화학, 농심, 메가마트 등 총 24개로 비금융회사 22개, 금융회사 2개로 구성돼 있다.

    농심그룹은 지난해 ‘라면왕’으로 불리던 고(故) 신춘호 회장이 사망하기 전 세 아들을 중심으로 승계 작업이 마무리된 상태다. 우선 장남인 신동원 회장이 농심과 지주사인 농심홀딩스를 이끌고 있다. 신동원 회장의 쌍둥이 동생인 신동윤 부회장은 라면·과자 등의 포장재를 주로 생산하는 율촌화학, 삼남 신동익 부회장은 대형 할인점인 메가마트를 맡고 있다.



    지주사인 농심홀딩스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농심 지분의 32.72%를 보유하고 있으며, 율촌화학(지분 31.94%), 태경농산(100%), 농심엔지니어링(100%), 농심개발(96.92%) 등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신동원 회장은 농심홀딩스(42.92%) 최대주주다. 신동윤 부회장은 율촌화학 개인 최대주주로 지분 19.36%를 갖고 있고, 농심홀딩스 지분율은 13.18%. 신동익 부회장 지분율은 메가마트 56.14%, 농심 2.47%다.

    총수 일가 지분이 많은 계열사 중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곳은 공정위 사정권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주요 계열사를 살펴보면 우선 농심홀딩스가 지분 100%를 보유한 태경농산은 농축수산물 가공 및 스프 등을 제조하는 회사로, 농심에 스프를 공급한다. 태경농산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은 4133억 원이며, 이 중 농심에서 50% 넘는 2126억 원 매출을 올렸다. 신동윤 부회장이 이끄는 율촌화학의 지난해 매출은 5387억 원이다. 주요 거래처는 농심으로 전체 매출액의 32.8%를 차지한다. 농심엔지니어링은 식품 가공설비 제조 기업으로, 감사보고서에 기재된 지난해 매출액은 1724억 원이다. 이 중 농심에서 188억 원, 태경농산에서 27억 원 등 특수관계자(지배기업, 지배기업의 종속기업·손자기업·관계기업 등) 거래로 30%가 넘는 557억 원 매출을 올렸다.

    이외에 신동익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메가마트의 100% 자회사인 호텔농심은 특수관계자 거래에 따른 매출 등 수익이 45%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메가마트가 53.97% 지분을 보유하며 최대주주로 있는 정보기술(IT) 서비스업체 엔디에스도 특수관계자 매출이 30%에 가깝다. 이 회사는 신동원 회장 15.24%, 신동윤 부회장 11.75%, 신동익 부회장 14.29% 등 삼형제가 비슷하게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삼형제 독립 경영이 해결책?

    신동원 농심 회장. [사진 제공 · 농심]

    신동원 농심 회장. [사진 제공 · 농심]

    사업 수직계열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내부거래 비중을 줄여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 농심그룹은 어떤 카드를 선택할까. 일각에서는 삼형제의 계열분리를 통한 독립 경영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몸집 규모를 줄여 향후 공시대상기업집단에서 제외되는 시나리오다. 농심그룹은 지난해 조미식품·어육제품 제조업체 우일수산을 계열분리해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을 피한 바 있다. 우일수산은 오너 삼형제의 어머니인 김낙양 여사 친인척들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그간 농심그룹은 삼형제를 중심으로 계열분리 작업을 진행해왔으며 지분도 어느 정도 정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계열분리 첫 단추로 꼽히던 신동원 회장 취임도 지난해 7월 이뤄졌다. 삼형제가 영역을 분리해 경영해온 만큼 계열분리 작업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현재 경영 구도처럼 신동원 회장은 농심, 신동윤 부회장은 율촌화학, 신동익 부회장은 메가마트를 독립적으로 맡는 그림이다.

    신동원 회장은 지주사인 농심홀딩스 최대주주이고, 동생 신동윤 부회장보다 농심홀딩스 지분이 28% 많아 지배력이 공고하다. 신동윤 부회장은 형제 중 유일하게 율촌화학 지분을 갖고 있다. 신동윤 부회장이 보유한 농심홀딩스 지분(61만1484주)을 처분해 농심홀딩스가 가진 율촌화학 지분(480만2450주)을 매입하는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다만 5월 18일 종가 기준 농심홀딩스의 율촌화학 지분가치(1056억 원)와 신동윤 부회장이 가진 농심홀딩스 지분가치(440억 원)의 차이가 커 실행 가능성은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해 우일수산과 함께 지속적으로 계열분리 가능성이 분분했던 메가마트는 지분 관계가 단순한 편이라 상대적으로 계열분리 작업이 수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동익 부회장이 지분 56.14%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고, 농심홀딩스는 지분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2009년부터 맡아온 농심홀딩스 사내이사직을 2020년 사임했는데, 재계에서는 이 같은 행보 역시 계열분리 작업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농심 관계자는 “계열분리 계획은 없다. 내부거래 비중과 관련해 계열사별로 외부 매출을 확대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지배구조 제약 많은 한국

    재계에서 꾸준히 제기돼온 시나리오대로 농심그룹이 계열분리를 이루면 지금까지 쌓아온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농심그룹을 계기로 정부의 기업 성장모델에 대한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고 생각한다”며 “최근 20년간 한국은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제약이 세계에서 가장 많았고, 사업에 맞게 전문화한 계열사들조차 문어발식 확장으로 단정해 규제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덴마크와 스웨덴 등 대다수 선진국은 확실한 세금 납부와 고용 창출 등을 통해 국가 경제성장에 기여하면 오히려 기업 지배권에 대한 상속세를 감면하는 등 지배주주 권한에 힘을 실어주는 상황이다. 신 교수는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위한 규제’ 때문에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기회가 오히려 국내에서 막히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강조되는 분위기에서 기업이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공정하게 입찰 과정 등을 진행하면 내부거래 이슈는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새 정부 역시 대기업집단을 향한 과도한 규제보다 국가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합리적 정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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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강현숙 기자입니다. 재계, 산업, 생활경제, 부동산, 생활문화 트렌드를 두루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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