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추하는 시간, 겨울이 주는 따뜻함이죠 [SynchroniCITY]

흘러가는 세월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요

  • 안현모 동시통역사·김영대 음악평론가

    입력2021-10-2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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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대 으~, 갑자기 너무 추워졌어요.

    현모 전 극도로 추위를 많이 타는데 큰일이네요. 오늘도 원래 남산에 갈 계획이었는데 추워서 안 갔어요. ㅠㅠ

    영대 요샌 감기에 걸려 열이라도 나면 어디 출입을 못 하니까 더 조심하긴 해야죠.

    현모 이제 제주도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못 갈 거 같고, 전 겨울엔 주로 겨울잠만 자는데 어쩌죠? 실제로 겨울이 되면 몸도 여기저기 많이 아파요.



    영대 겨울을 정말 싫어하는군요. 전 사실 11월에 생일도 있고, 겨울에 얽힌 좋은 추억도 많아서 여름보단 가을, 겨울을 더 좋아하는 거 같아요.

    현모 그래요? 전 심지어 스키도 성인이 돼서는 안 타기 시작했어요. ㅜㅜ

    영대 그래도 찬바람 불고 크리스마스 분위기 나면 신나지 않아요?

    현모 헉…. 전 넘넘 슬픈데…. ㅜㅜ

    10월 31일 핼러윈데이를 맞이하면서 연말 시즌이 시작된다. [GETTYIMAGES]

    10월 31일 핼러윈데이를 맞이하면서 연말 시즌이 시작된다. [GETTYIMAGES]

    영대 종교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큰 홀리데이잖아요. 한 해가 잘 마무리된 것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의미도 있고요. 이런 연말 시즌 스타트가 10월 31일 핼러윈데이라서 미국인들이 핼러윈을 그렇게 요란하게 보내는 거라고도 하더라고요.

    현모 전 어느덧 시간이 또 흘러 해가 바뀌고 한 살 더 먹는다는 게 극도로 슬퍼요.

    영대 나이도 젊으신 분이 뭐가 그렇게 슬퍼요. ㅎㅎ

    현모 모르겠어요. 저만 나이 드는 게 아니라, 부모님도 나이 드시고, 내가 아는 모든 것이 한 발짝 더 죽음에 가까워지는 느낌이에요. 물론 새로 태어나는 생명들도 있겠지만요.

    영대 ㅎㅎㅎ 반응 너무 재미있는데요? 전에 시간 흐름이 세상에서 가장 두렵다고 했을 때 어느 정도 공감했지만, 그 두려움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현모 제가 좀 이상해 보이려나요? 아마 제가 늦둥이라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형성되고 내재된 특징 같아요. 항상 부모님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영대 세상에! 아직도 한참이나 더 남았는데. ㅋㅋㅋ

    현모 그야 그렇죠. 그런데 언니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건 맞잖아요. 심지어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그런 생각이 저를 지배했어요.

    영대 맙소사! 철든 딸이었네요~!

    현모 아마 부모님이 그런 이야길 무의식중에 자주 하셔서 제 머릿속에도 박혔나 봐요. “엄마 아빠가 너를 늦게 낳아서” “같은 반 엄마 아빠들 중에 우리 나이가 제일 많아서” 이런 말씀을 하면서 꼭 그걸 만회하려고 부단히 노력하셨던 거 같아요. 운동회라도 하면 아빠가 제일 적극적으로 앞장서 참여하시고 젊은 아빠들한테 지지 않으려 엄청 열심히 뛰셨던 게 깊이 각인됐어요.

    영대 아… 제가 부모 된 입장에서 들어보니 무슨 맥락인지 알 거 같네요. 그럼 현모 님은 자라면서 부모님 속을 안 썩였겠어요.

    현모 하하. 제가 아이일 때는 언니들이 부모님을 속상하게 할 때마다 이해가 안 됐어요. 그런데 제가 사춘기가 되니 저도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을 힘들게 하더라고요. 지금 돌이켜보면 참 안타깝지만요.

    영대 그죠. 다 그럴 때가 있는 법이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지난날을 추억하고 되돌아보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겨울이 주는 따뜻함이 있는 거 같아요. 아무래도 우리가 봄이나 여름에는 주로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느라 바쁘지 과거를 돌아보진 않잖아요.

    현모 문제는 저는 늘 과거를 회상하는 편이긴 해요. 웃기게도 지금보다 한참 전인 열여덟, 열아홉 살 때도 사진첩 속 부모님의 젊은 시절을 보면서 눈물을 폭포처럼 쏟았어요. 그때 부모님은 지금 남편이나 영대 님 나이 정도로 완전히 혈기왕성한 시절이었는데도 말이죠. 한마디로 저는 어쩌면 노화 자체보다 어떤 순간도 절대 다시 오지 않는다는 당연한 명제가 미치도록 슬펐나 봐요.

    영대 시간이 앞으로 흘러가고 순서대로 떠나는 건 굉장히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어쩌면 저는 아버지가 지금의 제 나이일 때 일찍 돌아가셔서 그런지, 내가 갑작스럽게 죽는 것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훨씬 압도적이에요. 남겨질 가족이 마주할 고통과 어려움을 저는 직접 겪어봤으니까요.

    현모 그죠. 영대 님은 가장이고 아이들이 있으니까요.

    영대 아니…. 기온이 뚝 떨어져서 계절감 있는 대화를 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내용이 이렇게 심오해질 줄이야!

    현모 우리가 어떤 부정적인 사건이든, 감정이든 그것을 마주했을 때 최대한 고이 접어 마음속 창고에 넣고 넘기는 사회화 훈련이 돼 있어서 그렇지, 늙는 거, 변하는 거, 그리고 그것에 따른 이별과 헤어짐이 백 번, 천 번 슬픈 건 맞다고요!

    영대 그래요. 저도 장남이라 그런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주변 누구한테 언급도 안 했다 한 10년쯤 지난 어느 날 도저히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폭발했으니까요. 뭐야, 눈물이 나려고 하네.

    현모 저도 대화 내내 눈물을 계속 참고 있어요. ㅠㅜ

    영대 추울 땐 군고구마, 호빵 이런 맛난 이야기하면서 입맛 다시고, 뭐 이래야 하는데….

    현모 아, 저는 겨울 음식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무조건 떡국이에요! 예전 한겨울 새벽녘에 출근하다 도로 위에 살얼음이 깔려서 교통사고가 크게 난 적이 있어요. 그때 일주일간 쉬면서 집에서 매일 엄마가 해주신 떡국만 먹었는데 매일 먹어도 지겹지 않았어요. 채식을 시작한 이후로 가장 그리운 음식이기도 한데, 식당에서 파는 다른 떡국들 말고 엄마가 해주시던 그 달걀 푼 떡국이….

    영대 아내도 친정어머니 미역국이 먹고 싶다고 자주 말하는데…. 잠깐만요, 다시 슬퍼지잖아요.…! ㅠㅠ

    현모 죄송해요. ^^; 제가 말은 이렇게 해도 매년 10월쯤이면 한 해의 결심을 다시 세우곤 해요. 막상 연말연시에는 바쁨과 슬픔에 잠겨서 신년 다짐을 못 세우거든요. ㅋㅋ 딱 요맘때, 뜨거웠던 여름이 가고 조금 차분해졌을 때, 한 분기가량 남아 있는 시점에 남은 기간에라도 지키자는 심정으로 나와 약속, 각오를 다시금 다잡는답니다.

    영대 괜찮은 아이디어네요. 그럼 일단 얼마 남지 않은 제 생일에 무슨 선물을 할지부터 플랜을 세워보세요.

    현모 ㅎㅎㅎ 안 그래도 전에 사둔 선물을 지금까지 차에 싣고 다니는 거 아시죠~!

    영대 거의 반년 넘게 못 받은 그 선물이 뭔지 정말 궁금하다!

    현모 이 싱크로니시티와도 연관이 있어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계속)

    [GETTYIMAGES]

    [GETTYIMAGES]


    안현모는… 방송인이자 동시통역사. 서울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SBS 기자와 앵커로 활약하며 취재 및 보도 역량을 쌓았다. 뉴스, 예능을 넘나들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우주 만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본 연재를 시작했다.





    김영대는… 음악평론가. 연세대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BTS : THE REVIEW’ 등이 있으며 유튜브 ‘김영대 LIVE’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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