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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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치 넘치는 아이브

[미묘의 케이팝 내비] 샘플링의 좋은 예 ‘After LIKE’

  •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입력2022-09-15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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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곡 ‘After LIKE’를 발표한 아이브(IVE). [사진 제공 ·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신곡 ‘After LIKE’를 발표한 아이브(IVE). [사진 제공 ·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아이브(IVE)의 신곡 ‘After LIKE’는 잘 통제된 파격이 돋보이는 곡이다. 하우스 비트에 즐거운 긴장이 실린 전개부는 갑작스러운 당혹을 맞이한다. ‘도#-레-미-파’, 단 4개 음표로 이뤄진 대목 “What’s after ‘LIKE’?”가 곡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다장조는 나단조로 뒤집히고, 이내 다시 후렴이 급격한 선회를 보인다. 그러고는 후렴이 끝날 때 글로리아 게이너의 1978년 디스코 명곡 ‘I Will Survive’ 테마가 등장한다.

    이제 큰 그림이 들어온다. 전혀 다른 노래 같은 전개부와 후렴은 사실 모두 다장조-라단조에 기반했다. 그 사이사이에서 “What’s after ‘LIKE’?”는 두 번의 급격한 조바꿈을 이루는 계단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해당 대목이 ‘I Will Survive’ 테마와 갖는 균질성을 볼 때는 이 두 부분이 인용구처럼 삽입된 것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I Will Survive’는 찬란한 드롭을 구성하기도 하고, 후반에는 8마디 래핑으로 절정에 절정을 더하기도 한다. ‘After LIKE’의 접붙이기는 여러 곡이 각자의 매력과 맥락, 오라까지 그대로 유지한 채 링 위에서 충돌하듯이 만나 새로운 스펙터클을 이루는 매시업(mash up) 기법에 가깝게 느껴진다. DJ의 손끝에 정신없이 휘둘리며 끌려 다니는 듯한 감각마저 제공한다.

    화룡점정 된 ‘I Will Survive’ 샘플링

    “What’s after ‘LIKE’?”가 재미있는 이유는 또 있다. 전개부와 후렴은 비슷하지만 사실 꽤나 대조적이기도 하다. 전개부는 명랑하면서도 전작 ‘LOVE DIVE’와 ‘ELEVEN’이 보여준 단호한 쿨함을 유지하고, 후렴은 주된 음역을 단숨에 거의 한 옥타브 끌어올리면서 화려한 파티튠으로 출렁거린다. 이 차이를 중화시켜 동질성을 부여할 수도 있고, 비교적 중립적인 징검다리를 덧대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곡은 충격을 더해 매번 청자를 잠시 길 잃게 하는 삽입구를 선택함으로써 양자의 매력을 모두 끌어올린다는 목적을 달성한다. 상반된 무드를 이어붙이는 것이 케이팝의 주된 미학이다 보니 다양한 방법론이 등장했지만, ‘After LIKE’의 그것은 가장 대담하면서도 재치 있는 사례로 기억될 만하다.

    케이팝에서 동요나 구전가요 인용은 때로 부적절할 정도로 흔하지만, 잘 알려진 곡의 샘플링은 조금은 조심스럽게 접근되는 영역이다. ‘I Will Survive’ 같은 댄스뮤직의 기념비가 이제야 인용된 것도 그 덕분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누구라도 즉각적으로 디스코와 댄스플로어를 떠올리게 하는 기호적, 음악적 힘을 가진 이 테마가 ‘After LIKE’를 무엇보다도 앞서서 훌륭한 댄스팝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갖은 자극으로 감상자를 정신없이 흔들어놓고, 그 결과로서 본능적인 흥에 가까운 쾌감을 끌어올리는 화룡점정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After LIKE’에는 많은 미덕이 있는데, 후반부 레이의 랩은 놓치고 가기에는 아까운 대목이다. 2절 후렴의 기세를 조금도 늦추지 않고 시원하게 뻗는 이 브리지에서 단순명쾌하게 치고 나가는 래핑은 그 자체로 상당한 통쾌함이 있다. 또한 곡의 모티프인 ‘좋아함 그 이상(after ‘Like’)’의 정체에 대해 앞 대목들은 다소 말을 아끼는 듯 “L 다음 또 O”까지만 말하고 얼버무리는데, 랩에서는 ‘LO’와 ‘VE’ 사이에 ‘나’(I)를 집어넣어버린다. 아이브 특유의 나르시시즘을 강화하는 한편, 팀 이름인 IVE도 선언한다. 재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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