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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의 호칭 ‘텐노(天皇)’의 기원

백제 패망 이후 ‘일본’이란 왕조명과 함께 쌍둥이로 탄생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일왕의 호칭 ‘텐노(天皇)’의 기원

5월 1일 일본 
도쿄 고쿄(皇居) 내 마쓰노마에서 열린 즉위식에서 나루히토(왼쪽) 일왕이 왕위 계승의 증명으로 ‘삼종신기’를 받고 있다. [AP=뉴시스]

5월 1일 일본 도쿄 고쿄(皇居) 내 마쓰노마에서 열린 즉위식에서 나루히토(왼쪽) 일왕이 왕위 계승의 증명으로 ‘삼종신기’를 받고 있다. [AP=뉴시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일본 헌법 제1조는 ‘텐노(天皇·일왕)는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그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로부터 나온다’이다. 이후 제8조까지가 모두 일왕에 대한 내용이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퇴위하고 나루히토(德仁) 일왕이 즉위하면서 천황제에 대한 일본 사회의 집착이 화제가 되고 있다. 단일 왕조로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왕실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가공된 신화’와 ‘역사적 사실’이 마구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깊숙이 응시해보면 쌍둥이처럼 탄생한 텐노와 일본(日本)이라는 호칭이 백제 멸망이 가져온 충격파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126번째 일왕의 허구성

‘삼종신기’는 일왕을 상징하는 세 가지 물건으로 ‘청동검, 청동 거울, 굽은 구슬(곡옥)’을 말한다. [위키피디아]

‘삼종신기’는 일왕을 상징하는 세 가지 물건으로 ‘청동검, 청동 거울, 굽은 구슬(곡옥)’을 말한다. [위키피디아]

텐노의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하늘이 내린 황제’라는 뜻이다. 황제(皇帝)는 여러 제후국의 왕을 거느린 ‘왕중왕’이라는 소리다. 영어 ‘Emperor’와 같은 뜻이지만 제국주의(Imperialism)를 연상케 하기에 현대 군주국에선 이 호칭을 기피한다. 실제 전 세계 30개 군주국 가운데 이에 해당하는 호칭을 쓰는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다. 그래서 국내 언론은 대부분 텐노나 천황 대신 일왕으로 표기한다. 

나루히토 일왕이 126번째 일왕이라는 주장부터 부풀려진 것이다. 기원전 660년 즉위해 127세에 죽었다는 진무(神武)라는 신화적 인물이 초대 일왕이라는 전설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8세기 초 집필된 ‘고사기’(古事記·712년)와 ‘일본서기’(日本書紀·720년)에 근거한다. 이들 책은 나라(奈良) 일대를 거느리던 야마토 왕국이 일본 전역을 장악함에 따라 왕실 미화를 위해 오래된 신화와 전설을 뒤섞어 왕실사로 편입시킨 관제홍보물이었다. 조선시대 ‘용비어천가’의 고대 일본 확장판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일왕의 대수 확정 작업은 그로부터 1100여 년 뒤인 메이지(明治·재위 1868~1912) 일왕과 다이쇼(大正·재위 1912~1926) 일왕 시기에 이뤄졌다. 이때는 군국주의화의 첫 발걸음으로 일왕 신격화가 본격화된 시점이다. 실제 일본 역사학계도 1대 진무부터 9대 가이카(開化·재위 기원전 158~기원전 98)까지는 가공된 인물로 본다. 10대 스진(崇神·재위 기원전 97~기원전 29)이 실존인물로 진무의 원형이라는 관점과 25대 일왕 부레쓰(武烈·재위 498~507)까지 가공인물이라는 관점까지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26대 게이타이(繼體·재위 507~531년)부터가 학계 모두가 인정하는 실존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게이타이 일왕이 백제계이거나 백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가 있다. 일본 국보인 인물화상경(人物畵像鏡)이라는 청동거울이다. 

이 청동거울에는 ‘계미년 8월 10일에 남제왕(男弟王)이 오시사카궁(意柴沙加宮)에 있어, 시마(斯麻)가 장수를 기원해 백동 200한을 가져다 이 거울을 만들었다’는 한자 명문이 새겨져 있다. 계미년은 443년 또는 503년을 뜻하는데, 503년일 경우 시마는 백제 무령왕을 말하고 남제왕은 당시 오시사카궁에 머물던 게이타이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때 남제(男弟)를 남동생으로 새길 경우 게이타이는 무령왕의 동생으로 풀이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해석은 일본 왕실에 백제인의 피가 흐른다는 수많은 근거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백제 멸망 이후 등장한 텐노

전통의상을 입은 나루히토 일왕이 5월 8일 일본 도쿄 고쿄의 옛 일왕들 묘 앞에서 즉위를 고하는 의식을 치르고 있다(왼쪽). 이날 고쿄의 규츄산덴(宮中三殿)에 즉위를 고하러 가는  나루히토 일왕과 마사코 왕비. [AP=뉴시스]

전통의상을 입은 나루히토 일왕이 5월 8일 일본 도쿄 고쿄의 옛 일왕들 묘 앞에서 즉위를 고하는 의식을 치르고 있다(왼쪽). 이날 고쿄의 규츄산덴(宮中三殿)에 즉위를 고하러 가는 나루히토 일왕과 마사코 왕비. [AP=뉴시스]

일본에서도 텐노라는 호칭은 7세기 후반이 돼서야 등장한다. 그 전에는 오오키미(大君 또는 大王)로 불렸다. 그러다 일본열도 통일이 완성되자 여러 번국의 제왕이라는 뜻에서 중국의 황제 개념을 빌려온 듯하다. 여기에 7세기 후반 중국 당(唐) 고종(高宗·재위 649~683)이 도교의 영향으로 천황이라는 칭호를 잠시 사용한 점도 영향을 끼쳤으리라 여겨진다. 도교에서 천황은 옥황(玉皇)과 더불어 전설상의 최고 신선을 가리킨다. 

그 출발점에 대해선 한동안 35대 스이코(推古·재위 592~628) 여왕 때부터라는 주장도 있었다. 607년 스이코 여왕이 중국 수양제에게 보낸 국서에 ‘해 뜨는 곳의 천자가 해 지는 곳의 천자에게 보내노라’고 썼다는 ‘수서(隋書)’의 기록이 그 근거다. 하지만 이는 중국 황제의 칭호인 천자(天子)를 빌려다 쓴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러다 1998년 천황이라고 표기된 목간이 발굴되면서 40대 일왕인 덴무(天武·재위 673~686)가 최초로 천황 호칭을 사용했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 됐다. 

덴무는 일본 고대사에서 가장 문제적 인물이었다. 고대 일본 왕국을 완성시킨 두 명의 일왕을 꼽으라면 38대 덴지(天智·재위 661~672)와 그 동생 덴무가 거론된다. 덴지는 왕자 시절이던 645~646년 당대 최고 세도가문이던 소가(蘇我) 씨 일문을 척살하고 율령제를 도입해 중앙집권을 강화하는 다이카개신(大化改新)을 주도했다. 다이카는 일본 최초 연호(年號)이기도 하다. 

그가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660년 백제는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됐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이자 37대 일왕이던 사이메이(齊明·재위 655~661)는 이 소식을 접하고 “본국(本邦)이 국토를 잃고 백성이 뿔뿔이 흩어졌으니 이제 더 이상 의지할 곳도 고(告)할 곳도 없게 됐네”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사이메이가 백제 부흥군을 돕는 원병을 파견하기 위해 국운을 걸다시피 병력을 모집하다 숨을 거두자, 왕좌에 오른 덴지는 어머니의 유지를 실천에 옮긴다. 663년 400여 척의 함선과 2만7000명의 병력을 파병한 것이다. 이들은 현 금강 하류에 해당하는 백촌강 일대에 상륙하려다 나당연합군에게 패배하고, 백제 부흥운동의 본거지였던 주류성도 함락된다. 이 소식을 접한 덴지는 “백제의 이름 오늘로 끊어졌네 / 조상의 무덤을 모신 곳 / 어찌 다시 돌아가리”라고 탄식했다고 일본서기는 전한다. 

덴무는 백제 복권을 기도하던 어머니나 형과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형이 죽고 1년도 안 돼 조카인 39대 고분(弘文) 일왕을 죽이고 왕좌에 앉은 그는 백제 흔적 지우기에 골몰한다. 반도부여(백제)와 열도부여(일본)라고 할 만큼 밀접한 관계였던 양국 역사에서 백제의 역할을 삭제하고 그 모두를 일본이 주도한 것처럼 ‘역사 다시 쓰기’를 지시하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고사기와 일본서기였다. 

일본사상사학회장을 지낸 고야스 노부쿠니(子安宣邦) 오사카대 명예교수는 덴무의 이런 선택을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은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편찬을 통해 그 역사에 남아 있는 한(韓·한민족)의 흔적을 지워갔다. 근대 일본의 성립은 그래도 남아 있던 한의 흔적을 총체적으로 소멸시킴으로써 스스로 아이덴티티를 만들어갔다.”


텐노와 짝을 이룬 왕조명 일본

텐노라는 칭호가 공식 법제화된 것은 42대 일왕 몬무(文武·재위 697~707)의 치세기던 701년 발표된 ‘다이호(大寶) 율령’부터다. 다이호 율령은 일본 최초 율령으로, 이를 통해 고대 국가 체계의 완비가 이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전까지 단발적으로 쓰였던 연호를 공식화하고 관제와 복식, 각종 의례의 준칙이 마련된다. 

이 중 주목할 것은 일왕의 대외적 호칭을 ‘일본천황(日本天皇)’으로 했다는 점이다. 그해 바로 중국 당나라에 견당사를 보내 측천무후에게 그동안 써온 왜국(倭國)이 아니라 일본국(日本國)으로 호칭을 바꾸겠다고 한 내용이 ‘당서(唐書)’와 ‘사기정의(史記正義)’ 같은 책에 등장한다. 

최근 출간된, 고노시 다카미쓰(神野志隆光) 도쿄대 명예교수의 ‘일본은 왜 일본인가’를 보면 여기서 일본은 국명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왕조명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한다. 중국이 국명에 해당하고 진, 한, 당이 왕조명에 해당하듯 왜국이 국명에 해당하고 일본은 왕조명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일본서기라는 서명(書名) 역시 한서(漢書)와 당서(唐書)처럼 왕조사를 다룬 책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지었다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일본이라는 왕조명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아무도 모른다”가 고노시 교수의 결론이다. 일신(日神)인 아마테라스(天照)의 천손이 강림한 나라여서 그렇다는 신화적 해석이나 대승불교에서 비로자나불의 현신인 대일여래(大日如來)의 본국(本國)이라는 뜻에서 ‘대일본국’이라고 불렀다는 불교적 해석은 모두 후대의 창작에 불과하다는 것. 

다만 고노시 교수는 한반도나 중국 등 타자의 관점이 투영된 호칭일 가능성에 무게중심을 둔다. 중국적 신화를 토대로 일본이라는 호칭은 결국 ‘해가 솟아오르는 동쪽의 거대한 나무 부상(扶桑)의 뿌리에 위치한 나라’는 뜻이 된다. 일역(日域)이나 일하(日下)와 같은 의미다. 이는 중국과 한반도의 동쪽에 위치하기에 붙을 수 있는 지역명이다. 왜냐하면 일본 중심적으로 보면 해는 일본 열도가 아니라 다시 그 동쪽에서 떠오르기 때문이다.


일본은 백제의 별칭?

5월 1일 일본 도쿄 긴자거리에서 한 일본인이 새 연호 레이와(令和)를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있다(왼쪽).이날 즉위한 나루히토 일왕 부부가 도쿄 고쿄 앞에 운집한 국민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AP=뉴시스]

5월 1일 일본 도쿄 긴자거리에서 한 일본인이 새 연호 레이와(令和)를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있다(왼쪽).이날 즉위한 나루히토 일왕 부부가 도쿄 고쿄 앞에 운집한 국민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AP=뉴시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고사기와 일본서기에서의 자국 인식 차이다. 다이호 율령이 반포되고 11년 뒤 출간된 고사기에는 야마토(倭)라는 표현만 64회 등장할 뿐 일본이라는 표현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8년 뒤 출간된 일본서기에는 야마토라고 읽는다는 주석과 함께 일본(日本)이라는 표현이 대거 등장한다.
 
고사기와 일본서기 비교연구의 권위자인 고노시 교수는 “고사기의 관심이 일본 내부(야마토)에만 매몰된 반면, 일본서기는 한반도와 중국이라는 타자의 관계 속에서 자국을 인식하면서 그들이 자신들을 호명하는 타칭(他稱)을 내면화한 것이 일본”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그와 함께 “일본이라는 왕조명을 국호로 계속 쓰는 한 천황제와 불가분의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며 “고대 왕조명에 더 이상 기탁하지 않으려면 국호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일본이라는 호칭이 백제의 별칭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백제 출신으로 당나라에 투항한 예군(禰軍·613~678)이라는 인물의 묘지명이 2012년 중국에서 발굴됐다. 884자 분량의 이 묘지명에는 ‘관군(당나라)이 번국(백제)을 멸하자 일본(백제)의 잔당들이 부상에 들어가 죽임을 면했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다이호 율령 반포보다 20년 넘게 앞선 기록이다. 

도노 하루유카(東野治之) 오사카시립대 교수는 문맥상 일본은 백제, 부상은 일본을 지칭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해 파문을 일으켰다. 고노시 교수 역시 이를 지지하고 있다. 천황제가 됐든, 일본이라는 국호가 됐든 그 뿌리를 찾아가보면 결국 백제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주간동아 2019.05.10 1188호 (p6~9)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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