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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백서 읽은 20대 “그들만의 세상에 기만당해, 너흰 읽지 마라” [사바나]

  •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조국백서 읽은 20대 “그들만의 세상에 기만당해, 너흰 읽지 마라” [사바나]

사바나 초원처럼 탁 트인 2030놀이터. 밀레니얼 플레이풀 플랫폼.


12일 서울 시내 한 대형서점에서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이 진열돼 있다. [뉴스1]

12일 서울 시내 한 대형서점에서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이 진열돼 있다. [뉴스1]

“조국백서가 아니라 ‘한국의 상류층을 고발한다’는 제목이 더 어울리는 내용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이 책을 좋아할까. 나라면 제발 출간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을 것 같다.” 

이른 바 ‘조국백서’라 불리는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을 읽은 취업준비생 김모(28) 씨의 평이다. 김민웅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와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 전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객원교수 등 조 전 장관의 지지자들로 구성된 조국백서추진위원회가 출간한 책은 8월11일부터 오프라인 서점에서 판매하고 있다. 조국 전 장관은 서점 판매 시점보다 더 빨리 출판사로부터 책을 미리 받아 본 것으로 보인다. 그는 8월5일 페이스북에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았다. 백서추진위의 수고에 감사한다’며 ‘백서의 집필과 편집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작년 하반기 서초동의 촛불을 생각하며 지금부터 읽겠다’는 글을 남겼다. 

조국백서 출간 이후 지지자들의 구매행렬이 이어졌다. 이 책을 출간한 오마이북에 따르면 판매 열흘 만인 20일까지 4쇄가 나왔다. 오마이북 측은 “정확한 판매부수는 아직 집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8월 20일 YES24 순위에서는 조국백서가 국내도서 베스트셀러 1위로 올랐고, 8월 2주차 교보문고 집계에서는 정치사회부문 베스트셀러 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청년층 사이에서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책을 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왔다. 특히 자녀 특혜 논란에 대한 각종 해명이 도리어 화를 돋운다는 반응이 많았다.

“상식이었다고? 기만적이다”

조국 백서의 저자들은 조국 전 장관의 자녀 입시 논란에 대한 세간의 비판이 과하다고 말한다. 이들은 책에서 ‘교수 자녀들이 누리는 이런 종류의 ‘특혜’가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이제껏 표창장이 ‘형사 문제’로 비화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청년층 사이에서 분노를 일으켰던 부모 연줄 논란에 대해서도 ‘그 시절에 학생이었거나 학부모였던 사람이라면 모두가 겪었고 또 아는 바였다’며 ‘(조 전 장관이 자녀의 인턴활동에) 설사 관여했다 하더라도 한국의 교육 풍토에서 이는 도덕적 비난의 대상조차 아니었다’고 두둔했다. 



청년들은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상식일지 모르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생경한 주장으로 보인다고 지적한다. 조 전 장관 자녀의 또래로 읍·면 소재 고교 출신인 김 씨는 “너무 기만적이다. 조국 사태 전까지 부모 소개로 고교생이 대학교에서 인턴 경험을 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친구들과 지역 장애인복지관이나 노인복지관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한 것이 우리가 아는 전부였다.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 자체를 몰랐기 때문에 그 동안 도덕적 비난의 대상조차 되지 않은 것”이라며 분노했다. 

지지자들의 뒤늦은 해명이 청년들의 화를 키웠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 전 장관은 장관 후보자 신분이던 지난해 8월 이 문제에 대해 사과했다. 당시 조 전 장관은 개인 페이스북에서 ‘개혁주의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이 문제에는 불철저하고 안이한 아버지였음을 겸허히 고백한다’며 ‘당시 존재했던 법과 제도를 따랐더라도 그 제도에 접근할 수 없었던 많은 국민들과 청년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말았다’는 입장문을 냈다. 

정작 조 전 장관 본인이 잘못을 인정했음에도 그의 지지자들은 백서를 통해 ‘한국 사회의 상층 엘리트들 사이에서 작동하는 일반적 관행과 도덕성에 비추어 보면 대개 상식의 범위 안에 있는 일’이라고 둘러쳤다. 취업준비생 장예슬(27) 씨는 “조 전 장관이 이미 사과한 사안인데 그의 지지자들이 ‘고위층 사이에서 이런 일이 횡행했다’고 변명하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구조 탓하면서 구조를 개혁한다고?”

2019년 9월 6일 당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실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참석했다. [뉴스1]

2019년 9월 6일 당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실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참석했다. [뉴스1]

조국 전 장관은 한때 그의 지지자 사이에서 개혁의 아이콘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조 전 장관은 트위터 등 SNS를 통해 각종 일침을 날리며 스타가 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 발언과 상충되는 여러 행적이 드러나면서 네티즌 사이에서 ‘조로남불(조국 전 장관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조적조(조국의 적은 조국)’ 등 각종 패러디가 등장했다. 그럼에도 조국백서 필진은 이런 상황을 사회구조 탓으로 돌리고 있다. 

필진은 책에서 ‘조로남불’ 논란에 대해 ‘예로부터 지배 세력 내의 개혁운동가들은 한편으로 자기 존재 자체에게 주어진 혜택을 받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자기 존재를 부정하려는 이율배반적 면모를 보이곤 했다. 이런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를 비난하면 개혁은 불가능하다’며 ‘불공평한 상황은 조국 후보자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계층구조와 입시제도가 만든 것이다’고 해명했다. 

조국 사태 당시 드러난 말과 행동의 모순을 사회구조 탓으로 돌리는 ‘조국 옹호자들’은 20대 청년들의 허탈감과 분노를 이끌어 내고 있다.
 
취업준비생 최모(28) 씨는 “조 전 장관은 의혹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사회 구조를 바로잡겠다고 목소리를 높인 인물이다. 그런데 막상 여러 의혹이 나오니 지지자들이 사회 구조를 탓하는 것이 웃겼다”며 “결국은 사회에 불신만 팽배해졌다”고 말했다. 김씨도 “자기에게 필요한 때는 구조에 순응하는 사람이 갑자기 공직에 나와서 무엇을 바꾸자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저 힘만 빠질 뿐이다. 참 ‘뇌정지(생각이 멈추는 것)’하게 만드는 표현이다”고 지적했다. 

조 전 장관에 대한 청년들의 불신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조 전 장관은 모교 서울대의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서 7월 2일부터 한 달간 실시한 ‘2020 상반기 부끄러운 동문상’에서 총 투표자 1704명 중 1550명(90.9%)에게 표를 받으며 지난해에 이어 1위를 지켰다. 936표를 받으며 2위를 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2배에 가까운 표차를 벌였다.

“결국은 자기 하고 싶은 말만…”

자녀 입시 의혹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자녀 입시 의혹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일련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조 전 장관 지지자들은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이유로 책을 출간했다. 조국 백서에서는 ‘(조국 사태가) 역설적으로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입증했고 그런 점에서 조국이 감당한 ‘불쏘시개’ 역할은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는 대목이 보인다. 

이 같은 주장에 청년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2002년 발언인 “해일이 일고 있는데 조개 줍고 있다”를 상기시킨 청년들도 적잖았다. 유 이사장은 개혁국민정당 집행위원 시절 당 내 성폭력 문제가 불거지자 대선에 집중해야 한다며 이 같은 말을 꺼냈다. 차모(26) 씨는 “조국 백서는 결국 검찰개혁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띤 조국 전 장관이 사소한 논란 때문에 발목 잡혔다는 인상을 주려고 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차씨는 이어 “집필자들은 책을 발간하며 다양한 논의를 이어가자고 했지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도 “각각의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중요한 사안과 덜 중요한 사안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공정에 기반한 공직자의 도덕성 문제는 더 이상 작디작은 조개가 아니다. 오늘날 이 조개는 항공모함의 크기가 돼버렸다. 조국백서 같은 지지자들의 감싸기가 조개를 항공모함 크기로 키우는 일등공신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조국백서 내용을 다 읽었다는 청년들은 “공감을 얻을 수 없는 논리와 이상한 변명으로 조국을 감싸는 책은 내가 읽고 분노를 느꼈으면 충분하다”며 “다른 청년들이 읽어볼 가치나 교훈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1253호 (p20~22)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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