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경의 미식세계

쌀누룩으로 만든 발효 음료

외할머니가 빚어주던 단술처럼 맛이 좋다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19-12-0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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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요구르트는 잘 섞어 건더기까지 함께 먹는 것이 제맛이다. [사진 제공·김민경]

    쌀요구르트는 잘 섞어 건더기까지 함께 먹는 것이 제맛이다. [사진 제공·김민경]

    손발과 코끝이 시려오는 이맘때 외갓집에 가면 할머니가 내주는 별미가 있었다. 찬바람에 볼이 발개지도록 사촌들과 실컷 놀다 집에 들어가면 할머니는 다디단 단술을 한 그릇씩 떠 우리에게 먹게 했다. 입은 달고, 목은 촉촉하며, 가슴은 시원하고, 배는 든든하게 해주는 단술은 대체 불가능한 음료이자 간식이었다. 

    여기서 단술은 감주로, 식혜를 말한다. 쌀이나 찹쌀로 지에밥을 지어 엿기름을 넣은 뒤 따뜻한 온도에서 삭혀 만드는 달콤한 전통 음료다. 동동 뜬 밥 알갱이를 호로록 입으로 당겨 마시는 재미가 있고, 차분히 가라앉은 밥알은 부드러운 가운데 자근자근 씹는 맛이 나 좋다. 무엇보다 곡식이 삭으면서 우러난 맑고 개운한 단맛은 단술로만 즐길 수 있는 매력이다. 


    맛있게 발효된 쌀요구르트. [사진 제공·김민경]

    맛있게 발효된 쌀요구르트. [사진 제공·김민경]

    외할머니의 빈자리만큼 잊고 지낸 단술의 맛이 새삼 그리워지는 음료를 만났다. 만드는 방법은 단술과 비슷한데, 엿기름 대신 쌀누룩을 쓴다. 누룩은 발효를 돕는 곰팡이를 곡류에 옮겨 번식시킨 것이다. 밀로 만든 것이 흔하고 쌀, 녹두, 보리, 율무, 수수, 옥수수, 팥으로도 만들 수 있다. 곰팡이 색에 따라 황국균, 흑국균, 홍국균, 백국균으로 나뉘며, 누룩 형태에 따라 떡누룩(병국)과 흩임누룩(산국)으로 분류된다. 떡누룩은 곡물을 가루로 만들어 뭉친 분국과 곡물을 거칠게 갈아 뭉친 조국으로 나뉘며, 뭉칠 때 약초를 넣은 초국도 있다. 흩임누룩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누룩을 만든 곡물의 낟알이 흩어져 있는 것이다. 물 같은 수분에 누룩을 우려내 사용하는 물누룩도 있다. 계절에 따라 춘곡, 하곡, 추곡으로 나뉘기도 한다. 누룩은 흔히 술을 담글 때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된장과 간장 같은 장류의 발효는 물론 단술 같은 삭힌 음료도 만들 수 있다.

    요모조모 쓰임새 다양한 쌀누룩

    1 희고 뽀얀 누룩소금(왼쪽)과 살구색을 띠는 누룩젓갈. 2 누룩젓갈은 김치를 담글 때 사용할 수 있다. [사진 제공·김민경]

    1 희고 뽀얀 누룩소금(왼쪽)과 살구색을 띠는 누룩젓갈. 2 누룩젓갈은 김치를 담글 때 사용할 수 있다. [사진 제공·김민경]

    누룩 중에도 쌀누룩을 사용해 만든 발효식품은 맛과 향에서 한 수 위의 면모를 보인다. 쌀누룩은 좋은 효소의 발효를 돕고, 쌀 특유의 단맛까지 우러나 발효식품의 감칠맛을 한결 좋게 한다. 또한 쌀누룩은 전분을 포도당으로,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지방을 지방산과 글리코겐으로 바꾸며, 갖가지 이로운 효소도 포함하고 있다. 당연히 쌀누룩 발효식품을 먹으면 건강에도 여러모로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쌀누룩의 맛과 활용도, 효과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쌀누룩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곳도 늘었다. 온라인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쌀누룩은 집에서도 만들 수 있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한 편이지만 제대로 완성하려면 시간과 정성을 꽤 쏟아야 한다. 깨끗한 쌀을 불린 뒤 쪄 지에밥을 짓고 균을 섞어 일정한 온도에서 발효시킨다. 쌀에 보송보송한 흰털 꽃이 골고루 피어나면 완성이다. 쌀누룩은 냉장실에서도 발효가 계속 일어나기 때문에 반드시 냉동 보관한 뒤 필요한 만큼씩 꺼내 사용해야 한다. 누룩을 만드는 다양한 균 역시 온라인에서 구입할 수 있다. 



    쌀누룩은 다양한 발효 양념으로도 진화된다. 좋은 소금을 구해 깨끗한 물에 잘 녹인 뒤 쌀누룩과 골고루 주물러 섞어 발효시키면 누룩소금이 된다. 희고 걸쭉한 누룩소금은 음식의 간을 맞추는 데 사용하면 된다. 개인적으로 무침 요리에 넣으니 찰떡궁합이다. 구운 고기나 생선을 찍어 먹어도 되고, 싱싱한 굴에 살짝 얹어 먹어도 맛있다. 쌀누룩, 메줏가루, 소금물을 골고루 섞어 발효시키면 누룩된장이 완성된다. 짠맛은 줄고 감칠맛은 배가되는 맛좋은 된장이다. 간장과 액젓에도 누룩을 섞어 발효시키면 한결 깊은 맛의 발효 양념이 된다. 누룩액젓은 김치 담글 때 사용하면 남다른 감칠맛을 이끌어내고, 김치가 익을수록 맛도 깊어진다. 김치 양념을 만들 때 소금과 함께 누룩액젓으로 간을 맞추면 된다. 젓갈 특유의 비릿함도 적어 젓갈 김치를 꺼려하는 이들의 입맛에도 부담이 없다. 

    앞서 언급한 단술과 닮은, 은근하면서 매력적인 맛이 나는 것이 바로 쌀누룩으로 만든 음료다. 일명 ‘쌀요구르트’로 불리는데, 알레르기성 피부 질환이나 소화 장애로 고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해졌다. 쌀알이 그대로 살아 있고, 흔들기 전에는 투명한 미색이며, 달콤한 맛이 단술과 꼭 닮았다. 다른 점은 계속 발효가 진행되므로 냉장 보관해도 2주 안에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한 맛이 일품인 쌀요구르트

    쌀요구르트는 과일을 곁들이거나 과일과 함께 갈아 먹어도 맛있다(왼쪽). 쌀요구르트는 달고 부드러운 디저트를 만들 때 사용해도 좋다.

    쌀요구르트는 과일을 곁들이거나 과일과 함께 갈아 먹어도 맛있다(왼쪽). 쌀요구르트는 달고 부드러운 디저트를 만들 때 사용해도 좋다.

    쌀요구르트 역시 쌀누룩만 있으면 집에서 만들 수 있다. 먼저 쌀을 불려 밥을 질게 짓는다. 단맛을 더 살리고 싶다면 멥쌀보다 찹쌀을 사용한다. 완성된 진밥이 식는 동안 쌀누룩에 물을 넣어 잘 주물러 섞는다. 진밥이 미지근하게 식으면 쌀누룩과 물을 부어 골고루 섞는다. 그릇에 담은 뒤 먼지나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으면서 공기는 통하도록 올이 곱고 깨끗한 천으로 잘 감싸 실온에 둔다. 

    발효 시 전기밥솥의 보온 기능을 사용하면 편리하지만, 섭씨 27~43도에서 활동하는 누룩균에게는 다소 온도가 높을 수 있다. 누룩균의 활동을 촉진하려면 실온에 두는 편이 좋다. 날이 선선하다면 전기장판 같은 온열기구를 활용해 온도를 맞춘다. 예전 어르신들이 아랫목에서 청국장 띄우는 풍경과 비슷한 상황을 연출하면 된다. 쌀알이 퍼지고 맑은 미색이 우러나며 단맛과 약간의 새콤한 맛이 나면 완성이다. 

    쌀요구르트는 냉장실에 두고 먹는다. 잘 흔들어 그릇에 담은 뒤 과일을 잘라 곁들이고 쌀과 함께 요구르트처럼 떠먹으면 식사 대용이 될 만큼 든든하다. 찰떡을 잘게 썰어 넣어 함께 먹어도 맛있다. 과일이나 채소를 넣어 곱게 갈아 주스로 즐겨도 일품이다. 요즘 같은 날씨엔 따뜻하게 먹는 것을 권하고 싶다. 쌀요구르트를 그대로 데워 살살 떠먹어도 좋고, 곱게 간 뒤 두유와 섞어 따뜻하게 마시면 별미 차가 된다. 할머니 손끝에서 우러난 맛과 같을 수는 없지만, 귀하고 중한 사람들에게 한 그릇씩 듬뿍 퍼 건네고 싶을 만큼 맛과 건강함이 충분하다.

    쌀누룩과 발효식품을 만드는 ‘배나무실’



    경남 함안군에 자리한 ‘배나무실’은 유기농 쌀로 쌀누룩을 빚는다. 직접 빚은 쌀누룩으로 누룩소금, 누룩젓갈, 쌀요구르트를 만들어 판매한다. 누룩을 빚는 쌀뿐 아니라 소금과 젓갈 같은 재료를 모두 지역 산물 중에서 까다롭게 골라 사용한다. 쌀누룩을 만드는 방법은 물론, 누룩과 발효식품을 먹을거리에 활용하는 다양한 방법 등을 가르치고 나누는 수업도 진행한다. 

    배나무실 경남 함안군 가야읍 이곡1길 1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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