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40

2020.05.22

국제백신연구소 "코로나 백신 나오면 2~3년 안에 퇴치 가능"

〈허문명의 pick〉 제롬 김 국제백신연구소 사무총장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입력2020-05-20 14:4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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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롬 김. [동아사이언스 윤신영 기자]

    제롬 김. [동아사이언스 윤신영 기자]

    서울에 본부가 있는 국제기구인 국제백신연구소(IVI)를 이끌고 있는 제롬 김 사무총장은 미국 바이오기업 모더나(Moderna)의 코로나19 백신 후보 물질에 대해 “초기 단계라서 아직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백신개발을 위해 국제사회의 역량이 총집중되고 있기 때문에 향후 1년 6개월 내에 코로나 19백신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 서울대학교 캠퍼스에 위치한 연구소에서 그를 만났다.

    백신개발 역사상 전례없는 빠른 속도

    -우선 모더나 발표를 어떻게 봐야하나 

    “1단계 임상시험에서 45명 중 8명에게서 자연감염에서 볼 수 있는 수준만큼 높은 수준으로 바이러스를 무력화시키는 중화항체가 형성된 것으로 확인됐다는 것은 긍정적인 진전이지만 아직 시험 초기 단계에 대한 부분적인 공개다. 모더나는 향후 수백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 2단계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현재 중국, 영국, 미국의 다른 회사들도 2단계 시험 단계에 들어가거나 들어가고 있다.” 

    -현재 진행되는 코로나19 백신프로그램들은 몇 개 정도가 있나.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5월11일 현재 110종이 개발 중이다. 모더나를 포함해 8개 업체가 인체 대상 임상 시험단계에 진입했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스웨덴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가 공동으로 개발 중인 백신도 모더나 백신과 엇비슷한 단계에 와있다는 평가다. 백신 개발 역사상 이렇게 많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건 전례가 없다.” 

    -언제쯤 백신이 나올까? 

    “1년이나 1년 반 정도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잘 알다시피 보통 백신 한 개를 만들려면 5년에서 10년이 걸린다. 그 과정에서 최소 10억에서 20억 달러(약 1조2000억∽2조4000억 원)까지 들 수 있는데 실패율이 90%가 넘기 때문에 글로벌 제약사들도 감당이 힘들다. 하지만 지금같이 시급한 상황에서는 임상 1상, 2상을 동시에 진행하고 결과가 좋을 경우 2차 시험 완료 전에 백신을 맞은 사람들에게 별 문제가 없는지 보는 과정(보통 3~4년)을 단축시키면 예상보다 빨리 나올 수 있다. 무엇보다 지금은 국제공조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매우 긍정적이다. 여기에는 2017년 출범한 세피(CEPI)재단의 힘이 크다.”

    백신개발을 위한 국제공조의 힘

    -세피 재단은 어떤 곳인가? 

    “2017년 노르웨이 정부주도로 출범한 ‘전염병예방혁신연합(CEPI·이하 세피)’이다. 혹시 2014년 서아프리카를 중심으로 대유행해 2년 만에 1만10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에볼라 바이러스를 기억하는가.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대형 제약사 CEO들을 불러 모아 놓고 ‘모든 사업을 중단하고 백신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었다. 다행히 한 회사가 내놓은 것이 효과가 있었는데 9개월 만에 전염병이 잦아들자 이내 관심이 떨어졌다. 미국 정부도 지원을 끊었다. 기업들은 수 억 달러씩 손실을 입었다. 



    사스, 메르스, 조류 인플루엔자 등 지난 20년간 감염 병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도대체 백신이 왜 안 나오느냐’ 아우성을 치지만 병이 사라지면 백신과 치료제 연구는 사라진다. 전염병이 발병할 때마다 우리는 손에 쥔 무기가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러다 에볼라를 계기로 국제 사회에서 집단적인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결국 세피가 출범하게 됐다.” 

    -이번에 코로나19백신 개발에도 관여하고 있나. 

    “세피는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국가와 빌&멜린다 게이츠재단, 웰컴 트러스트같은 단체로부터 받은 10억 달러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당초 메르스, 라사열, 니파바이러스, 치쿤구니아 바이러스 백신 개발을 목표로 출범했지만 이번에 코로나19가 출현하자마자 신속하게 적용 기술이 가능한 보유 기업 네 곳에 바로 자금을 지원했다. 모더나도 그 중 한 곳이다. 

    모더나 외에 미국 기업 이노비오, 유럽 기업 큐어백, 호주 퀸즐랜드 대학 등이 지원을 받아 연구 중이다. 중국이 코로나 19 유전자를 공개한 지 4개월 만에 인류를 위협하는 바이러스에 대한 국제적인 솔루션이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국제 사회에서는 이런 전례 없는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메르스 백신 연구가 밑거름

    -IVI도 자체적으로 백신 개발을 하고 있나 

    “2015년 메르스가 창궐했을 때 메르스 백신 연구를 시작했다. 삼성생명공익재단 지원을 받아 중소기업인 진원생명과학과 함께 진행했는데 올해 말 임상 2상이 완료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진원생명과학이 협력하고 있는 회사가 이번에 코로나19 백신 연구를 하고 있는 미국 이노비오다. 이노비오는 DNA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단기간에 백신 설계를 마치고 바로 동물 실험에 착수했다. 우리가 했던 메르스 백신 연구가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 

    -국제백신연구소 IVI가 한국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는데 이번에 주목을 받고 있다. 

    “IVI는 싸고 효과적인 백신 개발과 보급을 위해 유엔개발계획(UNDP)주도로 1994년 한국 정부가 유치해 1997년 설립됐다. 대한민국에 본부를 둔 최초의 국제기구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IVI가 한국에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는 뭘까? 

    “국제기구, 세계보건기관, 세계 유수대학, IVI 설립협정 회원국, 주요 후원 기관들과의 네트워크 센터로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백신 개발에 대한 국제적인 정보가 모일 수 있으니 한국 바이오 기업들이 그만큼 빨리 세계적 연구 트랜드를 파악하고 발맞춰갈 수 있다. 

    1990년 중반 유엔개발계획이 백신 국제기구를 설립한다고 했을 때 중국, 태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가 유치 경쟁을 했지만 한국으로 결정됐다. 건물과 땅을 서울대학교가 제공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운영 예산의 30%를 책임지겠다는 제안은 정말 파격적인 것이었다. 세계는 막 개발도상국에서 고소득 국가로 부상한 한국이야말로 다른 개도국을 위해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당시 유치를 위해 뛰었던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IVI가 유치되면 전 세계 생명 과학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고 향후 생명공학 산업을 미래성장 동력으로 만들 것이라 판단했는데 정확히 맞았다. 

    전염병이란 게 이제 특정국가, 가난한 나라들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선, 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인류를 위협하는 상황이 된 만큼 IVI의 위상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 바이오산업정보가 모이는 센터

    -글로벌 네트워크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우리는 전 세계 과학계 지도자들을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우리같은 비영리국제기구는 매우 독보적이다. 해외 바이오 기업들은 자기나라 한 곳에서만 실험을 할 수 있지만 IVI는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 전역에서 일한다. 전 세계 바이러스 정보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코로나19 백신이 나올 경우 전 세계인들과 협력해 백신을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와의 협업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제로 나는 세계보건기구, 세피와 수시로 화상 통화를 한다. 어떤 날은 자정에 시작해 새벽 3시까지 하는 날도 있다.” 

    -코로나19 백신 외에 어떤 연구를 하고 있나. 

    “‘아데노바이러스55’라는 게 있는데 군에 갓 입대한 신병들에게 문제가 되는 감염병이다. 사망까지 갈 수 있는 위험한 바이러스다. 대한민국 국방부제안으로 백신 개발에 착수했고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내년 쯤 생산을 기대하고 있다.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 바이러스 연구도 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에서 발생하는 데 출혈열을 일으킨다. 또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 자금으로 SK바이오사이언스와 필리핀과 네팔에서 대규모 장티푸스 백신 실험을 하고 있는데 현재 테스트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영양실조와 발달장애를 초래하는 이질균 백신도 동물 실험 단계에 있다.” 

    -먹는 ‘콜레라 백신’ 개발도 성공했다고 들었는데. 

    “한국 회사인 유바이오로직스와 협업해 만들어 세계보건기구 승인을 받아 제3세계에 공급하고 있다. 실험실에서부터 대량 생산까지 전 세계 비영리기관들이 이룩한 백신 개발의 극소수 성공 사례 중 하나다. 

    IVI는 2018년 7월 ‘라이트(Right)’라는 이름으로 국제펀드도 만들었다. 보건복지부, SK바이오사이언스, LG화학, GC녹십자, 종근당, 제넥신 등 국내 5개 생명과학기업과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이 공동 출자한 한국 최초 민관협력 비영리재단법인이다. 민관협력 투자가 활성화되면 더 많은 한국 회사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세계가 주목하는 보건선진국

    제롬 김. [동아사이언스 윤신영 기자]

    제롬 김. [동아사이언스 윤신영 기자]

    -코로나19 백신 연구에 한국의 역할은?
     
    “한국도 세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한몫을 하고 있다. 한국은 과학적인 관점에서, 또 제조업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가 주목하는 보건선진국이다. GC녹십자, LG, SK는 상당한 제조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제넥신, 셀트리온,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전 세계로 공급되는 매우 중요한 감염 퇴치 단백질의 절반을 만든다. 암이나 자가면역질환, 염증성 질환에도 쓰인다.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가진 이른바 ‘바이오시밀러(biosimilar)’ 기술을 코로나 백신에도 똑같이 적용하면 싸고 품질 좋은 백신을 보급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개발도 중요하지만 보급도 중요

    그는 “백신 개발도 중요하지만 보급도 중요하다”며 로타바이러스의 예를 들었다. 

    “어린이들에게 설사병을 일으키는 위험한 바이러스다. 미국에서 백신이 나와 2009년 세계보건기구가 승인했다. 모두 세 차례 접종을 받아야 하는 데 2016년만 해도 전 세계 어린이의 20%만 받았다. 미국에서는 바이러스가 거의 없어졌다고 볼 수 있지만 아프리카 국가나 인도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많다. 백신이 있는데도 비싸기 때문에 이런 갭이 존재하는 것이다. 코로나19백신도 이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 누구는 받고 누구는 못 받으면 그것이야말로 또 다른 재앙이다. 세계 모든 사람이 어떻게 하면 백신에 공평하게 접근할 수 있게 할 것인가 그것이 IVI의 중요한 역할중 하나다.” 

    -코로나19는 언제 끝날 것 같나? 

    “전 세계 인구 70%에게 예방접종을 했을 때인데 앞으로 수년이 걸릴 수 있다. 그러나 백신이 12개월에서 18개월 사이에 나온다면 이후 2년 또는 3년 사이에 퇴치가 가능할 것이다. 백신이 우선이다.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전 삶으로의 복귀는 어려울 것이다.“

    제롬 김(한국명 김한식)
    본래 에이즈 백신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미군 HIV연구 프로그램 수석 부책임자 겸 분자바이러스학 및 병리학 실험실장을 지냈다. 세계적 학술지인 뉴잉글랜드 의학저널, 네이처, 셀을 포함해 총 2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하와이 출신으로 예일대 의대를 졸업했으며 미국 국립군의관의과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2014년 백신네이션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있는 5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하와이로 건너간 독립운동가 김현구 선생의 손자로 한국계 3세다. 조부의 유해는 1998년 대전국립현충원에 옮겨졌다. 그가 한국에 오게 된 것도 이런 가계(家系)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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