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37

2020.05.01

2개국 여성 지도자의 ‘방역’ 리더십, 핵심은 “전문가 말 듣고 조기 차단”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아던 뉴질랜드 총리의 방역 리더십 공통점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0-04-23 11:18:2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대만에서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는 가운데 관중석에는 마네킹이 앉아 있다. [Taipei Times]

    대만에서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는 가운데 관중석에는 마네킹이 앉아 있다. [Taipei Times]

    각국이 코로나19 사태로 각종 스포츠 경기를 금지한 가운데 대만에선 프로야구 경기가 진행되고 있다. 대만 프로야구(CPBL) 리그는 4월 12일 한국, 미국, 일본 등 전 세계 프로야구 리그 가운데 유일하게 2020년 시즌을 개막했다.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경기는 무관중으로 치르지만 선수들과 팬들의 열기는 뜨겁다. 선수들은 손을 접촉하지 않기 위해 하이파이브를 하지 않고, 비말(침방울) 전파를 막고자 침 뱉기, 씹는담배, 해바라기씨 섭취 등을 금지하고 있다. 볼 보이를 비롯해 경기 운영 및 관리 요원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치어리더들도 마스크를 쓴 채 응원한다. 취재진도 야구장에 들어갈 때 체온을 측정하고, 건강신고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대만 프로야구 경기는 TV와 인터넷으로 실시간 중계되고 있다. 심지어 미국 팬들도 ‘일레븐 스포츠 타이완’이라는 트위터 계정에서 생중계되는 대만 프로야구 경기를 보며 야구 갈증을 풀고 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시차 때문에) 밤늦게까지 자지 않거나 일찍 일어나 우리와 함께 대만 프로야구를 응원해준 전 세계 야구팬에게 감사한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세계 최고 방역국가

    자그마한 섬나라 대만이 코로나19 확산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면서 국제사회로부터 세계 최고 방역국가라는 말을 듣고 있다. 전체 인구가 약 2382만 명, 면적은 3만5960㎢밖에 되지 않는 대만에선 지금까지(4월 20일 기준) 코로나19 확진자가 422명, 사망자는 6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런 통계를 볼 때 코로나19 발원국인 중국과 인접하고 교류도 많은 대만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국제사회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대만이 코로나19 방역의 모범국이 된 비결은 무엇보다 차이 총통의 강력하고 단호한 리더십과 일사불란한 지휘통제 체제 및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을 들 수 있다. 1월 11일 총통선거에서 압승하며 연임에 성공한 민주진보당 출신의 차이 총통은 그동안 중국 정부로부터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하라는 압박 및 위협을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는 뚝심을 보여왔다. 차이 총통은 코로나19 사태를 맞아서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 원칙으로 내세우면서 중국 ‘눈치 보기’를 배제했고, 중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서슴없이 내리는 등 단호한 결단을 내렸다. 

    실제로 대만 정부는 중국 정부가 지난해 12월 31일 세계보건기구(WHO)에 후베이성 우한에서 코로나19가 발생했다고 통보한 날부터 방역 대책을 마련해 실행에 돌입했다. 대만 정부는 같은 날 우한발(發) 항공기에 대한 검역을 시작했으며, 올해 1월 15일 코로나19를 법정전염병으로 공식 지정한 데 이어 20일 중앙전염병지휘센터를 개설해 관련 업무를 총괄하게 했다. 또한 23일에는 우한으로부터 입국 금지, 이틀 뒤인 25일부터는 자국민의 중국여행을 중단시켰다. 2월 6일에는 14일 이내 중국 본토를 비롯해 홍콩과 마카오를 방문한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전면 금지했다. 중국인 입국 금지는 중국과 관계된 수많은 기업과 노동자뿐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타격이 예상되는 일임에도 차이 총통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중국 본토에서 일하는 대만인이 85만여 명에 달하고, 중국 수출이 전체의 30%를 차지하는 대만으로선 경제적 희생을 감수한 조치였다.



    매우 좋은 전염병 대처 공식

    대만 초등학생들이 노란색 개인용 칸막이를 책상에 놓은 채 수업하고 있다. [CNA]

    대만 초등학생들이 노란색 개인용 칸막이를 책상에 놓은 채 수업하고 있다. [CNA]

    특히 차이 총통은 전염병 전문가는 물론, 의료진의 조언과 의견도 중시했다. 대만 정부는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대책회의를 수시로 열어 상황 변화에 따른 행동계획 124개를 만들고 즉각적으로 실시했다. 전염병 전문가인 윌리엄 샤프너 미국 밴더빌트대 의과대학 교수는 “대만 정부는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전염병 전문가, 과학자, 의사로부터 조언을 구했고 그대로 실행했다”며 “이는 매우 좋은 전염병 대처 공식”이라고 평가했다. 

    차이 총통은 또한 미국 존스홉킨스대 공중보건대학원 방역학 박사 출신인 천젠런 부총통에게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대책을 총괄하게 했다. 천 부총통은 2002~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사태 때 위생복리부 부장(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으며, 2004년 세계 최초로 중앙전염병지휘센터를 설립하는 등 대만 방역체계를 구축한 인물이다. 실무를 총괄하는 천스중 위생복리부 부장도 코로나19 방역에 일등공신이라는 얘기를 들어왔다. 건강보험위원회와 타이베이시 의사회 고문으로 활동한 천 부장은 타이베이 의학대학을 졸업한 치과 의사 출신이다. 2017년 2월 취임해 역대 최장 위생복리부장 기록을 세우고 있는 천 부장은 직접 기자회견을 진행해 코로나19와 관련된 정부의 정보와 조치를 일원적으로 관리해왔다. 

    차이 총통의 또 다른 과감한 결정은 대(對)중국 마스크 수출 중단과 ‘마스크 실명제’를 도입해 일종의 ‘배급’에 나선 것이다. 대만 정부는 중국 정부가 우한을 봉쇄한 다음 날인 1월 24일부터 의료용(N95) 마스크의 수출 금지 조치를 발동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만에서 사용할 마스크가 중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고, 의료물자 비축에 나선 것이다. 대만 정부는 또 건강보험카드를 휴대한 1인이 7일간 1회 마스크 2장씩을 개당 5대만달러(약 200원)에 살 수 있도록 했다. 가격 통제를 비롯한 매점매석 제한 조치를 취한 것이다.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는 날도 홀짝수로 지정했다. 

    이후 차이 총통의 지지율은 68%까지 치솟는 등 국민으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차이 총통은 5월 20일 취임식을 갖고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지만 코로나19 방역에 매진하고자 취임식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는 또한 “코로나19 사태로 취임식 당일에 대형 경축행사를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차이 총통은 이처럼 뛰어난 방역 성과에도 국내외적으로 홍보나 선전은 물론, 자화자찬을 전혀 하지 않는 등 오로지 국민의 안전에만 몰두해왔다.

    4주간 전국 이동제한령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국민에게 4주간 집에 머물 것을 당부하고 있다. [Newshub]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국민에게 4주간 집에 머물 것을 당부하고 있다. [Newshub]

    뉴질랜드도 대만 못지않은 코로나19 방역 모범국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개의 큰 섬으로 이뤄진 뉴질랜드는 인구 482만 명에 면적은 26만7710만㎢밖에 되지 않지만 지금까지(4월 20일 기준) 코로나19 확진자가 1105명, 사망자는 12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비결은 역시 저신다 아던 총리의 강력하고 단호한 리더십 덕분이다. 아던 총리는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6명에 불과하던 3월 14일 자국에 입국하는 외국인에 대해 2주간 의무적으로 자가격리 조치를 내렸다. 이어 닷새 뒤인 3월 19일에는 아예 외국인 입국을 전면 금지했고, 25일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학교와 공공시설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업체를 폐쇄하고 전 국민을 4주간 자택에 머물게 하는 전국 이동제한령을 내렸다. 또 해외에서 입국하는 자국민을 14일간 정부가 승인한 장소에 강제 격리했다. 


    뉴질랜드 정부의 4주간 이동제한령에 따라 도로가 텅 비어 있다(왼쪽). 외국인 입국 금지 조치로 공항에 계류하고 있는 뉴질랜드 항공기들. [Newsroom.nz, Ai rNew Zealand]

    뉴질랜드 정부의 4주간 이동제한령에 따라 도로가 텅 비어 있다(왼쪽). 외국인 입국 금지 조치로 공항에 계류하고 있는 뉴질랜드 항공기들. [Newsroom.nz, Ai rNew Zealand]

    아던 총리는 경제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시한다는 원칙에 따라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강경한 조치들을 선제적으로 시행해왔다. 수지 와일스 뉴질랜드 오클랜드대 교수는 “전 국민을 4주간 집에만 머무르게 한 조치는 매우 강력하고 단호한 결정이었다”며 “봉쇄 조치를 내린 덕분에 코로나19 확산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아던 총리는 “코로나19와의 싸움은 마라톤”이라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뉴질랜드 방역요원들이 병원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검사하고자 대기하고 있다. [STUFF]

    뉴질랜드 방역요원들이 병원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검사하고자 대기하고 있다. [STUFF]

    아던 총리는 지난해 3월 15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이슬람 사원(모스크)에 대한 테러 공격으로 50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을 때도 뛰어난 리더십을 보여줬다. 당시 그는 히잡을 쓰고 희생자 가족들을 만나 위로하는가 하면, 무슬림 등 난민에 대한 포용정책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 총기 규제 강화 법안을 통과시키고 소셜미디어에서 혐오 발언을 규제하는 대책도 마련했다.

    아던 총리는 37세 때인 2017년 10월 총리로 취임해 당시 세계 최연소 총리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또 총리 최초로 임기 중 딸을 낳고 6주간 출산휴가를 갔다. 아던 총리가 취임한 후 뉴질랜드는 세계은행이 매년 발표하는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 1위를 차지했다. 11월 총선을 앞뒀지만 아던 총리는 방역 성과를 자화자찬하지 않고 코로나19 확산 방치 대책에만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두 섬나라의 두 여성 지도자가 국제사회에 코로나19 방역에 대한 모범적인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