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85

2021.04.16

아이돌 팬덤, 잡식성으로 진화하다

[미묘의 케이팝 내비] 세븐틴 승관 ‘We Remember K-pop’ 실시간 검색어 오른 이유

  •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입력2021-04-2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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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행 지난 케이팝을 안무까지 따라 추면서 노래해 ‘부교수’라는 애칭이 붙은 세븐틴 부승관. [We Remember K-pop 캡처]

    유행 지난 케이팝을 안무까지 따라 추면서 노래해 ‘부교수’라는 애칭이 붙은 세븐틴 부승관. [We Remember K-pop 캡처]

    유명 아이돌의 음반이 발매된다. 실시간 차트 상위권을 점령한다. 심지어 모든 수록곡이 최상위권에 연달아 오르는 소위 ‘줄 세우기’도 나타난다. 흔한 일이다. 이를 팬덤의 작품이라고들 말한다. 발매 직후 주요 곡을 집중적으로 스트리밍하고 다운로드해 감상 수를 올림으로써 차트 상위권에 일찌감치 안착시키는, 소위 ‘스밍’이다.

    스밍은 오랜 논란의 대상이다. ‘실제 인기’와 무관하게 특정 음악이 과포장된다는 것이다. 또한 한 사람이 여러 계정을 동시에 운용하고, 듣지도 않으면서 조회수만 기계적으로 올리는 것은 물론, 공장처럼 스트리밍하기 위해 개인정보와 비용까지 모으는 경우도 있다. 이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음원 발매 시간이 오후 6시로 변경된 적도 있다. 아이돌 팬덤은 주로 청소년일 것이라고 여겨 이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에 발매하면 스밍을 못 하지 않겠느냐는 논리였다. 하지만 스밍은 사라지지 않았다. 눈 가리고 아웅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때로는 팬덤의 작품이라고 보기 어려운 결과도 나타난다. 외부에서 체감하는 ‘코어 팬덤’의 규모에 비해 높은 성적이 나타나기도 하고, 며칠이 지나도 일부 수록곡까지 차트에 잔존하기도 한다. 아이돌과 차트의 관계는 당연하지만 스밍이나 팬덤의 규모가 전부는 아니다. 여기에는 다른 팬덤이 한 번쯤 관심을 갖고 ‘음악’으로 들어보는 경우도 크게 작용한다. 소수의 예만 들자면 아이유, 청하, 백현, 오마이걸 등이 그렇다.

    최근 트위터 실시간 검색어에 ‘We Remember K-pop’이 올랐다. 아이돌그룹 세븐틴의 멤버 부승관이 진행하는 V라이브 콘텐츠의 제목이다. 몇 년 전이었다면, 그리고 앞서 말한 스밍 논리에만 익숙하다면 세븐틴 팬들이 검색어를 올렸으리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는 2000년대부터 지금까지 발매된 ‘흘러간’ 케이팝을 소개한다. 한철 유행하고 지나간 노래를 열거하면서 즉석에서 안무까지 따라 추며 노래한다. 그 해박함에 ‘부교수’라는 애칭도 붙었다. 이외에도 ‘숨어서 듣는 명곡’이라는 말을 유행시킨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이나 팬덤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레퍼토리를 DJ 세트로 즐기는 ‘슬픔의 케이팝 파티’도 떠올릴 만하다.

    이런 과거 노래를 조망하는 채널은 지금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콘텐츠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팬덤 경쟁과 무관하게 추억의 ‘유행가’로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부승관은 다른 팬덤 입장에서는 경쟁 그룹의 일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팬덤을 아울러 화제와 애정의 대상이 되는 건 그의 유난한 끼와 유쾌함 때문이다. 팬덤 경쟁이라는 틀을 넘어 다른 아티스트의 곡들도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좀 더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사례다.



    팬이라고 해서 한 아티스트의 곡만 듣지는 않는다. 일상에서 음악을 듣는 행위가 한 아티스트에 대한 충성과 완벽한 동의어인 사람은 많지 않다. 아이돌 팬도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케이팝을 가장 다양하게 감상하는 이들은 바로 아이돌 팬이다. 다만 팬덤에 대한 편견과 치열한 경쟁 때문에 표면화되기 어려웠을 따름이다. 지금 케이팝 팬덤은 가장 좋아하는 ‘최애’ 아티스트를 두고 다양한 음악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잡식성으로 변화하고 있다. 변화는 가속할 것이다. 케이팝 전반의 다양한 이에게 설득력을 갖는 아티스트가 꾸준히 등장하고, 팬덤의 경계를 넘어서는 교류의 장이 많아진다면 말이다. 이 변화는 케이팝산업과 팬덤에 새로운 역학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앞으로 케이팝을 더 풍성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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