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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자의 ‘오타쿠글라스’

님아, 그 칼을 뽑지 마오

뮤지컬 ‘킹아더’

님아, 그 칼을 뽑지 마오

구기자의 ‘오타쿠글라스’
※관객이 공연장에서 작품과 배우를 자세히 보려고 ‘오페라글라스’를 쓰는 것처럼 공연 속 티끌만 한 디테일도 놓치지 않고자 ‘오타쿠글라스’를 씁니다.


[사진 제공 · 알앤디웍스]

[사진 제공 · 알앤디웍스]

‘초반에 낯선 이 뮤지컬의 화법은 객석을 당혹스럽게 만들지만 묘한 중독성이 있는 음악과 배우들의 호연에 이내 무마된다.’(뉴시스)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 등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호불호가 갈릴 만한 작품이나,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는 나무랄 데가 없다.’(한겨레) 

‘기존 뮤지컬 문법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적잖이 당황스러울 작품이다.’(조선일보)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킹아더’를 보고 온 뒤 다른 기자들은 이 작품을 보고 어떻게 느꼈을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이 느낌, 낯설지 않다. 뮤지컬 리뷰를 쓰기 전 다른 기자의 리뷰를 ‘폭풍검색’한 적은 딱 한 차례뿐이다. 2014년 뮤지컬 ‘태양왕’ 초연을 보고 왔을 때였다. 배우부터 스태프까지 엄청 고생했다는 건 알겠는데 이런 스타일의 작품을 독자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고민하다 다른 기자들의 리뷰를 찾아봤다. 돌이켜보니 ‘태양왕’도 프랑스산 뮤지컬이다. 아, ‘킹아더’에서 주인공 아서(아더)가 운명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처럼 프랑스 작품과 기자들도 힘든 관계일까. 

일단 선언부터 하겠다. 뮤지컬 입문자, 태어나 처음 대극장 뮤지컬을 보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출연 배우들의 팬이거나 독특한 스타일의 뮤지컬에서 컬트적 재미를 느끼는 마니아층, 초연 킬러, 국내에서 볼만한 작품은 다 봐서 새로운 맛도 즐기고픈 베테랑 관객이라면 좋은 선택지가 된다. 프렌치 팝, 켈틱 팝, 업템포 발라드 등 국내에서 낯선 음악을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도.


‘아서’ 역의 장승조, 한지상, 고훈정. [사진 제공 · 알앤디웍스]

‘아서’ 역의 장승조, 한지상, 고훈정. [사진 제공 · 알앤디웍스]

‘킹아더’는 2015년 파리에서 초연한 작품이다. 너무나 유명한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 전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판타지적 색채를 덧입혔다. 모든 전설이 그러하듯 원전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아서왕을 이해하는 데는 12세기 수도사 몬머스의 제프리가 라틴어로 쓴 ‘브리튼 왕 열전’을 많이들 참조한다. 혼란스러운 시대를 평정할 영웅을 찾던 중 돌에 단단히 박혀 아무도 뽑지 못하던 성검 엑스칼리버를 우연히 뽑은 아서가 왕이 되면서 펼쳐지는 일대기를 그린다. 

프랑스 유명 뮤지컬 ‘십계’의 연출가 도브 아티아의 최신작으로, ‘로미오와 줄리엣’ ‘태양의 서커스’ 등에서 연출과 안무를 담당한 줄리아노 페파리니가 공동 참여했다. 국내 초연은 원작 그대로 공연하는 ‘레플리카(replica)’ 방식이 아니라 대본과 음악 등 일부만 가져오는 ‘스몰 라이선스(small license)’ 방식을 택했다. 국내 초연을 맡은 연출가 오루피나는 각색에도 참여했다. 이 각색에서 호불호가 갈린다. 

아서 역은 배우 장승조·한지상·고훈정, 아서의 충성스러운 기사 랜슬롯 역은 임병근·장지후·니엘(틴탑)이 맡았다. 왕비 귀네비어 역은 임정희·간미연·이지수, 예언자 멀린 역은 지혜근이 연기한다. 악역도 실력파로 채웠다. 멜레아강 역은 김찬호·이충주·강홍석, 모르간 역은 리사·박혜나·최수진이 맡아 가창력을 뽐낸다. 

영미권 뮤지컬과 프랑스 뮤지컬의 차이 가운데 하나는 프랑스 뮤지컬에서는 노래를 부르는 배우와 춤을 추는 무용수가 따로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물론 모든 작품이 그런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송스루(song-through) 뮤지컬=프랑스 뮤지컬’이라는 공식도 잘못 알려진 것이다. 국내에서 유명한 프랑스 뮤지컬로는 ‘노트르담 드 파리’와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다. ‘뮤지컬’이지만 극 중 노래를 한 소절도 부르지 않고 애크러배틱이나 비보잉만 선보이는 배우들도 나온다. 호불호가 갈리는 형식. 개인적으로는 모든 배우가 격한 춤을 추면서 노래까지 소화하려면 어설퍼지기 쉬운데 각자 잘하는 것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춤, 노래가 연출, 스토리와 조화를 이뤘을 때 이야기다. 

뮤지컬은 아서가 이복형제인 케이를 위한 칼을 찾다 마법사 멀린의 인도 아래 우연히 엑스칼리버를 뽑으며 왕좌를 차지한다는 설정을 가져왔다. 오루피나 연출은 “판타지 뮤지컬이지만 아서만큼은 인간적인 면에 초점을 맞춰 캐릭터를 만들었다. 한 인간의 성장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래서일까. 뮤지컬 속 아서는 그렇게 매력적인 캐릭터는 아니다. 선량하고 정의로우며 용기 있는, 그래서 뻔한 주인공이다. 아서가 ‘우연히’ 엑스칼리버를 뽑기 전까지 엑스칼리버를 만져(뽑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수많은 기사가 검술 대결을 펼친다. 그렇기에 검술 대결에서 승리했지만 엑스칼리버를 뽑지 못해 밀려나게 된 멜레아강이 “저 칼은 원래 내 것이었어. 그리고 왕좌도!”라고 한 대사는 전형적인 악역의 대사였음에도 공감하고 말았다. 그러게, 애초에 아서는 왕이 될 생각도 없었잖아!


[사진 제공 · 알앤디웍스]

[사진 제공 · 알앤디웍스]

[사진 제공 · 알앤디웍스]

[사진 제공 · 알앤디웍스]

[사진 제공 · 알앤디웍스]

[사진 제공 · 알앤디웍스]

[사진 제공 · 알앤디웍스]

[사진 제공 · 알앤디웍스]

작품에서 존재감이 큰 건 악역 멜레아강과 모르간이다. 고스족 같은 의상과 분장도 강렬한 인상을 주는 데 한몫했지만, 사연 많은 악역이라 더 연민이 갔다. 작품은 아서나 귀네비어, 랜슬롯보다 멜레아강과 모르간의 서사에 더 신경 썼다. 두 사람이 쩌렁쩌렁하게 공연장을 울리며 함께 노래하는 장면이 끝나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마침 기자가 본 날은 김찬호와 박혜나가 출연했다. 강렬한 연기와 탁월한 가창력으로 극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은 덕에 두 사람이 실제 부부라는 사실을 잠깐 잊을 정도였다. 

오루피나 연출은 프레스콜에서 “아서를 힘들게 하는 캐릭터들이 단단한 이야기와 성격을 갖도록 각색했다”고 밝혔다. 2막에서 원작에 없던 랜슬롯이 죽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랜슬롯이 죽을 때 부르는 사랑 노래와 마지막 장면에서 아서가 좋은 왕으로 나아가기 위해 부르는 노래 등이 추가됐다. 참고로 “네 아버지가 사실은 내 아버지였어” 같은 반전이나 불륜과 납치, 임신 같은 ‘막장 드라마’에서 딱 써먹기 좋은 스토리는 각색이 아니라 전설에 원래 있던 내용이다. 이 뮤지컬의 이야기는 숀 코너리와 리처드 기어가 주연한 영화 ‘카멜롯의 전설’(1995)과 비슷하다.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서던 한 관객은 “너 왜 울어”라는 친구의 타박에 “아서가 불쌍해서”라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한편 다른 관객은 “꼭 ‘뮤직뱅크’ 보는 것 같아. 한 곡 끝나면 ‘빠밤’ 하고”라며 동행한 친구와 즐기면서 보는 모습이었다. 다양한 넘버만큼이나 관객 반응도 각양각색이다. 부정할 수 없는 건 배우들의 절절한 호연. 특히 아서 역의 장승조는 tvN 드라마 ‘남자친구’ 마지막 회에서 차수현(송혜교 분)을 어린 남자 김진혁(박보검 분)에게 빼앗기고 텅 빈 집에 혼자 남아 쓸쓸한 표정을 짓던 정우석의 모습을 무대에서 다시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는 사랑하는 귀네비어를 랜슬롯에게 빼앗긴다. 왕으로 열일하며 민심을 얻었지만 여심은 잃었다. 임팩트는 악역이 가져가고 중요한 선택은 멀린이 한다. 아서는 주어진 운명을 따라갈 수밖에 없어 자못 안쓰럽게 느껴진다. 오히려 능동적인 건 복수를 차근차근 준비하는 모르간이다. 작품을 보면서 차라리 아서가 칼을 뽑지 않아 왕이 안 되고, 출생의 비밀도 모른 채 평범하게 살아갔더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올해 뮤지컬계는 왕이 풍년이다. 뮤지컬 ‘라이온 킹’은 4월 11일부터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공연을 이어가고, 아서왕은 6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뮤지컬 ‘엑스칼리버’로 관객을 또 만난다. 마니아라면 6월 2일까지 공연하는 ‘킹아더’를 보고, 6월 15일부터는 ‘엑스칼리버’를 본 뒤 캐릭터와 넘버, 스토리를 비교하는 것도 재밌을 테다. 이 때문에 ‘킹아더’를 뮤지컬 초심자보다 원탁의 기사들처럼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니아 관객에게 권하는 것이다. 과연 ‘엑스칼리버’의 멀린은 ‘킹아더’의 멀린처럼 ‘쿨’하게 새로 변해 훨훨 날아갈 것인가. 그 부분이 제일 궁금하다.






주간동아 2019.04.05 1183호 (p68~70)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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