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경의 미식세계

물과 달걀로 빚는 생파스타의 진미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19-11-1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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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마포구 ‘파스타 공작소’에 
가면 볼 수 있는 다양한 파스타 도구. [사진 제공·김민경]

    서울 마포구 ‘파스타 공작소’에 가면 볼 수 있는 다양한 파스타 도구. [사진 제공·김민경]

    20대 중반에 부모 집에서 독립했지만 아직까지 친정집의 꽤 넓은 면적을 차지하며 오랫동안 머무르는 물건들이 있다. ‘로드쇼’ ‘스크린’ ‘키노’ ‘씨네21’ 같은 영화잡지다. 영화에서는 보이지 않거나 잘 몰랐던 이야기가 잡지 안에 가득해 큰 즐거움을 줬다. 예를 들면 영화 ‘비긴 어게인’의 여주인공이 키라 나이틀리가 아니라 스칼릿 조핸슨이 될 수도 있었다든가, ‘살인의 추억’에서 배우 송강호가 애드리브로 남긴 명대사 “밥은 먹고 다니냐”의 숨은 의미가 무엇인지 등이다. 삶에서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일들이지만 해당 영화를 보는 시선은 확연히 달라진다. 마치 서로 비밀을 공유한 듯 그 작품에 대한 애착이 생기고, 몰입과 이해의 폭도 한 뼘 더 넓어진다. 알면 달리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일명 ‘먹방’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을 꼽자면 우선 맛있는 정보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만든 사람의 정성, 재료의 특색, 조리의 절묘함 등 음식에 담긴 여러 의미도 알게 된다.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뒷이야기를 가진 음식이 무궁무진하다. 그중 ‘파스타’는 거대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보따리를 짊어진 매력적인 음식이다. 우리가 잘 아는 스파게티가 바로 파스타의 한 종류다. 파스타의 고향은 이탈리아고, 각 지역의 공장과 상점, 가정에서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수많은 파스타에는 그 수만큼 많은 이름이 있는데, 제각각 의미도 다르다.

    다양한 이름과 모양의 파스타

    스파게티(spaghetti)는 모두 알다시피 국수처럼 생겼다. 스파게티라는 이름은 이탈리아어로 ‘끈’이라는 의미인 스파고(spago)에서 왔다. 실처럼 얇은 가닥의 카펠리 단젤로(capelli d’angelo)는 ‘천사의 머리카락’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면발이 너무 얇아 요리하기 굉장히 까다롭지만 섬세한 식감이 매력적이다. 이탈리아 식당에서 봉골레 파스타로 자주 만들어지는 링귀네(linguine)는 ‘작은 혓바닥’이라는 의미다. 스파게티 면은 단면이 원형인데, 링귀네는 면을 살짝 눌러 납작하게 만든다. 그래서 단면이 정말 작은 혓바닥처럼 생겼다. 크림소스와 즐겨 곁들이는 탈리아텔레(tagliatelle)는 ‘자르다’라는 뜻의 탈리아레(tagliare)에서 왔다. 우리 음식으로 치면 칼국수와 같다. 탈리아텔레는 이탈리아 중북부 도시 ‘볼로냐’가 고향이다. 너비가 1~1.5cm며, 달걀을 많이 넣어 반죽해 노란 빛깔을 띠고 쫄깃하다. 탈리아텔레가 북부지역으로 올라가면 페투치네(fettuccine)라는 다른 이름을 갖는다. 겨우 몇 가지 대중적인 파스타를 알아봤을 뿐인데, 벌써 꽤 복잡하다. 파스타는 만드는 사람, 들어가는 재료의 비율, 생산되는 지역에 따라 같은 모양이라도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같은 이름인데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생파스타를 맛보고 공부할 수 있는 ‘파스타 공작소’

    1 생파스타를 만들고 있는 노순배 셰프. 2 키타라보다 더 가느다란 면인 키타리나. 3 키타리나 면. [사진 제공·김민경]

4 키타리나 면으로 
만든 해물파스타.

    1 생파스타를 만들고 있는 노순배 셰프. 2 키타라보다 더 가느다란 면인 키타리나. 3 키타리나 면. [사진 제공·김민경] 4 키타리나 면으로 만든 해물파스타.

    주변에도 파스타를 직접 만들어 요리하는 이가 꽤 있다. 반죽을 만들어 모양을 빚고 바로 요리해 먹을 수 있는 것을 흔히 ‘생파스타’라고 한다. 생파스타로 즐겨 만드는 요리는 앞서 말한 탈리아텔레, 소스와 파스타를 켜켜이 쌓는 요리에 적합한 라자냐(lasagna), 달걀노른자만 넣어 샛노랗게 반죽하는 타야린(tajalin), 만두처럼 소를 넣어 빚는 라비올리(ravioli) 등이다. 생파스타에 관심 있거나 제대로 맛보고 싶다면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자리한 ‘파스타 공작소’에 가보길 권한다. 

    이곳 셰프이자 주인장의 이름은 알폰소(Alfonso), 한국 이름은 노순배다. 오랫동안 이탈리아 요리를 만들고 있는 노 셰프는 8년여 전부터 생파스타에 푹 빠져 있다. 수차례 이탈리아 전역으로 파스타 기행을 다녀왔고, 현지 할머니를 포함해 파스타 장인들로부터 비법을 배웠다. 파스타 도구를 만드는 기술자와도 인연을 맺었다. 수년 동안 공부하고 경험한 내용을 책으로도 펴냈고, 마침내 자신만의 공작소를 만들어 무궁무진한 파스타 스토리를 펼치고 있다. 




    1 길이가 짧은 여러 가지 생파스타. 2 베틀과 흡사한 틀로 모양을 내는 가르가넬리. 3 노순배 셰프의 이름인 ‘알폰소’가 새겨진 파스타 도구. [사진 제공·김민경]

    1 길이가 짧은 여러 가지 생파스타. 2 베틀과 흡사한 틀로 모양을 내는 가르가넬리. 3 노순배 셰프의 이름인 ‘알폰소’가 새겨진 파스타 도구. [사진 제공·김민경]

    ‘파스타 공작소’에는 이탈리아 여행 중에도 쉽게 볼 수 없는 진기한 파스타 도구들이 가득하다. 직접 만난 여러 장인을 통해 수집한 것으로, 노 셰프는 이 도구들을 사용해 생파스타를 만든다. 우리나라 베틀과 모양이 흡사한 틀로 만드는 ‘가르가넬리(garganelli)’라는 파스타가 있다. 틀로 반죽을 꾹 누르면서 데구루루 굴려가며 만들기에 반죽 겉에 촘촘한 홈이 생긴다. 요리할 때 그 홈으로 소스가 잘 스며들게 된다. 가르가넬리는 ‘식도’라는 뜻의 가르가넬(garganel)에서 온 말이다. 힘 조절이 매우 중요한 ‘오레키에테(orecchiette)’는 ‘작은 귀’라는 뜻인데, 파스타 모양이 꼭 귓불처럼 생겼다. 쫄깃하고 독특한 형태 때문에 양념이 잘 묻어 어떻게 요리해도 대체로 맛있다. 노 셰프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파스타는 ‘키타라(chitarra)’다. 같은 이름인 키타라라는 도구로 만드는데, 여러 가닥의 기타 줄을 팽팽하게 걸어둔 것처럼 생겼다. 얇게 편 반죽을 키타라 위에 놓고 밀대로 꾹꾹 누르면 줄 사이로 반죽이 하늘하늘 가늘게 떨어진다. 본래 이름은 ‘키타라로 만든 스파게티’인데 줄여서 ‘키타라’로 통한다. 

    ‘파스타 공작소’는 식사시간에는 식당으로 운영되고, 그 외에는 파스타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공간으로 사용된다. 식사 메뉴는 당연히 노 셰프가 직접 만든 생파스타가 중심이다. 반죽을 저온 숙성시켜 쫄깃한 맛이 일품인 로마식 팔라피자도 있다. 식당에서 사용하는 살시차(이탈리아식 소시지)와 판체타(이탈리아식 베이컨) 역시 모두 노 셰프가 일일이 만든 것이다. 혹시 이곳에 가게 된다면 ‘스트로차프레티’ ‘말로레두스’ 따위의 암호로 노 셰프에게 말을 걸어보길 권한다. 맛있는 파스타 이야기와 그보다 더 맛있는 파스타 요리를 선사받을 것이다.

    노순배 ‘파스타 공작소’ 셰프

    [사진 제공·김민경]

    [사진 제공·김민경]

    생파스타의 매력은? 

    “오랫동안 건파스타 요리를 수없이 만들어왔지만 마음 편히 먹지 못했다. 집안 대대로 위장이 약해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파스타는 건파스타보다 소화 부담이 적다. 속이 편해 즐겨 만들기 시작했는데 기분 좋은 식감, 소스와 조화, 무궁무진한 형태, 다양한 반죽 비율의 묘미를 알게 되면서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파스타 수업은 누구나 들을 수 있나. 

    “초보자와 숙련된 요리사는 구분해 수업한다. 수업을 통해 요리를 못 하는 사람은 파스타를 만드는 경험을 해보길, 요리에 능숙한 이는 파스타의 더 넓은 세계를 알아가길 바란다. 생파스타는 소스와 궁합이 매우 중요하다.” 

    파스타 공작소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42가길 24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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