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84

2021.04.09

“LH 어떻게 믿고 재개발하나?” 동의율 1위 장위9구역마저…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도 민심 요동 변수로 작용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21-04-1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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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29일 공공재개발 후보지로 선정된 서울 장위 9구역. [홍중식 기자]

    3월 29일 공공재개발 후보지로 선정된 서울 장위 9구역. [홍중식 기자]

    “다른 건 모르겠고, 공공재개발은 빨리 가잖아요. 용적률을 높여주고 보상도 더 잘해줄 거라니 믿고 가야죠.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재개발이 드디어 된다니, 그것만으로도 좋아요.” 

    “아직 공공재개발 관련법도 안 만들어진 상태에서 정부 말을 어떻게 다 믿어요. 애써 지은 아파트를 절반이나 나라에 바쳐야 한다는데, 그러려고 여태 기다린 게 아니에요. 서울시장 보궐선거도 끝났으니 조만간 다시 민간재개발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섣불리 공공재개발로 갈 이유가 없죠.” 

    정부가 3월 29일 발표한 2차 공공재개발 시범사업 후보지 중 한 곳인 서울 장위9구역 주민들의 말이다. 장위9구역은 장위8구역과 함께 이번에 공공재개발 후보지로 선정되면서 조합 설립 추진 움직임이 활발하다. 공공재개발 공모에서 주민 동의율이 후보지 중 가장 높은 68%를 달성하는 등 공공재개발 의지가 가장 강한 곳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곳조차 최근 들어 주민들 의견이 갈리는 분위기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공공재개발 후보지로 선정된 만큼 이 여세를 몰아 하루빨리 재개발에 성공해야 한다”는 의견과 “공공재개발의 한계가 뚜렷한 만큼 지금이라도 민간재개발로 가는 게 낫다”는 의견이 충돌하는 것.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후보가 당선하면서 민간재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높아졌다. 오 시장의 공약대로 민간 재개발·재건축 규제가 완화될 경우 섣불리 공공재개발로 가는 것보다 민간재개발이 사업성 면에서 더 좋을 것이라는 기대다. 30년 넘게 장위9구역에 살고 있는 한 주민은 “그동안 주민들이 재개발로 너무 애를 먹어 공공으로라도 해준다니 덜컥 신청하긴 했는데, 공공재개발보다 민간재개발이 좋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아니냐”고 반문했다.



    “사연 많은 동네” 장위9구역

    공공재개발을 추진 중인 ‘공공재개발 주민대표회’ 사무실 외관(위)과 공공재개발을 반대하는 비상대책위원회 사무실 외관. [홍중식 기자]

    공공재개발을 추진 중인 ‘공공재개발 주민대표회’ 사무실 외관(위)과 공공재개발을 반대하는 비상대책위원회 사무실 외관. [홍중식 기자]

    지난해 8월 정부는 집값 안정화 일환으로 주택 공급 확충을 제시하며 공공재개발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공기관이 참여하는 재개발 사업으로 용적률을 법정 한도의 120%까지 부여하고, 늘어난 용적률의 20~50%를 임대주택으로 기부 채납하는 방식이다. 조합원 분양권을 제외한 나머지 50%를 임대로 공급해야 한다. 또 민간택지 분양과 달리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인허가 절차가 대폭 축소돼 사업 속도가 빠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혜택이다. 사업이 지연될수록 조합원이 부담해야 하는 분담금도 커지기 때문이다. 

    서울 성북구 장위뉴타운에 속한 장위9구역은 서울지하철 6호선 돌곶이역에서 직선거리 750m 떨어진 역세권이다. 입지로만 따지면 장위뉴타운 15구역 중 단연 최고다. 도로(돌곶이로) 하나를 두고 8구역(11만6402㎡)과 9구역(8만5878㎡)이 마주 보고 있다. 두 구역이 동시에 재개발될 경우 규모 면에서도 경쟁력이 있다. 

    당초 장위9구역이 공공재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데는 이유가 있다. “사연이 많은 동네”라는 한 주민의 말처럼 장위9구역은 8구역과 함께 2006년 장위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돼 2010년 조합을 설립하는 등 정비사업을 추진했다. 사업성 부족으로 주민 이해관계가 달라지면서 사업이 지연됐고 2017년 3월 토지등소유자 3분의 1 이상이 해제를 요청해 서울시로부터 직권해제됐다. 그사이 인근 장위1구역(래미안장위포레카운티), 2구역(꿈의숲코오롱하늘채), 5구역(래미안장위퍼스트하이), 7구역(꿈의숲아이파크)은 속속 재개발에 성공했고 9구역 주민들의 소외감은 더욱 커져갔다. 

    현재 장위뉴타운 3·4·6·10·14구역은 민간 주도 재개발이 진행 중이며, 정비구역이 해제된 11·13구역 등은 가로주택정비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은 재개발의 축소판으로 보면 된다. 면적 1만㎡ 이하 가로구역 중 노후·불량 건축물 수가 전체 건축물의 3분의 2 이상이고 해당 구역에 있는 주택 수가 20가구 이상이면 이를 묶어 아파트로 올릴 수 있다. 

    장위9구역 주민들 역시 최근 공공재개발 후보지로 선정되기 전까지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추진하고자 9구역을 총 10개로 나눠 조합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던 와중에 지난해 정부가 8·4 공급대책을 통해 정비구역 해제 지역도 공공재개발에 참여할 수 있게 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그동안 재개발 갈망이 컸던 주민들은 “공공재개발이라도 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현재 국토교통부(국토부)는 2종일반주거지역(용적률 240%)인 장위9구역을 3종일반주거지역으로 종상향(360%)하고 층수도 인근 아파트보다 높은 35층 이상으로 올린다는 계획이다. 장위9구역 토지등소유자는 총 670명으로 재개발될 경우 2300가구 대단지 아파트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는 공공재개발이 순탄하게 진행될 때 얘기다. 공공재개발 후보지는 말 그대로 후보지일 뿐 정식으로 재개발 조합이 설립되려면 주민 3분의 2 동의가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이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관련법도 없이 보상 제대로 받을까 걱정”

    최근 재개발에 성공한 장위9구역 인근 새 아파트들. 
9구역 주민들의 소외감이 더 커졌다. [홍중식 기자]

    최근 재개발에 성공한 장위9구역 인근 새 아파트들. 9구역 주민들의 소외감이 더 커졌다. [홍중식 기자]

    현재 장위9구역에는 ‘공공재개발 주민대표회’와 ‘비상대책위원회’가 함께 있다. 공공재개발 반대 여론은 한 달여 전쯤 설립된 비상대책위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당초 공공재개발에 찬성한 사람들조차 최근 들어 반대 여론으로 돌아선 데는 ‘LH 사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공공재개발 주민대표회 측은 “최근 LH 사태로 여론이 왜곡되고 있다”며 “당분간 인터뷰는 사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반면 비상대책위 측은 “LH를 어떻게 믿고 한평생 안 먹고 안 입고 모아 장만한 내 집을 덜컥 내주느냐”며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공공이든 민간이든 재개발 자체를 반대하는 이도 적잖다. 비상대책위 한 관계자는 “동네 주민 절반가량이 60, 70대 노인인데 아파트 한 채 받겠다고 평생 살던 집을 떠나고 싶겠나”라며 “집은 오래됐어도 넓은 내 집에서 마당 가꾸며 사는 사람은 아파트에 관심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재개발을 적극적으로 원했던 이들 가운데 정부의 불투명한 보상 체계 등을 이유로 공공재개발을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A씨는 “공공재개발 관련법도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가 하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며 “공공재개발 사업지로 선정되기도 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어놓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분개했다. 

    장위9구역은 공공재개발 후보지로 선정된 직후인 3월 30일부터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됐다. 물론 거래가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다. 주택 매매 후 실거주하면 입주권을 얻을 수 있다. 한 가지 혼동해선 안 되는 것이 2·4 부동산대책에서 도입한 ‘공공직접시행’ 방식과 그보다 먼저 추진된 ‘공공재개발’은 다르다는 점이다. 공공직접시행의 경우 2·4 대책 발표 이후 해당 지역 주택을 매수한 사람은 모두 현금 청산을 당한다. 하지만 공공재개발은 일정 요건을 갖춰 구청으로부터 토지거래허가를 받으면 주택 매수 후 분양권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토지거래허가 조건이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현재로선 공공재개발 1차 후보지 선정 때 밝힌 내용이 그대로 적용되리라는 추측만 가능하다. A씨는 “국토부, 구청에 문의해봐도 정확하게 답변해주지 않는다”며 “공공재개발 후보지로 선정된 후 모든 부동산 거래가 멈춰버렸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공공재개발 1차 후보지의 경우 2년간 주거지역 18㎡, 상업지역 20㎡, 공업지역 66㎡를 초과하는 토지를 거래하면 실거주·실경영하려는 매수자에 한해 토지 거래를 허가한다는 방침이다. 결국 실거주할 요량이 아니라면 투자는 거의 불가능하다. 

    A씨는 “2017년 정비사업이 해제된 후 신축 빌라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며 “현재 이 일대 빌라 시세는 3.3㎡당 2200만~4000만 원으로, 대지지분이 8평(약 27㎡)인 빌라가 현재 4억7000만 원에 매물로 나와 있다”고 밝혔다.


    “투자자 신중하게 판단해야”

    주택 매매 전 반드시 확인할 것이 또 있다. 정부는 공공재개발 구역에 ‘지분 쪼개기’ 형태로 투기 세력이 몰리는 것을 방지하고자 조합원 입주권을 받을 수 있는 권리 기준일(권리산정일)을 공공재개발 공모 공고일인 2020년 9월 21일로 정했다. 따라서 그 후 지어진 빌라나 다세대는 조합원 자격을 얻을 수 없다. 현재 장위9구역에는 권리산정일 이전에 지은 신축 빌라가 적잖다. 따라서 일부 주민은 “노후도 요건이 맞지 않아 민간재개발에서는 안전진단을 통과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재개발이 추진되려면 아직 절차가 많이 남아 있다. 주민 동의는 물론이고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도 받아야 한다. 오세훈 시장 당선으로 현 국토부 안에 따라 사업이 계속 진행될지도 미지수다. 이은형 대한걸성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공급을 늘리겠다는 취지는 좋으나, 사업을 추진할 때 주민 동의율을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고, 현재 제시한 인센티브도 명확지 않아 공공재개발이 성공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 역시 “투자자 입장에서는 공공재개발 속도가 아무리 빠를 거라 해도 그 기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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