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66

2020.11.27

“신도시 공급 지연에 3040 ‘영끌’ 비율 올라간다” [조영광의 빅데이터 부동산]

행동경제학으로 본 부동산심리①

  • 하우스노미스트

    입력2020-11-24 10:4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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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십억대의 부동산을 자랑하는 ‘갓물주’ 연예인의 성공스토리를 보면 부러움을 느끼지만, 속까지 쓰릴 정도로 자괴감이 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입사 동기인 김 과장이 집을 사서 몇 개월 만에 수천만 원이 올랐다는 소식을 들으면 속이 쓰리고 자괴감까지 들어 부동산업자의 ‘호가’에 내 전부를 건다. 내 부(富)의 기준점은 저 유명한 ‘갓물주’가 아니라 지근거리에서 일상을 함께하는 비슷한 연령, 연봉을 가진 동료 혹은 선후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합리적 사고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내 주변의 사람들, 얼마 전에 마주친 사건에 따라 판단의 기준이 수시로 바뀌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완벽한 정보를 가지고 최대효용을 추구하는 ‘이콘(Econ,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의 줄임말)’이 아닌, 제한적인 정보를 가지고 때로는 비합리적인 결정을 하는 ‘휴먼(Human)’이 바로 ‘행동경제학’이 사람을 보는 관점이다. 

    쏟아지는 부동산 정책이 무색하게 역대 최고가를 달성한 서울 집값은 우리를 ‘이성’의 영역에서 ‘감정’의 영역으로 몰아가고 있다. ‘휴먼’을 다루는 행동경제학은 우리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의 영향’에 주목한다. 부동산 분노가 극에 달한 2020년 말, 우리는 정말 ‘이성적’으로 부동산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주택시장을 움직이는 3040세대

    서울 주택시장이 회복세에 들어섰던 2014년, 생애 첫 주택을 구매한 세대는 1976년~1980년생(이하 76~80년생)일 확률이 높다. 국토부의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중상위소득 가구의 생애최초 주택마련 평균연령이 꾸준히 35~39세 범위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프 1] 2019년 주거실태 조사에 따르면 생애최초로 주택을 마련한 중상위 가구의 평균연령이 35~39세로 나타났다.

    [그래프 1] 2019년 주거실태 조사에 따르면 생애최초로 주택을 마련한 중상위 가구의 평균연령이 35~39세로 나타났다.

    발 빠르게 주택을 마련한 76~80년생들의 부동산 성공담은 자연스레 주택시장 문턱에선 동년배들에게 퍼지며 ‘양떼효과’(다른 사람의 행동을 기준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그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현상)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76~80년생은 ‘마지막 80만 신생아세대’로 ‘양떼효과’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는데, 마침 이들이 주택시장에 진입한 2014년부터 현재까지 서울 주택시장은 역대 최장 상승 사이클을 경험하며 ‘76~80년생 양떼효과’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다시 말해 최근 3040세대의 부상은 라스트 베이비부머인 76~80년생의 ‘80만 인구 규모’와 역대 최장 주택 상승기가 열어준 ‘부동산 진입시간’, 즉 ‘양’과 ‘시간’이라는 함수의 결과 값인 것이다.

    부동산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첫 경험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는 저서 ‘상식 밖의 경제학’에서 새끼거위가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처음 본 사물에 끝까지 애착을 갖게 된다는 로렌츠 교수의 각인이론을 소개한다. 보통은 어미가 생애 첫 대상이 되지만 어미 대신 다른 동물이나 움직이는 사물을 새끼거위에게 보여주면 그것을 어미라고 인식하고 꽁무니를 쫓아다닌다는 것이다. 새끼거위가 생애 첫 대상을 자신의 뇌에 ‘도장 찍는’ 시간은 부화 후 36시간 이내로 이를 ‘결정적 시간’이라고 한다. 댄 애리얼리는 사람 역시 새끼거위와 비슷하게 처음 접한 정보나 첫 경험에 대한 인식이 ‘말뚝처럼’ 머리에 박혀 훗날의 의사결정에도 강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이러한 첫인상효과는 부동산 첫 구매의 성공·실패 여부가 훗날의 부동산 의사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더구나 부동산은 주식과 달리 거래빈도가 극히 낮기 때문에 첫 경험의 말뚝이 더욱 깊게 뇌리에 박힐 것이다. 

    앞서 밝혔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30대 후반~40대 초반에 주택마련으로 생애 첫 부동산경험을 하게 되는데, 각 연도별 주택가격 흐름과 해당년도의 주택마련 진입연령(30대 후반~40대 초반) 세대를 따져보면 어느 세대가 ‘첫 구매경험’에 성공함으로써 미래 부동산시장을 선도해 나갈지 짐작할 수 있다.

    [그래프 1]을 살펴보면 최근 5년 동안 수도권의 부동산 상승기동안 주택마련 진입 연령에 들어선 ‘1976~1980년대 출생자’와 2000년 초반 연 10% 고성장기에(서울집값 기준) 주택마련 진입연령에 들어선 1960년대 출생자들이 미래 부동산을 선도할 쌍두마차가 될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부동산개발업자가 상품개발과 마케팅에 있어 집중해야할 타깃이 어느 세대인지,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대세흐름을 점치기 위해 어느 세대의 매수세를 눈여겨봐야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대답이 될 것이다.

    [그래프 2] ‘라스트 베이비부머’세대는 생애최초 주택마련에 성공하며 미래 부동산의 주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은퇴시점인 2040년까지 부동산 시장에 참여하며 미래 인구감소 충격에 따른 주택시장 리스크를 완충해 줄 것이다.

    [그래프 2] ‘라스트 베이비부머’세대는 생애최초 주택마련에 성공하며 미래 부동산의 주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은퇴시점인 2040년까지 부동산 시장에 참여하며 미래 인구감소 충격에 따른 주택시장 리스크를 완충해 줄 것이다.

    3기 신도시를 기다리지 못하는 이유

    서울 부도심까지 평균 15분~30분 거리에 위치하고 인근시세 대비 80%수준의 착한분양가. 이르면 내년부터 공급될 3기 신도시의 매력적인 스펙이다. 규제일변도 정책의 역풍으로 ‘공급부족’이 화두로 떠오르자 정부는 3기 신도시의 조속한 공급을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공급 시그널’에도 불구하고 2020년 1~9월까지 서울아파트 매수자의 약 60%가 3040세대다. 이는 2019년 서울아파트 3040세대 매수자 비중인 57%보다 오히려 증가된 수치로써 정부의 ‘공급 시그널’ 약발이 제대로 먹히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만약 3기 신도시가 정부계획대로 2021년부터 공급된다면 저렴한 가격으로 편리한 서울 출퇴근이 보장된 새 아파트를 기다리면 될 노릇이지, 굳이 역대 최고가인 서울의 고령아파트를 ‘영끌’을 마다하고 지금 당장 매수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최대효용을 추구하는 이상적인 인간이라면 1년을 기다려 ‘3기 신도시’를 청약하는 것이 당연지사이나, 우리는 미래의 불확실성과 대중의 심리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다. 

    따라서 3040세대의 그치지 않은 매수세는 연초에 세운 바람직한 목표(금연, 다이어트 등)를 눈앞에 닥친 달콤한 욕구에 쉽게 내주는 ‘선호도 역전현상’으로 설명되는데, 이는 시간 지연으로 바람직한 목표의 달성시점이 멀어질수록 눈앞의 상황에 압도됨으로써 후회할 선택을 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행동경제학 이론이다.

    인내심 무너지면서 패닉바잉 현상

    [그림 1] 신도시 공급 지연으로 패닉 바잉이 증가하고 있다.

    [그림 1] 신도시 공급 지연으로 패닉 바잉이 증가하고 있다.

    [그림1]에 3기신도시 지연에 따른 ‘선호도 역전’ 현상을 도식화해 놓았다. 3기신도시 적기 공급에 대한 의구심과 매매가와 전세가가 동반상승하는 초유의 현실 앞에 무주택자인 3040세대의 인내심이 무너지며 3기 신도시에 대한 선호도가 ‘패닉 바잉’에 의해 역전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LH산하 토지주택연구원의 설문 조사결과에 따르면 3기 신도시 ‘이주의향 비율’은 28%에 불과하며, 이주의향이 없는 이유로 ‘주변 인프라가 구축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서’가 주된 이유로 조사되었다. 

    신도시 입주 10년이 지나서야 개통된 지하철 김포한강선, 하남5호선, 그리고 아직 개통되지 않은 위례신사선을 보며 국민들은 정부의 ‘선(先)교통 후(後)입주’ 원칙이 얼마나 허망하고 먼 미래를 의미하는지 직시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3기 신도시 중 보존가치가 높고 농경지가 많은 2등급 이상의 그린벨트 비율이 40%가 넘는 곳이 4곳으로 이들은 모두 3기 신도시 대표 지구이다.

    이는 환경단체의 반발과 농작민의 생계이전 문제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녹록치 않아 토지보상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과거 토지보상이 마무리되지 않고 사전청약을 받았던 보금자리주택의 경우 본 청약까지 3~5년의 시간이 소요되며 사전청약자 입주 포기 사례가 속출했었던 경험이 있다. ‘선호도 역전 현상’에 따르면 바람직한 장기 목표가 최초 계획에서 조금만 멀어져도 인내심이 급격히 떨어지며 당장의 여건과 욕구에 더욱 집착하게 만든다고 한다.
     
    즉 정부가 약속한 2021년 사전청약 일정에 조금이라도 차질이 생긴다면 현재의 패닉 바잉은 오히려 더욱 강화될 수 있는 것이다. 3기 신도시 중 가장 빠른 속도를 보이고 있는 ‘인천계양테크노밸리’는 올해 12월 토지보상을 목표시점으로 잡았으나, 최근 환경영향평가서(초안) 설명회조차 무산되며 다시 한번 3기 신도시 적기 공급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정책 당국은 실효성이 떨어지는 3기 신도시 청약일정 홍보에 집중하기보단 시장왜곡과 공급부족을 일으킨 분양가상한제, 임대차3법 등의 규제완화를 심각히 검토해봄으로써 시장의 조바심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다.

    [그래프 3] 행동경제학에서는 최초 1년의 지연이 훗날 2년의 지연보다 실망감이 훨씬 크다고 한다.

    [그래프 3] 행동경제학에서는 최초 1년의 지연이 훗날 2년의 지연보다 실망감이 훨씬 크다고 한다.

    지금의 3040세대는 이전의 3040세대와 달리 부동산에 대한 높은 관심과 더불어 지식도 상향 평준화되었다. 휘황찬란한 3기 신도시 비전과 그럴듯한 교통계획으로 이들을 달래기엔 역부족이다. 오히려 도심에 꽁꽁 묶여있는 공급물량을 풀어 매매든, 전세든 안정화시키는 것이 급선무이다. 지금은 특단의 공급대책, 전세대책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훼손된 시장원리를 원상복구 시킬 수 있는 대책이 절실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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