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13

2019.11.08

정민아의 시네똑똑

오락적 영화언어로 그려낸 대형 금융스캔들

정지영 감독의 ‘블랙머니’

  • 영화평론가·성결대 교수

    yedam98@hanmail.net

    입력2019-11-08 14: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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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사진 제공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는 마치 거울처럼 이 세상 현실을 반영한다. 때로는 놀라운 예지력으로 미래를 예측하곤 한다. ‘내부자들’ ‘아수라’ ‘더 킹’ 같은 영화에서는 권력자의 범죄가 비호되고 범죄수사가 정의보다 정무적 판단의 결과로 이용될 때 관객은 저게 현실인지 의아해한다. 그러다 어느 날 비슷한 실제 사건의 내막이 파헤쳐지면 감독이 모든 걸 알고 영화를 만들었을까 놀라기도 한다. 다 알고 만드는 천재는 없다. ‘그럴 것이다’라는 상상력은 가능한 범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예지력 영화’가 나오는 것이다. 

    ‘블랙머니’는 ‘부러진 화살’(2011)로 멋지게 재기에 성공한 정지영 감독의 신작이다. 70대 최고령 현역감독인 정지영은 사회비판 영화의 선두주자로 알려졌지만, 스릴러의 대가 히치콕을 좋아해 영화감독을 꿈꿨다. 데뷔작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1982)가 다섯 차례 반전을 통해 엎치락뒤치락하는 플롯의 묘미를 발휘했듯, 정지영은 스릴러 추적 구조에 뛰어난 감각을 갖고 있다. 

    영화 ‘블랙머니’는 사회비판 요소에 스릴러 장르 규칙을 더해 한 외국기업이 한국의 은행을 헐값에 인수한 뒤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떠난 실화를 토대로 한다. 미국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뒤 다시 매각하는 과정에서 국세청과 소송전이 벌어지지만 결국 한국 법원이 론스타 손을 들어줘 수조 원을 챙겨 떠난 사건이다. 

    영화는 금융범죄에 대한 실화를 놓고 허구적 인물을 배치한 뒤 현재진행형 사건을 통해 권력층의 맨얼굴을 보여준다. 막나가는 문제적 검사 양민혁(조진웅 분)은 억울하게 누명을 쓴 이후 대한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양 검사와 호흡을 맞추는 이는 엘리트 변호사이자 국제통상 전문가로 대한은행 법률 대리인을 맡고 있는 김나리(이하늬 분)다. 양 검사 반대편에는 전직 총리로 국내 최대 로펌의 고문인 이광주(이경영 분), 그리고 대검찰청 중수부장 김남규(조한철 분)와 중수부 검사 최프로(허성태 분)가 있다. 대한은행 노조를 돕는 인권변호사 서권영(최덕문 분)도 있다. 

    양 검사는 김나리의 도움으로 자료를 차곡차곡 수집해 모든 것이 뒤집힐 수 있는 결정적 증거를 마련하지만, 이광주 전 총리는 왠지 의심스럽고 김남규 중수부장과 최프로 검사는 개인의 입신양명만 탐한다. 기소권과 불기소권을 독점하는 검찰이 명예도 돈도 다 가지는 이러한 시스템을 목격하니 아찔해진다. 



    ‘블랙머니’는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금융범죄 내막을 오락적 영화언어로 바꿔 사건에 접근한다. 막나가는 검사와 냉철한 변호사가 호흡을 맞추지만 파트너는 팜파탈 캐릭터, 즉 이중성을 지녀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관객은 이들을 통해 영화가 펼쳐내는 게임에 흥미진진하게 참전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아직 이 사건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영화는 시민들이 이 사건을 잊지 않게 한다. 그리고 검찰과 경제권력, 정치권력의 삼각동맹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재미있는 상업영화가 던지는 화두가 꽤나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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