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42

2020.06.05

"한국 보수는 없어진 물벼락 무서워하는 원숭이 닮은 꼴" [진중권의 직설①]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입력2020-06-03 08:5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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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5 총선을 거친 뒤 대한민국 정치 지형이 바뀌고 있다. ‘주간동아’는 한국의 대표적 진보논객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날카로운 분석이 담긴, 우리 사회 현안과 정치에 대한 그의 식견을 매주 1회 싣는다. <편집자 주>
    20대 총선과 21대 총선 지역구 당선 현황을 보여주는 카토그램.

    20대 총선과 21대 총선 지역구 당선 현황을 보여주는 카토그램.

    KAIST(한국과학기술)의 정재승 선생에게 들은 얘기다. 과학자들이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마당 한가운데 장대를 세워놓고 그 끝에 한 번들의 바나나를 매달아놓는다. 당연히 원숭이들은 바나나를 따 먹으려 장대를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원숭이들이 바나나에 닿을 즈음 위에서 물벼락이 내렸다. 원숭이들은 혼비백산해 장대로부터 도망쳤다. 그 후 원숭이들은 장대 위의 바나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원숭이와 물벼락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이다. 과학자들은 원숭이 무리의 멤버들을 조금씩 교체해나갔다. 아무 것도 모르는 신참들은 당연히 바나나를 따 먹고자 장대를 오르려 했다. 그때마다 고참들은 기를 쓰고 말렸다. 멤버 교체는 계속돼 마침내 무리 전체가 물벼락을 맞아보지 못한 신참들로 채워졌다. 하지만 그때조차도 원숭이들은 장대에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물벼락 장치가 이미 오래전 제거됐음에도 말이다. 

    그 뒷얘기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줄거리를 대충 상상할 수는 있을 게다.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바나나를 따 먹지 못하는 상태가 한동안 지속되면 언젠가 몇 놈은 이 부조리한 상황에 의문을 품을 것이다. ‘왜 따 먹으면 안 된다는 거지?’ 아마 그놈들이 무리의 만류를 뿌리치고 용감하게 장대에 올라 바나나를 따 먹어도 아무 일이 없음을 스스로 증명해 보였을 것이다. 이로써 한 시대가 지나가는 것이다. 

    인간을 원숭이에 비유한다면 원숭이에게 큰 모욕이겠지만, 인간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금 한국 보수진영에 벌어진 일이 바로 그것이다. 장대를 오르려는 신참의 행동을 뜯어말리는 고참들의 행동은 처음에는 지극히 ‘합리적인’ 대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물벼락 장치가 이미 사라진 상황에서도 그렇게 하는 것은 아둔한 일이고, 그 어리석음의 결과로 보수는 우리 안에서 주도권을 빼앗겼다.

    공포와 습관의 정치

    한국 보수는 물벼락이 이미 사라진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아니, 아예 알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한국 보수는 ‘공포와 습관’에 의존해 통치해왔다. 이게 얼마나 효과적이었던지, 지정학적 상황이 과거와 크게 달라졌음에도 여전히 대중의 의식 속에 과거 상황을 그대로 유지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실제로 한동안은 물벼락(6·25전쟁) 기억을 상기하게 하는 것만으로 선거에서 쉽게 이길 수 있었다.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은 이성이 마비되기 마련이다. 공포에 질린 대중은 상황을 비판적·합리적으로 새로 평가하는 대신, 그냥 두뇌 스위치를 내려놓고 해왔던 ‘습관’에 따라 살아가게 된다. 이런 비합리적 태도를 우리 사회에서는 그동안 ‘보수’라고 불러왔던 것이다. 그것으로 당장의 선거에서는 재미를 봤을지 모른다. 하지만 반복되는 공포 마케팅은 장기적으로 보수층의 지적 수준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그 ‘공포’도 한때는 합리적 감정이었다, 한강의 기적보다 빨랐던 것이 대동강의 기적이어서 196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 국력은 남한을 능가했다. 그때 남한은 북한의 군사적·외교적 우위 앞에서 정말 생존을 위협당하고 있었다. 그때 북한은 통일전선전술로 ‘고려연방제’라는 이름의 적화통일을 추구할 뜻을 공공연히 표하고 있었다. 1975년 월남 패망 소식이 들려왔을 때의 스산한 분위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하지만 늦어도 1980년대 이후 남북 체제경쟁은 남한의 승리로 끝났다는 사실이 너무나 분명해졌다. 1987년 6월민주항쟁의 승리로 남한은 경제만이 아니라 정치 영역에서도 북한보다 우월해졌다. 그 후 남한은 정치, 경제, 외교, 군사 등 모든 측면에서 북한을 압도했고, 그 결과 북한은 우리에게 ‘무서운’ 나라가 아니라 ‘불쌍한’ 나라로 여겨지게 됐다. 현재 북한 경제력은 남한의 30분의 1 수준이 채 안 된다.

    사라진 물벼락

    북한이 ‘신형 전술유도무기’라고 주장하는 ‘북한판 에이타킴스 미사일’(KN-24) 발사 모습. [조선중앙통신]

    북한이 ‘신형 전술유도무기’라고 주장하는 ‘북한판 에이타킴스 미사일’(KN-24) 발사 모습. [조선중앙통신]

    1990년대 중반 유학을 가서 들은 얘기가 있다. 나보다 앞서 온 학생들은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서 ‘북한사람 만나지 말라’는 특별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동백림’ 사건 때문이었을 게다. 하지만 나 때는 그런 교육이 없었다. 굳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석에서 우연히 북한 유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 와보니 어떠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꾸한다. “여기에도 거지는 있습디다. 공화국에는 거지가 없습네다.” 

    북한 핵은 우리에게 위협이나, 북한의 강함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외려 북한이 약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경제력과 기술력의 격차로 북한은 적어도 재래식 전력으로는 남한과 경쟁할 수 없다. 그 군사적 불균형을 일거에 만회하려고 ‘비대칭전략’으로 핵개발에 나선 것이다. 경제적 고립까지 결심한 것을 보면 북한 지배층이 느끼는 위기감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미군도 이 변화에 맞춰 휴전선 근처 병력을 한반도 남쪽으로 이동 배치했다. 과거 미군은 북의 공격으로부터 남한을 지키는 ‘인계철선’ 역할을 했으나, 이제는 동아시아 전역의 돌발사태에 개입하기 위한 신속대응군으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주한미군이 우리만을 위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현재 미군은 동아시아 전역에서 미국의 이해를 지키고자 한국에 주둔하고 있다. 

    한국 보수는 시위 때마다 성조기를 흔든다. 한미동맹만이 살길이라는 뜻이리라. 하지만 극소수 NL(민족해방) 세력을 빼면 오른쪽의 태극기부대에서 왼쪽의 정의당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한미동맹’이 중요한 ‘전략적 자산’(심상정)임을 부정하는 세력은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이 성조기라는 상징에 목을 매는 이유는 그들의 의식이 여전히 미군 화력에 자신들의 생존을 의존해야 했던 과거 기억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보수의 언더도그 전략

    2019년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군사분계선 북측 지역에서 만나 인사한 뒤 남측 지역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2019년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군사분계선 북측 지역에서 만나 인사한 뒤 남측 지역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물벼락 장치는 이미 치워진 지 오래다. 황당한 것은 그것을 치워버린 것이 바로 역대 보수정권이었다는 사실이다. 한국 보수정권들은 비록 군사정권이었지만, 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쳐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함으로써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이제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질 만도 한데, 한국 보수는 여전히 ‘북한’에 경기를 일으키며 국력에서 밀리던 시절의 ‘언더도그’ 전략을 펴고 있다. 

    북한과 관계에 부정적·소극적이어서인지, 한국 보수는 종종 ‘반통일 세력’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정작 반통일 세력은 북한인데도 말이다. 사실 북한은 입으로는 ‘통일’을 외치나 속으로는 통일을 원치 않는다. 통일되면 살아남을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연방제’를 통한 적화통일도 북한 국력이 남한을 압도하던 시절에나 가능한 얘기였다. ‘연합’이든, ‘연방’이든 당장 하자고 하면 이제는 북한에서 핑계를 대며 거절할 게다. 

    지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무기와 체제보장을 바꾸려 미국과 협상하고 있다. 그들이 미사일을 계속 쏘는 것은 미국을 향해 관심 좀 가져달라는 처절한 몸부림에 불과하다. 생각해보라. 과거 선거철마다 행여 ‘북풍’이 불어올까 노심초사하던 쪽은 민주당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는 외려 보수 정당 쪽에서 선거판에 ‘북풍’이 불까 지레 경계한다. 상황이 근본적으로 변한 것이다. 

    오늘날 6·25전쟁에 대한 희미한 기억이라도 가지려면 최소한 나이가 80세 이상은 돼야 한다. 그들의 자식 세대는 군사정권 시절 강제로 심긴 전쟁의 기억을 지겨워한다. 그리고 요즘 젊은 세대가 가진 북한 이미지는 주로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형성된 것이다. 공동체의 기억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영화에서도 이제 북한을 사탄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저 분단의 아픔을 강조할 뿐이다.

    녹이 슨 전가의 보도

    ‘전쟁’ 멘탈리티에 사로잡힌 눈에는 주위 사람이 온통 잠재적 ‘간첩’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보수진영은 이 공포 마케팅을 이용해 손쉽게 통치를 해왔다. 하지만 ‘반공’의 칼도 어느새 날이 다 빠져 그 무섭던 ‘빨갱이’ 소리도 이제는 우습게 들릴 뿐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그동안 보수는 이견을 주로 공포로 억눌러왔는데, 그렇게 거저먹어 오다 보니 정작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그만 경쟁력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한국 보수가 지금처럼 경직돼 있던 것만은 아니다. 가령 7·4 공동성명을 이끈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고, 냉전체제를 깨고 소련과 국교를 맺은 것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다. 김일성의 죽음으로 무산됐을 뿐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계획한 것 역시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 이 유연함의 바탕에는 물론 체제경쟁에서 승리했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보수는 이 자신감과 유연함을 잃어버렸다. 왜 그랬을까. 

    정략적 이유에서였을 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하자 그 업적을 깎아내리려 무조건 ‘종북’으로 몰아붙이다 자신도 모르는 새 ‘수구’의 함정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인 체제경쟁에서 승리가 원래는 자기들 업적이었고, 남북관계 개선의 노력 역시 원래 자기들이 시작한 기획임에도 그 성과를 고스란히 민주당 측에 넘겨줘버렸다. 

    그 결과 남북문제에 관한 보수 비전이 사라졌다. 이제라도 보수가 자신감과 유연함을 가지고 다시 남북문제를 푸는 보수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물론 이는 지도층만 생각을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들에게 공포와 습관의 통치를 받아온 지지층도 생각이 돌처럼 굳어버려, 설령 지도층이 변하려 해도 그 변화를 순순히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설득하려는 지난한 노력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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