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33

2020.04.03

인터뷰

“文정부 추종자들 악성댓글에 상처받고 배신자라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신재민 前 기재부 사무관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20-04-0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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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로 파문 1년 만에 회고록 내고 심경 밝혀 … “‘청와대 사람’은 정책 권한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 “부총리 건너뛴 靑 비서들의 부당한 지시, 기재부의 일상이었다”

    4월 1일 ‘주간동아’와 인터뷰 중인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지호영 기자]

    4월 1일 ‘주간동아’와 인터뷰 중인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지호영 기자]

    외모가 확 달라졌다. 투실한 더벅머리 청년은 간 데 없고, 여리여리한 외모의 앳돼 보이는 청년이 카페로 들어섰다. 2019년 1월 청와대의 적자국채 발행 강요와 KT&G 사장 인사 개입 의혹을 폭로했던 신재민(34) 전 기획재정부(기재부) 사무관. 미수에 그친 ‘극단적 시도’를 마지막으로 대중 앞에서 사라졌던 그가 1년여 만에 회고록 ‘왜 정권이 바뀌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가’(유씨북스)를 펴냈다. 폭로 당시에 비해 체중이 15kg가량 줄었다는 그는 “다이어트 책을 펴낼걸 그랬나요?”라며 머쓱해했다.

    “문제 있다” 말한 것 후회하지 않아

    2019년 1월 2일 신재민 전 사무관(맨 왼쪽)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동아DB]

    2019년 1월 2일 신재민 전 사무관(맨 왼쪽)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동아DB]

    맘고생으로 살이 빠졌나. 

    “행정고시에 합격해 중앙공무원교육원(현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 들어갔을 때 체중으로 돌아온 거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체중이 조금씩 늘다 퇴사 후 스트레스로 술을 마셨더니 살이 많이 쪘다. 분당서울대병원에 두 달간 입원해 있으면서 체중이 줄었고, 이후 집에 있으면서 헬스를 좀 했다.” 

    병원에 두 달간 입원했다. 

    “극단적 시도를 한 환자는 보통 3주간 입원시킨다. 퇴원 시점이 설 연휴라 괜히 또 주목받게 될까 봐 퇴원을 미뤘다. 그즈음 검찰이 찾아왔다. 그래서 병원에 더 있으면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이라 그런지 검찰이 많은 배려를 해줬다. 고마웠다.” 

    건강은 어떤가. 

    “지금도 정기적으로 외래진료를 받고 있고 약도 먹는다. 하지만 많이 좋아졌다. 잠도 잘 잔다. 이번 봄 학기에 고려대 행정학과 석·박사 통합 과정에 입학했다.” 



    신 전 사무관은 폭로에 나선 뒤 정치적 ‘비난’에 시달렸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학원 광고배너와 후원금 계좌번호를 넣은 바람에 누리꾼으로부터 공격받았고, 여당 의원들의 비난 집중포화도 맞았다. 기재부는 그를 공무상 비밀 누설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특히 손혜원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를 향해 ‘나쁜 머리’ ‘위인인 척 위장’ ‘사기꾼’ 등의 표현을 썼다 시민단체로부터 명예훼손죄로 고발당했다. 

    폭로 당시 악성댓글 등 갖은 비난에 시달렸다. 다 극복했나. 

    “기사 내용에 따라 특정 성향의 댓글이 무수하게 달린다는 것을 잘 안다. 지금은 그때보다 그러한 경향이 더 심해졌고…. 그래서 댓글을 보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당시 그러한 댓글에 상처를 많이 받은 건 사실이지만, 그보다 ‘조직을 배신한 사람’이 돼버렸다는 점이 더 괴로워 죄책감에 시달렸다. 청와대와 행정부 간 의사 결정 난맥상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려 했는데, 정치적 이슈로만 흘러간 점도 몹시 안타까웠다. 나는 다 괜찮아졌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신 전 사무관은 지난해 여름 출판사에 원고지 2500장 분량의 두툼한 원고를 보냈다. 2012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2018년 7월 공직을 그만두기까지 직접 겪고 느낀 청와대, 국회, 행정부, 언론의 부조리함에 대해 쓴 글이었다. 그의 담당의는 책 쓰는 일을 말렸다. 지난 상처를 헤집는 일이기 때문이다. 

    폭로 건으로 검찰 조사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낸 이유는. 

    “절반은 부채감 때문이다. 유튜브를 폭로 방법으로 택한 것은 잘못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는 것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말한 것은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친구가 ‘억울함을 풀고 싶은 게 아니냐’고 하더라.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국민에게 여전한 ‘청와대 정부’, 그리고 그로 인한 정책 과정의 부조리함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나도 촛불집회에 나갔다. 이번 정부는 정말 다를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달라진 게 없다. 이 얘기를 꼭 하고 싶은데, 진보 언론 쪽에서는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지 않는다. 아쉽다.”

    청와대 사람들의 ‘지시’는 일상

    청와대(왼쪽)와 세종시 기획재정부. [사진 제공 · 기획재정부]

    청와대(왼쪽)와 세종시 기획재정부. [사진 제공 · 기획재정부]

    책에 대해 옛 동료 등 주변 반응은 어떤가. 

    “지난 1년간 모든 연락을 끊고 지냈다. 그래서 옛 동료들이 내 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직은 잘 모르고…. (이 대목에서 신 전 사무관의 눈가가 빨개졌다.) 다만 지금은 조직 밖으로 나간 분이 많아 미안한 마음을 조금 덜고 책을 썼다.” 

    2017년 11월 14일 대한민국 채권시장에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기재부가 이튿날로 예정된 1조 원 규모의 국고채 매입(바이백·Buy Back)을 취소한 것. 채권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연중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로 국고채 금리가 급등했고, 기재부 내부에 뭔가 말 못 할 사정이 생긴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난무했다. 

    1년여 지나 신 전 사무관이 폭로에 나서면서 ‘그날의 사정’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세금이 예상보다 많이 걷히자 신 전 사무관이 속했던 기재부 국고국은 적자국채 발행을 줄이고, 그 대신 이미 발행된 국고채를 조기 상환하기로 했다. 수입이 늘었으니 빚을 더 내지 않고 이미 진 빚을 조금이라도 일찍 갚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가 “적자국채 발행을 가능한 선까지 늘리라”고 지시하면서 예정했던 바이백을 하루 전날 취소하게 됐다. 

    문제는 또 있었다. 차영환 당시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현 국무조정실 제2차장)이 기재부가 11월 23일 발표한 ‘12월 국고채 발행 계획’ 보도자료를 취소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대통령에게 적자국채를 추가 발행하는 것으로 보고했으니, 그와 다른 계획이 담긴 기재부 보도자료를 회수하라는 지시였다. 신 전 사무관은 책에서 ‘이 같은 청와대 지시는 경제부총리 모르게 진행됐다’고 밝혔다. 경제부총리를 ‘패싱하고’ 실무진에게 직접 지시가 내려왔다는 것이다. 

    적자국채 발행을 줄이고 바이백 하는 것을 경제부총리에게 사전 보고했을 텐데. 

    “기재부가 생각만큼 ‘원팀’으로 움직이는 조직은 아니다. 게다가 국고채 업무는 매우 어렵다. 국고국에 새로 발령받아 석 달간 열심히 공부해도 다 알지 못한다. 순환 보직을 돌리니까 전문성도 떨어진다. 부총리가 워낙 많은 보고를 받다 보니 적자국채 발행과 바이백을 ‘알아서 하라’고 했다 사달이 났다.” 

    김동연 전 부총리가 ‘어딘가로부터’ 적자국채 발행을 늘리라는 압박을 받았을까. 

    “나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잘못된 의사결정 과정에서 발생한 바이백 취소로 피해를 입은 국민이 분명 있다는 거다. 그런데 아무도 잘못을 인정하지도, 책임을 지지도 않았다. 심지어 ‘1조 원가량은 별것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건 정말 잘못된 일이다.”

    청와대 보좌진이 각 부처 국장이나 과장에게 직접 지시하는 일이 많은가.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바뀌었다. 하지만 이번 정권도 지난 정권과 마찬가지로 ‘청와대 정부’다. 청와대에 장관급 실장이 세 명 있다. 이들이 사실상 각 부처 장관 위에 서 있다. 그러니 어떻게 각 부처가 정책을 펴겠나. 청와대 행정관이 부처 과장에게 직접 정책 관련 지시를 하는 것이 일상이라고 보면 된다. 일선 사무관들이 느끼는 회의감은 정말 크다. 어떤 동기는 ‘일을 하지 못할 정도’라고 토로하더라. 청와대 지시에 부처 간부들은 위로 올라갈수록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말이 좋아 ‘대통령 임명권’이지, 사실상 청와대 비서실이 인사권을 쥐고 있으니까.”

    신 전 사무관은 책에서 정치학 박사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가 쓴 책 ‘청와대 정부’를 인용한다. ‘대통령중심제이므로 비서실이 대통령을 대신해 일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큰일 날 소리다.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하는 역할을 맡는 사람들이 대통령의 권한을 대신 행사한다면, 그건 군주정이나 권위주의에 가까운 일이 된다.’ 신 전 사무관은 “나는 피통치자가 통치자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배웠다”며 “헌법과 법률에 따라 청와대 구성원은 중앙 부처 누구에게라도 정책에 관해 지시할 권리가 없다”고 강조했다.

    고위직 자리 늘리기 위해 희생된 ‘재정건전성’

    다시 2017년 11월로 돌아가보자. ‘적자국채 추가 발행’ 지시에 기재부 사람들이 크게 우려하던 당시 국고국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우리가 법적으로는 국가 재정건전성을 관리하는 곳은 아니잖아. 우리가 무슨 재정건전성의 화신인 양 부총리 앞에서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결재 못 올리겠습니다’ 하고 왜 혼나야 해?”

    채무 관리, 회계 결산, 수지 관리 등은 과거 국고국 업무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때 이 업무가 재정관리국과 재정혁신국으로 넘어갔다. 재정건전성을 관리하는 ‘재정건전성과’는 재정혁신국에 배치됐다. 신 전 사무관은 “그래야 재정혁신국의 정원을 늘려 고위공무원인 심의관을 둘 수 있다고, 덕분에 국고국에 편한 업무만 남았다고 선배들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2017년 11월 수조 원 규모로 적자국채 증감 논의가 이뤄지는 것을 재정건전성과는 몰랐나. 

    “몰랐다. 바이백 취소 사건도 몰랐다. 정부 부처는 보통 국 단위로 돌아간다. 국이 다르면 서로 소통하지 않는다. 게다가 국고과장은 국고국 총괄과장이고, 재정건전성과는 재정혁신국의 4번째 과라서 보통 국고과장이 재정건전성 과장보다 선배다. 내가 국회 대응 업무를 맡고 있을 때 재정건전성 관련 질의를 받으면 당연히 국고과에서 답변해야 하는 것도 재정건전성과 수습 사무관에게 넘기곤 했다. 그러면 ‘일 잘한다’고 칭찬받았다.” 

    다시 국고채 발행과 재정건전성 관리 업무를 한데 합쳐야 한다는 기재부 내 여론은 없나. 

    “절대 가져와선 안 된다는 얘기만 들었다. 재정건전성 관리란 근거를 가지고 미래의 일을 계획하는 것인데, 막상 정책 권한이 없어 힘만 든다. 재정관리국이 맡고 있는 회계 결산도 골치만 아플 뿐이라 절대 다시 가져와선 안 된다고들 말한다.”

    2017년 11월 당시 청와대 및 경제부총리의 ‘적자국채 목표치’는 적자국채를 추가 발행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39.4%까지 높이는 것이었다. 이 수치는 코로나19 사태로 정부 지출이 늘면서 41.2%로 껑충 뛰어올랐다. 

    최근 재정건전성 악화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국가채무비율을 40% 이하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여부를 판단할 능력이 내겐 없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정확하고 자세한 데이터다. 정부는 기존 예산을 코로나 예산으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그러면 어떤 예산을 얼마나 깎아서 어디에 쓸 것인지, 국가채무로 마련한 자금을 집행해 얻는 기대효과는 무엇인지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대출 받은 돈으로 열심히 공부해 자격증을 따 소득을 높이면 가계는 건전해진다. 국가채무가 올바르게 쓰인다면 재정 또한 건전해질 것이다. 한편 신용카드 총매출 추이 등을 보고 경기를 판단한다. 이 정보를 내놓는다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타격 정도를 이해할 수 있어 소득 하위 70% 이하 가계에 긴급재난지원금을 주는 게 꼭 필요한 일인지, 아니면 포퓰리즘인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 ‘깜깜이 예산’에 대해 거론했다. 

    “지난해 9월 대통령도 모르는 ‘개별 대통령 기록관’ 예산이 이슈가 됐다. 2020년 자료를 보면 ‘대통령기록관리’ 예산이 전년 대비 27억 원 증가한 것으로 나오는데, 여기에 야당이 문제 제기한 개별 대통령 기록관 신축 비용이 포함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기재부 내부에서도 관련 업무를 하는 실·국끼리만 공유한다. 이를 공개해야 우리 행정이 좀 더 투명해지고 수준 높은 토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풀타임 대학원생으로 공부에 매진할 것”

    4월 1일 ‘주간동아’와 인터뷰 중인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지호영 기자]

    4월 1일 ‘주간동아’와 인터뷰 중인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지호영 기자]

    회고록에 따르면 기재부 모 간부는 해외출장을 갈 때 사무관을 시켜 비데를 챙겨오게 했다. 또 다른 간부가 술자리에서 자신이 먹던 얼음을 사무관 입에 넣어주자 그 사무관이 “성은을 입었다”고 감격스러워(?) 한 일도 있었다. 신 전 사무관은 상사의 이삿날, 주무관들과 함께 업무 시간에 이삿짐을 날랐다. 

    기재부의 ‘엽기상사 열전’을 공개한 이유는. 

    “어느 조직이나 일탈은 있다. 하지만 정부 부처의 조직이 사유화, 파편화되면서 정말 중요한 의사 결정마저 파편화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은 모두 기재부를 떠난 분들이다.” 

    신재민이 책을 냈다고 하니 정치하려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비례대표 공천이 끝나고 책이 나와 다행이다. 출간을 아예 총선 뒤로 미룰까도 했지만, 국가 재정 문제를 이슈화하려면 지금이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정치판에 혜성처럼 등장하고픈 생각도 없고, 내 성격상 정치판에서 버티지도 못할 것 같다. 책 출간 관련 활동을 마치면 풀타임 대학원생으로 공부에 매진할 생각이다.” 

    ‘신의 직장’을 박차고 나왔다. 공직자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책에서 공직사회의 안 좋은 면만 보여준 건 아닌가 걱정된다. 기재부에 있으면서 좋았던 순간도 많았다. 훌륭한 선배도 많았고, 그분들로부터 많이 배웠다. 기재부를 그만둔 일도 ‘여기서 배운 것으로 밥벌이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내 발언으로 공직사회가 좀 더 나아졌으면, 그래서 우리 공무원들이 좀 더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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