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67

2020.12.04

근육 손실보다 무서운 건 과학적 사고력의 손실 [궤도 밖의 과학-35]

  •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입력2020-11-24 10:4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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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지 마, 근 손실 나니까.’ 근육이 줄어드는 현상을 극도로 경계하고 오직 운동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풍자하는 유머코드가 등장했다. 눈물로 인해 생길지 모를 근 손실이 두려워 최루성 영화나 드라마를 피하고, 심지어 지인의 장례식 참석도 자제하려는 헬스인(헬스장을 찾는 사람들)을 빗댄 우스개 글까지 있을 정도다. 처음에 이런 이야기는 오직 근육만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를 겨냥한 ‘자학 개그’ 소재로 쓰였지만, 철저한 생활수칙을 지키려는 헬스인들의 경이로운 노력 덕분에 이제는 진지하고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정말 울게 되면 근 손실이 일어날까? 그 전에, 우선 근육이 뭔가부터 차근차근 알아봐야 한다.

    영화 ‘마션’에 우주비행사 역으로 출연한 맷 데이먼이 저중력에 의한 근육 퇴화를 막기 위해 운동을 하는 모습. [20세기폭스]

    영화 ‘마션’에 우주비행사 역으로 출연한 맷 데이먼이 저중력에 의한 근육 퇴화를 막기 위해 운동을 하는 모습. [20세기폭스]

    근육은 뼈와 함께 몸의 대략적인 형태를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다. 근육이 없으면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게임 속 강령술사가 소환하는 해골 형태의 괴물 ‘스켈레톤(skeleton)’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스켈레톤은 뼈만 있고 근육이 없다 보니 힘겨운 직립보행만 가능할 정도로 허약하다. 평소 누구나 즐겨 먹는 삼겹살도 근육과 지방이 섞여 있으며, 스테이크 재료로 인기 높은 소고기의 안심 부위 역시 결이 곱고 부드러운 근육 덩어리다. 보통 수축하는 성질을 갖는 근육 세포가 모여 근육을 이루지만, 한꺼번에 동시에 움직이는 부분을 모아 근섬유라고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그리고 머리카락 굵기의 근섬유를 꽃다발처럼 모으면 보기 좋은 근육이 된다. 

    근육도 인체 조직이기에 작은 손상 정도는 저절로 치유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바로 이점을 이용해 꾸준한 운동으로 좀 더 크고 아름다운 근육을 얻는 것이다. 다만 ‘근육이 늘어난다’는 것이 근섬유의 개수가 늘어나는 건지, 아니면 근섬유 각각의 개체가 커지는 건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동물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일부 고양이의 근섬유 개수가 늘어난 사실을 확인했지만, 그렇지 않은 동물도 많았다. 살아있는 사람의 근섬유를 추출해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간접적으로 측정할 수밖에 없는데 그 결과도 연구팀에 따라 제각각이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운동을 해도 근섬유의 개수는 거의 늘어나지 않는 대신 근섬유 자체가 각각 커질 수 있으며, 무리하게 운동하는 경우 어쩌다 근섬유의 개수가 늘어나기도 한다는 모호한 결론이 나왔다. 역시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는 결론을 내기가 어렵다. 

    이제 근 손실에 대해 알아보자. 지갑이나 핸드폰도 아닌 근육을 잃어버린다는, 너무도 슬픈 손해를 의미하는 근 손실은 쉽게 일어난다. 사용하지 않는 근육이 퇴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헬스장에서 운동할 때, 근육은 두 가지 방식으로 고통을 받는다. 먼저 충분히 버틸만한 강도의 반복적인 운동은 특정한 근육에 계속 자극을 주어 질기고 튼튼한 상태로 만들어준다. 만약 강도가 과도한 운동을 하게 되면, 평소에 놀던 근육들이 비상시 동원된 예비군처럼 순간적으로 집합하여 버틴다. 그 과정에서 손상된 근육은 재생되면서 더욱 두꺼워져 다음엔 더 큰 힘을 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힘겹게 성장한 근육들은 불과 하루 이틀만 운동을 쉬워도 원래대로 돌아가 버린다. 근육을 감싸고 있는 혈관의 수가 줄어들어 충분한 산소를 공급하지 못하게 되면, 유산소 세포 호흡의 효율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에너지를 예전만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말이다. 몇 주 동안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근육의 크기도 눈에 띄게 줄어들며, 근력도 떨어진다. 이게 바로 헬스인들이 두려워하는 근 손실의 정체다. 고작 잠시 쉬어갈 뿐인데, 왜 이렇게 급격한 변화가 찾아올까? 

    우리 몸에서 생산된 에너지는 여러 곳으로 간다. 특히 근육에는 글리코겐의 형태로 저장된다. 글리코겐 저장 능력은 지속적인 운동으로 키울 수 있다. 반대로 운동을 중단하면 그 능력이 떨어진다. 이때 글리코겐은 함께 저장된 수분을 잃게 되며 그로 인해 근육의 크기가 줄어든다. 즉, 근육에서 물이 빠지는 것이다. 어쩌면 ‘울면 근 손실이 생길 수 있다’는 낭설은 이러한 원리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비롯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눈물을 흘린다고 멀쩡하던 근육을 잃어버릴 리 없다. 다시 운동을 시작하면 글리코겐 저장 능력이 물만 부어 바로 쓰는 물티슈처럼 금방 회복된다. 혹시라도 슬픈 상황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면 걱정하지 말고 아낌없이 슬퍼하자. 울면 눈물과 함께 스트레스 호르몬이 배출되기 때문에, 평소 쌓였던 고민과 걱정거리가 해소될 수도 있다.



    충분한 근육량과 다이어트의 상관관계

    식물은 광합성이라는 놀라운 능력으로 빛과 물,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동물은 남이 만들어낸 유기물을 섭취해 생명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음식물이라 불리는 유기물을 열심히 섭취하고, 이것을 에너지로 바꾼다. 물론 간단한 과정은 아니다. 우선 몸 안으로 들어온 음식물을 영양소로 분해해 흡수하는데, 몸을 구성하는 세포들이라고 해도 이걸 바로 에너지로 사용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미토콘드리아라는 친절한 이웃의 도움을 받는다. 미토콘드리아는 원래 세균의 일종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평소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세균이 우연히 세포 안으로 들어왔다가 너무도 안락한 환경에 적응하여 안전을 보장받는 대신, 에너지를 주는 형태로 눌러앉았다고 한다. 지금은 일종의 발전소 형태가 되어 영양소를 에너지로 바꿔주는데, 신통하게도 효율이 매우 높다.

    운동을 많이 할수록 근육 세포 안의 미토콘드리아 수가 늘어난다. [GettyImage]

    운동을 많이 할수록 근육 세포 안의 미토콘드리아 수가 늘어난다. [GettyImage]

    세포는 보유한 미토콘드리아가 많을수록 더 많은 에너지를 만들어내며, 운동을 많이 하면 할수록 근육 세포 안의 미토콘드리아 수가 점점 늘어난다. 근육을 많이 쓰다 보니 계속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신호를 위로 보내고, 추가 용병의 필요성을 감지한 몸은 미토콘드리아를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건실한 회사에서 특정 부서가 인력이 부족한 상황을 인사팀에 어필하면, 신입 직원을 뽑아 배치해주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현실은 기존 인원의 야근으로 때우겠지만, 다행히 우리 몸은 합리적이다. 

    미토콘드리아가 늘어났다는 말은 기초대사량이 증가했다는 뜻이라 다이어트와도 관계가 있다. 흡수한 영양소를 꽤 많이 에너지로 소비하기 때문에, 먹는 양에 비해 살이 덜 찐다. 운동을 열심히 해서 미토콘드리아를 늘린다면, 체중 감량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물론 기초대사량이 높다고 무조건 살이 찌지 않는 건 아니다. 기초대사량은 보통 가만히 있을 때 소모되는 에너지를 말하는데, 기초대사량 전체에서 근육이 차지하는 비율은 20%밖에 되지 않는다. 즉, 컴퓨터로 치자면 화면보호기 상태여서 그리 많은 전력을 소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활동대사량은 확실히 달라진다. 근육이 많을 경우, 같은 운동을 하더라도 소모되는 에너지가 달라진다. 정리하자면 근육을 충분히 길러놓는 것으로 다이어트가 끝나는 게 아니다. ‘생활습관을 바꾸고, 운동을 꾸준히 병행하는 것’만이 요요현상을 겪지 않고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비결이다.

    근 손실만 없으면 건전한 정신이 깃들까?

    근 손실에 대한 걱정은 지구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보금자리를 떠나 우주로 나가게 되면, 늘 곁에 있던 중력이라는 단짝 친구의 손길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극도의 저중력 상태가 되면, 자유롭게 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몸에 많은 영향을 준다. 혈액 부피나 적혈구 모양도 바뀌고, 심혈관 기능도 지구와 달라진다. 중력의 부재로, 평상시에도 부담을 전혀 느끼지 않는 근육은 급격하게 퇴화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영화 ‘인터스텔라’나 ‘마션’ 속 우주비행사들처럼 끊임없이 운동해야 한다. 적당한 강도의 운동은 뇌 활동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놀랍게도 이 말은 우리가 원래부터 알고 있던 의미와 많이 다른 기원이 있다. 

    고대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는 당시 육체만 단련하는 열풍에 대해, ‘로마인들은 근육 바보들이다. 제발 부디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는 뜻으로 이 말을 남겼다. 근육을 단련하느라 자기반성이나 독서, 사색에는 시간을 쓰지 않는 당시 세태를 비꼰 것이다. 

    건전한 정신이란 아마도 상식적인 사고를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상식적인 것을 하나 꼽으라면 과학적 사고다. 어쩌면 근 손실보다 중요한 건, 과학적 사고력의 손실일지도 모른다. 꾸준히 과학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는다면, 우리의 사고는 훨씬 더 쉽게 손실이 일어나버린다. 오늘 하루 바벨 대신 과학 대중서적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심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는 헬스장의 운동기구나 매트 위에서라도 좋다. 건강한 육체와 건전한 정신을 함께 얻을 기회다. 물론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이런 방식은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날지도 모른다. 괜찮다. 근 손실은 안 날 테니까.


    궤도_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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