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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外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外

책 읽기 만보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外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김영민 지음/ 사회평론/ 276쪽/ 1만5000원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신문 칼럼 한 편으로 일약 ‘셀럽’ 반열에 오른 저자(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동야 유학의 최고 고전인 ‘논어’에 담긴 생각이 이미 죽었다는 사망 진단으로 서두를 연다. 논어와 우리 사이에 놓인 오랜 시간과 맥락의 간극을 생각할 때 그 텍스트의 원래 의미가 뭔지를 추적하는 것은 지적 네크로필리아(necrophilia · 사체성애)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날의 문제의식을 이 텍스트에 투영해 곱씹다 보면 죽었던 생각이 부활하는 ‘사상사적 모멘트’가 열리는 순간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제목은 바로 그런 순간을 맞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는 것이 최소한의 희망이란 의미다. 

그럴 듯하다. 곰곰이 음미해보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논어에는 이미 그것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옛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깨치면 가히 스승이 될만하다’는 뜻의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라는 구절이다. 공자 자신이 그런 기쁨에 눈떴음을 만천하에 커밍아웃한 대목도 있다. ‘배우고 때맞춰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는 뜻의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구절이다. 저자만 몰랐나 보다. 아니, 그럴 리 없다. 잠시잠깐 깜빡한 것일 게다. 

상관없다. 논어의 텍스트를 징검다리 삼아 다양한 현대사상과 접목을 시도해 글 읽는 즐거움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어슐라 르 귄의 판타지 소설, 황동규의 시 ‘기도’, 영화 ‘대부’와 배우 김윤석의 감독 데뷔작 ‘미성년’ 같은 동시대적 텍스트와 논어의 텍스트를 겹쳐놓고 나란히 읽어나가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논어에 등장하는 상충적이고 모순적인 구절에 대한 보편적 해석을 시도한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공자가 남긴 말뿐 아니라 말하지 않은 것에서 더 심층적 의미를 읽어내려 한 점도 인상적이다. 가르침을 청하는 제자들 앞에서 아무 말 하지 안겠다거나 관직에서 물러난 이유를 밝히지 않은 공자의 속내를 읽어내려 한 ‘침묵의 함성을 들어라’ 편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공자 어록의 책 제목이 왜 정작 ‘말에 대해 논하다’인지까지는 꿰뚫지 못한 듯하다. 정치 과정의 본질이 커뮤니케이션에 있다 해놓고선 정작 침묵과 에둘러 말하기에만 주목했기 때문이다. 말은 어눌해도 행동은 민첩한 눌언민행(訥言敏行)을 군자의 덕목으로 꼽았고, 말만 번드르르한 교언영색(巧言令色)을 질색한 공자지만 결코 말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공자가 꿈꾼 좋은 정치란 결국 소통의 기술이며, 소통은 결국 언어를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外
참선 1, 2
테오도르 준 박 지음/ 구미화 옮김/ 나무의마음/1권 400쪽, 2권 292쪽/ 1권 1만6000원, 2권 1만4000원

세탁기와 전기밥솥, 청소기 같은 기술 문명의 발달은 인간의 삶에서 불가피하던 육체노동의 비중을 크게 줄였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불안과 분노, 우울, 자괴감 같은 내적 고통의 해소에는 아직까지 과학기술이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인공지능(AI)이 더 발달하면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참선’은 암울한 세상과 인간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고 홀로 한국에 왔던 스물두 살 교포청년이 30년 가까이 전통 선방에서 참선 수행한 경험을 담은 책으로, 미국 하버드대에서 현대적 교육을 받은 청년이 한국 절에서 깨달음을 얻고자 시행착오를 거듭한 지난 세월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다. 저자는 참선을 ‘행복으로 가는 새로운 공식’이라며 정신적으로 많은 자극 및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참선과 같이 누구나 쉽게 배우고 활용할 수 있는 자기 제어 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참선은 곧 각종 정보와 자극에 쏠려 있는 우리 의식을 내면으로 돌려 마음의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저자가 알려주는 참선은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을 만큼 쉽다. 숨을 들이마시고, 잠시 멈췄다 다시 내쉬면서 ‘이 뭣고?’ 하면 된다고. 

책은 2권으로 구성됐다. ‘마음이 속상할 때는 몸으로 가라’는 부제가 붙은 1권에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저자가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인천 용화사를 찾아 송담 스님의 제자가 되기까지 과정, 그리고 출가 수행자로서 고뇌와 갈등이 진솔하게 기록돼 있다. 특히 불안과 화, 외로움, 우울, 패배감 등 현대인을 괴롭히는 정신적 고통을 참선으로 해소하는 방법을 담고 있다. 

‘다시 나에게 돌아가는 길’이라는 부제가 붙은 2권에서는 저자가 자신의 실패를 돌아보고 ‘현실 수행자’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설렘과 두려움을 털어놓는다. 저자는참선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방식을 통해 현대인을 괴롭히는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 더 건강하고 행복한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고 조언한다. 

‘참선’은 저자가 스스로 깨달음을 얻고 달관의 경지에 이르려 쓴 책은 아니다.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누구나 참선으로 불안과 분노, 우울과 자괴감 같은 내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일상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우리가 침선하는 이유는 매일매일 살다 보면 속상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참선은 개인적인 고통을 해소하는 것으로 시작해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자극하고, 더 나아가 인간의 의식을 일깨우고 변혁을 일으키는 것으로 끝이 난다. 지금 여기, 바로 이 순간 우리가 하는 것들을 관리하는 것이다. 참선은 지극히 실용적이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外
혐한의 계보
노윤선 지음/ 글항아리/ 304쪽/ 1만5000원 

혐한은 주로 일본에서 벌어지는 ‘한국에 대한 혐오’ 현상을 말한다. 혐한 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가 그 현상이 어떻게 형성, 확산됐는지를 추적했다. 혐한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2년 3월 4일자 ‘마이니치신문’의 기사였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그런 현상을 점잖게 꾸짖는 내용이었다. 2009년 30건에 불과하던 혐한 시위가 2012년 300건 이상으로 늘어나면서 확산일로로 접어들었다. 중국이나 한국과 달리 일본은 ‘에타’ ‘히닌’ 등으로 불리는 28종에 달하는 불가촉천민이 수백만 명에 달할 정도로 내부 차별이 심한 나라였다. 그들과 우리에 대한 구별을 통해 국민적 정체성을 유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이지 4년(1871)부터 법적 차별은 사라졌지만 그 관습은 여전했다. 그러다 대만과 조선 만주를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통치하게 되면서 그런 내재적 차별 의식이 대외적으로 발산됐다. 1945년 패전 이후 평화헌법 체제가 세워지면서 억제되던 이런 차별 의식은 다양한 문학작품에 잠류하다 21세기 우익의 발호와 함께 다시 노골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外
밥을 느긋하게 먹고 느슨한 옷을 입습니다
사사키 도시나오 지음/ 이언숙 옮김/ 민음사/ 376쪽/ 1만6000원 

전작 ‘큐레이션의 시대’를 통해 사회 변화에 탁월한 통찰을 보여준 저자가 이번에는 의식주 패러다임의 변화에 주목했다. 소금물에 살짝 데친 시금치처럼 손쉽고 마음 편한, 소박하고 건강한 삶을 사는 일본인의 다채로운 모습을 책에 담았다. 

식재료를 사다 직접 요리해 먹고 주거비 절약이 목표인 셰어하우스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함께 밥을 해 먹으면서 느슨하게 어울리는 컬렉티브 하우스에 모여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은 울림을 준다. 도쿄를 비롯한 거처 3곳을 마련해놓고 ‘이동 생활을 하며 실천하는 미니멀리즘’을 몸소 보여주는 저자의 생활도 흥미롭다. 

저자는 “ ‘위로, 위로’ 향하는 출세 지향과 ‘밖으로, 밖으로’ 향하는 쿨한 저항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며 “우리의 생활은 ‘옆으로, 옆으로’ 이어지면서 열린 네트워크를 통해 느긋함과 느슨함을 실현해가고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外
그것은 하나의 여행이었다
이종림 지음/ 페이퍼스토리/ 396쪽/ 1만7000원 

잡지사 기자 출신인 저자는 “미국에서 한번 살아보면 좋을 것 같다”는 남편의 말에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네 살배기 딸과 고양이 두 마리를 데리고 미국 연수를 떠났다. 2년간 미국에 체류하며 노스캐롤라이나를 베이스캠프로 삼아 때로는 캠핑카를 타고, 때로는 텐트만 달랑 실은 채 캠핑 여행을 다녔다. 북에서 남으로, 동에서 서로 종횡무진 다닌 곳은 40개 주가 넘는다. 루트66, 그랜드캐니언, 나파 밸리, 화이트샌드, 옐로스톤, 바하마 등 미국인도 가기 힘든 숨어 있는 진주 같은 곳을 구석구석 쏘다니며 그 기억을 정리하고 사진으로 찍어 책으로 엮었다. 저자 가족은 편하고 익숙한 한식당보다 동네 브루어리에서 사람 구경하는 것을 즐겼고, 아이에게 영어 한 마디를 가르치기보다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을 보여주려고 다녔다. 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에 놀라고, 그 속에서 삶의 새로운 의미도 발견할 수 있었다. 현실의 고정된 틀에 맞춰 아등바등 살아가며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잠시나마 힐링하길 바란다.






주간동아 2019.12.06 1217호 (p65~67)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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