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50

2020.07.31

北레이더 먹통 만들 전자전 공격기, ‘돈 먹는 하마’될라 [웨펀]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2020-07-30 11:5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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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 정찰기. [국방부 제공]

    백두 정찰기. [국방부 제공]

    미군의 대외 군사작전은 공습으로 시작해 공습으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항공력에 대한 의존도가 대단히 높다. 이러한 항공력 의존 현상은 막대한 인명 피해를 낸 베트남전쟁을 겪으면서 점점 커졌고, 1990년대 이후 미국의 해외 군사작전은 지상군 투입보다 항공력 투입을 통한 공습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전 세계가 미국 CNN 생중계를 통해 지켜본 걸프전쟁은 미군 항공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준 간접 체험의 장이었다. 일단 표적이 정해지면 군함에서 발사된 수백 발의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이 하늘을 뒤덮고, 뒤이어 엄청난 수의 전투기와 폭격기가 정밀유도 폭탄으로 적의 주요 표적을 족집게처럼 파괴한다.

    전자전기에 의한 방공망 제압

    사람들은 영상으로 생중계되는 공습 장면을 보면서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후세인의 이라크는 한때 좋다는 방공무기는 전부 사들여 바그다드에 세계 최고 밀집 방공망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나라다. 그런 바그다드 상공에 미군 전투기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날아다니며 정밀유도무기를 투하해도 이라크군 방공무기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도가 초토화되는 동안에도 이라크군 방공부대가 무기력하게 있었던 이유는 미군 전자전 공격기 때문이다. 미 공군은 EF-111과 EC-130H을, 미 해군은 EA-6B를 공습작전에 대량으로 투입했고 이 전자전기들은 방해전파를 쏴 이라크군 레이더를 모두 먹통으로 만들었다. 방해전파 속에서도 전원을 끄지 않은 레이더는 모두 대(對)레이더 미사일을 얻어맞고 파괴됐다. 

    걸프전쟁 이후 시행된 모든 공습작전에서 전자전기에 의한 방공망 제압은 미군의 정식 교리로 굳어졌다. 적의 방공망이 살아 있는 지역에 유인 전투기가 들어가는 공습작전에서는 반드시 전자전 공격기가 따라붙었고, 적 방공망을 제압한 뒤 안전이 확보되면 유인 전투기가 작전지역으로 들어갔다. 



    전자전기에 의한 방공망 제압 이후 유인 전투기가 들어가는 공습 전술은 작전 성공률을 크게 높이면서도 전투기 손실률을 낮추는 데 주효했다. 이 때문에 현대화된 공군력을 갖춘 강대국은 대부분 전자전기를 보유했거나 보유할 계획을 갖고 있다. 

    미국과 호주는 자타 공인 세계 최강 전자전 공격기인 EA-18G 그라울러(Growler)를 운용 중이고, 러시아는 Su-24 일부 기체를 개조해 키비니(Khibiny) 전자전 시스템을 얹은 전자전 공격기를, 중국은 ‘중국판 그라울러’라 부르는 J-15D를 배치하고 있다. 

    이러한 전자전 공격기의 효용성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밀집 방공망을 운용하는 북한과 대치 중인 한국 공군도 일찌감치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시에 미 항모 전단에 배속돼 들어오는 전자전 공격기의 지원을 받으면 된다는 ‘연합자산 만능론’ 때문에 한국 공군은 오랜 기간 전자전 공격기를 갖지 못했다. 2000년대 초반 유럽제 토네이도 ECR 중고 기체를 들여오는 방안이 검토됐지만, 조달 수량이 너무 적고 운용 유지비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간다는 판단에 따라 한국군의 독자적인 전자전 공격기 획득은 무기한 연기됐다.

    대북 장거리 항공 타격 자산의 중요성

    국방과학연구소(ADD). [국방과학연구소 제공]

    국방과학연구소(ADD). [국방과학연구소 제공]

    그러나 북한에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고 핵과 미사일 전력의 급격한 증강이 이뤄지자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북한 핵미사일이 한국을 타격하기 전 예방적 선제타격으로 제압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대북 장거리 항공 타격 자산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커진 것이다. 

    이른바 ‘3축 체계’로 명명된 대북 억지 전략 구현을 위해 우리 군은 3군의 장거리 타격 자산을 대대적으로 확충하기 시작했다. 육군은 탄도미사일, 해군은 장거리순항미사일, 공군은 공중 발사 순항미사일과 벙커버스터 폭탄을 도입했다. 이러한 타격 자산의 강화와 함께 전자전 공격기의 필요성도 자연스럽게 제기됐다. 미군 증원 전력의 도착을 기다릴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군 단독으로 평양 노동당 지하벙커에 벙커버스터 폭탄을 날릴 수 있는 전력을 갖추려면 전자전 공격기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공군이 전자전 공격기 소요를 제기함에 따라 방위사업청은 지난해 국방기술품질원(기품원)에 전자전 공격기를 해외에서 도입할 것인지, 아니면 국내 기술로 자체 개발할 것인지에 대한 선행연구를 의뢰했다. 기품원은 미국제 EA-18G 그라울러를 직도입하는 방안과 전자전 장비를 직접 개발해 외국산 항공기에 통합하는 두 가지 방안을 놓고 비교 검토한 결과 국내 독자 개발 방안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당초 군은 전자전 공격기 도입 사업에 약 2조 원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분석했다. 이 예산을 들고 우선 고민할 수 있는 부분은 세계 최강 전자전 공격기인 EA-18G 그라울러를 직도입하는 것이다. 

    미국 이외에 유일하게 그라울러를 운용 중인 호주는 F/A-18F 슈퍼호넷 24대를 주문한 뒤 해당 기체가 이미 생산된 상태에서 막판에 계약을 엎고 후기 생산 물량 12대를 EA-18G로 개조하고, 전자전 포드는 장기 임대하는 복잡한 계약 방식을 취했다. 이 때문에 대당 획득 가격이 2억6000만 달러(약 3109억 원)까지 치솟았지만 이는 예외적인 사례다. 

    미 해군에 납품되는 EA-18G 기종을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으로 도입할 경우 EA-18G의 플라이어웨이 코스트(Flyaway Cost) 기준 대당 약 7000만 달러(약 837억 원)이기 때문에 아무리 조건을 많이 붙여도 대당 도입 가격은 1억5000만 달러(약 1793억7000만 원) 미만에 형성될 것이다. 우리 군 당국이 예상한 2조원 예산으로 11대 남짓 구매 가능한 수준이다. 

    그러나 기품원은 국외 도입 방안은 배제하고 국내 개발 쪽으로 사업 추진 방향을 권고했다. 국방과학연구소(ADD) 주도로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형 원격지원 전자전기’ 연구가 진행돼왔기 때문에 이 연구를 통해 얻은 기술을 바탕으로 전자전 장비를 독자 개발하고 이를 C-130이나 CN-235 수송기에 통합해 운용하는 것이 적합하다는 주장이다.

    ‘한국형 원격지원 전자전기’ 연구

    세계 최강 전자전 공격기 EA-18G 그라울러. [미국공군 제공]

    세계 최강 전자전 공격기 EA-18G 그라울러. [미국공군 제공]

    국내 개발 쪽으로 방향을 틀자 예산 증액 얘기가 나왔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전자전 장비 개발 5000억 원, 플랫폼 항공기 구매와 체계 통합에 1조5000억 원 등 2조 원가량이 들 것으로 예상되던 사업이 국내 개발 쪽으로 완전히 기운 지금은 5000억 원이 더 뛰어 2조5000억 원의 비용이 필요하다고 한다.
     
    ADD가 제안하는 방식은 미 공군이 운용해온 EC-130H 컴퍼스 콜(Compass Call) 유형이다. 전자전기가 적 방공망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먼 거리에서 강력한 출력의 방해 전파를 방사하는 ‘스탠드 오프 재밍(Stand-off Jamming) 방식이다. 수송기에 재머를 탑재하는 이 방식은 재머 크기와 중량 제한에서 비교적 자유로워 개발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산악이 즐비해 원거리에서 방사한 방해전파를 가로막을 수 있는 차폐 지형이 많은 한반도 전장에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반발도 만만치 않다. 

    국내에서 개발하겠다는 한국형 전자전기는 요컨대 ‘사용자 요구’보다 ‘개발자 편의’를 고려한 것이다. 실제로 전자전기 획득이 국내 개발로 가닥이 잡힌 현재, 공군에서는 소형 비즈니스 제트 기반의 작고 빠른 플랫폼을 선호하고, 개발자인 ADD는 C-130에 통합하는 방안을 선호하면서 의견이 갈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 우리 공군의 작전 환경에 가장 부합하는 이상적인 방안은 EA-18G 직도입이다. 그러나 그라울러 직도입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바로 보안 문제 때문이다. EA-18G의 핵심 장비인 ALQ-99 전자전 포드는 다양한 대역의 적 레이더와 지대공미사일, 방공 시스템에 대한 맞춤형 방해전파를 방사하는데, 이러한 방해전파들은 미국이 수십 년간 수집한 적성국 무기체계의 전파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즉 그라울러의 전자전 재머는 미군의 전자정찰 능력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1급 보안장비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이른바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중 하나로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라는 호주에 그라울러를 팔 때도 기체는 판매하고 ALQ-99 등 핵심 전자전 장비는 장기 임대 형식으로 제공했다. 호주 공군 그라울러의 전자전 포드는 평시에는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정비, 보관돼 있다, 필요시 호주로 옮겨가 기체에 장착, 사용된다. 운용 전 과정에서 미군 관계자들이 관리·감독한다. 우리가 2조 원 넘는 돈을 주고 그라울러를 구매했을 때 운용 전 과정에서 미군 관계자들이 개입한다면 우리 국민 정서가 이를 용인할 수 있을까. 

    이 때문에 전자전 공격기 자체 개발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다. 문제는 현재 대한민국 능력으로 이러한 전자전 공격기, 정확히 말해 재밍 장비를 개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재밍(Jamming), 즉 전파교란(電波攪亂)은 레이더의 특성을 이용해 적 레이더를 속이는 것이다. 레이더는 공중에 고유한 특성을 가진 전파를 방사하고 그 전파가 대상에 맞아 반사돼 돌아오면 그 반사파를 수신한 뒤 반사된 전파 정보를 고유의 알고리즘으로 해석해 대상이 무엇인지, 속도와 고도, 방위는 어떻게 되는지를 산출해 시각화하는 장비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동일한 특성의 또 다른 전파가 사방에서 들어오면 레이더 스크린은 어떤 것이 진짜 반사파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먹통이 된다. 다시 말해 재머(Jammer)는 교란하고자 하는 적 무기체계의 전파 특성, 즉 주파수와 도약 코드에 대한 정보를 온전히 알고 있어야 한다. 

    가령 북한이 보유한 SA-5 장거리지대공미사일용 탐지 레이더인 P-14 레이더를 재밍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이 레이더는 900kW 출력으로 최대 600km까지 탐지 전파를 방사하며, 0~0.25GHz 대역, 즉 A밴드를 사용한다. A밴드는 0~1.2m 파장을 갖는데 P-14 레이더는 보안을 위해 일정한 함수 규칙에 따라 A밴드 범위에서 1초에 수백 회 이상 주파수를 바꾸는 주파수 도약을 수행한다. 즉 재밍하고자 하는 공격자 측에서는 이 레이더의 주파수는 물론, 주파수 도약 알고리즘까지 완전히 파악하고 이에 맞는 방해전파를 송출할 수 있어야 한다.

    전자정보 데이터베이스 구축

    미군 전자정찰기 RC-135V/W 리벳 조인트. [미국연방정부 제공]

    미군 전자정찰기 RC-135V/W 리벳 조인트. [미국연방정부 제공]

    미국과 중국이 연일 한반도 주변에 전자정찰기를 날리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미국의 RC-135V/W 리벳 조인트, 중국의 가오신계열 정찰기들이 한반도 주변을 비행하는 것은 바로 적성국 레이더와 통신장비들이 방출하는 전파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자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재머에 적용하기 위함이다. 적 레이더의 도약 알고리즘은 수시로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상시 정찰을 통해 최신화된 데이터베이스를 유지해야 유사시 효과적인 전파 교란이 가능하다. 

    다시 한국 공군의 문제로 돌아와 보자. 그렇다면 한국공군은 이러한 전자정보 수집을 위한 전용 전자정찰기(ELINT)를 보유하고 있나. 물론 한국에도 ‘백두’라는 ELINT가 있기는 하다. 과거 ‘전략정찰의 자주화’라는 기치로 도입된 2대의 백두 정찰기는 온갖 스캔들에 휘말리기만 했을 뿐, 현역에 있는 동안 거의 제 기능을 못해 악명을 떨쳤다. 

    2017년부터 전력화된 신형 백두 정찰기의 성능은 베일에 싸여 있으나, 관련 장비를 납품한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대 370km 범위에서 전파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 상공으로 한정해 작전 중인 이 정찰기가 완전 작전 운용에 들어간 것이 2019년 초이므로, 한국군이 북한군의 주요 방공무기에 대해 본격적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것은 이제 1년이 갓 넘은 수준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이 ‘한국형 전자전 공격기’의 대상이 북한만은 아니며, 북한이 모든 방공무기 체계를 1년 365일 내내 24시간 상시 가동하며 우리 군이 전파정보를 수집하도록 무방비로 두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백두 정찰기를 운용하는 성남기지는 민간인 거주구역과 매우 가깝고, 이곳의 모든 항공기 이착륙 정보는 북한이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북한 입장에서는 여기서 백두 정찰기가 이륙했을 때 방공 레이더를 꺼버리면 그만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국형 그라울러’나 ‘한국형 컴퍼스 콜’을 만들기 전 전자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 위한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해상 플랫폼에서 은밀하게 발사 가능한 소형화, 무인화된 ELINT를 먼저 확보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한국형 전자전 공격기 도입은 2조5000억 원이라는 막대한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이자, 우리 공군의 작전 패러다임을 바꿔놓을 전략무기 도입 사업이다. ‘가기 편한’ 유형의 사업은 철저히 지양하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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