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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의 미식세계

지리산에서 한국산 하몽을 맛보다

전북 남원 동편제 마을의 ‘다산육종’

지리산에서 한국산 하몽을 맛보다

다산 버크셔로 만드는 다양한 육가공품(왼쪽).하몽은 얇게 썰어 
즐긴다. [사진 제공·다산육종]

다산 버크셔로 만드는 다양한 육가공품(왼쪽).하몽은 얇게 썰어 즐긴다. [사진 제공·다산육종]

2013년 개봉한 영화 ‘고령화 가족’을 보면 아침부터 삼겹살 먹는 가족이 등장한다. 평균 연령 47세인, 인생이 제대로 꼬인 자식들을 건사하는 엄마는 아침부터 돼지고기를 굽는다. 영화 속 고기는 마치 자신과 자식들을 향한 무언의 응원과 위로, 그리고 한탄으로 보인다. 일상에서도 우리는 기쁘고, 슬프고, 화나고, 외롭고 등등 다채로운 이유로 돼지고기를 구워 먹는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외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그 속에서 위안과 위로를 구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1년 동안 먹는 돼지고기 양은 많은 편이다. 지난해 5월 미국 농무부 통계를 보면 세계에서 6번째로, 1년간 인당 약 37.6kg의 돼지고기를 먹는다. 1위 세르비아, 2위 몬테네그로, 3위 유럽연합(EU), 4위 중국, 5위 대만에 이은 순위다. 

일상에서 보면 제육볶음, 김치찌개, 고추장찌개, 두루치기 같은 다양한 요리에 돼지고기가 들어간다. 삼겹살, 목살, 양념갈비, 등갈비, 껍데기는 구워 먹고, 등뼈로는 감자탕을 끓인다. 삶아서 수육과 족발을 만들고, 삶은 머리고기는 눌러 편육으로 먹는다. 기름기 적은 부위는 튀겨 돈가스와 탕수육을 만들며, 내장은 구이용이나 탕용으로 쓴다. 볼살과 덜미살(항정살) 같은 특수 부위는 별미로 인기다. 

참으로 알뜰하게 돼지고기를 먹는 듯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제외되는 부위가 있다. 바로 뒷다리다. 사실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값을 받는 부위는 대체로 뒷다리다. 스페인 하몽(jamon), 이탈리아 프로슈토(prosciutto)와 쿨라텔로(culatello)가 그렇다. 맛좋은 뒷다리를 먹고자 공을 들여 키우는 외국산 돼지는 뒷다리를 제외하면 별 인기가 없다. 이 때문에 다른 부위는 중국이나 우리나라로 많이 수출된다. 그럼 반대로 우리가 남겨둔 그 많은 뒷다리는 어디로 갔을까.


다산 버크셔로 만든 지리산 ‘하몽’의 특별한 맛

전북 남원에 가면 맛좋게 가공한 돼지 뒷다리, 즉 하몽을 맛볼 수 있다. 스페인에서 하몽을 만드는 돼지는 이베리아 반도의 토종 흑돼지 ‘이베리코(iberico)’다. 남원에서 하몽으로 가공되는 돼지는 ‘버크셔’(Berkshire·멧돼짓과 흑돼지로 원산지는 영국 버크셔) 품종을 한국 환경과 식생활에 맞게 개량한 ‘다산 버크셔(Dasan Berkshire)’다. 박화춘 대표가 운영하는 흑돼지 전문 종돈장인 ‘다산육종’에서 생산된다. 박 대표는 8년 만에 버크셔 개량에 성공했고,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 가축다양성정보시스템에도 등재됐다. 



2014년부터 다산 버크셔 돼지고기는 ‘버크셔K’라는 브랜드로 소비자에게 유통되고 있다. 기존에 먹어오던 돼지고기에 비해 육질이 부드럽고 타고난 육향이 좋다. 서울 유명 식당 두 곳에서 이 제품으로 맑은 돼지국밥을 끓여 히트를 치면서 이름이 더 알려지기도 했다. 또한 다산 버크셔는 먹을 수 있는 부위도 많다. 돼지고기는 가공 과정에서 25% 정도 버리는 게 일반적이다. 이에 반해 다산 버크셔는 18%가량밖에 손실이 나지 않는다. 

질 좋은 돼지에 지리산 해발 500m라는 위치가 더해져 남원 하몽이 완성된다. 하몽은 박 대표의 부인 오인숙 씨가 만든다. 우리나라에서 소비가 적은 돼지 뒷다리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했다. 2009년께 돼지 뒷다리 120여 개를 소금에 절여 처마에 매달았다. 자연은 호락호락하게 하몽을 완성시켜주지 않았기에 몽땅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공부를 거듭하고 다양하게 자문도 받았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스페인 사람 앞에 내놓아도 가슴 졸이지 않는 하몽을 생산하고 있다. 

우리나라 여름은 기온이 높고 습기가 많다. 지글지글 뜨거워도 건조한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여름과는 너무 다르다. 습도를 조절하는 것이 관건인데, 해발고도가 높은 지리산이라 그나마 다행스러운 조건이다. 그래도 하몽 만들기는 여름을 피해 가을에 시작된다. 


[사진 제공·김민경]

[사진 제공·김민경]

뒷다리는 10~14kg 되는 것을 골라 소금에 절인다. 그 후 5년 이상 간수를 뺀 천일염을 꼼꼼히 바른다. 섭씨 4도 정도 냉장실에 한 달가량 넣어둔 뒤 소금을 깨끗이 헹궈낸다. 짠맛이 많을수록 부패로부터 안전하지만, 한국인이 좋아하는 맛을 내고자 물에 담가 짠맛을 많이 뺀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 매섭게 추운 겨우내 건조되고 발효는 봄부터 진행된다. 

그렇게 28개월이 지나면 7kg 정도의 하몽으로 거듭난다. 오랜 숙성 기간을 거치면서 기름기가 살코기에 스며들고, 자연의 공기와 바람이 배며, 조직이 단단해져 전에 없던 맛과 향이 돋아난다. 뒷다리를 그저 걸어두고 28개월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하나씩 관찰하고 살피며 지나가야 조화로운 변화가 가능해진다. 지리산에서 완성된 하몽 맛이 스페인 것과 다를 수는 있지만, 과연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


입맛 돋우는 가공육의 향연

‘다산육종’의 다산 버크셔(왼쪽)와
다산 버크셔가 자라는 전북 남원 사육장. [사진 제공·다산육종]

‘다산육종’의 다산 버크셔(왼쪽)와 다산 버크셔가 자라는 전북 남원 사육장. [사진 제공·다산육종]

‘다산육종’에서는 하몽 외에도 여러 가공육을 만든다. 돼지 넓적다리를 돼지 오줌보에 넣어 발효시키는 이탈리아 명품 햄 쿨라텔로, 삼겹살로 만드는 짭짤한 판체타(pancetta), 기름기 적은 등심으로 완성하는 론지노(lonzino), 목심을 활용한 코파(coppa), 간 고기와 향신료를 섞어 만드는 살라미(salami)가 있다. 이외에 훈연 햄과 베이컨, 소시지, 이국적인 스타일의 육포도 선보인다. 

가공육장은 다산 버크셔 사육장 근처인 작고 한적한 ‘동편제 마을’에 위치해 있다. 가공육의 품질이나 공정이 어느 정도 자리 잡으면서 마을 산업으로 발전했다. 8월 말이면 자연을 벗 삼는 펜션은 물론 마을 생산물과 버크셔K, 가공육으로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 돼지고기 가공육 공정을 보고 구입할 수 있는 체험장 및 매장이 한꺼번에 문을 연다. 외국에서나 볼 법한 생경한 풍경을 지리산에서 마주할 수 있는 것. 

생김새도 희한한 가지각색의 발효 햄이 주렁주렁 걸린 모습을 보면, 새로운 식품에 대한 흥미는 물론 군침도 절로 돈다. 1년에 한 번 ‘내 하몽 만들기’ 행사도 열린다. 알음알음으로 꾸준히 해왔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알릴 계획이다. 자신이 직접 염지한 뒷다리를 두고 오면, 2~3년 동안 함께 꾸준히 관리해 완성시켜준다. 그리고 어느 특별한 날 집으로 가져와 의미 있게 먹으면 된다. 

돼지를 키우는 사람들의 고민인 뒷다리에서 시작한 하몽, 우리에게 꼭 맞는 품종에 대한 고민, 지역사회를 가꾸고자 하는 애틋한 마음이 한데 어우러져 한국의 맛좋은 발효 햄으로 결실을 맺고 있다.


박화춘 ‘다산육종’대표
지리산에서 한국산 하몽을 맛보다

왜 발효 햄을 선택했나. 

“발효 햄은 돼지고기를 더 알뜰히 소비하고 부가가치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돼지 뒷다리를 거의 소비하지 않는다. 특별히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뒷다리 요리법이 적어서다. 세계적인 돼지 뒷다리 가공품 하몽을 보며 고민을 시작했다. 우리 돼지로 만든다면 또 다른 풍미를 가진 개성 있는 하몽이 탄생할 것이라 판단했다. 처음엔 고전했지만 점점 순항 중이다.” 

발효 햄은 어떻게 먹나. 

“우리가 술안주로 만나는 치즈 보드(모둠치즈)가 다소 고가일 때 함께 나오는 것이 발효 햄이다. 견과류, 과일, 마른 과일, 꿀, 빵 등과 두루 곁들여 먹을 수 있다. 샌드위치나 피자에 활용해도 맛있고, 판체타는 파스타나 볶음밥을 만들 때 베이컨처럼 쓰면 색다른 풍미를 즐길 수 있다.” 

다산육종 전북 남원시 운봉읍 가산화수길 59






주간동아 2019.08.23 1203호 (p76~80)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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