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조국發 국가 위기

‘비정상’ 국가로 가는 길목에 선 대한민국

  • 구자홍 기자, 강지남 기자

    jhkoo@donga.com, layra@donga.com

    입력2019-10-05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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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치주의 공격하는 청와대, 조국 사태로 경제와 안보 위기도 외면

    • 대규모 집회·시위로 국론분열되고 대의민주주의 실종

    • 집단적 궤변과 진영 주장만 앞세워 윤리·도덕 기준도 무너져

    9월 28일 서울 서초동 서초대로에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많은 시민이 운집했다(왼쪽). 10월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인 대규모 시위 인파. [뉴시스]

    9월 28일 서울 서초동 서초대로에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많은 시민이 운집했다(왼쪽). 10월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인 대규모 시위 인파. [뉴시스]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이 길거리 맞대결 집회로 이어지면서 대의정치가 실종 위기에 처했다. 헌법과 법률에 의거, 선거를 통해 국민의 대표자로 선출되고 국민의 대리인이 된 이들이 권한을 행사하면서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대신, 거리로 쏟아져 나온 대중이 세 과시를 통해 자신들의 이해와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광장정치가 일상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9월 28일 서울 강남구 서초대로에는 조 장관 주변인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반발하며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수십만 인파(주최 측 추산 150만 명)가 몰렸고, 10월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조국 구속, 문재인 심판’을 주장하는 대규모 인파가 결집했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최소 300만 명은 모였다”고 주장했다. 

    조 장관의 거취 및 문재인 정권에 대한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광장정치는 마치 ‘이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것을 과시하려는 듯 갈수록 세 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그사이 문재인 정부의 한 해 나라살림에 대해 잘잘못을 따져야 하는 국회 국정감사는 국민 관심권 밖으로 밀려났다. 국민의 대표기관으로 행정부를 견제해야 할 국회의 핵심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음을 예고한다. 거리에서 선동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밀어붙이려는 광장정치가 대의민주주의를 밀어내고 있는 형국이다.

    정권 홍위병 vs 정권 심판자

    광장정치는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지층의 변함없는 지지를 확인한 문 대통령은 통치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조 장관으로부터 법무부 업무 보고를 받았고, 검찰총장 인사권자로서 윤석열 총장에게 “검찰개혁안을 제출하라”고 다그치기도 했다.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국민 목소리가 대통령의 통치권으로 치환된 셈이다. 야권에서 검찰개혁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시민들을 향해 “정권의 홍위병 같다”고 꼬집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검찰개혁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을 등에 업고 국정 장악력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고 하지만,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등 안보와 경제 실정으로 국정운영 지지율은 오히려 하락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9월 30일~10월 2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는 44.8%, 부정평가는 51.5%였다. 긍정평가는 전주 대비 2.5%p 하락한 수치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 참조).
     
    총선을 6개월여 앞두고 벌어진 광장정치는 21대 총선을 겨냥한 샅바싸움 성격이 짙다. 그렇지만 선거와 헌법, 법률에 의한 대의정치가 위협받으면서 안정적인 국정운영에 대한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죽고 사는 문제인 외교안보 이슈가 묻히고 있고, 먹고사는 문제인 경제 현안 역시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점에서다. 



    북·미 실무협상을 앞둔 북한은 10월 1일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하며 무력을 과시했다. 2월 하노이 회담 때 노딜 이후 11번째 미사일 발사다. 그러나 직접적인 사정권에 놓인 우리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변변한 항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6월 30일 남북미 판문점 회동 때처럼 한국은 북·미 정상회담을 지켜보는 역할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안보 전문가들은 “북한 핵·미사일의 직접적인 위협에 놓여 있는 우리가 지금처럼 손 놓고 있다가는 김정은의 변심에 언제든 (공격) 당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경제가 관심 밖이라는 점도 큰 문제다. 이미 한국 경제는 여러 형태로 적신호를 내고 있지만, 청와대와 국회는 ‘조국 공방’에만 매달려 뚜렷한 해법 찾기에는 소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0.4%로 집계됐다. 마이너스 물가는 1965년 물가통계 작성 이래 54년 만에 처음이다. 8월 소비자물가는 공식적으로는 0.0%였으나 소수점 이하로 보면 -0.04%였기에 물가가 두 달 연속 마이너스를 이어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는 “지난해 농축수산물 가격 급등에 따른 기저 효과”라고 설명하지만,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추세다. 과거에는 기저 효과에도 흔들리지 않던 물가가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마이너스 물가는 장기적인 경기침체인 디플레이션의 전조 현상일 수 있다.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지면 소비가 줄고, 투자가 줄며, 결국 일자리도 줄게 된다. 

    수출도 10개월째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수출이 더 나빠지면 이미 한계에 도달한 가계 부채와 맞물려 심각한 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온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 10월 1일 경총 주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 “보수와 진보 간 대결로 경제가 이념에 발목 잡히는 상황이 계속되면 20년간 장기 불황에 빠진 일본의 전철을 답습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검찰에 대한 ‘사법 방해’, 탄핵 불씨 되나

    외교안보와 경제 현실이 시급하지만 청와대와 여당은 서초동 대규모 집회 이후 조국 일가를 수사 중인 검찰을 전방위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검찰은 대한민국 헌법 체제에서 형벌 소추권을 인정한 준(準)사법기관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검찰을 “행정부의 일부”라고 말하며 검찰개혁을 지시했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문 대통령은 검찰을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조국 일가 수사와 같은 구체적인 사건 수사에 대한 지시는 법무부 장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는 검찰청법에 명시된 규정이다. 검찰청법은 청와대의 과도한 사건 개입을 이 같은 방식으로 통제하고 있다. 형벌 소추권의 자율성을 인정해야 정치적 중립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사나 기소 단계에서 검찰의 결정이 정치권의 주문에 흔들리면 공정한 판결로 이어질 수 없고, 결국 사법적 절차가 무너진다. 헌법 정신인 법치주의의 죽음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이런 맥락에서 대한민국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의 기관이면서 준사법기관으로 인정받아왔다. 

    하지만 지금 여당은 지금까지 인정돼온 헌법적 가치와 사회질서에 대한 분별력을 잃어가고 있다. 검찰 제도가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국회를 통해 헌법을 개정하거나 사법 통제권을 뒷받침할 법령을 정비하면 될 일이다. 조국 사태에 대한 수사나 결정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본다면 법무부 장관을 통해 지휘권도 행사할 수 있다. 이 같은 절차가 헌법과 법률에 규정돼 있음에도 청와대와 여당은 지지층을 끌어모아 관제시위로 여론전을 펼치고, 급기야 수사 검사에 대한 고발 등 검찰 수사를 방해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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