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중국인 ‘의료 피난’ 행렬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0-02-1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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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월 중국인 입국은 역대 최대, 본국의 낙후된 의료 믿지 못해 피난 목적

    • “비자, 항공기 중단돼도 대기수요 급증”, 국내 관광지에도 외출 꺼려



    2월 7일 찾은 서울 대림동. 금요일 저녁인데도 한산한 모습이다. [동아DB]

    2월 7일 찾은 서울 대림동. 금요일 저녁인데도 한산한 모습이다. [동아DB]

    “눈이 있으면, 묻지 말고 봐요. 이게 사람이 있어 보이나.” 

    지난주 서울 명동에서 만난 상인 한모(44) 씨의 말이다. 1월 말 변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폐렴이 중국 후베이성을 중심으로 퍼지면서 중국인의 한국행이 지난해에 비해 일시적으로 늘었다. 2월 들어 최근 후베이성 체류 중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 중단으로 입국이 급감하기는 했지만 그 직전인 1월 말에는 중국인 입국 러시로 인천국제공항 혼잡도가 크게 상승했다. 공항 관계자들은 “2017년 한중관계가 냉각되기 전의 입국 수준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중국어가 들리지 않는 명동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서울 명동 거리지만 최근 평소보다 사람이 적다(왼쪽). 2월 7일 임시휴점에 돌입한 롯데백화점 명동본점. 2월 11일부터 다시 문을 열었다. [동아DB]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서울 명동 거리지만 최근 평소보다 사람이 적다(왼쪽). 2월 7일 임시휴점에 돌입한 롯데백화점 명동본점. 2월 11일부터 다시 문을 열었다. [동아DB]

    최근 입국한 중국인들은 보통 관광비자로 한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들이 정말 관광차 한국에 들어온 것은 아닌 듯 보인다. 중국인 사이에서 인기 있는 관광지들의 경우 외려 사람이 크게 줄었기 때문. 여행업체 직원들은 “요즘 중국인들은 전염병을 피해 한국으로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 방역이나 의료 지원 시스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까운 한국행을 택했다는 것. 

    2월 7일 지난해까지 중국인들로 넘쳐나던 서울 명동 거리를 가봤다. 명동에서 만나는 외국인은 대부분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다. 가게 입구에만 다가가도 이곳의 주요 고객층이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다수 가게 입구에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의 전자결제 시스템 ‘알리페이’로 결제가 가능하다는 표식이 붙어 있다. 가게 밖 스피커에서는 중국어와 일본어가 번갈아 흘러나온다. 눈을 감고 있으면 한국어보다 외국어가 더 많이 들리는 곳이다. 



    하지만 이날 오후 명동은 달랐다. 중국인 관광객은커녕 거리에서 사람을 찾아보기조차 어려웠다. 의류 매장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춰 미취학 아동으로 보이는 어린아이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아이에게 위험할 정도로 인파가 많은 거리지만, 이날은 아이가 뛰어놀 수 있을 만큼 공간이 넓었다. 명동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잡화를 파는 정모(34) 씨는 “이곳에서 5년 넘게 장사해왔지만 이렇게 관광객이 적었던 때가 없다. 대다수 노점과 매장이 개점휴업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날 3시간가량 명동 거리를 돌며 만난 관광객 중 중국어를 쓰는 사람은 총 9명. 모두 대만 관광객이었다.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화장품 매장은 물론, 인근 면세점과 백화점에서도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2월 7일에는 롯데백화점 명동본점이 임시휴점에 돌입했다. 23번째 확진자가 이곳을 다녀간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 공포는 인근 면세점까지 닿아 있었다. 직원이나 그 거리를 지나는 행인 외에는 인파를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이 없으니 중국어 안내 방송이 더 크게 울리는 것 같았다.

    중국인 장기 체류자도 외출 꺼려

    서울 대림중앙시장에 걸려 있는 코로나19 예방 관련 플래카드. [동아DB]

    서울 대림중앙시장에 걸려 있는 코로나19 예방 관련 플래카드. [동아DB]

    중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인기 있는 관광지가 바뀌었을 수 있어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을 찾았다. 이곳은 서울 시내 차이나타운이다. 공항과 가까운 데다, 중국인 전용 은행 창구가 있어 환전을 위해서라도 이곳에서 한국 여행을 시작하는 중국인이 많다. 지난해 말만 해도 저녁시간 대림동에서는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중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2월 3일과 5일 양일간 찾은 이곳에서는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사람을 1명도 볼 수 없었다. 사람이 가장 많이 다니는 저녁시간에도 거리는 한산했다. 상가 건물에 붙은 네온사인 간판이 무색할 정도였다. 그나마 길에 있던 사람들도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시선을 땅에 두고 빠른 걸음으로 거리를 벗어났다. 음식점의 경우 손님 없는 가게 안에서 업주가 TV만 쳐다보고 있는 곳이 태반이었다. 대림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장모(46·여) 씨는 “오늘 맞은 손님을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다. 술자리도 거의 없어졌다. 여기에 중국에서 들어오는 사람도 대폭 줄었으니, 장사가 될 리 없지 않나”라며 한탄했다. 

    대림중앙시장은 아예 휴업을 해버린 가게도 많았다. 저녁시간, 시장에는 코로나19 예방 관련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소, 돼지, 닭고기 외에 다양한 고기를 팔던 식재료 가게도 대부분 문을 닫았거나 매대가 치워져 있었다. 

    대림동에는 한국에 오랜 기간 거주하는 중국인이 많다. 이들은 다른 서울 시민들만큼이나 바이러스 감염 예방에 신경 쓰고 있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길에서 담배를 피우던 사람도 흡연 후 바로 마스크를 꼈다. 음식점 인근에서 담배를 피우던 중년 남성이 기침을 하자 그 앞을 지나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기침하던 남성도 담배를 끄고 마스크로 입을 덮었다.

    “한국 이외 타국 피난 수요도 늘어”

    중국 본토의 출입국 수요는 어떨까. 인천국제공항에서 일하는 한 중국인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 대답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옛 출입국관리사무소) 자료를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르면 1월 14일부터 1월 28일까지 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입국한 중국인 수는 하루 평균 1만6000명에 달했다. 지난해 1월에는 1만3000명이었다. 전년 대비 20% 넘게 중국인 입국자가 증가한 셈. 1월 23일 이후에는 중국인 출국자도 평균 2만2000명에서 1만2000명으로 크게 줄었다. 장하성 주중 한국대사는 2월 10일 중국 베이징 특파원단과 만나 “춘제 연휴부터 2주간 비자 발급이 중단됐고, 이후 일주일 동안도 자택근무 체제로 비자 발급이 멈춰 있는 상태다. 단체관광은 정부 차원에서 비자 발급을 금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이 통계를 내놓지 않는 상황이라 중국 현지 여행사들에게 물어봤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코로나19 감염) 사태 이후 단체관광 상품 자체가 거의 팔리지 않는다. 한국 단체관광 희망자는 지난해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최근 한국에 입국한 사람 중에는 관광이 목적이 아니라, 방역 상황이 중국에 비해 낫고 한국을 거쳐 다른 나라로 갈 계획인 사람이 꽤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베이징에서 한국행 관광객을 모으고 있는 한 여행사 임원은 “요즘 비자를 신청하고 발급을 기다리는 인원이 평소 3000명에서 7000명 수준으로 늘었지만 비자 발급이 중단됐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줄곧 상하이에서 일하고 있는 박모(28·여) 씨는 “당분간 중국을 떠나 있으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비자가 쉽게 발급되지 않아 실제 나가는 사람은 줄었지만, 비자 발급을 기다리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현재 비자 발급이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의 매일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일종의 피난을 가려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서울 종로구에서 중견 여행사를 운영하는 A 사장은 “중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항공기가 줄었는데도 제3국 항공편을 이용하는 중국인 유학생과 관광객들이 국내로 밀려들고 있다”며 “선진국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관광객 중에는 사석에서 본국의 방역망과 의료 시스템에 대한 불신·불만을 털어놓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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