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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의 심중일언

“코로나19는 팬데믹이 아니라 동시다발적 에피데믹이다”

콜럼버스 이후 생태계 혁명 추적한 ‘1493’의 저자 찰스 만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코로나19는 팬데믹이 아니라 동시다발적 에피데믹이다”

찰스 만. [ⓒMichael Lionstar]

찰스 만. [ⓒMichael Lionstar]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은 경악스럽다. 2019년 12월 31일 중국에서 세계보건기구(WHO)에 정식 보고한 이 전염병은 3개월 만인 올해 3월 31일 200개 넘는 나라에서 80만 명 가까이를 감염시키고 4만 명 가까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3월 11일(현지시각) WHO가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을 선언하고 세계 각국이 비상사태를 선포했음에도 전 세계 확진자 수는 오히려 증가일로다. 확진자 수가 1만 명을 넘어선 것이 1월 31일인데 한 달이 조금 넘은 3월 6일 10만 명을 돌파했고, 21만 명을 기록한 3월 18일 이후에는 사흘마다 10만 명씩, 3월 26일 이후엔 이틀에 10만 명씩 늘고 있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런던 연구진은 연말까지 코로나19로 최소 4700만 명의 확진자와 185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 피해 상황보다 60배 이상 더 악화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나마 이는 물리적 거리두기와 이동제한 조치를 비롯한 강력한 방역대책이 계속 시행될 경우를 바탕으로 상정한 보수적 수치로, 이를 포기하는 최악의 상황에서는 사망자가 4000만 명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한다. 

박쥐 체내에서 연원한 바이러스 때문에 현대문명이 사실상 동면상태에 들어간 채 숨죽이고 있는 상황이 기가 막힌다. 역대 팬데믹으로는 1918년 스페인독감, 1968년 홍콩독감,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H1N1)가 거론되는데 발생 사이클이 점차 짧아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1493’이 눈길을 끈다. 인간과 동식물의 동질화·균질화 현상을 뜻하는 ‘호모제노센(homogenocene)’으로 인한 유행병의 세계화 같은 생태재앙을 경고한 책이다. 1492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한 연도다. 저자 찰스 만(65)은 미국 과학기자 출신으로 1492년 이전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의 문명과 역사를 풀어낸 ‘1491’(한국어판 ‘인디언’)을 썼다. 



‘1493’은 그 후 유라시아·아프리카라는 구세계와 아메리카라는 신세계가 연결되는 ‘콜럼버스적 대전환(Colombian Exchange)’에 따른 세계적 차원의 생태적·경제적 변화를 다뤘다. 그중에는 아메리카 대륙에 없던 말라리아와 황열병, 그리고 구대륙에 없던 감자 잎마름병과 고무나무 잎마름병이 초래하거나 초래할 가공할 결과도 담겨 있다. 현재 미국 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에 머물고 있는 저자와 e메일 인터뷰를 통해 2011년 발표한 책 내용과 현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미국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의 비밀병기, 모기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말라리아모기인 어나펄리즈 마쿨리펜니스(왼쪽). 말라리아를 유발하는 초미세 기생충 플라스모디움. 플라스모디음은 모기의 침샘에 기생하다 인체에 들어오면 적혈구 속에 머물다 한꺼번에 적혈구 세포막을 터뜨리고 방출된다.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 황소자리]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말라리아모기인 어나펄리즈 마쿨리펜니스(왼쪽). 말라리아를 유발하는 초미세 기생충 플라스모디움. 플라스모디음은 모기의 침샘에 기생하다 인체에 들어오면 적혈구 속에 머물다 한꺼번에 적혈구 세포막을 터뜨리고 방출된다.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 황소자리]

“에피데믹(1개 대륙 전역에 퍼진 유행병)은 인류 역사와 함께했습니다. 중세 흑사병은 유라시아 거의 전역을 황폐화했죠. 1770~1780년대 북미에서 유행한 천연두는 중미 파나마에서 북극까지 퍼졌습니다. 최초의 진정한 팬데믹(2개 대륙 이상에 퍼진 세계적 유행병)은 1826~1837년 창궐한 콜레라일 겁니다. 이런 유행병 역사에 비춰봤을 때 엄밀히 말하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에피데믹에 해당합니다. 과거와 다른 점은 그런 에피데믹이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다는 데 있습니다. 최초의 팬데믹인 19세기 콜레라는 그 세균이 인도에서 미국 서부에 도착하는 데 8년이 걸렸습니다. 반면 코로나19는 중국에서 나머지 세계로 퍼져나가는 데 2~3개월밖에 안 걸렸습니다. 지구상 거의 모든 사람이 동시다발적으로 에피데믹을 겪는 시대가 된 겁니다. 세계가 균질화됐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코로나19는 팬데믹이 아니라 호모제노센 시대 에피데믹의 동시다발적 발생으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1493’에는 신대륙에 없었으나 구대륙에서 건너온 백인과 흑인에 의해 전파된 에피데믹의 기나긴 목록이 등장한다. 천연두, 독감, 간염, 홍역, 뇌염, 폐결핵, 디프테리아, 콜레라, 발진티푸스, 성홍열, 세균성 수막염…. 찰스 만은 특히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말라리아와 황열병 사례를 자세히 다뤘다. 

16세기 후반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 대대적 간척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배수지에서 번성한 말라리아모기가 선원들과 함께 신대륙으로 건너와 유럽인과 원주민을 떼죽음시켰다. 당시 식민지 정착지에 도착한 백인 가운데 1년 뒤 살아남은 이가 절반도 안 됐으며 3년 뒤엔 3분의 1도 생존하기 힘들었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비윤리적일 뿐 아니라 경제성도 떨어진다고 비판한 흑인노예가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각광받은 이유는 말라리아모기에 물려도 백인이나 원주민보다 생존 확률이 몇 배나 높았기 때문이다. 이들 아프리카 노예들은 다시 황열병을 실어 나르는 숙주가 됐다. 

말라리아모기의 북방한계선이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군과 북군의 경계선이었다. 당시 숨진 북군 병사 36만 명 가운데 남군 병사 손에 죽은 병사의 2배수가 말라리아모기에 물려 죽었다. 또 미국 독립전쟁 당시 영국군 병력의 절반 이상이 ‘독립투사 모기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기억하라, 마룬(maroon) 공동체를

아메리카 대륙 내 마룬 분포도. [황소자리]

아메리카 대륙 내 마룬 분포도. [황소자리]

이런 전염병에 처음 노출된 아메리카 원주민의 희생은 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했다. 이렇게 원주민과 백인은 생존하기 어려운 신대륙을 백인이 살기 좋은 공간으로 뒤바꿔놓은 주역이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이었다. 

“1491년까지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 인구가 얼마였는지는 추론이 어렵습니다. 다양한 추정치를 종합했을 때 콜럼버스가 도착한 이후 150년간 원주민 인구의 66%에서 95%가량이 줄어들었습니다. 흑인 노예가 가장 많이 유입됐을 시기가 1775~1800년인데 그 25년간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흑인 수가 200만이 넘습니다. 1800년 노예무역이 절정에 달했을 때 아메리카 대륙에 살던 사람은 약 2500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그중 3분의 1은 아프리카계 혈통, 3분의 1은 원주민이었고, 나머지 마지막 3분의 1을 유럽계로 봅니다. 유럽계 인구의 폭등은 1850년 무렵에 시작됩니다. 흑인과 원주민이 늪지 중심의 신대륙을 유럽인이 살기 좋은 숲과 목초지로 가꿔놓으니까 대거 몰려든 겁니다.” 

미국 역사학자이자 지리학자인 앨프리드 크로스비는 ‘콜럼버스가 바꾼 세계’(1972)와 ‘생태제국주의’(1986)라는 저서를 통해 서구인의 신대륙 정복은 과학과 기술의 우위 때문이 아니라 생태적 변화에서 우위를 점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구대륙과 신대륙의 동식물과 박테리아, 바이러스가 마구 뒤섞인 가운데 유럽에 사는 백인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 점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찰스 만은 이를 토대로 1492년 콜럼버스적 전환으로 진정한 세계화가 시작됐다고 본다. 그는 이를 경제적 관점보다 생태적 관점에서 호모제노센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는데, 생태적 세계화에서도 역시 핵심은 서구화임을 확인할 수 있다. 

찰스 만은 이에 대해 매우 비판적 시각을 견지했다. 오늘날 주류 역사에서 배제된 블랙 피플(흑인)과 옐로 피플(원주민)의 공동체인 ‘마룬(maroon)’ 역사에 주목한 점이 대표적이다. 식민지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탈출한 흑인노예와 원주민이 힘을 합쳐 ‘자유의 건설’을 위해 세운 자유공동체가 북미, 중미, 남미 가릴 것 없이 엄청나게 많이 존재했다. 미국의 세계적 팝그룹 ‘마룬5’의 그 마룬과 철자는 같지만 ‘날아가는 화살’이라는 뜻의 타이노 원주민의 말 ‘시마란(simaran)’이 그 어원으로 추정된다. 총으로 무장한 백인 농장주와 용병에 맞서 활로 싸워야 했던 그들의 역사가 반영돼 있다. 브라질어로는 ‘킬롬부스(quilombos)’라 한다. 

“경제적 현상을 넘어 생태적 현상이라 할 세계화는 인류에게 많은 혜택을 가져다준 만큼 엄청난 비용도 안겨줬습니다. 문제는 선진국에 사는 부유한 사람들이 그 혜택을 누리는 반면, 비용 부담은 마룬의 후손 같은 사회적·경제적 약자에게 과도하게 지워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세계화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과제가 돼야 합니다.”


코로나19가 독재정치 심판자 될까

흑인노예를 주로 수출한 서아프리카 현장을 취재 중인 찰스 만. [ⓒ짐 리처드슨]

흑인노예를 주로 수출한 서아프리카 현장을 취재 중인 찰스 만. [ⓒ짐 리처드슨]

호모제노센은 일방적인 것만은 아니어서 신대륙에서 구대륙으로 이식된 것도 많았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만 자라던 토마토, 옥수수, 감자, 고구마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 구황작물이 되면서 인구 급증을 낳은 게 대표적이다. 특히 안데스산맥에서 자라던 감자는 유럽으로 건너가 농업혁명의 씨앗을 뿌렸고, 브라질에서 밀반출돼 동남아에 정착한 고무나무는 산업혁명의 동력이 됐다. 

하지만 종의 다양성이 유지되는 원산지와 달리 구대륙으로 이식된 이들 식물의 상당수는 생산력만 따진 단일종인 경우가 많았다. 이에 이들 식물에서 자라는 병충해가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함께 넘어오면 치명적 결과를 낳는다.


동남아시아의 고무나무 숲. [영국왕립식물원]

동남아시아의 고무나무 숲. [영국왕립식물원]

1840년대 아일랜드를 강타해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한 감자 기근이 대표적이다. 수백 종의 감자가 자라는 아메리카에서 감자 잎마름병은 극히 일부의 감자에만 타격을 주지만 동일종으로 이뤄진 유럽 감자밭에 퍼지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찰스 만은 브라질이 원산지인 고무나무들 가운데 단일종이 이식된 동남아 고무나무 숲에 브라질산 고무나무 잎마름병이 번질 경우 고무 부품 없이는 돌아갈 수 없는 산업문명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를 경험한 아시아 국가들이 남미산 잎마름병 같은 다른 종류의 잠재적 전염병에 대한 예방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동남아 고무나무 숲은 9년 전 ‘1493’을 발표할 때와 똑같이 취약한 상태로 방치돼 있습니다. 그 대책은 별 게 아닙니다. 배의 중심을 잡아주는 바닥짐(밸러스트)이나 선박용 운반대는 유해 동식물은 물론 곤충, 박테리아, 바이러스를 실어 나릅니다. 이에 대한 정기적인 살균·소독이 이뤄져야 합니다. 또 모든 공항, 부두, 기차역에 바이러스 검역 장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합니다.” 

끝으로 그는 ‘1493’을 쓰면서 발견한 진실 한 토막을 들려줬다. ‘민주주의는 가능한 한 최악의 정치 시스템이다. 그간의 다른 모든 정치 시스템을 제외하고’라는 윈스턴 처칠의 말을 인용하며. 

“‘1493’을 쓰면서 발견한 점은 전제정은 하나같이 자기 패배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책에 등장하는 전제정 국가의 왕과 독재자들은 자기 나라를 위해서라면서 자신들의 업적을 파괴했습니다. 거의 예외 없이 그들은 자신들의 지위와 나라의 안녕을 혼동했고, 결국 두 가지 모두를 망쳤습니다.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비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정치인들에겐 암담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주간동아 2020.04.03 1233호 (p42~45)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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