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비틀스를 지워내고 그 위대함을 담아내다

비틀스 없는 세상을 그린 ‘예스터데이’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9-09-23 09: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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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유니버설 픽쳐스]

    [사진 제공 · 유니버설 픽쳐스]

    비틀스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지금과 무척이나 다를 것이다. 또래 친구끼리 모여 노래를 직접 만들고 연주해 스타가 된다는, 밴드의 성공담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팝은 10대나 듣는 저속한 음악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일 것이다. 대중음악이 예술로 평가받은 시기는 도래하지 않았거나 무척이나 늦춰졌을 것이다. 영국은 오랫동안 ‘늙은 사자’의 나라로만 남아 있을 것이다. 사이키델릭도, 헤비메탈도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틀스의 CD가 처음 발매된 1987년, CD는 LP반(LP)과 카세트테이프 못지않은 보편적 음악매체로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음악이 애플 아이튠즈를 통해 처음으로 ‘음원시장’에 등장한 2010년 10월 16일, 애플은 홈페이지 메인 화면을 비틀스 사진으로 채웠다. 음악뿐 아니라 관련 산업의 판도도 바꿔왔다. 그들이 존재할 때도, 해체된 이후에도 말이다. 얼핏 떠오르는 것만 해도 이 정도다. 끔찍하다는 표현은 좀 과할 수 있어도, 어쨌든 비틀스가 1960년대 이후의 세상을 바꿔놓은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비틀스가 없는 세상은 신약 없는 성경과 같다.

    비틀스 없는 세상

    영국이 낳은 불세출의 록밴드 ‘비틀스’.[GettyImages]

    영국이 낳은 불세출의 록밴드 ‘비틀스’.[GettyImages]

    영화 ‘예스터데이’는 바로 그런 세상을 다룬다. 다행히도 로맨틱 코미디 스타일로 연출됐기에 비틀스가 없어도 세상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비틀스와 그들로부터 직접적으로 영향받아 탄생한, 상징적인 영국 밴드 정도가 없을 뿐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판타지의 한 분야인 ‘이세계물(異世界物)’의 흐름을 따라간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는 평범한 주인공이 어떤 계기로 다른 세계나 과거에 떨어져 현대에 습득한 평범한 기술을 활용, 영웅이 된다는 이야기 말이다. 

    영국 런던 근교에서 그저 그런 노래를 부르며 무명 가수 생활을 하는 주인공 잭 말릭(히메시 파텔 분)은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한다. 병원에서 깨어난 후 그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 주변 사람들이 비틀스를 모른다는 것이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던 그는 구글에서 비틀스를 쳐보지만 이게 웬걸, 검색 결과는 오직 딱정벌레(beetle)만 나올 뿐이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롤링스톤스도, 뒤이어 록을 제패했던 레드 제플린도 다 있는데 비틀스가 없다니! 그뿐 아니라 그의 레코드 컬렉션에서도 비틀스의 음반은 사라지고 없다. 비틀스의 노래를 아는 유일한 인류가 된 것이다. 만약 음악만 알고 노래나 연주를 못하는 사람이면 쓸모없는 지식에 불과할 테지만, 말릭은 어쨌든 뮤지션 아니던가. 비틀스의 명곡들을 불러 일약 세계적인 스타덤에 오른다. 

    영화 제목도 의미심장하다. ‘예스터데이’는 단지 비틀스의 위대한 노래에 머물지 않는다. 폴 매카트니가 어느 날 꿈속에서 들은 멜로디에 토대를 둔 곡이다. 그는 이 멜로디가 무척이나 좋아 이미 존재하는 곡일 것이라 확신했고, 수차례의 모니터링을 거쳐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들은 노래를 통해 만든 노래.’ 비틀스를 모르는 세상에서 비틀스를 부르는 말릭의 상황과 유사하지 않은가. 역사상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노래가 바로 ‘예스터데이’라는 점 또한 이 영화의 콘셉트와 공명한다.



    “너는 모차르트, 나는 살리에리”

    ‘비틀스 없는 세상’에서 비틀스 음악의 진가를 입증하는 영화 ‘예스터데이’. [사진 제공 · 유니버설 픽쳐스]

    ‘비틀스 없는 세상’에서 비틀스 음악의 진가를 입증하는 영화 ‘예스터데이’. [사진 제공 · 유니버설 픽쳐스]

    1997년 ‘트레인스포팅’으로 영국 청년 하위문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대니 보일이 연출하고 ‘러브 액츄얼리’와 ‘비긴 어게인’의 리처드 커티스가 시나리오를 쓴 영화답게 ‘예스터데이’는 비틀스의 음악을 그저 소재로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만약 비틀스의 음악이 지금 이 시대에 등장한다면?’이라는 화두를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관객에게 낯선 느낌을 최대한 전달하고자 유명 배우가 아닌 오디션을 거쳐 인도계 이민자 출신 히메시 파텔을 주인공 역으로 발탁했다. 

    영화 배경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라는 감각을 표현하기 위해 인기 뮤지션 에드 시런이 본인 역할로 등장해 주인공의 성공에 큰 힘을 실어준다. 비틀스의 재능이 갖는 무게감을 “너는 모차르트고 나는 살리에리야”라는 한 마디 대사로 전하는 것 또한 현실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에드 시런이 아닌 그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비현실적 설정을 현실적 토대 위에 깔아놓은 상태에서 영화는 비틀스의 시대와 지금, 스타가 되는 과정은 어떻게 다른지를 상상하게 한다. 1960년대 초반 독일 함부르크의 라이브 클럽을 전전하며 하루에 몇 번씩 공연하던 무명의 비틀스는 리버풀 음반점 직원인 브라이언 엡스타인에게 발탁돼 그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는다. 엡스타인은 비틀스를 데뷔시키고자 레코드사를 찾아다녔고, 거대 음반사인 데카와 접촉하지만 “밴드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는 말로 반려된다(음악사상 가장 어리석은 실수로 회자되는 에피소드다). 

    우여곡절 끝에 EMI 산하 팔로폰과 계약하게 되고 코미디 음반을 주로 녹음하던 조지 마틴의 프로듀싱으로 첫 싱글 ‘Love Me Do’로 데뷔한다. 그리고, 신화가 시작된다. 영국을 제패한 비틀스는 미국으로 건너가 전대미문의 성공을 거두고 음악 역사를 바꿨다.

    ‘비틀스 없는 비틀스’

    비틀스 신화가 언더그라운드→데뷔→미국에서 성공→세계적 인기 전파라는 과거 경로를 따라간다면 ‘예스터데이’의 말릭이 걷는 성공의 과정은 조금 다르다. 우연한 계기로 음반을 취입하고, 음악과 상관없는 TV 프로그램에 한 번 출연하며, 역시 우연히 이 프로그램을 본 에드 시런에 의해 발탁된다는 것까지는 비틀스와 유사하다. 

    하지만 그 후 과정은 우리가 소셜미디어 시대를 살고 있음을 생생하게 깨닫게 한다. 그리고 과거와 달리 대형 음악기업의 의사 결정 과정이 음악과 상관없는, 숫자와 마케팅 논리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는 사실도 풍자한다. 그 무엇보다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음에도 산업 논리에 흔들리는 말릭의 모습은 재능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많은 뮤지션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예스터데이’는 은연중 비틀스의 시대,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예찬한다.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지만 장면 장면에 숨어 있는 풍자와 묘사를 통해서다. 따라서 비틀스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이 영화는 ‘비틀스의, 비틀스에 의한, 비틀스를 위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비롯한 많은 음악 영화가 위대한 뮤지션의 삶을 재조명하고 그들의 시대를 스크린으로 옮기는 데 주력했다면, ‘예스터데이’는 오히려 ‘비틀스’라는 인물을 제거하고 음악만을 이 시대에 남겨놓음으로써 새삼 그들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화이트 앨범’으로 불리는, 비틀스의 열 번째 앨범은 멤버들의 분열로 비틀스의 가장 차가운 앨범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어느 평론가는 이 앨범을 가리켜 ‘비틀스 없는 비틀스’라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 ‘예스터데이’에 이 말을 그대로 쓰고 싶다. 비틀스가 없어도 비틀스는 위대하기 때문이다. 비틀스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든, 비틀스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다. 음악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과장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비틀스에게는 과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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