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28

2020.02.28

특집 | 국가응급체계 혼란

코로나 확진자 뒤섞는 방역, 국민 줄 세우는 행정

감염 극한점 오기 전 참사 벌어질 판

  • 강지남 기자 최진렬 기자

    layra@donga.com display@donga.com

    입력2020-02-27 15:2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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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시간 내 사망 가능한 질병 앞에서 의료체계 혼란 이어져

    • 마스크 줄 세우기 혼란 여전, 비질환자들의 예방도 힘들어

    • 국민안심병원 지정해도 환자 동선 뒤섞여 방역 공백 우려

    • ‘병상 절벽’은 이미 현실, ‘알아서 찾아가라’ 안내…의료 마비 대비 전국적 체계 정비 시급

    서울 송파구 국립경찰병원은 소속 응급실 의료진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자 3월 9일까지 응급실을 폐쇄하기로 했다. [뉴시스]

    서울 송파구 국립경찰병원은 소속 응급실 의료진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자 3월 9일까지 응급실을 폐쇄하기로 했다. [뉴시스]

    “김○○ 씨는 안으로 들어가세요. 선△△ 씨, 안□□ 씨는 천막에서 대기해주세요.” 

    2월 26일 오후 서울 강동구 명일동 명성교회 앞 선별진료소. 강동구보건소와 명성교회 직원들은 방문객 신원을 명부와 대조하며 코로나19 검사에 대해 안내하느라 바빴다. 이날 하루 예정된 검사 인원은 300여 명. 938번째 코로나19 확진자인 명성교회 A 부목사와 예배당 등에서 밀접 접촉한 사람들이다. 강동구보건소 관계자는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몰리지 않도록 예약 방문제를 실시하고 있다”며 “밤 10시까지 근무해 300여 명을 모두 검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구 신천지 같은 ‘슈퍼전파지’ 더 나올 수 있어

    2월 26일 오전 서울 강동구 명성교회 앞에 설치된 선별진료소에서 강동구보건소 직원이 주민을 안내하고 있다(왼쪽). 코로나19 확진자 3명이 나온 서울 송파구보건소는 일반진료를 중단하고 전면 선별진료소 체제로 전환했다. 사전 예약을 하고 방문해야 코로나19 감염 검사를 받을 수 있다. [뉴시스, 최진렬 기자]

    2월 26일 오전 서울 강동구 명성교회 앞에 설치된 선별진료소에서 강동구보건소 직원이 주민을 안내하고 있다(왼쪽). 코로나19 확진자 3명이 나온 서울 송파구보건소는 일반진료를 중단하고 전면 선별진료소 체제로 전환했다. 사전 예약을 하고 방문해야 코로나19 감염 검사를 받을 수 있다. [뉴시스, 최진렬 기자]

    명성교회에서 3.5km 떨어진 강동구보건소. 이곳 선별진료소를 주민들이 쉴 새 없이 찾아오고 있었다. 보건소 직원들이 건네는 첫 마디는 “명성교회 다니세요?”다. 등록 신도만 8만 명에 달하는 명성교회에서 확진자가 나오자 불안감에 시달리는 인근 주민들이 감염 검사를 받고자 자발적으로 찾아오고 있어서다. 선별진료소에서 접수를 받는 보건소 직원은 “A 부목사가 확진 판결을 받은 25일에 특히 주민들이 몰렸다”며 “증세 여부와 관계없이 희망하면 누구나 검사받을 수 있지만, 2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명성교회 교민과 인근 지역 주민의 불안감은 매우 크다. 명성교회에 11년째 다니고 있는 김모(68·경기 하남시) 씨는 “이웃은 물론, 교인들도 서로 만나려 하지 않는다. 식료품점을 운영하는데 우리 직원들이 ‘사장님도 감염 검사를 받아보라’고 한다”고 전했다. 명성교회 바로 옆 고덕동에 거주하는 취업준비생 한태경(28) 씨는 “동네 마트는 마스크와 손세정제가 모두 바닥났고, 지하철에도 사람이 없다”며 “혹시 코로나에 감염됐을까 걱정되지만 선별진료소에 갔다 오히려 바이러스에 노출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긴장과 혼란은 인근 송파구보건소도 마찬가지. 송파구보건소는 2월 26일 오전 9시 “오늘 코로나19 검사 예약이 마감됐다”고 밝혔다. 2월 24일 이곳 선별진료소에서 3명의 확진자(797·881·887번)가 나오면서 교차감염 예방을 위한 예약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송파구보건소 관계자는 “기침·발열 같은 증상이 있거나 확진자와 동선이 겹쳐야 예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약 없이 이곳을 찾은 주민은 줄줄이 발걸음을 돌렸다. 송파구 주민인 40대 조모 씨는 “중학생 아들이 일주일간 열이 나고 인후통이 있다고 해 찾아왔는데, 지금은 열이 내렸다고 받아주지 않는다”며 발을 동동 굴렸다. 



    2월 27일 오전 9시 현재 코로나19 확진자는 1595명. 이 중 대구·경북지역 확진자가 1338명으로 전체의 83.9%를 차지한다(표 참조). 서울지역 확진자는 55명(3.4%)으로 아직은 대량 감염 사태가 나타나고 있진 않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확진자가 크게 증가할 가능성이 적잖다고 본다. 신천지 대구교회와 마찬가지로 명성교회 등이 ‘슈퍼전파지’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응급실 폐쇄 병원 “각자 알아서 다른 병원 찾아가라”고 안내

    2월 26일 정부는 호흡기 질환과 비호흡기 질환 환자의 동선을 구분한 의료기관 91곳을 ‘국민안심병원’으로 지정했다. [동아일보]

    2월 26일 정부는 호흡기 질환과 비호흡기 질환 환자의 동선을 구분한 의료기관 91곳을 ‘국민안심병원’으로 지정했다. [동아일보]

    따라서 전국적인 위기 상황에 대비한 의료체계 정비가 시급하다. 전국 곳곳의 의료기관에서 코로나19 확진자 방문→의료진 감염→병원 폐쇄가 잇따라 벌어져 의료 공백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 폐쇄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확진자와 접촉으로 자가격리되는 의료진 수가 늘면서 의료 현장에서는 일대 혼선도 빚어지고 있다. 

    이에 정부는 대구·경북지역을 시작으로 전국에 코로나19 전담병원을 확보해가는 한편, 호흡기와 비(非)호흡기 질환 환자의 진료 과정을 분리한 국민안심병원 지정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2월 23일 정부가 코로나19와 관련된 감염병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한 이후 전국 보건소들은 속속 일반진료 중단을 선언하기 시작했다. 선별진료소 운영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늦었지만 잘한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보건소가 선별진료소 역할을 전담한다면 비호흡기 질환으로 보건소를 찾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일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호흡기 질환 환자가 동네병원을 찾지 않아도 돼 지역사회 내 코로나19 확산을 예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진료를 중단한 사흘째인 2월 26일 서울지역 보건소에서 일부 혼선이 빚어져 일관성 있는 운영 지침 도입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일 송파구보건소는 미리 예약한 사람만 코로나19 감염 검사를 한 반면, 강동구보건소는 방문자 전체를 대상으로 접수를 받았다. 일반진료 중단에 대한 안내도 부족했다. 송파구 주민 김준기(77) 씨는 송파구보건소에서 3년째 고혈압약을 처방받아왔는데, 26일에는 보건소에 도착해서야 처방전 발급이 중단된 사실을 알게 됐다. 김씨는 “보건소 직원이 민간병원으로 가라고만 하지, 병원 소개는 안 해준다. 관절염이 있어 걷기도 불편한데 헛걸음했다”고 한탄했다. 

    의료 공백과 함께 ‘의료 비효율’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 송파구 국립경찰병원은 코로나19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의료진 1명이 코로나19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자 2월 25일부터 3월 9일까지 2주간 응급실을 폐쇄하기로 했다. 국립경찰병원 응급실을 찾는 환자는 하루 50명 안팎으로, 그만큼 주변 병원 응급실에 부하가 발생하게 된 셈이다. 국립경찰병원 관계자는 “119 구급차를 타고 오는 응급환자는 자연히 다른 병원으로 갈 테고, 스스로 응급실을 찾아온 환자에게는 ‘각자 알아서 다른 병원을 찾아가라’고 안내한다”고 했다. 한편 국립경찰병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응급실이 폐쇄됐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일반진료를 위해 내원하는 환자가 크게 줄었다. 2월 26일 국립경찰병원을 찾은 주모(61) 씨는 “15년간 이 병원에서 정신건강과 약물을 처방받아왔는데, 오늘처럼 한산한 날은 처음이다. 덕분에 별로 기다리지 않았지만, 별로 좋은 일 같진 않다”고 말했다.

    “바이러스는 빈틈으로 침투한다”

    2월 26일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대구 북구 학정동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 의료진들이 개인보호구 착용 실습을 하고 있다. [뉴스1]

    2월 26일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대구 북구 학정동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 의료진들이 개인보호구 착용 실습을 하고 있다. [뉴스1]

    의료계는 코로나19 확진자의 대폭 증가와 지역사회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병원 이원화를 주문하고 있다. 이미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코로나19 전담병원 지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는 중증환자의 입원 치료를 위한 병상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코로나19 감염 가능성이 있는 호흡기 질환 환자의 외래진료 및 경증환자 치료를 전담하는 병원과 그 외 비호흡기 환자를 진료하는 병원으로 나누자는 것이다. 비호흡기 환자만 진료하는 병원은 호흡기 환자의 출입을 제한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침투를 막음으로써 의료진 감염과 병원 폐쇄 등 의료 공백을 방지할 수 있다.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2월 26일 서울대병원, 경희대병원 등 전국 91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을 국민안심병원으로 지정했다. 비호흡기 질환과 분리된 호흡기 질환 전용 진료구역(외래·입원)을 운영해 병원 내 감염 가능성을 차단, 일반 국민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노출될 염려 없이 병원을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국민안심병원을 신청하는 의료기관이 계속 늘고 있다”며 “준비된 병원은 조속히 국민안심병원으로 추가 지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의료계는 국민안심병원 지정이 불안감을 잠재우거나 병원 내 감염 확산을 막는 데 역부족이라고 내다본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감염의학 관점에서 보면 병원 내 동선을 아무리 분리한다 해도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고, 바이러스는 빈틈으로 들어가는 법”이라며 “병원 내부를 분리하는 것보다 병원을 호흡기 및 비호흡기 전담으로 이원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견해를 밝혔다. 

    국민의 올바른 대응과 협조도 필요하다.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다고 입증된 치료제가 아직 없어 언제 치료를 개시하든 별 차이가 없다”며 “평소 건강한 사람이라면 기침과 발열 등 증세가 있을 때 사나흘 외출을 삼가고 집에서 경과를 지켜본 뒤 보건소에 연락해 안내를 받는 것이 바람직한 대처법”이라고 조언했다. 최 교수는 또한 “간혹 원내 진료실에 들어와서야 코로나19 관련 증세를 털어놓는 환자가 있어 의료진 감염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꼭 외부 선별진료소에서 관련 증세와 해외여행 이력 등을 밝혀달라”고 당부했다.

    코로나19 전담병상 확보에 속도 내야 하는 이유

    2월 27일 서울 양천구의 한 쇼핑몰에서 열린 마스크 긴급 노마진 판매 행사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있다. [뉴스1]

    2월 27일 서울 양천구의 한 쇼핑몰에서 열린 마스크 긴급 노마진 판매 행사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있다. [뉴스1]

    코로나19 전담병상을 좀 더 빠른 속도로 확보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정부는 대구·경북지역 코로나19 확진자를 위해 3월 1일까지 대구, 대전, 충정권 및 경남 마산에 1600여 개 가용 병상을 마련하는 등 전국적으로 1만 병상 수준의 코로나19 전담병상을 확보할 계획이다. 그러나 현재 대구·경북지역 환자가 급증하다 보니, 2월 26일 오후 기준으로 확진 판정을 받고도 집에 머무는 환자가 전체 확진자(710명)의 절반에 가까운 302명이나 된다. 27일 오전 9시 기준으로 대구·경북지역에서만 확진자가 311명 추가 발생해 ‘병상 절벽’ 사태가 더욱 심각해진 상황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아무리 경증환자라 해도 지역사회 감염을 막으려면 격리치료가 필요하다”며 “전담병상 확보에 좀 더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스크 정책도 좀 더 정교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전국 약국, 우체국, 농협 등을 통해 “이르면 27일 오후부터 하루에 마스크 350만 장을 공급하겠다”고 밝혔으나 우체국을 관할하는 우정사업본부는 3월 2일은 돼야 판매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성급한 발표 탓에 우체국쇼핑 온라인 홈페이지 접속이 마비되는 등 국민만 혼란을 겪었다. ‘마스크 대란’이 좀체 가라앉지 않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오염이 덜 된 마스크는 재사용할 수 있다’는 지침을 마련하기로 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한 시민은 “동네마트로부터 ‘정부 조치에 따라 마스크 판매처로 지정됐으나 아직 물량 확보가 되지 않은 상태’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며 “일반인이 마스크의 오염 여부를 판단할 수 없는 데다, 마스크 구하기도 여전히 어려워 모든 게 두렵고 혼란스럽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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