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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 밖의 과학

불타는 금요일이 그럴싸한 이유

500년간 풀리지 않던 금성의 미스터리

  •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불타는 금요일이 그럴싸한 이유

금성 지구 화성 [위키피디아]

금성 지구 화성 [위키피디아]

행복한 금요일, 순식간에 흘러가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지나 다시 돌아오는 월요일을 원망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로마인은 각 요일마다 함께 욕먹을 행성을 연결했는데, 특히 월요일과 연결된 지구의 위성 달이 가장 딱하다. 모두가 좋아하는 금요일은 원래 로마신화 속 베누스의 날이었는데, 로마제국 멸망 뒤 유럽의 주인이 된 게르만족이 슬그머니 자신들의 여신 프레이야의 날로 바꿔버렸다. 둘 다 미와 사랑의 여신이다.

밤하늘에서 달을 제외하고 볼 수 있는 가장 밝은 천체인 금성은 초저녁 무렵 서쪽 하늘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별이다. 금성은 순우리말로 개밥바라기인데, 초저녁에 배고픈 개가 밥을 바랄 때쯤 보인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이런 금성은 지난 수백 년간 풀리지 않던 미스터리를 간직하고 있었다. 망원경으로 관측해보면 목성보다 금성이 작은데, 맨눈으로 보면 금성이 커 보이는 것이다. 16세기 갈릴레오는 최초로 이 현상을 발견하고, 아마도 금성이 목성보다 밝기 때문에 착시현상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지난 500년간, 그렇게 믿어왔다.

2014년 2월, 뉴욕주립대학교 호세-마누엘 알론소 박사 연구팀은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안구에서 발생하는 착시현상이 아니라, 어두운 배경에 놓인 밝은 물체를 인식할 때 발생하는 뇌의 시신경 교란 때문임을 밝혀냈다. 자꾸 사진이 이상하게 찍혀서 렌즈가 고장인 줄 알았더니, 카메라가 고장이었다. 망막과 연결된 뇌 신경이 배경과 밝기 차이가 큰 대상일수록 크기를 과장해서 벌어진 일이었던 것이다.


뜨겁고 치명적인 금성의 매력

사진2 미국 매리너 5호 탐사선(왼쪽).  옛 소련 베네라 7호와 금성표면 [NASA]

사진2 미국 매리너 5호 탐사선(왼쪽). 옛 소련 베네라 7호와 금성표면 [NASA]

금성은 오랫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가보고 싶은 행성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지구가 파괴되면 어디로 갈까 고민하던 과학자들은 가까운 금성과 화성에 눈을 돌렸다. 실제로 당시 대부분의 SF소설이나 영화 속 외계인은 화성이나 금성에서 왔었다. 우리가 갈 수 있을 만하니 반대로 누군가 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특히 금성에 관심이 더 많았는데, 어딘가 추워 보이는 화성보다는 지구와 비슷한 크기에 태양에 가까운 금성이 훨씬 살기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기분 좋은 상상은 1962년까지 계속됐다.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매리너 2호를 보내서 표면 온도가 400도가 넘는다는 사실을 알아내기 전까지 말이다. 따스한 금성이 아니라 불타오르는 금성이었다. 태양과 가까운 금성이 따뜻할 줄은 알았지만, 대기의 대부분이 온실효과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라는 건 몰랐다.



온실효과란 태양의 열이 지구로 들어와서 나가지 못하고 순환되는 현상으로, 우리가 이불을 덮으면 따뜻한 공기가 못 빠져나가서 더 따뜻해지는 것과 비슷하다. 문제는 이불을 적당히 덮어야 하는데, 너무 여러 겹으로 덮다 보니 땀이 줄줄 흐르는 게 온난화다.

심각한 온난화가 일어난 금성의 평균 표면온도는 무려 464도! 최고 온도는 500도에 이른다. 지구의 90배인 대기압은 누구든 짜부라뜨리며, 하늘에서는 황산 비가 내린다. 이렇게 혹독한 환경 때문에, 인류의 금성 탐사는 눈물겨웠다. 무모한 도전은 미국이 먼저 시작했지만, 이어서 소련이 참여하며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됐다.

금성 탐사의 개막을 알린 건 1960년 미국의 탐사선 파이오니어 5호였다. 이어서 소련이 베네라 1호를 발사했으나, 7일 만에 고장 났고, 다음 해 미국이 발사한 매리너 1호도 발사 후 293초 만에 오류가 나서 도시로 추락하다가 자폭했다. 하지만 드디어 매리너 2호는 금성 근처에 갔다. 물론 그때 보내온 불지옥 금성의 충격적인 실태를 목격한 사람들은 경악하고 말았다.

베네라 2호는 금성 근처에서 통신장비가 고장 나서 실패, 3호는 다른 행성 표면에 착륙한 최초의 인공 물체가 되는가 싶었으나 사실상 추락 후 바로 통신이 끊겼다. 1967년에는 베네라 4호가 금성 대기층으로 들어가서 다른 행성 대기를 관측한 최초의 인공 물체가 됐고, 뒤이어 미국의 매리너 5호가 금성 대기가 엄청나게 뜨겁고 압력이 높다는 것을 밝혀냈다.

베네라 5, 6호는 금성 근처에서 대기 탐사정을 투입하는 형태로 방식을 바꿔서 50분 이상을 대기 중에서 버텼다. 용기를 얻은 소련은 1970년 베네라 7호를 금성 표면에 최초로 착륙시켰다. 이후 베네라 임무는 16호까지 진행됐고, 금성 표면의 컬러 이미지와 북반구 레이더 지도도 만들고, 화산으로 추정되는 지역도 발견했다.

그 외에도 수많은 탐사선이 출동했지만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일단 도착하긴 했지만, 성공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짧았던 탐사 기간, 투입된 천문학적인 예산, 그 사이 죽어 나간 과학자까지, 과연 이 모든 게 아무 의미가 없었을까?


금성의 베일을 벗겨라

금성의 바다 상상도(위). 금성 대기 속의 검은 얼룩 [Vaaju.com, americaspace.com]

금성의 바다 상상도(위). 금성 대기 속의 검은 얼룩 [Vaaju.com, americaspace.com]

이제 과학자들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다. 탐사선이 금성의 구름 속을 지나가면서 그 안에 숨겨진 원자를 발견했다. 특히 다양한 분자와 결합한 수소의 비율을 분석했더니, 놀랍게도 아주 오래전 금성에는 바다가 있었다. 최소 20억 년 동안 금성 표면에는 액체 상태의 물이 있어서 생명체가 살 수 있었다. 지금은 표면 대신 대기 구름 속에 생명체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높은 고도에서 측정한 대기의 온도는 따뜻한 수준이며, 구름 속에서 검은 얼룩 같은 무언가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2018년 산제이 리메이 박사는 우주생물학 저널에 당시 가혹한 환경을 피해 일부 미생물들이 구름 속으로 대피했을지도 모른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사실 비슷한 가설은 1967년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에 의해서 처음 제기됐다. 생명체가 살아남을 수 있는 틈새시장이 금성 대기에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이제 이 주장은 탄력을 받게 되었다. 지구에도 빛을 흡수하는 속성의 박테리아가 존재하는데, 금성 구름 속에 이런 박테리아와 비슷한 녀석들이 꽤 있어서 빛을 흡수한다면, 검은 얼룩처럼 보일 것이다.

다음 금성 탐사선의 임무는 분명하다. 금성의 구름층을 떠다니며, 표본을 채취하는 것이다. 탐사선에 살아있는 미생물을 식별할 수 있는 현미경을 탑재하거나, 아예 채취한 표본을 갖고 귀환하는 방법도 있다.

신기하게도 어떠한 사전 정보 없이 우리는 ‘불타는 금요일’이라며 온몸을 불태울 것처럼 논다. 금성의 온도를 생각해보면 굉장히 그럴싸한 비유다. 열에너지로 충만한 금요일을 보낼 때, 가끔은 너무도 닿기 힘들었던 금성 탐사의 숨 가쁜 여정과 그곳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 나갔던 과학자들의 의지를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 방금 먹은 피자가 빠져나온 화덕과 저 멀리 보이는 행성의 표면 온도가 같다는 팁은 덤이다.


궤도_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주간동아 2020.03.27 1232호 (p6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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