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문재인 케어 2년

버림받고 있는 지방 병원

  • 전남=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9-10-26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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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자 줄어 만성 적자에 의료진 고갈, 곰팡이 핀 건물

    • 이미 힘든 지방 병원은 의료 질 개선을 따라갈 여력 없어

    전남 신안군 비금도 신안대우병원의 병실. [지호영 기자]

    전남 신안군 비금도 신안대우병원의 병실. [지호영 기자]

    “우리 병원 꼭 도와주세요. 이 병원 없으면 큰일 납니다.” 

    전남 신안군 비금도에 사는 한 주민의 말이다. 오히려 의료진과 병원 경영진은 영세한 상황에 초탈한 모습이었다. 최명석 신안대우병원 원장은 “내가 여기 남아 있는 동안은 문제가 없지만, 내가 떠난 뒤가 문제다. 누가 육지보다 불편하고 경제적 이득도 없는 이곳에 선뜻 의사로 오려 할까”라고 물었다. 

    의료질평가지원금 제도가 도입되면서 병원이 더 많은 지원금을 받으려면 더 좋은 의료 서비스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노력에는 비용이 든다. 인구 감소, 환자의 대형병원 쏠림 현상 등으로 지금도 고사 위기에 놓인 지방 병원은 의료 질 개선 노력에 필요한 동력을 잃었다. 인력과 편의시설을 줄여가며 연명하다 결국 폐원하는 병원도 적잖다. 인프라가 잘 갖춰진 데다 최근 지방에서 상경하는 환자들까지 넘쳐나는 서울지역 대형병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딴판이다. 지방 병원의 실태를 확인하고자 전남으로 향했다.

    자영업보다 폐업률 높은 지방 병원

    병원도 불경기를 피해가지는 못했다. 10월 22일 찾은 목포에는 꽤나 많은 건물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병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목포역 인근 병원 및 약국 밀집지역에서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간판은 있지만 영업하지 않는 병원도 종종 있었다. 점포 하나 크기의 작은 병원부터 건물 하나를 통째로 쓰는 큰 병원까지 폐원 후 임대 안내문만 남긴 채 자리를 비웠다. 지역 주민 황모(75) 씨는 “원래 병원이 두세 개는 더 있었는데, 3년 전쯤부터 병원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나마 목포는 호남의 주요 도시라 상황이 나은 편이었다. 작은 지방 도시는 상황이 더 심각했다. 응급 환자를 받는 응급실이 사라지고 있었다. 2013년 경남 진주의료원이 아예 문을 닫았다. 올해는 1월 전남 고흥군의 윤호21병원이 응급실 운영을 포기했고, 나주의 영산포제일병원은 응급실 인력이 부족해 6월 응급의료기관 지정이 취소됐다. 



    중소병원의 고충은 폐업률로도 확인할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공개한 ‘요양기관 개·폐업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병원급 의료기관 폐업률은 8.3%로 전체 종별 가운데 가장 높았다. 게다가 사상 최초로 전국 병원 수가 줄기 시작했다. 지난해 121개 병원이 새로 개원했고 122개 병원이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해 문을 닫았다. 개업 대비 폐업률만 따지면 자영업 평균인 7.3%보다 병원의 폐업률이 높은 셈이다. 

    병원이 사라지면 가장 큰 불편을 겪는 것은 주민, 그중에서도 노약자다. 특히 노년층은 크고 작은 증상으로 일주일에 한두 번은 병원을 찾는데, 가까운 병원이 사라지면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먼 길을 나서야 한다. 얼마 전 공중보건의 복무를 마친 의사 A씨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은 주변의 도움 없이는 병원에 오는 것 자체가 힘들다. 근처에 가족이나 친인척이 있으면 모르지만, 혼자 사는 어르신은 병원이 멀면 그만큼 불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어린이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 성인에 비해 면역력이 약해 각종 질병에 걸리기 쉽고 장난치다 다칠 수도 있는데, 이럴 때 근처에 병원이 없으면 난감하다. 특히 도서지역에 병원이 없으면 배로 환자를 실어 날라야 한다. 늦은 밤이라 배편이 없거나 기상 악화로 병원으로 가는 길이 끊긴다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천장이 듬성듬성 깨진 병동, 낡은 엑스레이 장비

    신안대우병원 외관. [지호영 기자]

    신안대우병원 외관. [지호영 기자]

    10월 23일 신안대우병원을 방문했다. 신안에서 육지와 연결되지 않은 비금도에 자리한 병원으로, 섬 내 유일한 병원이다. 비금도와 연결된 도초도에도 의료시설이 있긴 하지만 의원급으로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다. 신안대우병원은 응급실을 운영하고 있다. 두 섬의 인구를 합치면 약 7000명. 응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병원은 신안대우병원 한 곳뿐이다. 

    비금도로 들어가는 배를 타려고 신안 암태도의 오도선착장으로 갔다. 선착장에서 간식을 팔던 주민이 “외지인 같은데 낚시하러 비금도에 들어가느냐”고 물었다. 병원을 찾아간다고 대답했더니 “저기가 신안에서는 제일 큰 병원이다. 시설이 좋다는데 나는 아직 못 가봤다”고 말했다. 병원 위치는 도초도와 비금도를 잇는 다리 근처였다. 비금도에서 내려 병원을 찾았지만 쉽게 보이지 않았다. 일단 큰 규모의 건물을 찾기가 어려웠다. 

    10여 분을 헤맨 끝에 겨우 병원을 찾았다. 병원을 찾기 어려웠던 이유는 생각만큼 규모가 크지 않았기 때문. 신안대우병원은 3층 규모의 작은 건물이었다. 그나마 3층은 지붕을 개조한 것으로, 사실상 병원으로 쓰는 공간은 2층까지였다. 병원 앞에는 헬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착륙장이 있었다. 작은 건물 앞에 큰 공터가 있어 병원보다는 지방 분교처럼 보였다. 1층은 병동이고 2층은 요양병원이지만, 병원 앞 공터에 나와 있는 사람도 없었다. 

    병원 건물은 많이 늙어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접수실과 간호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 건물에서 ‘실’로 불리는 곳은 외부 공간과 분리된 일종의 방이다. 하지만 이곳은 어른 허리 높이의 칸막이로 가려져 있었다. 천장에는 곰팡이로 보이는 얼룩이 심심찮게 보였다. 미수(米壽)에 가까운 노인의 검버섯 가득한 얼굴 같았다. 

    건물과 달리 환자와 의료진의 표정은 밝았다. 환자는 대부분 진료실을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접수 절차가 있긴 하지만, 진료 목적이 아니라 쉬려고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도 종종 있었다. 의료진도 이들을 굳이 제지하지 않았다. “엄마” “어머님” 같은 친근한 호칭으로 환자를 안내했다. 

    병동에 입원한 환자는 10명, 요양병원 환자는 20명이며 환자들을 돌보는 이는 33명의 요양보호사와 8명의 간호사였다. 의사는 최명석 원장을 포함해 2명. 최 원장은 웃으며 “그래도 다행이다. 정부 지원으로 간호사를 8명이나 쓸 수 있게 됐다. 지원이 없었으면 간호사는 물론, 의사 채용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6년부터 이 병원은 흑자를 내본 역사가 없다. 2016년 적자는 약 3억5000만 원. 2017년과 2018년은 각각 1억9000만 원과 2억5000만 원이었다. 정부 지원으로 겨우 수익을 낸 해가 있긴 하다. ‘지역응급의료발전을 위한 응급의료발전 프로그램’을 통해 적자와 비슷한 규모의 지원을 받는다. 

    적자는 대부분 설비 및 인건비에서 나왔다. 응급실을 만들려고 구급차를 구매했고, 컴퓨터단층촬영(CT)과 엑스레이 장비는 중고를 구해 쓰고 있다. 둘 다 10년은 훌쩍 넘은 구형이다. 상급병원에서는 128채널의 CT 장비를 쓰지만, 이 병원의 CT 장비는 2채널이었다. 채널 수가 높을수록 다양한 병변을 진단할 수 있다. 엑스레이 장비는 요즘 보기 힘든 현상식이었다. 최 원장은 “낙후된 시설이라 볼 수 있지만, 지방 병원에서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여기서 치료가 어려운 환자는 상급병원으로 보낸다. 의료전달체계에 따르면 이 정도 설비가 이 병원에 알맞다”고 말했다. 병원 오른편에는 물리치료실도 마련돼 있었다.

    공중보건의와 간호사 부족에 의료지원금도 깎여

    최명석 신안대우병원 원장. [지호영 기자]

    최명석 신안대우병원 원장. [지호영 기자]

    가장 낙후된 것은 병원 임직원들을 위한 편의시설이었다. 병원의 좌측 구석과 3층 다락에 직원 기숙사가 있었다. 출퇴근이 어려운 섬이니 의료진은 대부분 이 기숙사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병원 좌측 구석의 여성 기숙사로 가는 길에 천장이 듬성듬성 깨져 있었다. 기숙사 내부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 벽지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고, 곰팡이도 종종 눈에 띄었다. 

    남자 기숙사는 상황이 더 심각했다. 지붕 아래 다락에 스티로폼 가설 자재로 방을 만들어놓았는데, 방 앞은 식자재 창고였다. 최 원장이 문을 열어 본인이 쓰는 방을 보여줬다. 크기는 대략 26㎡. 침대 같은 가구는 보이지 않았다. 탁상 위에 TV 한 대, 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진 이불이 전부였다. 

    최 원장은 “그래도 수익이 난다면 의료인력 확충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병원에 의사가 단 2명으로, 광주에 자택이 있는 최 원장은 한 달에 이틀 정도만 집에 갈 수 있다. 그는 “일단 여기로 오겠다는 의사가 없다. 나가기도 힘든 오지 같은 섬에 누가 선뜻 오려 하겠는가. 돈이라도 많이 줘야 하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다. 나 역시 동년배 직장인보다도 못한 급여를 받아가며 일하고 있다. 공중보건의 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최대 2~3명까지 공중보건의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월급을 줄 여력이 안 된다. 그래서 1명만 충원해 병원을 꾸려가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지방 대형병원만 해도 공중보건의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의료 낙후지역의 병원은 지원 요건도 갖추지 못한 형편”이라고 덧붙였다. 

    간호인력도 상황은 마찬가지. 간호인력 지원에 관한 제도는 있지만, 오지 병원은 제도를 이용할 여력이 안 된다. 현행 제도상 환자 수 대비 간호인력 수로 간호등급이 매겨진다. 이 등급에 따라 정부에서 지원하는 간호관리료가 달라진다. 즉 규모가 큰 병원일수록 간호관리료를 많이 받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와 심평원 집계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19년 6월 말까지 간호관리료의 46%가 전체 2%에 불과한 상급종합병원에 집중됐다. 이어 종합병원이 46.4%, 일반 병원은 7.6%만 가져갔다. 한편 중소병원은 외려 간호사 수 미달로 불이익을 받고 있었다.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전체 1470개 중소병원 가운데 1096개(76%)가 간호인력 수 기준 미달 판정을 받았다. 미달 판정을 받으면 의료수가도 깎인다. 

    최 원장은 “수도권 대형병원이 간호사 채용을 대거 늘려 지방으로 내려오는 간호사가 더욱 없다. 지방으로 오게 하려면 수도권 대형병원보다 임금이나 처우 측면에서 더 좋은 대우를 해줘야 한다. 하지만 임금을 많이 주기 어려운 상황이라, 사실상 이곳이 고향인 간호사들의 선의에 일부 기대는 면이 있다”고 밝혔다.

    버려진 병원 뒤에 지역 한숨 꽃 핀다

    상급병원에 집중된 지원금을 받기는 어려우니 신안대우병원은 다른 수를 고민했다.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제6조 2항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공공보건의료기관에 설치·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보조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기 위해 나선 것. 전남도와 신안군의 다양한 사업에 도전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일단 ‘비용을 보조할 수 있다’고 돼 있으나, 어떤 식으로 보조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법령과 관련 법적 근거가 부족했다. 결국 지방자치단체의 다양한 지원 공모 사업 가운데 기타 항목을 찾아 응모에 나섰고, 아직까지 실제 지원으로 이어진 경우는 드물다. 최 원장은 “그나마 전남도와 신안군이 편의를 봐줘 여러 지원을 받았다. 굳이 더 바라는 점이 있다면 관련 법적 근거가 마련됐으면 싶다”고 말했다. 

    신안군 같은 의료 낙후지역은 병원의 자생력이 부족한 데다, 환자마저 대거 수도권으로 빠져나가 스프링클러 같은 작은 시설도 보수가 어려운 실정이다. 최 원장은 최근 수도권 상급병원에 대한 지원 집중과 관련해 “의료 질 개선은 중요한 문제다. 정부의 지원책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한정된 자원을 나눠주는 것이 정책이라면 가장 필요한 곳에 먼저 손을 뻗어주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이어 “낙후지역일수록 의료수가를 올려주는 ‘할증’ 제도도 낙후지역 병원이 자생력을 갖추는 데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료진 부족 현상에 대해서도 “수도권 병원에서 일하는 것보다 의료 낙후지역에서 일하는 편이 금전적으로 낫다면 이곳에 내려올 의료진이 지금처럼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와 의료 지원금 배분이 지역별로 차등 없이 시행됐으면 하는 마음이 절실해지는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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