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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경자년의 기억

문명으로의 긴 여로

  • 윤채근 단국대 한문교육학과 교수 zoongsoo@hanmail.net

경자년의 기억

연암 박지원, 1780년 경자년에 조선사신단에 끼어 청나라 북경 사행에 나서다. [동아DB]

연암 박지원, 1780년 경자년에 조선사신단에 끼어 청나라 북경 사행에 나서다. [동아DB]

1780년 경자년, 연암 박지원은 ‘자제군관’이라는 비공식 수행원 자격으로 조선사신단 틈에 끼어 청나라 수도인 북경을 향해 출발했다. 위선적인 유학자들이 야만족이라 깔보던 만주족이 세운 나라, 하지만 당시 조선 국력으로선 대적할 수 없던 강대국의 진면목을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이 사행의 기억은 훗날 ‘열하일기’라는 희대의 베스트셀러로 기록된다. 

문명과 야만의 구별은 민족성이나 도리 같은 추상적 이념에 의해 미리 정해지지 않고 오직 현실에서 문명의 가치가 제대로 실현됐느냐에 의해 실용적으로 판가름 난다는 게 연암의 생각이었다. 현실에서 실현된 문명의 가치, 공자가 ‘예(禮)’라 불렀던 것의 실체다. 때문에 예가 있다면 설령 그게 오랑캐 땅이라도 기꺼이 가겠다고 선언하지 않았던가. 문명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 곳이 문명의 진짜 소재지이며 그것을 주장만 하는 곳에는 존재치 않는다는 논리에 다름 아니다. 

문명이 자연의 무질서에 맞서 인간이 창조한 질서라고 본다면 연암의 사행은 당대 최고의 인간적 질서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할만하다. 역사 속 경자년을 일별하면 연암 개인이 감행했던 이 여정이 우리네 역사 속에서 그대로 반복되는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경자년에 이뤄진 문명가치의 실현

(왼쪽부터)고려 태조, 정치적 통합 후 고려 왕조 출범. 고려 공민왕(그림오른쪽 인물), 홍건적으로부터 고려 왕조 수호. 조선 세종,집현전 설치. [동아DB, 사진 제공 · 국립고궁박물관, 사진 제공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왼쪽부터)고려 태조, 정치적 통합 후 고려 왕조 출범. 고려 공민왕(그림오른쪽 인물), 홍건적으로부터 고려 왕조 수호. 조선 세종,집현전 설치. [동아DB, 사진 제공 · 국립고궁박물관, 사진 제공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940년 경자년, 고려 태조는 후삼국 통일(936년) 이후 아직 미완 상태였던 정치적 통합까지 마치고 명실상부하게 고려 왕조를 출범시켰다. 후삼국의 혼란을 틈타 난립했던 호족 세력들을 껴안아 하나의 문화 용광로에 담아냈던 셈이다. 고려는 이 정치적 통합을 기점으로 한반도라는 지역 경계를 넘어서서 당대 세계문명이었던 중국의 당송문화를 빠르게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군사력은 강했지만 문명화 정도에선 상대적으로 약세였던 한반도 변방 세력이 일약 세계사에 자신의 이름을 등재시키는 기적을 일으키게 된다. 

1360년 경자년, 공민왕이 야만 세력 홍건적으로부터 고려왕조를 지켜냈다. 공민왕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그가 원명 교체기의 대혼란 속에 고려의 정체성을 수호하기 위해 벌인 사투만큼은 인정해줘야 할 것이다. 덕분에 노도처럼 밀려들던 대륙의 살기를 제어하고 한반도에 ‘조선’이라는 또 하나의 문명의 불꽃이 점화될 여유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1420년 경자년, 세종이 집현전을 설치해 나라의 문화 기강을 다잡아나갔다. 집현전은 육조에 편제된 정치기구는 아니었지만 임금의 통치를 학술적으로 보좌하는 싱크탱크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무엇보다 세종 사후 사육신을 배출해냄으로써 ‘절의(節義) 정신’의 전통을 수립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다. 이 절의 정신이야말로 조선 사대부들이 견지하던 문화적 자부심의 뿌리였고 그들이 한국사에 남긴 긍정적 영향력의 주요 원천이었다. 물론 근대에 이르면 양반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기승을 부리게 되지만 그럼에도 조선이 500년을 버틴 근저에는 자신들이 사육신이 죽음으로 싹틔운 사림 정신의 적자라는 조선 선비들의 자의식이 굳게 자리 잡고 있었다.


경인선개통과 4·19혁명

경인선 개통(왼쪽). 4·19혁명. [동아DB, 한국백년]

경인선 개통(왼쪽). 4·19혁명. [동아DB, 한국백년]

20세기가 개시된 1900년 경자년, 새로운 문명 생활을 상징할 경인선 철도가 개통됐다. 철도는 이후 일제의 광범위한 조선 수탈을 물리적으로 가능케 한 부정적 이미지를 환기시키기도 한다. 실제 매천 황현은 기차를 전통 문명을 파괴하는 서양의 야만으로 비난한 한시를 지었다. 하지만 지리적 제약 없는 인적, 물적 유통이야말로 새로운 세기의 문명 패러다임이었고 우리는 식민지라는 미증유의 비운을 통과하면서도 세계 문명의 흐름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고 있었다. 

이렇듯 우리가 사는 세상은 조금씩 문명화의 정도를 높여가며 움직여왔다. 그리고 1960년 경자년, 4.19 혁명이 일어났다. 당시 한국 정부는 서구 민주주의를 형식적으로는 구현하고 있었지만 전근대의 잔재를 미처 청산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대통령은 여전히 국부(國父)거나 나랏님이었고 신분제의 찌꺼기들도 사회 구석구석에 남아있었다. 백성들은 정치의 주체가 아니라 변함없는 계몽의 대상이었다. 

4·19 혁명은 평범한 필부가 민주주의의 신념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역사 전면에 나선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조선으로 상징될 낡은 세계관이 이 때 명실상부하게 종료되었으며 우리가 아는 현대적 삶의 가치들, 즉 자유와 정의, 민주와 평등의 정신이 이 혁명을 통해 실질적으로 태동됐다. 자유민주주의의 문명세계로 한 걸음 도약이 이뤄진 것이다. 

현재의 세상은 언뜻 분열되기만 하고 사람들은 끝내 화합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느 한 면만 보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쪽에선 퇴보로 보이는 움직임이 더딘 걸음을 거쳐 역사를 추동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문명의 불꽃은 공허한 이념이나 주장이 아니라 그 현실적 쓸모의 실현에 의해서만 피어오른다. 낡은 것 속에 새 것이 숨어있고 새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어느새 낡아있다. 이른바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다. 1780년 경자년의 북경에서 연암이 목도했던 진실도 아마 그것 아니었을까? 문명의 내일을 열어줄 새로운 경자년을 경건한 마음으로 맞아야 할 이유다.






주간동아 2020.01.17 1223호 (p8~9)

윤채근 단국대 한문교육학과 교수 zoongs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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