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 밖의 과학

청각과 후각의 하모니가 빚는 가장 단순한 코미디

방귀의 과학

  •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입력2019-12-13 15: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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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종의 압축 공기가 하복부에 갇혀 있다 바깥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특정 출구에 이르러 순간적으로 배출되는 현상을 우리는 종종 경험한다. 혼자 있을 때는 속이 펑 뚫린 것처럼 시원한 기분을 느끼기도 하지만, 대부분 나쁜 짓을 저지르는 양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핀다. 

    오감 가운데 가장 주도적으로 반응하는 감각은 청각이나 후각도 빠지지 않으며, 두 가지 감각이 적절한 하모니를 만들어낼 때 가장 부끄러운 상황이 연출된다. 나이가 어리거나 많다면 이 현상을 당당하게 넘어갈 수 있지만, 사춘기나 결혼 적령기에는 원치 않은 발현에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심리적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렇다. 이건 방귀다. 

    담담한 과학의 눈으로 바라보면 우리는 하루에 평균 15번 방귀를 뀐다. 한 번에 배출되는 양이 일회용 종이컵의 절반가량이기 때문에 모두 모으면 아마 1.5ℓ 정도 될 것이다. 물론 실제로 모아볼 필요는 없다. 방귀 양이 얼마나 많은지는 먹은 음식이나 평소 식습관의 영향을 받지만, 그렇다고 방귀 냄새의 치명적인 정도나 배출 횟수를 진단해 환자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다. 간혹 의료 키트의 발전 덕분에 피 한 방울로 다양한 질병을 확인할 수 있긴 해도 아직 방귀로는 쉽지 않다.

    노벨상 수상자의 방귀 연구

    2013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마이클 레빗(왼쪽)과 고분자 화학구조 예측모델을 개발한 그의 연구 성과를 설명한 노벨상 사이트. [GettyImages, 신화=뉴시스]

    2013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마이클 레빗(왼쪽)과 고분자 화학구조 예측모델을 개발한 그의 연구 성과를 설명한 노벨상 사이트. [GettyImages, 신화=뉴시스]

    일상에서 방귀와 관련해 제대로 된 정보를 취합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여성이 남성보다 방귀를 적게 뀌고, 냄새는 더 독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과연 정말일까. 방귀의 99%는 질소, 이산화탄소, 수소 등 냄새가 전혀 없는 물질로 구성된다. 하지만 경험상 확실히 방귀는 냄새가 난다. 그 이유를 우리는 1%에서 찾을 수 있다. 

    놀랍게도 우리 몸 안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미생물이 살고 있다. 정확히 몇 마리인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정확한 수를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방식으로 계산해도 수십조에서 수백조로 굉장히 많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들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존재가 아니며, 당연히 우리가 가진 세포라고도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마치 몸의 일부분인 양 존재하는 것이다. 월세를 꼬박꼬박 내는 친절한 세입자처럼 미생물은 우리가 보내주는 음식물을 먹고 열심히 다른 것을 내놓는다. 그중에 오늘의 주인공 방귀도 있다. 



    1998년 마이클 레빗이라는 미국 생물물리학자는 방귀 냄새의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방귀 냄새를 맡고 냄새의 강도를 측정할 사람과 방귀를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을 각각 구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건 방귀 제공자는 줄을 섰지만, 방귀 냄새 평가자는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어쨌든 레빗은 이 어려운 실험을 통해 장내 가스에 대한 논문을 30편 이상 썼고, 그 과정에서 알아낸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달걀 썩는 냄새와 유사한 방귀 냄새의 대표적인 원인은 바로 황화수소며, 여성의 황화수소 농도가 남성보다 2배 이상 높다. 냄새 면에서는 여성의 완벽한 승리! 

    방귀를 만들어내는 미생물은 대부분 대장에 서식하는데, 특히 메탄을 생성하는 미생물의 비율이 남성보다 여성이 높아, 여성이 훨씬 더 많은 메탄을 만들어내곤 한다. 메탄 비율이 높은 여성의 방귀가 불이 더 잘 붙기는 하지만, 메탄을 생성하는 과정에서 수소를 더 많이 소비하기 때문에 여성의 총 방귀 양은 남성보다 적다. 규모 면에서는 남성의 적절한 승리! 

    레빗이 2013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으니, 이것은 무려 노벨상 수상자의 연구 결과다. 그만큼 권위 있는 내용이라는 얘기다. 물론 복잡한 화학반응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분석하는 연구법을 개발했기 때문이지 방귀로 상을 받은 것은 아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아직 방귀 분야에서는 노벨상이 나온 바 없는 만큼 기회가 충분하다고 볼 수도 있다.

    방귀의 신이 명하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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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인류가 방귀로부터 자유롭던 시절이 있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큰 소리로 뿜어져 나오는 우렁찬 방귀나 소리가 전혀 없는 무성방귀, 혹은 냄새가 매우 고약한 방귀를 모두 신성시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누군가 방귀를 뀌면 곧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 믿었고, 심지어 고대 로마에서는 크레피투스(Crepitus)라는 ‘방귀의 신’을 섬기기까지 했다. 

    그러나 문화가 바뀌면서 방귀 금지령이 내려졌고, 어느 날 로마제국의 한 귀족이 방귀를 참다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로마황제 클라우디우스는 앞으로 로마 시민은 언제 어디서든 무조건 방귀를 뀔 수 있으며, 식사하는 자리에서도 방귀 뀌는 것을 허용한다는 내용의 칙령을 내렸다. 

    억압받는 방귀법으로 인해 감옥에 가거나 벌금을 내는 사람은 이제 없지만, 방귀를 한계까지 참으며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있다. 문화적 내용은 배제하고, 우선 과학적 관점에서 방귀 참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가장 중요한 것은 ‘방귀를 참으면 과연 건강에 해로울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몸에 문제가 생긴다는 확실한 증거만 없다면 무한정 참기가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방귀를 참는 것은 분명 몸에 해롭다. 

    섭취한 음식물이 모두 소화되려면 어른은 보통 50시간이 걸리는데 위에서 4시간, 소장에서 6시간, 그리고 대장에서만 40시간을 쓴다. 그만큼 대장에서 공을 들여 방귀를 만들어낸다는 얘기다. 왜냐하면 멋지게 밖으로 보내기 위해. 우리가 연애편지를 몇 시간 공들여 쓰는 것과 비슷하다. 보내지 않고 찢어버릴 거라면 쓸 필요가 없다. 

    일단 방귀를 계속 참으면 복부에 심각한 통증을 유발할 수 있으며, 소화가 잘되지 않고 속이 계속 쓰리게 된다. 한계를 넘어서까지 참으면 장에 차곡차곡 쌓이고 그러다 우리 몸에 재흡수돼 피부나 호흡을 통해 배출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장내 가스가 악취를 풍기고 입 냄새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운이 정말 나쁜 경우에는 대장 벽에 작은 주머니가 생기는 게실증이 발병하는데, 이때 염증이 유발되면 장에 구멍이 나고 장 파열에까지 이를 수 있다. 절대로 참지 말라는 뜻이다.

    방귀는 방귀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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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방귀를 미세하게 분해된 대변 정도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변과 방귀는 엄연히 다른 존재다. 바지 주머니에서 동시에 꺼냈다고 동전과 라이터가 동일한 존재가 될 수 없듯이, 이 둘은 그저 함께 나온 것일 뿐이다. 

    대변과 방귀는 성분이 전혀 다르며, 방귀는 장에 있는 가스가 배출되는 것이지 대변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변에는 많은 양의 세균이 포함돼 있는 반면, 방귀에는 아주 소량의 세균만 포함돼 있으며, 이미 옷이라는 필터를 거쳐 거의 깨끗한 상태로 세상에 나온다. 

    그다지 대단한 생각은 아니지만, 가끔 세상에서 가장 독한 방귀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어긋난 욕망이 용솟음칠 때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방귀의 재료와 장내 미생물의 컨디션이다. 가장 독한 방귀는 음식물 속 아미노산이 분해되면서 만들어지는데, 이를 위해서는 콩, 치즈,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 

    재료만 좋다고 좋은 요리가 나올 수 없는 것처럼 반드시 요리사의 실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종종 조용하지만 아주 뜨거운 방귀가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가 바로 신진대사가 완벽하게 일어나는 순간이다. 식이섬유를 많이 먹어 장내 미생물이 사용할 에너지원이 널려 있고, 장속 유산균처럼 우리 몸에 이롭고 활동적인 미생물이 많으며, 완벽한 내부 열기와 산도로 대사가 일어나기 적절한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간절히 바라고 원하던 이 순간! 가장 강력하고 독하며 뜨거운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 방귀예술가

    19세기말 프랑스의 방귀예술가 조제프 퓌졸(왼쪽)과 그의 공연 포스터. ‘르 페토만(Le Petomane)’은 ‘방귀광’이라는 뜻의 합성어로 그의 예명이었다. [위키피디아]

    19세기말 프랑스의 방귀예술가 조제프 퓌졸(왼쪽)과 그의 공연 포스터. ‘르 페토만(Le Petomane)’은 ‘방귀광’이라는 뜻의 합성어로 그의 예명이었다. [위키피디아]

    방귀가 예술적 가능성을 갖고 있을까. 방귀로 연주할 수 있으며, 방귀 음악이라는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질문에 답을 하고자 본질적인 시작으로 돌아가보자. 과연 음악이란 무엇일까. 음악은 소리를 재료로 하는 시간예술에 속한다. 즉 다양한 소리 패턴을 시간 흐름에 따라 연결해 익숙하고 듣기 좋은 소리를 조화롭게 만들어내는 예술이라는 얘기다. 음악의 기원 자체가 동물의 울음소리를 따라 한 데서 왔다는 설이 있는 만큼, 가끔 사람의 말소리처럼 들리는 방귀 소리로 음악 연주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방귀를 오직 음악적 관점으로만 분류하자면 소리가 있는 유성방귀와 소리가 없는 무성방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무성방귀의 경우 소리 없는 아우성과 유사하게 후각의 청각화를 통해 공감각적인 접근을 하지 않는 한 인식하기 어렵다. 결국 가능성의 공은 유성방귀에게로 넘어갔고, 실제로 이것을 실현시킨 사람이 있다. 

    1857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태어난 조제프 퓌졸은 문득 자신의 재능을 깨닫고 30세에 유료 방귀공연을 열었다. 동물 소리, 기관총 소리, 천둥소리, 심지어 어린 소녀의 목소리까지 방귀로 내 당시 엄청난 성공을 거뒀고, 파리 물랭루주 무대에까지 서게 된다. 바로 방귀로 말이다. 웃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한 관객이 있다는 소문까지 돌았던 그는 세계적인 방귀예술가가 돼 세계 순회공연까지 펼쳤다. 

    어떤 분야에서는 방귀의 위험성이 극대화되기도 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진지하게 방귀를 연구했다. 밀폐된 우주선 안에 우주인 여러 명의 방귀가 쌓이면 내부 공기오염으로 두통이나 예기치 못한 폭발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방귀를 참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밝혔듯이 방귀를 참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우주선처럼 기압이 낮은 곳에서는 방귀를 참다 장 파열이 올 수도 있으니까. 우리가 비행기를 타면 줄기차게 방귀가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결국 NASA는 우주복 내부와 우주선 화장실에 방귀를 빨아들이는 장치를 추가했다. 

    에스토니아에선 2009년부터 방귀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덴마크도 소 마리당 대략 14만 원의 방귀세 부과를 추진하고 있다. 소의 방귀에 포함된 메탄가스 때문에 지구온난화가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추론을 통해 도출한 결론이었다. 방귀를 과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이처럼 다양한 이야기가 가능하다. 방귀가 무척 대단한 것은 아니다. 과학은 어디에나 있다. 심지어 방귀에도.

    궤도_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한 후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을 진행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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