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05

2019.09.06

정민아의 시네똑똑

웃고 울고, 통쾌하고 스릴 넘친다

사극 사라진 추석 극장가 빅3

  • 영화평론가·성결대 교수

    yedam98@hanmail.net

    입력2019-09-09 1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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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NEW,  롯데엔터테인먼트]

    [사진 제공 · ㈜NEW, 롯데엔터테인먼트]

    추석 연휴는 극장가로서는 두말할 나위 없는 성수기다. 메이저 영화사들은 연휴가 이어지는 이 시기에 가족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고자 각기 자존심을 걸고 총력전에 나선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파이가 한정된 영화시장에서 영화사들의 제살 깎아 먹기 경쟁으로 승자도, 패자도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에 더 비싸고, 더 크고, 더 빠르게 만들어 장악한 다음 빠지는 출혈경쟁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빅4로 불리던 한국 영화, 즉 ‘안시성’ ‘협상’ ‘명당’ ‘물괴’의 치열한 경쟁구도에서 제작비 회수마저 어려웠던 상황을 되돌아보며 올해는 영화사들이 서로 윈윈(win-win)하는 라인업으로 관객과 만난다. 

    올해 한국 영화 빅3 라인업의 특징은 먼저 사극이 없다는 점이다. ‘광해, 왕이 된 남자’ ‘관상’ ‘사도’ 등 추석을 노린 사극 대작들의 성공으로 추석 하면 사극을 떠올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관습처럼 굳어졌지만, 이러한 공식도 최근 몇 년 새 깨지고 있다. 2017년 ‘남한산성’의 아쉬운 흥행 이후 지난해 ‘안시성’을 제외한 ‘명당’ ‘물괴’의 지지부진한 흥행은 시즌별 흥행 공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물리적으로 한정된 시장 상황에서 비슷한 장르영화로 격돌하는 과다경쟁은 서로에게 심각한 타격을 안긴다는 교훈을 얻은 것이다. 

    올해 추석 극장가에 걸린 3편의 한국 영화는 각기 다른 장르로 차별화된 특징을 내세운다. 가족 코미디 ‘힘을 내요, 미스터 리’와 ‘타짜’ 시리즈 3편에 해당하는 범죄영화 ‘타짜 : 원 아이드 잭’, 성공한 TV 드라마를 영화로 옮긴 액션영화 ‘나쁜 녀석들 : 더 무비’가 형성하는 추석 극장가 빅3 구도는 장르적으로 서로 다르며, 영화적 색깔과 관객 타깃층에서 좀 더 분명한 차별성을 가진다. 3편 모두 추석 연휴 전날인 9월 11일 개봉해 공정하게 시합을 겨룬다.

    차승원의 웃픈 코미디 vs 류승범의 포커 타짜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차승원이 그간 진지한 역할로 연기파적 면모를 드러내고자 했던 경향에서 벗어나 ‘이장과 군수’ 이후 12년 만에 도전하는 코미디영화다. 한때 조폭 코미디영화 전성기 시절 유연한 코믹 캐릭터로 자신만의 페르소나를 쌓았던 차승원이 많은 이미지 변신 이후 얼마나 코미디 연기의 폭이 넓고 깊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완벽한 비주얼을 자랑하는 철수(차승원 분)는 아이 같은 감성과 지능을 가진 칼국숫집 수타면 뽑기 달인이다. 어느 날 그의 앞에 백혈병을 앓는, 어른보다 더 어른 같은 딸 샛별(엄채영 분)이 등장한다. 병원을 탈출한 샛별과 철수는 대구까지 함께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철수의 숨겨진 과거가 밝혀진다. 

    영화는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를 배경으로 그가 어수룩해진 이유가 밝혀진다. 영화 초반부는 막장 드라마를 비틀어 엇박자의 유치함을 적절히 활용한 독특한 코미디며, 대구로 간 중반부 이후는 눈물 참기가 어려운 최루 효과를 낸다. 유해진 주연의 ‘럭키’(2015)로 흥행 수완을 입증한 이계벽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가족 관객을 타깃으로 하는 웃기고 울리는 영화다. 

    ‘타짜 : 원 아이드 잭’은 허영만 화백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타짜’의 세 번째 속편이다. 전설적인 타짜 짝귀의 아들이자 고시생인 도일출(박정민 분)은 공부에는 흥미가 없지만 포커판에서는 날고 기는 실력자다. 우연히 알게 된 마돈나(최유화 분)의 묘한 매력에 빠져든 일출은 그녀의 곁을 지키는 이상무(윤제문 분)에게 속아 포커의 쓴맛을 제대로 배운다. 돈도 잃고 자존심까지 무너진 채 벼랑 끝에 몰린 일출 앞에 정체불명의 타짜 애꾸(류승범 분)가 나타나 거액이 걸린 거대한 판을 설계한다. 셔플의 제왕 까치(이광수 분), 남다른 연기력의 영미(임지연 분), 숨은 고수 권원장(권해효 분)까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누구든 이길 수 있는 ‘원 아이드 잭’ 팀으로 모인 이들은 인생을 바꿀 새로운 판에 뛰어든다. 

    이번에는 화투에서 포커로 도구가 달라졌다. 이 영화는 청소년관람불가(청불)의 범죄영화로 폭력성 수위가 꽤 있다. 청불 오락영화를 원하는 성인 관객, 그리고 ‘타짜’ 마니아 관객을 노린 작품이다. 류승범이 오랜만에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뽐내며 연기한다. ‘돌연변이’(2015)의 권오광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TV를 넘어 영화서도 통할까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나쁜 녀석들 : 더 무비’는 OCN에서 2014년 방송돼 한국 장르 드라마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은 동명의 원작 드라마를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교도소 호송 차량 탈주 사건이 발생하고 최악의 범죄자들이 탈주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오구탁(김상중 분) 반장은 과거 함께 활약했던 전설의 주먹 박웅철(마동석 분)을 찾아가고, 감성 사기꾼 곽노순(김아중 분)과 전직 형사 고유성(장기용 분)을 영입해 새로운 팀을 구성한다. 새로운 멤버들이 합류해 더욱 강력하고 치밀하며 독해진 나쁜 녀석들은 이 사건을 파헤칠수록 배후에 거대한 범죄조직이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더 나쁜 놈들을 소탕하고자 움직인다. 

    이 영화는 “수감 중인 범죄자가 흉악범을 잡는 극기 프로젝트”라는 원작의 콘셉트를 그대로 가져와 스케일을 더 키웠다. 원작 드라마에 출연했던 마동석과 김상중이 영화에도 출연한다. 코믹 요소가 있는 아드레날린 넘치는 액션영화로 젊은 관객을 타깃으로 한다. 손용호 감독의 데뷔작이다. 

    올해 추석 한국 영화는 지난해의 실패를 교훈 삼아 투자비용을 낮췄고, 그 결과 손익분기점이 200만~260만 명으로 지난해에 비해 대폭 완화됐다. 성수기를 맞아 영화사들이 서로 적절하게 균형을 맞춰나가는 가운데, 이들 작품 중 몇 편이 손익분기점을 넘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극장가를 찾기 어려운 여건이라면 집에서 편하게 테마를 잡아 영화를 한꺼번에 감상하는 것도 좋다. 최근 정치·외교적 상황과 맞물려 ‘봉오동 전투’의 거침없는 흥행 진격과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다큐멘터리 ‘김복동’, 일본 극우세력의 부상을 파헤친 다큐멘터리 ‘주전장’의 흥행 약진에 놀랐다면 이번 기회에 일제강점기와 역사를 다룬 영화들을 섭렵해보는 건 어떨까. 

    일제의 눈을 피해 우리말을 지켜낸 한글학자들의 활약을 그린 ‘말모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일본 내 법정 소송을 그린 ‘허스토리’, 낭만적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를 그린 ‘박열’, 윤동주의 시와 삶과 독립정신이 서정적으로 그려진 ‘동주’ 등 중소 규모지만 강한 작품들은 벅찬 감동을 안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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