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65

2020.11.20

K2 전차, 국산화 고집하다가 전력 공백 우려 [웨펀]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2020-11-18 14: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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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2 전차. [방위사업청 제공]

    K2 전차. [방위사업청 제공]

    신토불이(身土不二). 우리 땅에서 난 농산물이 우리 체질에 잘 맞는다는 말이다. 우리 것이 좋다는 말이지만, 이는 ‘효율성’과는 정 반대 개념에 있는, 다시 말해 리카르도가 정립한 비교우위 개념에 바탕을 둔 국제 무역 시스템에 완전히 배치되는 대단히 국수주의적인 말이다. 그러나 이 용어는 민족주의와 결합해 폭발적으로 확산됐고, 마치 절대 선(善)인 것처럼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농협에서 만들어 낸 신조어

    신토불이라는 말은 이른바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진행 중이던 1980년대 후반에 외국산 농산물, 특히 쌀 수입에 반대하기 위해 농협에서 만들어 낸 신조어다. 영세한 운영 구조를 가지고 있고, 정부 보조금에 대한 의존도가 큰 한국의 농업은 농산물의 가격 경쟁력 면에서 기업화된 미국 등 선진국과 경쟁 자체가 불가능했고, 시장이 완전 개방되면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이러한 시기에 나온 ‘신토불이’라는 단어는 민족주의를 자극해 ‘국산=좋은 것’, ‘수입산=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대중에게 심어줌으로써 국민들로 하여금 외국산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도록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한반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반드시 한반도에서 나고 자란 농산물을 먹어야 건강에 좋다는 주장은 약리학(Pharmacology)적으로 검증된 바 없는 주장이지만, 국산을 먹을 것인지 수입산을 먹을 것인지는 순전히 소비자 개인의 선택에 달린 것이고, 소비자들이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그에 따른 결과는 소비자 개개인과 그 주변에만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이러한 ‘신토불이’의 논리가 ‘방위산업’에 적용되었을 때다. 

    한국은 유독 ‘한국형’이라는 수식어를 좋아한다. 그것이 소총이 됐든 전차가 됐든 전투기가 됐든 앞에 ‘한국형’이라는 수식이 들어가면 그 무기체계의 성능이 어떠하든지 간에 대중은 그 무기체계를 긍정적인 이미지로 인식한다. 그러한 무기체계에 비판적 의견이 제시되면 대중, 특히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비판적 의견을 제시한 사람에 대한 무차별적인 비방을 쏟아낸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의 최대 희생자는 다름 아닌 ‘국가 안보’다. 



    K2 전차 파워팩 문제는 이러한 ‘한국형 만능주의’가 빚어낸 촌극이다. 군이 요구하는 기간, 예산, 성능을 모두 충족하지 못했지만, 무조건 국산화해야 한다는 업계의 요구 때문에 K2 전차의 전력화를 크게 지연시켰고, 이로 인해 우리 군의 전차 전력 증강의 판을 엎어버린 희대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한국형 만능주의’가 빚어낸 촌극

    K2 전차는 1992년 소요가 확정되어 1995년부터 체계 개발이 시작됐다. 당초 군은 이 전차의 파워팩, 즉 엔진과 변속기를 결합한 동력장치를 K1 전차와 마찬가지로 독일제로 조달하려 했지만, 국내 업계에서 국산화가 가능하다는 제안을 하면서 2003년, 파워팩을 국산화하는 것으로 개발 일정이 바뀌었다. 

    군 당국이 제시한 국산 파워팩의 완성 시한은 2012년이었다. 국산 파워팩 완료 전까지는 독일제 파워팩을 수입해 장착해 개발 일정을 마치고, 국산 파워팩이 완성되면 이를 통합해 2011년부터는 초기 양산 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이 군의 전력화 계획이었다.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돼 K2 전차는 2008년 9월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았다. 파워팩 개발만 계약대로 진행됐다면 육군은 2011년 말부터 양산을 시작해 계획된 300여 대의 전력화가 이미 끝났을 테지만, K2 전차의 양산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애초에 국내 업체는 K2 전차용 파워팩 국내 개발을 정해진 작전요구성능(ROC)에 맞춰 정해진 기일 내에 완성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국내 업체들이 계속해서 기준을 맞추지 못하자 지난 2014년, 합동참모본부는 정지 상태에서 시속 32km까지 가속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8초 이하에서 9초 이하로 무려 1초를 완화해주는 초유의 조치를 단행해 국산 파워팩을 일단 통과시켰다. 

    1980년대에 나온 레오파드 IIA4가 6초, 1990년대 중반에 나온 AMX-56 르끌레르가 5초, 20년 전에 등장한 M1A2가 7.2초가 걸리는데, 2014년에 완성된 최신형 3.5세대 전차가 30~40년 전에 나온 전차들보다 가속 성능이 떨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국산 파워팩은 ‘작전요구성능’이 아닌 ‘업체요구성능’을 기준으로 삼는 초유의 평가 기준을 적용해 해당 항목은 통과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내구도 문제가 불거졌다. 주행 중 변속기 부품이 파손되는 사태가 발생해 시험평가에서 탈락한 것이었다. 

    시험평가에서 탈락한 직후 업체는 언론을 통해 “당국은 외국산 변속기에는 관대한 기준을 들이대지만, 국산 변속기에 대한 내구도 시험은 사소한 결함도 용납하지 않는다”며 당국의 평가가 가혹하고 잘못됐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방사청의 불합격 판정과 재시험 요구에 대해서는 “합리적이지 못한 현행 국방규격 때문에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며 법원에 방사청을 상대로 소송까지 냈다. 

    업체는 방사청이 기준을 낮춰 국산 변속기에 합격 판정을 주고, 이를 양산해 K2 전차 3차 양산 물량에 장착해야 한다는 요구를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업체의 이 같은 주장은 국가안보나 국민 혈세의 효율적 집행에 역행하라는, 정부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비현실적 요구다. 

    애초에 K2 전차 파워팩 국산화 결정은 참여정부 당시 K2 전차의 양산 물량이 2개 기동군단분 680대에 달할 때 결정된 사안이다. 이후 K2 전차 양산 물량은 축소에 축소를 거듭해 현재는 1차 양산 100대, 2차 양산 106대, 3차 양산 54대 등 260대 규모로 쪼그라들었다. 

    1차 양산 물량 100대에는 독일제 파워팩(독일 엔진+독일 변속기)이 적용됐고, 2차 양산 물량 106대에는 혼합 파워팩(국산 엔진+독일변속기)가 적용됐다. 이미 이 상황도 유사시 군수보급에 상당한 혼선을 초래할 수 있는 상식 밖의 상황이지만, 업체는 54대에 불과한 물량에 국산 변속기를 넣으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고작 260대가 생산되는 전차가 1·2·3차 양산 차수에 따라 엔진과 파워팩이 모두 다른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방위산업을 하는 제1의 목적

    방위사업청. [동아DB]

    방위사업청. [동아DB]

    양산 물량이 54대 안팎이라면 국산화보다는 해외 기성품을 직도입해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양산 물량이 적으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없어 대당 획득 가격이 크게 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업체는 변속기 개발에 476억 원의 비용을 투자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초 계획된 물량인 680대를 양산했다면 변속기 1대에 약 7000만원이 개발비 회수금으로 책정되겠지만, 양산 물량이 54대로 줄어들었다면, 업체가 땅을 파서 장사하지 않는 이상 변속기 1대에 8억8014만원의 개발비 회수금을 책정해야 타산이 맞을 것이다. 이는 양산 비용의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체는 1차, 2차 양산 때는 물론 3차 양산을 앞둔 현재도 국산 채택을 요구하고 있다. 파워팩 국산화가 결정되고 개발 계약이 확정된 2003년에 업체는 2012년까지 개발을 완료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개발 완료 약속 시점부터 현재까지 8년의 시간이 흘렀다. 일선에서는 진작 신형 전차로 교체되어 박물관에 들어갔어야 할 50~60년 된 M48 전차들이 굴러다니는데도 업체는 매 양산 때마다 국산 변속기를 채택해야 한다며 몽니를 부렸다. 

    3차 양산을 앞둔 시점에서 업체는 2022년까지 전력화 일정을 맞출 테니, 3차 양산분 초기 몇 대만 독일산 변속기를 넣고, 이후 물량은 국산을 넣자는 요구를 해오고 있다. 양산 물량이 줄어들면 당연히 가격이 올라가겠지만 군 예산 사정이나 야전에서의 군수지원 효율성은 어찌되든 일단 납품하고 보자는 집념이 이제는 무서울 정도다. 

    군사력을 다루는 국가안보 문제는 ‘효율의 싸움’이다. 정해진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우수한 군사력을 구축하면 국가안보는 튼튼해지지만, 효율을 무시하고 명분을 쫓게 되면 그 나라의 군사력은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보다 경제 규모나 군사 과학기술에 있어 월등히 앞서 있는 미국과 유럽의 주요 선진국들은 우리나라처럼 ‘국산화’에 집착하지 않는다. 자국 기술 발전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국산화를 지향은 하지만, 합리와 효율이라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과감히 해외 도입이나 공동개발이라는 카드를 꺼낸다. 그것이 국민이 낸 소중한 세금을 국가안보 달성을 위해 쓰는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이기 때문이다. 

    방위산업은 분명 기술 발전과 일자리 창출 등 국내 산업적인 요소도 고려해야 하는 분야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고려 사항이다. 정부가 방위산업을 하는 제1의 목적은 국가안보 달성이다. 여기서 주객이 전도되면 국가안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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