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욱의 술기로운 생활

주류 시장에 부는 창업 붐

소규모 양조장과 한식주점 성업…주류 관련 교육 및 컨설팅도 다양

  • 주류 문화 칼럼니스트

    blog.naver.com/vegan_life

    입력2020-02-03 15: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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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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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트업 시장이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해 10조 원의 자금이 벤처기업에 투자될 것으로 전망된다. 참고로 2000년대 초반 닷컴 붐이 한창이었을 때 벤처투자 규모가 3조 원 가량이었다.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 반열에 오른 국내 스타트업도 11개로 세계 6위다. 더불어민주당은 2022년까지 유니콘 기업을 30개로 늘리겠다는 총선 공약을 내놨다. 

    두각을 나타내는 스타트업은 주로 금융, 바이오, 게임, 유통 등의 분야에 속한다. 그러나 주류업계에서도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비교적 소자본으로 감성을 불어넣은 문화마케팅으로 승부하면서 ‘주류 분야 유니콘’을 꿈꾼다. 새로운 형태의 주류 비즈니스, 어떤 실험이 진행 중이고 어떤 것이 가능할까.

    와인도 소량 제조 가능해져

    크래프트 막걸리 스타트업 ‘한강주조’ 멤버들(왼쪽)과 매장 내에 소규모 양조 시설을 구비한 전통주점 ‘월향’. [사진 제공·각 업체]

    크래프트 막걸리 스타트업 ‘한강주조’ 멤버들(왼쪽)과 매장 내에 소규모 양조 시설을 구비한 전통주점 ‘월향’. [사진 제공·각 업체]

    우선 주목할 사업은 소규모 양조장이다. 2016년 세법이 개정되면서 1㎘ 이상 5㎘ 미만 저장 용기를 구비하면 누구나 소규모 양조장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이후 식당에서 직접 막걸리를 빚어 판매하는 ‘하우스 막걸리’가 등장했다. 청년들이 의기투합해 크래프트 막걸리를 선보이고도 있다. 

    소규모 양조장에서 모든 주종을 제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탁주, 약주, 청주, 맥주만 가능하다. 그리고 올 하반기부터는 과실주도 소규모 주류제조면허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는 와인도 만들 수 있다. 

    소규모 양조장에서 사업 기회를 엿보는 것은 다양한 유통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직접 판매만 허용됐는데, 이제는 전문 유통업체를 통해 전국으로 판매할 수 있다. 다만 소규모 양조장이다 보니 대량 생산을 할 수 없어 기존 대기업 제품에 비해 가격 경쟁력 면에서는 열세일 수 있다. 따라서 어떻게 제품에 가치를 녹여내 소비자를 설득하느냐가 성공 포인트가 될 것이다. 



    소규모 양조장 제품은 인터넷에서 판매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주류는 인터넷 판매가 금지되고 지역 특산주와 국가 지정 전통주만 예외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이다. 인터넷 판매를 하려면 지역 특산주 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 농산물만 사용하고, 농업회사법인 또는 영농조합법인이 돼야 한다. 농산물 생산이 지극히 적은 서울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라 교외에 양조장을 설립해야 한다.

    주류 유통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일반적인 소주, 맥주, 위스키 등을 취급하는 종합주류도매업과 생막걸리를 비롯한 전통주을 취급하는 특정주류도매업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특정주류도매업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종합주류와 달리 지역할당제가 적용되지 않고, 법률상 전통주로 인정받은 제품은 통신판매업 허가를 거쳐 인터넷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유통업체가 재고를 보유할 순 없고 양조장이 직접 배송해야 한다. 하지만 유통업체가 지역 특산주 제조 면허를 별도로 받았을 경우에는 재고를 가지고 판매할 수 있다. 이러한 특정주류도매업을 하고자 한다면 도매 외에도 소매 및 인터넷 판매까지 모두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라고 조언하고 싶다.


    주류 도매 ‘플랫폼’도 등장

    온라인 주류 도매 플랫폼 ‘벨루가브루어리’. [벨루가브루어리 홈페이지 캡처]

    온라인 주류 도매 플랫폼 ‘벨루가브루어리’. [벨루가브루어리 홈페이지 캡처]

    최근에는 온라인으로 주류 제품을 도매 주문하는 플랫폼도 생겼다. ‘벨루가브루어리’는 제조사 및 수입사를 최종 판매자와 연결해주는 B2B 플랫폼을 최근 런칭했다. 레스토랑이나 소매점 사장들은 전화나 e메일로 주류 제품을 주문해왔는데, 이제는 온라인쇼핑몰에서 수백 개 제품을 둘러보며 구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써 최종 판매자는 다양한 제품을 접할 수 있고, 제조사 및 수입사는 보다 많은 최종 판매자를 만날 수 있게 됐다. 전통주 정기배송 서비스도 참고할 만하다. ‘술담화’라는 스타트업은 매달 전통주 소믈리에가 추천하는 새로운 전통주와 그에 맞는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고객에게 배송해주고 있다. 

    주류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기관도 성업 중이다. 맥주, 증류주, 전통주 등 그 영역은 다양하다. 주류 제조에 대한 기술을 전수해주는 프로그램, 제조면허 취득 과정 및 그 이후에 필요한 홍보·마케팅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 등이 있다. 전국 양조장 및 해외로 연수를 가기도 한다.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이 배출한 인력은 이후 전문 레스토랑이나 양조장을 창업하거나 주류 컨설턴트 등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현재 서울 종로 ‘한국전통주연구소’, 서울 중구 ‘막걸리학교’, 서울 서초구 ‘가양주연구소’, 서울 강남 벤처대학원대학교 등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주류 산업은 특화된 영역인 만큼 전문가를 필요로 한다. 최근 주류 관련 마케팅, 시설 설비, 문화콘텐츠, 여행상품 기획과 관련해 종사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과거 폐쇄적이었던 양조장에 B2C 사업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거나, 오래된 양조장에 레트로, 뉴트로 감성을 담아 재구성해주는 역할도 한다. 제품 및 체험 상품 기획, 방송과 강연, 칼럼 기고 등 활동을 벌이기도 한다.

    ‘공유 양조장’ 등장도 기대

    서울 유명 한식주점의 술과 안주들. 왼쪽부터 서울 관악구 ‘솟대’, 서울 마포구 ‘삼씨오화’와 ‘산울림1992’. [사진 제공·각 업체]

    서울 유명 한식주점의 술과 안주들. 왼쪽부터 서울 관악구 ‘솟대’, 서울 마포구 ‘삼씨오화’와 ‘산울림1992’. [사진 제공·각 업체]

    최근 10년 사이 요식업에서 가장 두드러진 성장을 보인 것은 아마도 전통주 전문점일 것이다. 보통 한식주점이라 불리는 이들 가게는 음식과 술의 조합을 세밀하게 맞춰 제공하고 특색 있는 지역 농산물을 적극 활용하는 등 퀄리티가 상당히 높다. 이탈리아의 비스트로, 일본의 이자카야에 견줄 만하다. 한식주점은 전국에 100여 곳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연 매출이 100억 원대로 성장한 곳도 있다. 

    이러한 전통주 전문점은 ‘한국 술은 저렴하다’는 기존 이미지를 쇄신하는 역할도 하면서 ‘전통주의 격(格)과 소비자를 둘 다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전국의 전통주를 어렵게 구해온 만큼 좋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다는 매력도 있다. 

    앞으로는 ‘공유 양조장’이 등장하지 않을까? 직접 술을 빚고 싶지만 밥을 찌고, 섞고, 발효 및 숙성하는 과정을 아파트에서 하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공유 양조장이 있다면 누구나 양조장을 빌려 마음껏 내 술을 만들어볼 수 있다. 이렇게 빚은 술이 맛이 좋다면 주류 제조업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도 있을 것이다. 

    주류 비즈니스에 적합한 이는 애주가라기보다는 술의 다양성과 우리 농산물 및 지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술을 취미와 교양으로 천천히 즐기면서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하지만 주류 시장에서 짧은 시간에 ‘대박’을 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은 명심하자. 대신 한 번 자리 잡으면 좀체 사라지지 않는 것이 주류 시장의 장점이기도 하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 세계 주류 명가(名家)를 곱씹어 보며 나만의 주류 비즈니스를 구상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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