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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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에 혼쭐날까 봐”… 방송가는 15년째 눈치 보는 중

[미묘의 케이팝 내비] 팬덤의 과도한 보호, 아이돌을 위한 길?

  •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입력2021-05-20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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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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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인터넷 방송에 출연했을 때 일이다. 테이블에 종이가 놓여 있었다. 그날 방송 주제는 팬덤이 한창 뜨겁게 달아오르던 아티스트였다. 누군가 팬덤에게 혼날 것 같은 말을 하면 종을 쳐 발언을 끊기로 했다. 그날 종을 칠 일은 별로 없었다. 팬덤도 호의적이었다. 다음 날 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팬덤을 비이성적으로 발끈하는 존재로 상정한 듯했다”는 반응을 들었다.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팬덤’이라고 묶어서 말하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어 의견은 제각각이기 마련이다. 팬덤을 서운하지 않게 하기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최근 한 시사프로그램이 케이팝 세계의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참여해서는 안 되는 이가 곡 작업에 참여하고, 다른 작가들보다 유리하게 선택받은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방송에는 한 대형 아이돌그룹의 이름이 등장했다. 이와 관련해 팬덤에서 상당한 불만이 제기됐다. 해당 아이돌그룹은 피해자인데 방송에서 이름이 지나치게 언급됐다는 것이었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들을 연거푸 언급한 데는 이유가 있다. 워낙 대형 스타라, 곡 작업을 둘러싼 작가들의 경쟁이 치열하고 채택됐을 때 이익도 크다는 맥락이었다. 또한 그 정도로 철저히 관리되는 슈퍼스타라도 부당한 꼼수를 차단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방송에 출연한 피해 작가들도 이 아이돌그룹의 팬덤에게 미안하다며 눈물까지 흘렸다. 물론 팬덤도 이해한다. 이들의 분노 역시 공정한 경쟁을 통해 더 좋은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는 아이돌이 누군가의 농간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데 있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선명히 들려주기 위해 언급이 필요했다는 데도 많이 동의했다.

    그러나 팬덤에는 이런 주장도 있다. 방송을 ‘얼핏 보면’ 아이돌그룹에 문제가 있는 줄 ‘알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한 생각이다. 누군가는 ‘죄와 벌’을 읽고 살인해도 되는 인간이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도스토옙스키에게 그 책임을 묻지는 않는다. 방송은 오해를 줄이고 주제 의식을 분명히 하고자 최선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넘어서는 오독까지 미연에 방지하길 원하는 것은 팬덤의 과도한 보호 성향일 수 있다.

    아이돌과 팬덤은 오랜 기간 사회적으로 저평가 및 매도 대상이었다. 특히 고도의 경쟁과 불안정성, 폭력적 시선 등에 노출된 아이돌의 처우를 생각할 때 이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팬덤의 강력한 동인 역시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다만, 어찌해도 팬덤의 심기를 건드려 항의를 받는다면 필요할 때조차 입을 다물게 될 수 있다. 이번 방송 프로그램은 ‘그럼에도’ 피해자들을 위해 조망돼야 하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좀 더 일찍 공론화되지 못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팬덤이 느낄 상처도 그중 하나였다면 아이돌을 ‘위하는 길’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유명 아이돌을 함부로 언급하면 팬덤에게 혼쭐난다는 밈(meme)이 방송가와 일상에 뿌리내린 지도 15년이 훌쩍 넘었다. 오히려 연예인의 가십이나 비방으로 클릭 수를 높이는 인터넷 기사가 성행하는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 복합적으로 자리 잡은 풍토가 한두 주체의 노력으로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좀 더 대범한 팬덤이 양식 있고 당당한 미디어와 만나는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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