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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인들에게 보수 유튜브란?

내용 동의 여부 상관없이 동년배 생각 이해 위한 거스를 수 없는 존재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최진렬 인턴기자·서울시립대 행정학과 졸업

노인들에게 보수 유튜브란?

한 노인이 지하철 노약자석에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다. [뉴스1]

한 노인이 지하철 노약자석에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다. [뉴스1]

“‘진성호 방송’ ‘신의한수’ ‘펜앤드마이크TV’.” 

서울지하철 1호선 열차에서 만난 심현일(62) 씨는 휴대전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조용히 말했다. 서울 청량리에서 친구를 만나고 인천 연수구 송도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1시간 40여 분 걸리는 여정이지만 보수 유튜브 채널과 함께라면 괜찮다. 그는 하루 5시간 이상 유튜브를 시청하는 헤비 유저(heavy user)다.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통신요금제에도 가입했다. 

유튜브의 인기몰이 이후 지하철 노약자석 풍경이 변했다. 큰소리로 대화하거나 전화통화를 해 주위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던 노인은 더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개 이어폰을 꽂거나 볼륨을 한껏 줄인 채 조용하게 손안의 스마트폰에 열중한다. 이들이 주로 보는 것은 보수 논객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노인들은 왜 보수 유튜브 채널에 빠졌을까. 이틀간 지하철에서 유튜브를 보는 노인들을 만났다.


“보수 집회, 옳지 않다”고 했다가…

심씨는 보수 성향 일간지의 구독이 6개월 후 끝나면 더는 구독 계약을 연장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 대신 보수 유튜버들이 필진으로 참여하는 인터넷 매체 ‘더 자유일보’를 후원할 계획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반년 뒤인 2017년 11월 창간된 이 매체는 창간사에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을 명시하고 있다. 심씨는 “여기 태극기를 보라”며 휴대전화 케이스에 붙인 태극기 스티커를 가리키면서 “보수 신문이 태극기 집회를 축소해 다룬다”고 비난했다. 

이덕수(75) 씨는 노약자석에 앉아 정규재 씨가 운영하는 ‘펜앤드마이크TV’를 시청하고 있었다. 그는 이외에도 ‘신의한수’ ‘김태우TV’ ‘공병호TV’를 즐겨본다고 했다. 모두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을 주요 콘텐츠로 삼는 유튜브 채널이다. 이씨는 “우파 쪽에 힘을 실어준다기보다 사회 이슈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고 본다”며 “광화문광장에서 벌어지는 태극기집회에 관심이 많은데, 기성 언론은 이를 잘 다루지 않아 안 본다”고 말했다. 이씨는 기자와 대화하는 내내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방송을 들었다. 



현재 구독자수 기준 정치 부문 상위 10개 유튜브 채널 가운데 8개가 보수 성향 채널. 노년층 사이에서 이러한 보수 유튜브 채널은 대세이자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모든 노인이 지지의 의미로 이러한 채널을 시청하는 것은 아니다. 동년배와 어울리려고 보수 채널을 찾아보는 이들도 있다. 보수 유튜브 콘텐츠가 또래 집단에서 생활의 일부가 된 탓이다. 

한흥수(69·가명) 씨의 유튜브 추천 화면에는 ‘너알아TV’와 ‘너만몰라TV’가 있다.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전광훈 목사를 홍보하는 채널이다. 한씨는 동대문시장에서 사업을 하다 현재는 은퇴해 교회 생활에 열중하고 있다. 전 목사의 활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그는 “종교와 정치는 분리돼야 한다. 영상 속 내용이 틀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채널을 구독하는 이유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려면 찾아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씨는 교회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줬다. 교회 사람들과 전 목사에 대해 얘기하다 다툼이 벌어졌는데, “정치 유세장에 다니는 사람을 목사라고 부를 수는 없다”는 그의 말에 다른 이들이 동의하지 않은 것이다. 그날 이후 한씨는 보수 유튜브 채널을 챙겨본다. 그는 “살다 보면 상대방과 견해가 다른 순간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며 “상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알면 서로 각을 세울 일도 부드럽게 넘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기후(81) 씨는 업무차 서울 종로5가로 이동하는 중에 ‘펜앤드마이크TV’의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고 있었다. 같은 시간 라이브 방송 동시 시청자 수만 3900명에 달했다. 휴대전화 케이스에는 4·19혁명유공자증이 꽂혀 있었다. 4·19혁명공로자회 회장도 지낸 이씨는 “특정 방송을 지지하거나 태극기집회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유튜브를 시청하는 것은 내 주변을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세대는 6·25전쟁부터 4·19혁명, 권위주의 정권까지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래서인지 같은 세대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제각각이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여러 유튜브 채널을 구별 없이 본다”고 설명했다. 노년층 사이에서 보수 유튜브 채널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거스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노년층의 다양한 의견, 개진할 수 있게 해야

지난해 10월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광훈 목사가 주최한 집회에 참가한 노인들. [동아일보DB]

지난해 10월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광훈 목사가 주최한 집회에 참가한 노인들. [동아일보DB]

이처럼 노년층 사이에서 보수 유튜브 채널이 대세이자 일상으로 자리매김한 현상에 대해 무대응으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있다.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유튜브에서 취향에 맞는 정보만 찾다 보면 다른 목소리를 내는 기성 언론을 불신하기 쉽다”며 “점차 노년층 인구가 많아지는 만큼 기성 언론은 ‘시니어 시티즌’ 독자층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사회가 노인을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노년층을 획일적인 시선으로 규정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할배의 탄생’의 저자 최현숙 씨는 “우리 사회 노년층은 6·25전쟁부터 군사정권까지 각종 굴곡을 겪어왔기에 오늘날의 기준에 맞지 않는 인식과 발언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시대의 한계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노인들도 다양한 의견을 갖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반대 집회에 참여했지만,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에는 탄핵 결정을 수긍한 사람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개인에게 주어진 삶의 상황 때문에 남과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개인보다 집단의 목소리가 중요시된다”며 “노인들이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도록 정부가 노년층을 위한 디지털 교육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간동아 2020.02.14 1226호 (p50~51)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최진렬 인턴기자·서울시립대 행정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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