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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소 후각 남달랐던 변호사 李, 싸움의 감 뛰어났던 검사 尹

[이재명-윤석열 미셀러니] 변호사 이재명 vs 검사 윤석열

  •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승소 후각 남달랐던 변호사 李, 싸움의 감 뛰어났던 검사 尹

※‘미셀러니’는 주요 대선후보의 모든 것을 다루는 코너입니다.

12월 9일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21주년 기념식에서 만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오른쪽)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동아DB]

12월 9일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21주년 기념식에서 만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오른쪽)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동아DB]

“이십 몇 년 전 성남 법정에서 이렇게 자주 뵈던 분이에요.”(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보기는 봤을 텐데 저는 기억이 없더라고요. 왜냐하면 형사사건은 거의 안 했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아니, 그래도 이따금씩 (법정에) 들어오셨어.”(윤 후보)

11월 10일 한 포럼에서 대선후보 확정 후 처음 마주한 이재명, 윤석열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주변 웃음소리에 덮였지만, 같은 시절을 두고 “자주 봤다” “기억이 없다”며 서로 다른 얘기가 교차했다. “그 시절 검사가 변호사를 일일이 기억하겠나. 윤석열이 그냥 빈말한 것” “인권변호사라던 이재명이 형사사건을 거의 안 했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평도 있다.



이재명과 윤석열. 두 사람은 각각 사법연수원 18·23기 출신 변호사와 검사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이재명은 1989년 경기 성남시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고, 1990년대 후반 성남시민모임 공동집행위원장 등 시민운동에 참여했다. 윤석열은 30대 때 첫 임지인 대구지방검찰청(1994~1995)을 거쳐 춘천지검 강릉지청(1996), 수원지검 성남지청(1997~1998)에서 근무했다. 현재까지 성남 시절 두 사람의 접점은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궁금증은 자연스레 변호사 이재명과 검사 윤석열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로 흐른다.

윤석열, 노루목에 딱 서 있었다

1991년 사법시험 33회에 합격한 
윤석열 대선후보.[윤석열 후보 인스타그램]

1991년 사법시험 33회에 합격한 윤석열 대선후보.[윤석열 후보 인스타그램]

“검사 윤석열의 수사 방식은 어땠느냐”는 질문에 윤석열을 잘 아는 이들은 “싸움의 감(感)과 상상력이 좋다”고 입을 모았다. 특수부 검사의 수사 방식은 저인망식으로 흐르기 쉽다. 사안이 복잡하니 일단 전방위적으로 압박해 수사해보는 것이다.

검사 윤석열의 수사 스타일은 노루목에 딱 서서 캐치하는 핀 포인트 식이었다고 한다. 평검사 시절부터 특유의 수사 감각으로 주목받았다고도 한다. 한 검찰 간부 출신 법조인은 “누가 윤석열을 앉혀놓고 가르쳐 터득하게 한 것 같지는 않다. 평검사 때부터 감이 좋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검사 출신 변호사는 윤석열의 수사 스타일에 대해 “피고인의 몇 가지 진술만 듣고도 범죄 얼개를 빠르게 알아챈다. 특히 돈 흐름을 정확히 파악한다”고 평했다.

윤석열의 감과 상상력이 추측이 아닌 정확한 기억력에서 오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고교·대학 시절 동창생 사이에선 지금까지 윤석열의 기억력이 회자된다. 말술(대학생 때 후배들과 ‘술내기’에서 맥주 3만cc를 마셔 이겼다고 한다)이라 친구들과 곧잘 술을 마시면서도 다음 날 누가 언제쯤 술자리에 오고 갔는지 또렷이 기억했다는 식의 무용담이다. 검사 시절 윤석열과 함께 일한 법조인은 “수년 동안 사법시험을 공부해 검찰에 들어오고 산더미 같은 수사 자료를 검토하는 이가 검사 아닌가. 윤석열은 그중에서도 특출난 데가 있었다. 자료를 쓱 훑어보는 것 같은데, 나중에 보면 그걸 다 기억해 촘촘한 근거를 마련한다”고 회상했다.

풍채에서 오는 카리스마를 윤석열표 수사 방식으로 꼽는 이도 있다. 수사 대상과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큰 풍채(최근 한 방송사 예능프로그램에서 “신장 178㎝, 체중 90㎏”이라고 밝힘)를 적절히 활용한다는 것. 그런데 카리스마는 수사뿐 아니라 때로는 가까운 기수의 같은 학교 출신 검찰 선배들에게도 발휘된 것으로 보인다. 흔히 검찰에서 서울대 출신들의 관계는 과장을 보태면 콩가루다. 서울대 출신보다 수는 적지만 동문끼리 똘똘 뭉치는 고려대·성균관대와 달리 응집력이 약한 편이다. 물론 검사는 연수원 기수에 따라 서열이 정리되므로 대학 선후배 관계는 어느 정도 형해화되게 마련이다. 선후배를 봐도 데면데면한 서울대 출신 검사 사이에서 윤석열은 이색적 존재였다고 한다. 윤석열의 평검사 시절을 잘 아는 인사의 전언이다.

“윤석열이 평검사 시절 술자리에 갔는데 서울대 후배인 상석(선임) 검사가 지나치게 거들먹거리며 ‘폼’을 잡았대요. 윤석열이 그를 ‘작살’내서 다음부터 그러지 못했다고 합니다(웃음). 그렇다고 윤석열이 권위적인 사람은 아니에요. 대학 시절 동기(79학번) 못지않게 각별히 지낸 것도 83학번 후배들이었어요.”

기민한 승부사, 이재명

1989년 사법연수원  18기 수료식에 참석한 이재명 대선후보(왼쪽).[이재명 후보 페이스북]

1989년 사법연수원 18기 수료식에 참석한 이재명 대선후보(왼쪽).[이재명 후보 페이스북]

변호사 이재명은 질 싸움은 안 하는 기민한 승부사였다. 추진력에 더해 선택과 집중 전략이 주된 무기. 비판자들은 ‘무대뽀’(막무가내)라고 폄훼하기도 하나 이재명의 싸움은 철저한 준비로 시작된다. 성남지역에서 시민단체를 운영한 한 인사는 “우리 편은 물론, 상대편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해 경기에 임하는 승부사 기질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승리할 사건을 빠르게 판단하는 후각도 남달랐다. 이재명의 중앙대 동기로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 등을 맡았던 이영진 경기문화재단 경영본부장은 책 ‘인간 이재명’에서 그의 변론 스타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질 사건은 안 하는 거죠. 질 게 분명한 걸 가지고 소송하려고 하면 하지 마라, 해도 진다, 시간과 돈만 날린다, 그렇게 얘기했어요. 그런데도 우리(이재명 노동상담소) 말 안 듣고 기분 나빠하며 다른 사무실 찾아가서 소송한 사람들, 어떻게 됐겠어요? 지고 나서야 후회하며 우리한테 와서 그때 변호사님 말 들을 걸 그랬다고 했죠.”

이재명은 지연·학연에 비교적 초연했다. 지금도 지역 시민사회에선 그가 문제 제기한 성남지역 비리 사건을 두고 “판검사도 줄줄이 연루됐는데 이재명이 연수원 기수 따지며 눈치를 안 본 덕에 끈질기게 추적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의 행적에선 남과 다른 길을 가는 ‘아웃사이더’ 기질이 엿보인다.

1986년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재명은 사법연수원 18기를 수료하고 1989년 성남시청 인근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개업에 필요한 비용 중 일부는 그가 은사(검정고시 공부 무료 지원)로 꼽는 김창구 성일학원 원장이 지원했다고 한다. 당시 이재명의 연수원 수료 성적은 상위권으로 판검사 임용이 가능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시험 합격(10월 23일) 직후인 1986년 10월 23일 ‘경인일보’에 실린 ‘“地域서 억울한 사람 도울 터” 불우극복 司法고시 합격한 李在明씨’ 제하 기사에서 이재명은 “앞으로 성남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어 억울한 사람을 위해 일하겠다”고 밝혔다.

1990년대 시위에 참석한 이재명 대선후보(오른쪽). [이재명 후보 페이스북]

1990년대 시위에 참석한 이재명 대선후보(오른쪽). [이재명 후보 페이스북]

개업 초기 이재명이 주로 맡은 일은 노동 및 학원 사건. 성남공단 노동자와 경원대(현 가천대, 경기 성남시 소재), 한국외대 용인캠퍼스(현 글로벌캠퍼스), 경희대 수원캠퍼스(현 국제캠퍼스, 경기 용인시 소재) 운동권 학생들이 그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인근 지역 노동자들이 노동 상담을 청하자 경기 이천시에 광주·여주·이천노동상담소를 개설해 소장을 맡았다. 성남 변호사 사무실을 시청 앞에서 법원(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앞으로 옮긴 뒤 부설 노동상담소도 새로 차렸다.

1989년 컴퓨터 부품 조립업체 에프코아코리아 위장 폐업 등이 ‘노동인권변호사’ 이재명이 맡은 주요 사건이다. 분당신도시 건설 반대 운동에 참여한 이호승 전국철거민협의회중앙회 상임대표는 “1989년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구속돼 곤혹스럽던 내게 이재명 변호사가 무료 변론을 해주겠다고 나섰다. 그 점은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 그리고 아파트

경기 성남시 백궁·정자 지구에 조성된 고층 아파트 단지. [동아DB]

경기 성남시 백궁·정자 지구에 조성된 고층 아파트 단지. [동아DB]

인권변호사를 자처하는 이재명에게 물음표도 따라붙는다. 교제 살인범이나 성남지역 조직폭력배 국제마피아파 조직원을 변호한 이력이 입방아에 오른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재명의 과거사를 언급하면서 “자신의 바이오그래피(전기·傳記)를 허구 스토리로 과장 혹은 왜곡했던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인권변호사라는 표현을 두고도 “그 명칭은 도대체 누가 붙여준 건가. 이래서 제대로 된 재명학이 필요한 것”이라고 비꼬았다.

이재명, 윤석열 공히 김대중(DJ) 정부와 묘한 인연이 있다. 두 사람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각각 “평생 탄압받으면서도 민주주의, 인권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이재명), “어떤 정치 보복도 않고 국민 통합을 이룩했다”(윤석열)며 “존경한다”고 입을 모은 바 있다(12월 9일 김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21주년 기념식 및 학술회의’ 석상 발언).

법조인으로 두 사람은 DJ 정부의 치부를 겨눈 사건을 계기로 주목받았다. 평검사 시절 윤석열은 DJ 정부 경찰 핵심 인사의 수뢰 사건을 맡았다. 이재명은 시민운동가로서 동교동계 인사들이 연루된 특혜 분양 사건을 고발했다. 공교롭게도 두 사건 모두 ‘아파트’와 관련됐다.

평검사 시절 윤석열 대선후보의 수사로 박희원 당시 경찰청 정보국장(치안감)이 뇌물 수수 혐의를 자백했다. [MBC 캡처]

평검사 시절 윤석열 대선후보의 수사로 박희원 당시 경찰청 정보국장(치안감)이 뇌물 수수 혐의를 자백했다. [MBC 캡처]

검사 생활 5년 차인 1999년 윤석열은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로 부임했다. 같은 해 5월 19일 윤석열은 박희원 당시 경찰청 정보국장(치안감)을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박 전 치안감은 경찰 수사를 받던 한 아파트 관리업체로부터 수사 무마 청탁과 함께 2200만 원을 받고 관할 경찰서장에게 외압을 행사했다. 박 전 치안감 사건은 여러모로 민감했다. 호남 출신인 박 전 치안감은 김대중 정부 들어 승승장구해 경찰 정보를 총괄하는 요직에 있었다. 당시 경찰이 수사권 독립을 강하게 요구하고 나선 터라 섣부른 수사는 자칫 검찰의 ‘경찰 때리기’로 비칠 수 있었다.

이렇듯 민감한 사건에서 윤석열은 피고인으로부터 사실상 백기 투항을 받아냈다. 검찰에 소환된 1999년 5월 18일 박 전 치안감은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으나 이튿날 오후 자백하고 영장실질심사도 포기했다. 구속 두 달 후인 7월 23일 서울지방법원은 박 전 치안감에게 징역 2년 6월과 추징금 2200만 원을 선고했다. 수사권 독립 주장에 대한 표적 수사라고 반발하던 경찰도 “아파트 관리비 일제 수사 대상에서 대형업체만 빠진 점이 수상해 조사에 나섰다가 박 전 치안감 혐의를 우연히 확인한 것”이라는 검찰 측 주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재명은 2000년 ‘백궁·정자지구 용도 변경 특혜 의혹’, 2002년 ‘분당 파크뷰 아파트 특혜 분양 의혹’을 제기하며 주목받았다. 1995년 3월 발족한 성남시민모임 창립 멤버로 실무책임자를 맡았을 때다. 당시 두 의혹의 줄기는 하나였다. 소규모 건설업체를 운영하던 홍모 씨가 분당선 백궁역(현 정자역) 인근 상업용지 13만2231㎡(4만 평)를 주상복합지로 용도 변경하고(백궁·정자지구 용도 변경 특혜 의혹) 해당 부지에 건설한 아파트를 고위 공직자에게 특혜 분양(분당 파크뷰 아파트 특혜 분양 의혹)했다는 것.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 출신으로 동교동계 실세인 K 전 의원을 비롯해 검찰 고위 관계자, 성남시장 및 시의회 의원들이 특혜 용도 변경 및 분양에 연루됐다. 자서전 ‘이재명은 합니다’에서 이재명은 “나는 이 사업(파크뷰 개발 및 분양)이야말로 사업자에게 특혜를 준 사건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때 이재명과 성남시민모임 측 비판은 김병량 당시 성남시장(새천년민주당 소속, 2015년 별세)에 집중됐다. “특혜 분양은 곁가지일 뿐이며 의혹의 몸통은 파크뷰 아파트가 들어설 백궁·정자지구 용도 변경 특혜 의혹”이라며 인허가권을 쥔 김 전 시장을 겨눈 것. 2007년 김 전 시장은 대법원에서 제3자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K 전 의원의 의혹은 당시 검찰이 수사 본류가 아니라고 규정해 흐지부지됐다.

두 사람의 거침없는 행보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윤석열은 자타공인 특수통 검사다. 2004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강금원 전 창신섬유 회장(2012년 별세)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수사(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연구관), 2006년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 수사(의정부지검 고양지청 부부장검사) 등을 맡으며 검찰 내 특수통으로 성장했다.

“특수통 중심으로 검찰 사병화”

2013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서울고등검찰청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 [동아DB]

2013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서울고등검찰청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 [동아DB]

윤석열은 2007년 대검 검찰연구관 시절 이른바 ‘BBK 주가조작 사건’ 특검(한나라당 대통령후보 이명박의 주가조작 등 범죄혐의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팀에 파견됐다. 당시 정호영 특별검사(서울고등법원장 역임)가 이끄는 특검팀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이상호 씨가 대표로 있던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에서 120억 원이 유출되는 등 비자금 조성 의혹이 있음에도 이를 20대 경리직원의 개인 비리로 규정해 부실수사 의혹을 낳았다. 2018년 정 전 특검은 범죄 혐의를 발견하고도 묵인한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특수직무유기)로 검찰 수사를 받았고 무혐의 처분이 났다. 지난해 대법원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징역 17년·벌금 130억 원·추징금 57억8000만 원을 선고했다. 사실상 이 전 대통령을 다스 실소유주로 인정한 것이다.

윤석열은 당시 특검팀에 파견된 현직 검사 10명 중 선임급(연수원 기수상 세 번째)이었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특별검사, 특별검사보 등이 있으나 파견된 현직 검사들 능력이 특검팀 실제 수사 결과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 당시 BBK 주가조작 사건 특검이 부실수사였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아쉬운 점은 분명히 있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수사도 뒷말을 남겼다. ‘시범 케이스’로 걸린 기업에 수사를 집중했다는 견해가 있다. 윤석열은 2017년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팀 수사팀장으로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했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영장을 다시 청구할 만큼 강한 수사 의지를 보였다. 국정농단에 연루된 다른 대기업에 비해 삼성 수사에 유독 집중하는 모양새였다.

윤석열의 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 재임 시절 검찰 수사 방향과 조직 운영에 대한 비판도 있다. “이전 정권에 대한 이른바 적폐수사 과정에서 직권남용죄·권리행사방해죄 혐의를 무리하게 적용했다” “인사 및 조직 운영에서 특수통에 지나친 힘을 부여했다”는 것이 뼈대다. 한 법조인은 “검찰총장 윤석열의 인사는 자신과 가까운 특수통 중심으로 검찰을 사병화하는 것이었다. 현 정부가 노골적으로 검찰 수사에 개입하는 것이 더 큰 문제였기에 잘 부각되지 않았을 뿐, 특수통 중심 인사도 심각한 병폐”라고 짚었다. 검찰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직권남용죄·권리행사방해죄는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 윤석열호(號) 검찰이 앞장서 이전 정권 고위 인사를 기소하는 데 ‘전가의 보도’처럼 적극 활용했다. 이런 식이면 공직자가 정권교체 후 보복이 두려워 정상적으로 근무할 수 있겠나. 잘못된 선례를 남긴 셈”이라고 지적했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다”

1990년대 변호사로 일한 이재명 대선후보. [이재명 후보 페이스북]

1990년대 변호사로 일한 이재명 대선후보. [이재명 후보 페이스북]

이재명이 자랑하는 ‘추진력’ 이면에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비판이 따라붙는다.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위한다는 이유로 불법도 서슴지 않았다. 파크뷰 아파트 특혜 분양 의혹을 취재하던 한 방송사 PD가 김병량 전 시장과 통화하면서 현직 검사를 사칭하고 해당 대화 내용을 방송에서 내보냈다. 그 자리에 같이 있던 이재명도 녹취 파일을 받아 기자회견장에서 공개했다. 2003년 법원은 공무원자격 사칭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명과 PD에게 각각 벌금 150만 원과 500만 원을 선고했다. 이재명은 항소하지 않아 벌금형이 확정됐고 PD는 항소 결과 선고유예를 받았다. 이에 대한 언급이 ‘인간 이재명’에 나온다.

“몇 년간 이재명과 성남시민모임이 토건업자와 정관계, 법조계, 언론계가 망라된 토건 마피아들과 싸운 대가 앞에서 이재명은 또 한 번 어금니를 깨물어야 했다. 파크뷰 특혜 분양 사건의 몸통을 끝까지 파고들지 않았다면 이재명은 회유와 협박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음해와 공격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전과자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전과자가 되지 않았으면 토건 마피아의 실체는 영원히 수면 위에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명분을 앞세워 비위를 정당화한다는 비판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음주운전 해명이다. 2004년 이재명은 집에서 인근 공원 앞까지 면허취소 수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158% 만취 상태로 차를 몰다 적발돼 벌금 150만 원을 선고받았다. 음주운전에 대해 “뉘우친다”면서도 “2005년 이대엽 전 성남시장의 농협 부정대출 사건을 보도했다 고소당한 언론사 기자를 무료 변론하던 중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다. 현재까지 변론과 음주운전이 어떤 관계인지 명확히 밝힌 바는 없다.

전과자가 되면서까지 도시개발 의혹을 추적했다는 이재명. 그런 그가 대장동 개발 의혹에 휘말린 것은 아이러니하다. 이호승 상임대표는 “백궁·정자지구 용도 변경 특혜 의혹 진상을 규명한 이재명이 대장동 개발에 연루된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재명은 ‘억강부약(抑強扶弱)’을 이야기했으면서도 대장동 개발 과정에서 임대아파트 비중을 줄이는 등 주거 취약계층을 챙기지 않았다. 이번 대장동 게이트로 수많은 무주택자와 철거민은 큰 상처를 입었다. 백궁·정자지구 개발을 둘러싼 의혹을 파헤쳤던 그다. 대장동 개발 문제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지 않았겠나. 이재명이 더 진실성 있게 사과해야 한다.”





주간동아 1319호 (p6~12)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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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40호

2022.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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