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흑표, 유럽 최대 1000대 규모 교체 사업에 도전장 [웨펀]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2020-09-12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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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2 흑표전차. [뉴스1]

    K2 흑표전차. [뉴스1]

    9월8일부터 폴란드 키엘체에서 열리는 제28회 국제방위산업전시회(MSPO)의 전시장에는 많은 전문 관람객의 이목을 끄는 전차 모형 하나가 전시됐다. 이 전차는 수려한 외관으로 관람객들을 매료시켰고, 현용 주력전차 대부분을 압도하는 제원으로 보는 이들을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이 모형 전차는 한국의 현대로템이 출품한 수출용 전차 ‘K2PL’이었다. 

    1993년부터 매년 열리는 동유럽 최대의 방산전시회인 MSPO는 코로나의 영향으로 올해 그 규모가 전년 대비 3분의 1로 줄어들기는 했지만, 21세기 유럽 최대의 전차 도입 사업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폴란드 육군의 차세대 전차 사업의 앞날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이목이 쏠렸다.

    유럽 최대의 전차대국

    폴란드는 현재 기준에서 유럽 최대의 전차대국이다. 독일제 레오파드 2 시리즈를 250여 대 이상 보유하고 있고, T-72 전차를 현대화한 PT-91 계열 전차 230여대, 과거 소련에서 직도입했거나 면허 생산한 T-72 계열 전차가 580여 대 등 1000대가 넘는 3세대 전차를 보유 중이다. 유럽의 강대국이라는 프랑스가 220여 대, 독일이 240여 대의 전차를 보유 중인 것과 비교해보면 엄청난 전력이다. 

    폴란드는 점진적으로 병력과 장비를 줄이고 있지만, 기갑전력은 예외다. 친러 국가인 벨라루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유사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최전선으로서 러시아와 맞설 수 있는 강력한 지상군을 유지해야 하는 안보환경 때문이다. 이 때문에 폴란드는 노후화된 전차 전력을 현대화하기 위한 차세대 전차 사업을 일찌감치 추진해 왔다. 

    폴란드가 밝힌 차세대 전차 도입 규모는 최대 800대다. 당장 노후화된 T-72 계열을 모두 도태시켜야 하고, T-72를 바탕으로 자체 개발한 PT-91은 1990년대에 도입한 비교적 신형이기는 하지만, 주포와 통신장비 등이 NATO 표준 규격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 전차 도입 사업으로 대체가 불가피한 전력이다. 



    사실상 주력으로 운용 중인 레오파드2 전차는 전부 중고다. 독일이 사용하던 A4 버전 137대, A5 버전 105대 모두 중고이고, 자체 개량한 NJ 버전과 PL버전 10대는 중고 A4 차량을 개조한 물건이다. 폴란드가 독일에서 구입한 중고 차량들은 1985년부터 1992년 사이에 생산된 차량으로 곧 있으면 40년이 되어가는 노후차량이기 때문에 2030년대가 되면 이 차량들도 신형 전차로 교체해 주어야 한다.

    결국 폴란드 육군은 T-72 전차 가운데 현역으로 운용 중인 380여 대를 우선 대체하고, 나머지 전차들도 순차적으로 대체해야 하므로 최소 800대, 최대 1000대 이상의 차세대 전차 소요를 가지고 있다. 

    사실 폴란드가 이 전차 소요를 충당하기 위해 관심을 보였던 것은 독일-프랑스 합작 차세대 전차 개발 프로그램인 MGCS(Main Ground Combat System) 사업이었다. 이 사업은 독일과 프랑스가 차세대 전차를 공동으로 개발해 2035년부터 독일 300대, 프랑스 250대를 배치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 중인 사업인데, 폴란드는 지난 2016년부터 꾸준히 독일, 프랑스 양측에 이 사업에 끼워달라고 요청해왔었다.

    폴란드가 대거 보유 중인 독일제 레오파드 2 시리즈. [위키피디아]

    폴란드가 대거 보유 중인 독일제 레오파드 2 시리즈. [위키피디아]

    ‘기술 개발’보다 ‘양산’에 초점을 둔 사업

    폴란드가 갖는 물량만 놓고 보면 독일과 프랑스가 폴란드의 참여를 거부할 이유가 없었지만, 독일과 프랑스 양국은 정치적인 이유로 폴란드의 MGCS 참여 요청을 거부했다. 

    독일과 프랑스 양측이 폴란드의 MGCS 참여를 거부한 가장 큰 이유는 ‘밥그릇’ 때문이다. 양국은 프랑스의 NEXTER社가 전체 사업 지분의 50%를, 독일의 크라우스마페이베그만社와 라인메탈디펜스가 각각 25%의 지분을 갖는 것으로 잠정 합의했다. 이 지분이란 개발과 양산을 위한 예산 투자 비율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완성품이 나왔을 때 생산 작업 일감을 얼마나 가져가는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다. 

    MGCS는 2035년부터 생산될 예정인 차세대 전차지만, 여기에 적용되는 기술은 정말 별 볼 일 없는 수준이다. 주포는 라인메탈이 개발한 130mm 활강포로 사실상 확정됐고, 차체도 현용 르끌레르나 레오파드2A7, 보병전투차인 KF41의 차체를 일부 개조해 개발비를 줄이는 것으로 거의 합의가 이루어진 상황이다. 즉, 이 사업은 큰 기술적 리스크를 배제하고 안전하게 양국의 전차 전력을 현대화하는, 다시 말해 ‘기술 개발’보다는 ‘양산’에 초점을 둔 사업이다. 

    따라서 독일과 프랑스는 현재도 진행 중인 협상에서 치열하게 밥그릇 싸움을 하는 중이다. 누가 더 많은 부품을 만들고, 해외 판매 시 누가 더 로열티를 많이 챙길 것인지를 두고 다투는 판에 폴란드가 끼어들면 이 밥그릇을 두고 싸울 경쟁자가 하나 더 생기는 셈이다. 폴란드가 이 사업에 참여할 경우 주사업자가 될 OBRUM 연구소나 부마르-와벤데(Bumar-Labedy)는 노조의 영향력이 대단히 큰 회사이기 때문에 독일과 프랑스 입장에서는 폴란드가 MGCS 사업에 참가하는 것이 달가울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독일은 지난 1월, 폴란드의 MGCS 참여 요청을 공식적으로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폴란드는 다른 대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미국의 M1A2 전차와 한국의 K2 전차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폴란드가 미국과 군사적으로 급격하게 밀착하기 시작하면서 M1A2 전차가 후보군으로 거론되기 시작했으나, 국내 기술도입 생산을 원하는 폴란드의 요구와 달리 미국은 M1A2 전차의 해외 면허생산을 허용한 적이 없기 때문에 K2 전차가 사실상 유일한 후보로 좁혀진 상황이다.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자 폴란드 현지 기업에서 먼저 K2 전차의 기술도입 생산을 제안하고 나왔다. 폴란드의 선박엔진과 철강 전문업체인 H 세지엘스키-포즈난이 현대로템과 손잡고 K2 전차의 폴란드 육군형을 개발해 납품하겠다고 폴란드 정부에 제안한 것이다. 여기에 현대로템이 화답하면서 K2 전차의 폴란드 수출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폴란드 정부는 자신들이 선택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대안인 K2PL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인보다 큰 폴란드인의 평균 체형을 고려해 내부 공간을 더 넓히고 폴란드 육군의 주요 요구사항이 반영된 K2PL이라는 개조개발 모델이 나온 이유도 바로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K2PL은 우리나라의 K2보다 보기륜이 하나 더 추가돼 차체가 좀 더 길어졌다. 포탑 역시 대형화되었으며, 전면과 측면에 신형 장갑이 적용돼 방어력이 기존의 K2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해졌다. 포탑 상부에는 원격으로 조작되는 중기관총, 360도 전 방향에서 날아오는 대전차 미사일이나 로켓을 요격할 수 있는 능동방어 장치도 추가됐다. 

    주포는 K2 전차와 동일한 55구경장 장포신 120mm 활강포다. 여기서 발사되는 K279 날개안정식철갑탄은 현존하는 운동에너지탄 가운데는 최정상급인 800~850mm급 관통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신형 복합장갑과 신형 주포로 무장한 K2PL은 폴란드의 주적인 러시아군의 모든 현용 주력전차를 어렵지 않게 제압 가능하며, 최신형인 T-14 아르마타조차 상대가 까다로운 성능이다.

    21세기 유럽 최대의 전차 도입 사업

    도입 조건도 훌륭하다. 디펜스24 등 보도에 따르면 현대로템은 폴란드 측에 기술과 부품을 제공하고, 폴란드 현지에 생산라인을 만들어 K2PL을 생산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폴란드가 원하는 바로 그 사업방식이다. 폴란드 정부가 이 방안을 수용할 경우 계약 규모는 최소 300억~400억 즈워티, 한화 10조~12조 원에 달할 전망이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폴란드가 K2PL을 도입하면 인접국가에 수백 대의 추가 수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폴란드는 인접한 체코와 슬로바키아, 헝가리 등 이른바 ‘비셰그라드 그룹(Visegrad Group)’의 일원으로, 폴란드의 신형 전차 도입은 나머지 최근 레오파드2 전차를 도입한 헝가리를 제외한 체코와 슬로바키아 육군에게 큰 관심사다. T-72 전차를 운용 중인 이들 두 국가의 차세대 전차 도입 규모는 최대 200여 대에 달한다. 

    요컨대 폴란드의 신형 전차 사업은 폴란드군 수요 최대 800대, 신형 전차 도입 의사를 밝힌 인접국가 최대 200대 등 1000대 규모까지 확대될 수 있는 21세기 유럽 최대의 전차 도입 사업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소위 ‘대박’의 기회다. 부디 수주에 성공해 K2 흑표가 유럽의 대평원을 질주하는 모습을 볼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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