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38

2020.05.08

“태영호 기대감, ‘강남’과 ‘새터민’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탈북자 국회 입성 바라보는 탈북자 사회의 복잡한 시선…태영호 측 “탈북자 관련 의정활동 계획 딱히 없다”

  •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입력2020-05-0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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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6일 태영호(태구민) 미래통합당 강남갑 후보가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당선이 확실시 되자 기뻐하고 있다. [뉴스1]

    4월 16일 태영호(태구민) 미래통합당 강남갑 후보가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당선이 확실시 되자 기뻐하고 있다. [뉴스1]

    “누구나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남한의 자유민주주의를 몸소 느꼈다.”(2008년 탈북한 대전의 35세 강모 씨) 

    “태영호는 탈북자가 아니라 그냥 똑똑한 사람이다.”(2008년 탈북한 경기 성남시의 29세 이모 씨)

    태영호는 부자, 탈북자 절반은 무직자

    태영호(태구민) 21대 국회의원 당선인이 연일 화제다. 대한민국 최초 탈북자 출신 지역구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을 서울 최고 부촌 강남갑에서 따냈기 때문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태영호의 당선은 강남스타일 민주주의’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탈북자 사회가 ‘태영호 당선’을 바라보는 시선은 복잡하다. ‘탈북자 사회의 쾌거’라며 기뻐하는 목소리가 있는 한편, 태 당선인이 “보통의 탈북자와는 다른 계급에 속한다”며 개인적 성공으로 치부하는 측도 적잖다.
     
    통일부의 ‘북한이탈주민 통계’에 따르면 국내 탈북자는 3만3523명(2019년 12월 기준). 그중 일반 근로자로 소득이 있는 탈북자는 약 40%인 1만3138명이고(관리직·전문직·군인 등 제외), 절반에 가까운 1만5103명이 무직자 및 전업주부다. 전문대 이상 학력을 가진 탈북자는 17%(5675명)에 그쳤다. 또한 북한에서 상류층에 속했다고 볼 수 있는 평양 출신 탈북자도 758명에 불과하다. 한국에 온 탈북자가 대부분 북한에서 하층민에 속했던 셈. 2018년 기준 탈북자의 24%가 생계급여를 수급하고 있어 상당수가 남한에서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태 당선인은 ‘탈북자의 평균’을 한참 웃도는 인물이다. 평양에서 태어난 그는 평양 국제관계대를 졸업하고 덴마크, 스웨덴, 영국 등 각국 대사관을 거친 북한 권력층의 핵심 인사였다. 탈북 직전 지낸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는 대사관 내 2인자 자리였다. 한국에 온 뒤 4년간 각종 강연과 인세 수입으로 18억 원 넘는 재산을 모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한민국이 기회의 땅임을 증명”

    2018년 11월 구세군 안성요양원에서 실내 벽화 봉사활동을 하는 하나원 교육생들. [뉴스1]

    2018년 11월 구세군 안성요양원에서 실내 벽화 봉사활동을 하는 하나원 교육생들. [뉴스1]

    “비주류로 여겨지는 탈북자가 국회의원이 된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강씨가 달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태영호의 당선은 대한민국이 탈북자에게 기회의 땅임을 증명한 사건”이라고 덧붙였다. 2009년 탈북한 서모(33·대전 서구) 씨도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한국에 살면서 탈북자에 대한 차별을 종종 느낀다. 하지만 이제 탈북자 출신 지역구 국회의원도 나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앞으로 탈북자 권익이 향상될 거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태 당선인의 재산도 서씨에게 희망의 메시지로 다가온다. 그는 “나는 10세 때 부모를 잃고 고아로 어렵게 살아왔다. 태 당선인이 큰 재산을 모은 것을 보고 한국은 노력하는 만큼 얻을 수 있는 곳이라고 느꼈다”며 반색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재학 중인 김금혁(29·2012년 탈북) 씨 또한 “남북한 주민의 화합에 큰 발걸음을 내딛은 사건”이라고 말했다. 



    태 당선인에게 국회의원 배지를 선사한 서울 강남갑 주민들을 높이 평가하는 탈북자 여론도 있다. 2011년 탈북해 현재 강남에 거주하는 조모(58) 씨는 “태영호가 당선한 것은 강남구민이 그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같은 탈북자로서 고마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태영호는 북한 정권의 부패상을 사실에 기반해 비판해온 인물”이라며 “강남갑 유권자가 이를 눈여겨보고 그를 남북관계 개선 및 통일을 위한 활동의 적임자로 선택했다. 대한민국 상류층의 높은 시민의식을 증명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우리를 모른다”

    2019년 5월 청와대 앞에서 중국 랴오닝성에서 체포된 탈북민들 중 9살 최모 양의 부모가 탈북민의 강제 북송 중지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스1]

    2019년 5월 청와대 앞에서 중국 랴오닝성에서 체포된 탈북민들 중 9살 최모 양의 부모가 탈북민의 강제 북송 중지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스1]

    한편 회원 4000여 명을 보유한 온라인 탈북자 커뮤니티 ‘새터민라운지’의 이웅길 대표(2003년 탈북)는 “태영호가 탈북자에 대해 잘 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태 당선인이 북한 핵심 고위층 출신이라 하층 주민에 대해 잘 모르고, 한국에서도 탈북자 사회와 교류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태 당선인은 이번 총선에서 탈북자 관련 공약을 내놓지 않았다. 이 대표는 “어느 시의회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태 당선인을 만난 적이 있는데, 다른 탈북자를 반기지 않더라. 전형적인 북한 고위층 출신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경기 성남시에 거주하는 이씨 역시 태 당선인이 당선 후 “탈북자 권익을 위해 힘쓰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그가 할 수 없는 문제”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씨는 “탈북자가 한국에서도 형편이 어려운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탈북자를 감옥 같은 곳에 가둬놓고 자본주의 교육을 시키겠다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김금혁 씨 또한 “탈북자 권익은 상징적인 인물 몇몇이나 일회성 이벤트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태 당선인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탈북자들은 태 당선인이 국회에서 탈북자를 위한 의정활동을 펼쳐주길 바란다.” 조씨는 아직 한국에 들어오지 못한 북한이탈주민의 인권 보장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중국 등지에서 언제 잡힐지 몰라 매일 두려움에 떠는 이들의 인권을 지켜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웅길 대표는 “탈북자가 대한민국 사회에 잘 정착한 모습이 북한에 많이 전달될수록 북한 정권을 변화시킬 수 있다”며 “정부가 탈북자를 지원하게끔 태 당선인이 앞장섰으면 좋겠다. 지성호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당선인과 힘을 합치고, 탈북자와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 등 어울리는 모습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지 당선인은 꽃제비(북한에서 먹을거리를 찾아 떠돌아다니는 하층민) 출신. 북한에서 생활고에 석탄을 훔치다 열차 바퀴에 깔려 한 손과 한쪽 다리를 잃은 인물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태 당선인이 지역구 국회의원이 된 것은 탈북자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정착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탈북자 입장에서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태영호 당선 이후 ‘강남구 력삼동’ ‘강남에 탈북자 아파트를 지어라’ 등 온라인상에서 탈북자에 대한 비아냥거림이 떠돌아 우려스럽다”며 “이를 잘 극복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태 당선인 측 관계자는 “현재로선 지역구 현안 외에 탈북자와 관련한 의정활동 계획은 마련된 게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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