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비키니

중고 신인도 상(賞) 받을 수 있잖아요

  •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입력2019-09-29 12: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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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한국 프로야구 신인상 수상 자격이 있는 선수 가운데 가장 좋은 기록을 유지하고 있는 KIA 타이거즈 이창진. [뉴시스]

    올해 한국 프로야구 신인상 수상 자격이 있는 선수 가운데 가장 좋은 기록을 유지하고 있는 KIA 타이거즈 이창진. [뉴시스]

    저는 올해 한국 프로야구 신인상은 KIA 타이거즈 이창진(28)이 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 이상합니다. 삼성 라이온즈 원태인(19)이 어깨 부상으로 서둘러 시즌을 마감하자 올해 신인상 경쟁이 사실상 끝났다는 기사가 여기저기서 눈에 띕니다. LG 트윈스 정우영(20)이 올해 신인상 자리를 예약했다는 겁니다. 롯데 자이언츠 서준원(19)과 함께 두 선수가 시즌 초반부터 신인상 후보 톱3로 떠올랐던 건 사실. 그렇다고 꼭 이 세 선수 중에서 신인상 수상자가 나와야 하는 건 아닙니다.

    이창진, 신인 타자 가운데 최고 기록

    올해 신인상 수상이 유력한 LG 트윈스 정우영. [동아DB]

    올해 신인상 수상이 유력한 LG 트윈스 정우영. [동아DB]

    2019 한국야구위원회(KBO) 리그 규정은 ‘(신인상은) 해당 연도의 KBO 정규시즌에서 신인선수로 출장하여 기능·정신 양면에서 가장 우수하여 타의 모범이 되는 선수에게 시상한다’고 돼 있을 뿐 다른 조건은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신인상 후보로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조건은 따로 정해뒀습니다. 당해 연도를 제외하고 여섯 시즌을 넘기기 전 타자는 60타석 이하, 투수는 30이닝 이하를 기록했다면 ‘신인선수’ 자격을 유지한 것으로 봅니다. 

    이창진도 이 조건에 부합합니다. 이창진은 2014년 신인 지명회의(드래프트) 2차 6라운드 때 롯데로부터 지명받아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8월 12일 1군 데뷔전을 치렀으니까 지난해가 다섯 번째 시즌으로 신인상 기준을 충족하고, 1군에서 총 52타석에 들어섰으니 타석 기준에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니 원태인이나 정우영, 또는 두산 베어스 최원준(25) 등 경쟁 상대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신인상을 타지 못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참고로 역대 프로야구 신인상 36명의 평균 나이는 22세였습니다). 6년 차 선수라는 것도 마찬가지. 2002년 1군 데뷔전을 치른 최형우(36·현 KIA)는 2008년 7년 차였지만 당시 신인선수 기준(군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6시즌)을 충족했기에 신인상을 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창진은 ‘해당 연도의 KBO 정규시즌에서 신인선수로 출장하여’까지는 ‘세이프’입니다. 이제 ‘기능·정신 양면에서 가장 우수하여 타의 모범이 되는 선수’인지 따져보면 됩니다.

    투타 통틀어도 압도적 성적

    이창진은 9월 23일 현재 OPS(출루율+장타력) 0.738로 신인선수 조건을 갖춘 이들 가운데 가장 높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NC 다이노스 김태진(24)이 OPS 0.699로 규정 타석 70% 이상을 소화한 신인선수 중 2위니까 이창진이 적잖은 차이로 앞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서용빈(48·SPOTV 야구 해설위원)의 통산 OPS가 0.738이고 김영직(59·현 휘문고 감독)은 0.698입니다. 

    게다가 이창진은 신인 타자 가운데 제일 많은 467타석에 들어서면서 이미 규정 타석을 채운 반면, 김태진은 375타석으로 규정 타석 미달입니다. 홈런(5홈런)과 타점(46타점)은 두 선수가 같지만 전체적으로 이창진이 더 꾸준히 출전해 좋은 활약을 선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타자에서 신인상 수상자가 나와야 한다면 이창진이 딱 맞는 후보입니다. 

    투수 쪽에서는 사실 정우영이 역시 신인선수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 전상현(23·KIA)과 비교해 크게 앞선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9월 23일 현재 정우영은 4승 6패 1세이브 15홀드에 평균자책점 3.23을 기록 중이고, 전상현은 1승 4패 14홀드에 평균자책점 3.28입니다. 정우영이 64이닝으로 전상현(57과 3분의 2이닝)보다 11% 더 던졌지만 LG가 안방으로 쓰는 잠실야구장이 리그에서 제일 투수 친화적인 구장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딱히 어떤 선수가 낫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럼 이창진과 이 두 투수의 기록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요. 제가 이용하려는 기록은 승패입니다. 

    미국야구연구협회(SABR)의 뉴스레터 ‘바이 더 넘버스(By The Numbers)’ 2008년 2월호에는 타자 기록을 승패로 바꾸는 ‘간단한’ 방법을 소개한 글이 실렸습니다. 이 글을 쓴 톰 한라한은 통계 분석을 거쳐 ‘(타점+득점)÷12’는 승, ‘(타수-안타)÷34’는 패로 계산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 기록을 이창진에게 적용하면 그는 이번 시즌 9승 9패를 기록 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라한이 이 분석을 시도한 건 기본적으로 야구 역사에 이름을 올린 타자와 ‘선발투수’를 비교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베이브 루스(1895~1948)가 타자로 남긴 성적은 투수로 치면 366승(163패)에 해당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겁니다(루스는 투수로도 94승 46패를 기록했습니다). 정우영과 전상현은 전부 구원투수니까 구원투수 성적을 선발투수 성적 범위로 바꾸는 방법도 있어야겠죠. 

    이에 대해서는 세이버메트릭스(야구통계학) 전문 사이트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가 제시한 방법이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정우영은 선발투수로 21경기에 선발 등판해 8승 8패를 기록한 것과 동급입니다. 전상현도 마찬가지로 8승 8패 투수와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이 논리를 따르자면 9승을 거둔 선발투수와 비교할 수 있는 이창진이 타자와 투수를 통틀어 올 시즌 제일 뛰어난 ‘기능’을 선보인 신인선수입니다. KBO 공식 통계업체 스포츠투아이에서 제공하는 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Wins Above Replacement·WAR)를 봐도 이창진 2.35, 전상현 1.05, 정우영 0.47로 이창진이 두 선수보다 확실히 앞서 있습니다. 

    KBO에서 수상 기준으로 제시한 ‘정신’은 어떨까요? 프로야구는 신인선수 자격만 제외하고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최우수선수(MVP) 투표에서 도핑(약물로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행위) 전력도 문제 삼지 않는 리그입니다. 자연히 이창진이 정신적으로 결격 사유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신인상은 그저 최고 신인에게 돌아가는 것

    2016년 최고령 신인상 수상 기록을 세웠던 신재영(현 키움 히어로즈). [동아DB]

    2016년 최고령 신인상 수상 기록을 세웠던 신재영(현 키움 히어로즈). [동아DB]

    이상을 종합해보면 이창진이 올해 신인상을 타는 게 맞습니다. 이창진은 “신인상 자격이 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벌써 6년 차인데 그동안 뭘 했나’ 반성도 했다. 그러다 ‘지금이라도 이렇게 된 게 어디냐’고 감사하기로 했다”며 “올 한 해가 정말 정신없이 지나갔다. 개인 성적보다 ‘팀이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뛰었다. 올 시즌을 계기로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 무엇보다 체력적인 어려움 없이 한 시즌을 치르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올해는 지난해 강백호(20·kt 위즈)처럼 압도적인 신인선수가 없어 누가 신인상을 타더라도 ‘함량 미달’ 논란이 뒤따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신인상이 꼭 ‘역대급’ 신인에게 돌아가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그저 그해에 가장 우수한 신인선수를 골라 시상하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올해 가장 우수한 신인선수는 이창진입니다. 

    만약 이창진이 정말 신인상을 타게 된다면 신재영(30·키움 히어로즈)이 2016년 세운 역대 프로야구 최고령 신인상(당시 27세) 기록을 새로 쓰게 됩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오시마 노부오(大島信雄·1921~2005)가 센트럴리그 원년(1950)에 29세로 신인상을 탄 게 최고령 기록입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같은 해 내셔널리그 신인상을 탄 샘 제스로(1917~2001)가 최고령 신인상 수상자로, 당시 그는 오시마보다 네 살 많은 33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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