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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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천후에도 뜨는 러 헬기 Ka-32 후속 모델, 국내 도입 유력 [웨펀]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2020-10-31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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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제 Ka-32 동축반전식 헬리콥터. [러시안 헬리콥터스 정보부 홈페이지]

    러시아제 Ka-32 동축반전식 헬리콥터. [러시안 헬리콥터스 정보부 홈페이지]

    ‘도시락’과 ‘초코파이’. 199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러시아 전역에서 그야말로 신드롬을 일으키며 ‘국민 먹거리’로 등극했던 ‘원조 한류’ 식품이다. 두 제품은 소련 붕괴 후 한국과 러시아를 오가는 보따리 상인들을 통해 블라디보스토크 등 극동 일부 지역에 한해 유행을 탔지만, 이들 제품이 본격적으로 러시아 시장에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이른바 ‘불곰사업’ 이후부터다. 러시아에 빌려준 돈 대신 무기를 받아왔던 이 사업이 도대체 어떻게 한국 식품을 러시아에 유행시켰던 것일까.

    초코파이가 러시아에 유행한 사연

    불곰사업은 1990년,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노태우 정부는 소련과 수교하면서 제한적인 교역을 시작했고, 체제 말기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던 소련에게 30억 달러라는 경제협력 차관 제공을 속했다. 

    당시 30억 달러는 우리나라 외환보유고의 10%를 넘는 엄청난 금액이었지만,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을 성공시키겠다는 일념 하에 1991년까지 14억 7000만 달러를 송금했고, 그 상태에서 소련이 해체되면서 이 돈을 떼이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다행히 국제법상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가 채무 상환 의무를 인정했고, 러시아는 경제난을 고려해 현금 대신 현물 상환을 제안했다. 

    1995년, 정부는 러시아에서 1910만 달러의 현금과 1270만 달러어치의 알루미늄을 받았지만, 빚더미에 앉아 원자재를 팔아 겨우 연명하던 러시아 입장에서 이러한 현물은 아까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 러시아 정부는 현금 융통이 쉬운 원자재 대신 소련 붕괴로 인해 넘쳐나는 방산 물자로 채무 변제가 가능한지를 한국 정부에 타진했고, 김영삼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불곰사업이 시작됐다. 

    1995년부터 1998년 사이에 진행된 불곰사업에서 러시아는 2억 1400만 달러 규모의 채무를 변제하고, 같은 금액만큼의 현금을 받아가며 대신 대량의 무기를 한국으로 넘겼다. 



    1차 불곰사업에서 한국은 러시아 육군에서도 ‘근위’ 칭호가 붙은 최정예 기갑사단에 극히 일부가 배치되어 있던 T-80U 전차 33대, BMP-3 보병전투장갑차 33대 등 기갑차량 66대와 당시 현존하던 모든 전차를 격파할 수 있었던 보병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 9K115-1 일명 메티스-M, 발사기 70기와 미사일 1250발, 9K38 이글라 보병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 발사기 50기와 미사일 700발 등을 들여왔다. 

    당시 전차와 장갑차는 소련이 시베리아 서부에 위치한 옴스크트란스마쉬 공장에 발주해 모스크바 방위용으로 조달하려던 물량이었는데, 소련 해체로 인해 공장 차고에 보관되어 있던 신품들이었다. 러시아는 열차 편으로 이 차량들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보낸 뒤 여기서 다시 화물선을 통해 부산으로 보냈다. 

    미사일 종류는 항공편을 이용해 김포공항으로 들어왔다. 재미있는 것은 이 당시 무기를 싣고 왔던 화물선과 화물기들은 돌아갈 때 대량의 초코파이와 도시락 컵라면을 싣고 갔다. 차관 변제용으로 무기를 주고 가면서 대량의 한국산 식료품을 구매해 간 것이었다. 이 당시 물량이 서부 대도시를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하면서 도시락과 초코파이의 신화가 시작됐고, 지금은 완전히 현지화돼 러시아 국민 먹거리로 사랑을 받고 있게 된 것이다.

    러시아제 헬기의 돌풍

    유리 페트로비치 트루트네프 러시아 부총리 겸 극동지역 전권대표. [뉴시스]

    유리 페트로비치 트루트네프 러시아 부총리 겸 극동지역 전권대표. [뉴시스]

    1차 불곰사업이 러시아에서 한국산 식품의 ‘한류’를 일으킨 계기였다면, 2차 불곰 사업은 한국에서 러시아제 헬기의 돌풍을 불러일으켰던 사업이었다. 1998년부터 추진된 2차 사업에서 김대중 정부는 러시아의 3000톤급 디젤 잠수함 킬로 636형 3척을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해군 실사단이 러시아에서 킬로급의 상태를 보고 온 뒤 결사반대하면서 결국 잠수함 도입은 무산됐다. 

    결국 러시아와 협상을 통해 다른 무기체계를 들여오는 것으로 합의를 봤고, 1차 불곰사업 당시 도입했던 무기 가운데 한국군에서도 상당한 호평을 받았던 전차와 장갑차, 대전차 미사일 등을 대량으로 추가 도입하고, 여기에 더해 서해 갯벌 지역에서 유용한 공기부양정 3척, 공군의 초등 훈련기 23대, 여기에 Ka-32 동축반전식 헬리콥터가 도입 대상으로 확정됐다. 

    이 가운데 Ka-32는 도입 당시에는 아무도 환영하는 사람이 없었다. 동체 위에 메인 로터가 2중으로 돌아가는, 기존의 헬리콥터와는 너무도 이질적으로 생긴 헬기의 형상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도 많았고, 비좁은 내부 공간, 형편없는 연비와 너무도 큰 소음 때문에 군에서는 누구도 쓰려하지 않았던 헬기였다. 

    사실 이 헬기는 불곰사업 이전에 저렴한 가격과 강력한 힘을 눈여겨 본 산림청에 의해 소수가 도입된 바 있었지만,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이 헬기를 눈여겨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2차 불곰사업 당시에도 7대가 도입됐지만, 이 물량은 탐색구조헬기가 필요했지만 예산이 없었던 공군이 등 떠밀리듯 받아가야 했다. 

    반전은 공군이 이 헬기를 도입한 이후에 나타났다. 공군은 이 헬기가 기존의 다른 어떤 헬기보다 강력한 출력을 보유해 비행 성능이 대단히 우수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헬기는 악천후에도 비행이 가능했고, 무거운 중량물도 손쉽게 운송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장점은 2000년대 초반부터 곳곳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을 진화하는 과정, 해양 조난 사고 구조작전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Ka-32는 다른 헬기들이 뜰 수 없는 기상 상황에서도 작전 투입이 가능했고, 이는 일선 조종사들의 호평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곳곳에서 Ka-32 도입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산림청은 이 헬기를 대량으로 도입해 무려 30대를 확보했고, 해양경찰청이 해양 작전용으로 9대를 도입했다. 경기도와 경상북도, 대구광역시와 울산광역시가 소방헬기로 각각 1대를 도입했고, 국립공원관리공단 역시 구조작전용으로 1대를 샀다. 국내 민간 항공사에서도 11대 발주가 이어졌다. 

    Ka-32는 동급 서방제 헬기에 비해 연비가 대단히 나쁘고, 부품 내구성이 낮아 교체 주기가 빠른 편이라 유지비용이 대단히 비싸다. 대당 가격이 국산 헬기의 3분의 1에 불과하지만, 전체 수명주기 비용에서 보면 곱절을 넘는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앞서 소개한 장점, 즉 강력한 힘과 비행 안정성은 대형 산불 진화, 악천후 해양 구조 작전에 있어 비슷한 능력을 발휘하는 기종을 찾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뛰어나기 때문에 일선에서는 여전히 가장 선호하는 기체로 꼽힌다.

    그런데 이런 Ka-32가 추가 도입될 가능성이 열렸다. 러시아 타스(TASS) 통신은 현지시각 10월27일, 유리 페트로비치 트루트네프 러시아 부총리 겸 극동지역 전권대표가 우리나라의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화상 회의를 갖고, 남아 있는 차관을 헬기로 상환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기재부 역시 보도자료를 통해 관련 협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기재부는 “러시아 측에 국내에서 러시아 헬기의 정비 및 부품 공급 비용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을 설명했고, 러시아 헬기의 정비와 부품 공급이 가능한 국내 업체를 추가로 지정해 유지비를 절감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다시 말해 러시아제 헬기 추가 도입이 추진되고 있으며, 유지비를 줄이기 위해 국내에서 부품을 공급하는 업체를 추가로 지정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의 Ka-32 도입국

    러시아 측은 5억 9430만 달러에 달하는 차관 잔액 현물 상환용으로 자국산 최신 중형 헬기인 Mi-171A2와 Ka-32의 최신 개량형인 Ka-32A11M 기종을 제안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는 20여 명을 태울 수 있는 평범한 성능의 중형 헬기이고, 후자는 현재 한국이 대량으로 운용 중인 Ka-32의 엔진과 동력계통을 업그레이드하고 항공전자장비를 현대화한 개량형이다. 

    러시아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한국이 Mi-171A2의 감항 인증을 내줬다며 이 기종의 수출을 원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지난해 강원도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 때문에 산악지역 화재 진화에 특화된 Ka-32 계열 헬기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이른바 ‘3차 불곰사업’이 성사된다면 도입이 유력한 기체는 Mi-171A2가 아닌 Ka-32 계열이라는 것이다. 

    수출 시장에서 Ka-32A11M 기종의 가격은 스페어 파츠 등을 포함한 프로그램 가격으로 대당 200억~250억 원 선에서 형성되어 있다. 약 6800억 원 규모의 차관 잔액으로 25~30여 대를 구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 정도 규모면 산림청이 현재 보유한 노후 헬기 대부분을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문제는 한국정부 측이 요구한 유지비 절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Ka-32 헬기는 도입 비용은 저렴하지만 유지비가 대단히 높은 편이다. 따라서 이번 러시아제 헬기 추가 도입의 최대 이슈는 러시아가 유지비 이슈 해결에 얼마나 적극적인 보여주느냐 하는 것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협상이 성사된다면 한국은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의 Ka-32 도입국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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