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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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테 당원들', 낙선한 청년후보들에게도 '유세차량 타라' 훈수

‘라테당원’에 치이고 ‘험지공천’으로 눈물 삼킨 청년 낙선인들의 총선 후기

  •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0-04-3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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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7일 국회에 미래통합당 청년 당협위원장과 청년 당직자들이 21대 총선 패배 원인 등 당내 현안을 논의하고자 모였다. [뉴스1]

    4월 27일 국회에 미래통합당 청년 당협위원장과 청년 당직자들이 21대 총선 패배 원인 등 당내 현안을 논의하고자 모였다. [뉴스1]

    “우리 때는 10명이 전화 홍보에 나섰다” “왜 너희끼리만 회의하냐, 우리를 무시하는 거냐” “인사는 왜 안 하냐”…. 

    4·15 총선에서 미래통합당(통합당) 청년 후보의 선거사무장을 맡았던 30대 A씨가 지역구 소속 기초자치단체 의원을 비롯한 당원들로부터 들은 말이다. 그는 “내 나이가 많았더라면 이렇게까지 했겠나 싶다”고 토로했다. 대부분 60대 이상인 당원들은 선거사무실을 드나들며 선거운동 방식에 대해 훈수를 뒀다. 이들은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말을 주저하지 않았다. A씨는 “일에 집중하기 어려웠을 정도”라며 “다른 캠프의 청년 후보와 선거 사무원들이 겪었을 고충이 짐작된다. 이번 총선에서 통합당 청년 후보가 대거 낙선한 이유가 중앙당의 실책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낙선 인사도 유세차 타고 해라?!

    미래통합당 후보로 4·15 총선에서 경기 광명을에 출마한 김용태 씨(왼쪽)와 경기 남양주을에 출마한 김용식 씨가 총선을 앞두고 유세를 펼치고 있다. [각 후보 페이스북]

    미래통합당 후보로 4·15 총선에서 경기 광명을에 출마한 김용태 씨(왼쪽)와 경기 남양주을에 출마한 김용식 씨가 총선을 앞두고 유세를 펼치고 있다. [각 후보 페이스북]

    지역구에 출마한 통합당 청년 후보들은 유권자에 앞서 대다수가 고령층인 지역 당원부터 설득해야 했다. 경기 광명을에 통합당 후보로 출마한 김용태(30) 씨는 “‘자고로 정치인은 이래야 한다’는 당원들의 고정관념과 자주 부딪쳤다”고 털어놨다. 그가 직접 운전대를 잡으려 하자 “후보는 운전해선 안 된다”는 충고(?)를 들은 적도 있다. 김씨는 “요즘에는 후보가 직접 운전하는 게 큰 문제가 아니라고 설득했다. 좋은 의도로 한 조언인 건 알지만, 세대 차가 느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낙선 후에도 충고는 계속됐다. 김씨는 “낙선 인사는 유세차를 타고 하는 것이 관례라고들 했다. 그래서 우리 당이 패한 만큼 반성하는 자세로 유권자를 직접 찾아뵙는 방식이 좋겠다고 당원들을 설득해야 했다”고 전했다. 

    경기 남양주을에 통합당 후보로 출마한 김용식(33) 씨는 코로나19 사태를 의식해 ‘조용한 유세’를 하고자 유세차를 쓰지 않으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그는 “신나고 주목받는 유세를 진짜 선거운동이라고 생각하는 당원이 많았다”며 “당원들이 선거에 돈과 정성을 덜 쏟는다고 생각할까 봐 결국 유세차를 사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청년 선거운동원도 기성 당원의 훈수를 피할 수 없다. A씨는 “당원들의 잔소리를 다 받아내는 것이 주요 캠프 업무 가운데 하나였다. ‘이건 왜 이렇게 했냐’ ‘저건 왜 저러냐’ 등 꼬치꼬치 캐물어와 일일이 해명해야 했다”고 밝혔다. 선거사무실에서 회의를 하고 있으면 잠깐 방문한 당원이 “왜 너희끼리만 얘기하냐”고 화내는 일도 종종 벌어졌다.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 홍보는 유권자들의 거부감이 높다고 설명해도, 과거 선거운동 때처럼 전화 홍보팀을 따로 둬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당원도 있었다. A씨는 “당원들이 20, 30대로 이뤄진 선거캠프 구성원을 불신하는 게 느껴졌다”며 “하도 참견이 심해 ‘그렇게 해서 지난 선거 때 이기셨냐’고 맞받아친 적도 있다”고 전했다.



    ‘낙선벨트’로 전락한 청년벨트

    4월 28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당선인 총회. 지역구 당선인 가운데 청년은 배현진 서울 송파을 당선인이 유일하다. [뉴스1]

    4월 28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당선인 총회. 지역구 당선인 가운데 청년은 배현진 서울 송파을 당선인이 유일하다. [뉴스1]

    인지도가 낮은 청년 후보에게 중앙당의 전략과 지원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청년 낙선인들은 당 지도부가 선거에 별 도움이 안 됐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도봉갑에 통합당 후보로 출마한 김재섭(33) 씨는 “당은 주야장천 반문(반문재인) 정서만 내세웠다. 높게 나오는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 조사 결과도 불신하면서 국민과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사회적 합의가 끝난 세월호 참사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도 용기 있게 인정하지 않은 것도 패인”이라고 지적했다. 김용태 씨는 “2030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통합당은 ‘냄새나는 음식’”이라며 “이제 보수는 비주류인데 여전히 자신을 주류로 생각한다는 박성민 정치컨설턴트의 얘기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A씨는 “로고, 슬로건, 디자인 등 디테일한 부분부터 더불어민주당과 큰 차이가 났다”고 꼬집었다. 예비후보 시절엔 당 로고 파일조차 다운받을 수 없었고, 당에서 ‘보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라’며 리스트까지 보내줘 실제 몇 군데 출연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A씨는 “그에 비해 더불어민주당은 어느 지역구를 가나 통일된 정체성을 유권자에게 보여주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험지공천’은 청년 후보를 더욱 궁지로 몰았다. 통합당 공천관리위원회는 11개 지역구(서울 광진갑·노원병·도봉갑, 경기 광명을·남양주을·성남분당을·수원정·용인을·의왕과천·파주갑·화성을)를 ‘청년벨트’로 지정, 45세 미만 청년만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언뜻 청년을 배려한 제도로 보이지만, 해당 지역은 보수세가 약한 험지다. 결과적으로 청년벨트에서 금배지를 손에 쥔 후보는 단 한 명도 없다. 

    김용식 씨가 출마한 남양주을에는 통합당 출신인 이석우(72) 전 남양주시장이 무소속으로 출마해 8.76%의 표를 가져갔다. 김용식 씨는 “같은 보수 후보가 나에 대해 네거티브 운동을 벌였다”고 토로했다. 김용태 씨가 출마한 광명을에서도 이 지역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당협위원장을 지낸 김기윤(40) 씨가 무소속으로 출마해 보수 표를 갈랐다. 김용태 씨는 “청년벨트의 취지는 좋았지만, 총선 한 달 전 내리꽂듯 공천해버리니 지역 조직과 마찰도 있었다”며 “바깥에는 집안싸움으로 비쳐 선거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포기 안 한다”

    미래통합당 후보로 4·15 총선에서 서울 도봉갑에 출마한 김재섭 씨(왼쪽)와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에 출마한 천하람 씨가 총선을 앞두고 유세를 펼치고 있다. [각 후보 페이스북]

    미래통합당 후보로 4·15 총선에서 서울 도봉갑에 출마한 김재섭 씨(왼쪽)와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에 출마한 천하람 씨가 총선을 앞두고 유세를 펼치고 있다. [각 후보 페이스북]

    청년 낙선인들은 청년벨트가 유명무실한 제도로 남지 않으려면 험지가 아닌 곳에 청년 후보를 내거나, 해당 지역구에서 유권자와 소통할 시간적 여유를 충분히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용태 씨는 “적어도 선거 1년 전 청년벨트를 지정하고, 청년들끼리 경쟁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에 통합당 후보로 출마한 천하람(33) 씨는 “보수 우세지역에서 컷오프(cut-off·해당 지역구 현역의원이 공천에서 탈락하는 일)가 나오면 그중 서너 곳은 의무적으로 청년에게 할당하는 방안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견해를 피력했다. 

    ‘라테당원’에 치이고 험지에서 눈물 삼킨 청년 정치인이지만, 여기서 포기할 생각은 없다. 청년 낙선인들은 당내에서 혁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4월 27일 당 쇄신을 위한 모임을 가졌다. 천하람 씨는 “낙선한 이유를 서로 공유하고 당 이미지 쇄신과 세대교체에 대해 논의하는 첫 출발이 될 것”이라며 모임에 의미를 부여했다. 김용식 씨는 “청년 모임을 자신이 만든 조직인 것처럼 행동하는 기성 정치인에 반발해 총선 시즌이 본격화하기 전 청년 세력이 규합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청년 낙선인들이 한데 모여 당을 바로세우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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