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69

2020.12.18

법적 조치로 文에 맞선 윤석열, 국민은 누구를 응원할까 [이종훈의 직설 9]

  • 이종훈 정치경영컨설팅 대표 ‧ 정치학 박사

    입력2020-12-17 18: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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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검찰총장. [동아db]

    윤석열 검찰총장. [동아db]

    왜 해임을 강행하지 못했을까? 두려웠을 것이다. 첫째, 여론의 후폭풍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징계청구와 직무배제 명령을 내린 직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크게 하락했다. 철벽같아 보였던 40% 선마저 무너졌다. 진보 지지층은 물론 호남 지역에서도 이탈 조짐이 나타났다. 이미 시작된 레임덕의 속도가 빨라질 것이 분명했다. 둘째, 검찰개혁의 무산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해임하는 순간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논리가 무너진다. 박근혜 정부에서 채동욱 검찰총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퇴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윤 총장이 해임되고 만다면 다음 정부에서도 검찰총장이 사퇴 또는 해임되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무한 악순환에 빠진다면 검찰개혁은 영원히 불가능해진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고 평생 외친 문재인 대통령이고 민주화 세력이다. 자기부정의 역사를 쓰는 것에 심리적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셋째, 근거의 박약함이다. 추미애 장관이 적시한 6가지 징계 사유는 사실 관계 확인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거나 절차마저 무시한 채 억지로 근거를 만들어낸 것이 대부분이다. 그야말로 ‘영혼까지 끌어 모아’ 밀어붙인 ‘영끌 징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차후에라도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 추미애 장관의 정치적 사심이 가득 담긴 이 ‘당의정’을 삼켰다가는 문재인 대통령 자신이 이 사안으로 집권 이후 위험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속도조절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은 징계

    정직 2개월을 선택한 데에도 나름의 노림수가 있을 것이다. 뭘까? 앞서 언급한 여론의 후폭풍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해임을 강행했더라면 보수와 중도 지지층의 분노는 극에 달했을 것이다. 진보와 호남 지지층의 추가 이탈도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30% 선 아래로 내려가면 이것은 곧 정권에 대한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검찰총장의 임기를 보장해준다는 의미도 크다. 문 대통령은 과거 검찰총장의 임기보장이야말로 검찰개혁의 한 증표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맞는 말이다. 검찰총장이 대통령이나 집권세력에게 밉보여 사퇴하거나 해임되는 일이 거듭되면 검찰개혁의 핵심인 정치적 중립성 확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해임이 아닌 정직 정도면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화 세력은 원칙을 지켰다고 말할 수 있는 최소한 근거 정도는 마련하는 셈이다. 정직을 몇 개월로 할 것인지도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6개월이면 사실상 해임이나 진배없다. 3개월도 버금간다. 윤 총장의 임기가 내년 7월까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개월 정도로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 따지고 보면 이 역시 이번 징계가 ‘영끌 징계’, 이것저것 모두 끌어 모아봤자 이 정도에 지나지 않는 옹색한 징계라는 것을 의미한다. 1월 발효 예정인 개정 검찰징계법을 적용해 좀 더 공정하게 진행했더라면 중징계가 아닌 경징계 또는 무혐의로 종결될 사안이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번 징계로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 구상했을 법한 출구전략도 읽힌다. 이쯤에서 추미애 ‘판정승’으로 정리하고, 추 장관을 교체한다. 2개월 정직으로 윤 총장은 임기를 마칠 수 있게 하되, 권력형 비리 수사에서는 사실상 손을 떼게 한다. 그 사이 해당 수사는 최대한 ‘마사지’한다. 이런 출구전략에 여론은 또 어떤 반응을 보일까? ‘도긴개긴’이라고 여길까? 아니면 이 정도면 수긍할만하다고 여길까? 여론의 반응도 계산에 넣었을 것이다. 진보와 호남 지지층은 후자일 가능성이 높고, 보수와 중도 지지층은 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내리지 않았을까?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일단 이탈한 진보와 호남 지지층만 되돌아와도 된다고 결론 내렸을 것으로 본다. 40%대까지만 회복하자는 의도인 것이다. 대통령 지지율 40%대에 범여권 180석이면, 사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조건이다. 레임덕 악화를 막을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 윤석열’ 구도

    문재인 대통령. [동아db]

    문재인 대통령. [동아db]

    여론은 정말 의도한대로 움직여줄까?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해임이나 정직이나 별 차이가 없다고 판단내리거나 어쨌건 징계를 강행한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늘어난다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추가 하락할 것으로 봐야 한다. 그래서 30대 초반까지 지지율이 떨어지면 문 대통령은 서서히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당연히 레임덕도 가속화할 것이고 관료조직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언론의 관심도 조기에 차기 대선주자를 향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응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윤 총장은 이미 유력 대선주자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국민적 관심사다. 그의 인기가 급상승한 가장 결정적 이유는 살아있는 권력에 맞섰기 때문이다. 그가 징계 절차와 내용에 대해 차곡차곡 법적 대응을 하면서 승리 포인트를 쌓아간다면, 그 대목마다 환호하는 국민이 늘어날 것으로 봐야 한다. 무리한 대응으로 스스로 자충수를 두지 않는 한 그럴 것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윤 총장이 선보인 대응을 보면 추 장관의 그것에 비해 훨씬 더 정교하다. 절차적 문제와 내용의 문제에 대해 하나도 빠짐없이 법적 조치를 취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승산은 오히려 윤 총장에게 있다는 생각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윤 총장은 약자다. 우리 국민은 강자보다는 약자에 더 감정이입을 하는 편이다. 더욱이 이번 징계위원회를 통해 이미 6개 징계 사유 가운데 2개에 대해서는 사실상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구체적으로 징계 청구 사유 중 (1)주요 사건 재판부 문건의 작성 및 배포 (2)채널에이 사건 관련 감찰 방해 (3)채널에이 사건 관련 수사 방해 (4)정치적 중립에 관한 부적절한 언행 등의 위신 손상 4개에 대해서는 징계사유를 인정했고, (5)언론사 사주와의 부적절한 교류 (6)감찰에 관한 협조의무 위반 등 감찰 불응 2개 사유에 대해서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불문’ 결정했다. 또 채널에이 사건 감찰 관련 정보 유출과 한명숙 전 총리 사건 감찰 관련 감찰방해 혐의도 증거 부족으로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윤 총장이 제기한 직무 집행정지 처분 취소 청구 소송 그리고 징계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는 징계위가 인정한 4개 혐의를 중심으로 다툼이 이뤄질 것으로 봐야 한다. 여기에 더해 징계위원회 위원으로 참석했던 신성식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 6개 혐의 모두에 대해 “인정되지 않는다”며 투표에서 기권했다는 사실이다. 7명 정원에 4명의 위원만 참석해 가까스로 정족수를 채운 징계위였다. 그런데 그 1명마저 기권했다면, 실은 7 대 3으로 징계가 기각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만큼 윤 총장으로서는 부담을 덜었을 뿐만 아니라 승소 가능성도 높아졌다. 



    향후 재판 과정에서 윤 총장은 4개 혐의 각각에 대해 ‘도장깨기’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그 혐의들이 하나씩 무혐의 또는 증거부족으로 깨어져 나갈 때마다 앞서 지적한대로 환호하는 국민은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공교롭게도 롤 플레잉 게임(RPG : Role Playing Game)을 닮았다. 윤 총장을 게임 속 자신의 캐릭터라 여기는 국민이 늘어나기 시작하면, 지지 세력은 단번에 폭발적으로 늘어날 지도 모른다. 징계를 단행하면서 이제 싸움은 ‘추미애 대 윤석열’이 아니라 ‘문재인 대 윤석열’ 구도로 넘어갔다. 강자 문재인에 맞서는 약자 윤석열! 국민이 이 게임에서 누가 승리하기를 바랄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우리 국민의 정서가 그렇다. 게임 속에서 윤석열은 강자 문재인과 그의 호위무사 추미애를 상대한다. 호위무사 추미애와 힘든 결투 과정에서 윤석열도 ‘정직 2개월’이라는 상처를 입었다. 그래도 ‘사망’하지는 않았다. 이제 ‘징계’라고 하는 혈전을 거쳐, 윤석열은 문재인 앞에 섰다. 문재인은 ‘정직 2개월’을 무기로 받고, 여기에 ‘청룡도’를 더해 윤석열을 치려한다. 알고 보니 그의 뒤에는 180명의 호위무사가 더 있었다. 상처 입은 윤석열은 결국 이 싸움에서 이길 것인가 무릎을 꿇고 말 것인가?

    공수처 1호 수사대상

    게임의 결론을 예언해본다면 윤석열 ‘신승’이다. 그리고 6개 혐의는 모두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에 명예훼손 혐의까지 더해진 상태에서 부메랑으로 추 장관에게 되돌아 갈 것이다. 그리고 2개월 정직 결정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재가를 하는 순간 게임의 장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문 대통령도 윤 총장의 법적대응 대상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재가’라는 이름의 ‘청룡도’는 이런 의미를 지닌다.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를 서두른 이면에는 내년 재보선도 변수로 작용한 듯하다. 일단 추미애 장관이 빨리 정치권으로 복귀해 서울시장으로 출마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그리고 민주당도 윤 총장 사퇴와 더불어 공수처 출범을 연내에 끝내야 내년 재보선 즈음에 권력형 비리 이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권력형 비리 수사는 현재 지지부진한 상태다. 라임과 옵티머스 펀드와 관련한 정관계 인사 연루 부분에 대한 수사도 야권 인사만 구속시킨 것이 전부다. 12월 11일 ‘라임 사태’ 핵심 인물로 알려진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옥중편지에서 야권 정치인으로 지목한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 현 국민의힘 충북도당위원장의 구속이 대표적이다. 김 전 회장이 언급한 여권 정치인에 대한 수사는 전혀 진척이 없다. 만약에 수사가 본격화한다면, 내년 초부터 이들 여권 정치인 관련 소식이 본격적으로 보도를 탈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윤 총장이 2개월 쉰다면 수사는 달리 진행될 지 모른다. 계속 지지부진하게 끌고 가거나 적당히 야권 정치인만 구속한 상태로 마무리하는 것이 그것이다. 현재까지의 진행 과정으로 봐서는 당청이 모두 그런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공수처 출범을 서두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권에서 벌써부터 공수처 1호 수사대상이 윤석열이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한다. 하지만 공수처 설립의 최초 명분은 권력의 눈치를 보는 검찰이 하지 못하는 권력형 비리를 전담시키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보면 오히려 현재 지지부진한 상태로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 권력형 비리를 1호 수사대상으로 삼아야 정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월 15일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수처가 설치됐더라면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은 없었을지 모른다. 안타까운 역사였다.” 이번 정부에서는 그나마 공수처가 만들어져 국정농단이 없을 것이란 기대감을 갖게 하는 발언이다. 그런데 공수처가 만들어지기 이전, 그러니까 현재까지는 결단코 권력형 비리가 없었다고 장담할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 문재인 대통령은 야권의 지속적인 요구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특별감찰관조차 임명하지 않았다. 특별감찰관도 없고 공수처도 없었던 지난 3년 반 동안 정말 아무 일도 없었을까? 객관적 조건으로 봐서는 오히려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측근 비리가 성행할만한 환경이었는데 말이다. 다음 대통령은 어쩌면 이런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특별감찰관을 임명했더라면 정권 전반기의 권력형 비리는 없었을지 모른다. 안타까운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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