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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송가인이 끌고, 유산슬이 민 ‘트로트 붐’

중장년층 남성들까지 팬덤으로 끌어내다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송가인이 끌고, 유산슬이 민 ‘트로트 붐’

송가인(왼쪽), 유산슬. [뉴스1]

송가인(왼쪽), 유산슬. [뉴스1]

지난 해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의외의 이슈는 트로트의 부상이었다. 송가인이 이끌고, 유산슬이 받쳤다.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으로 스타덤에 오른 송가인은 변방에서 등장해 단숨에 중원에 깃발을 꽂았다. 퓨전 트로트의 흐름을 꺾고 정통 트로트의 힘을 재각인시켰다. 과거의 향수에 머물던 중장년층에게 동시대에도 그들이 열광할 수 있는 대상이 존재한다는 걸 선언했다. 

열광을 넘어, 충성이다. 최근 송가인은 자신의 펜 카페 '어게인'에 메시지를 남겼다.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팬들이 손을 자주 씻어서 감염을 예방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많은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 긍정적 응답이었다. 과거 메르스 사태 때 중년 남성들이 화장실에서 불일을 보고 손을 씻지 않는다는 젊은이들 지적에 거센 반발이 일었던 것을 감안하면 송가인의 긍정적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 팬덤의 행동을 이끄는 스타라는 개념을 기성세대에게 서 이끌어낸 것이다.


박토벤과 정차르트

'박토벤' 박현우와 '정차르트' 정경천[mbc]

송가인이 선봉에 섰다면, 유산슬을 탄생시킨 ‘놀면 뭐하니’는 트로트의 세계가 기존의 엔터테인먼트 컨텐츠와 다른 블루칩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음악스타, 혹은 거장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평범한 아저씨들이 툭탁거리면서 ‘합정역 5번 출구’를 탄생시키는 과정은 기존의 음악 예능과는 완전히 달랐다. 진지하되 유쾌했고 근엄하되 경박했다. 

무엇보다 진한 사람 냄새가 프로그램을 채웠다. '생활의 달인'이나 '세상에 이런 일이'를 음악 예능으로 승화시켰다고 할까. 유산슬은 엄숙하거나 폐쇄된 음악계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노년층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던 트로트의 감춰진 매력을 일깨웠다. 과거 ‘B급 문화’라 불렸던 것들을 2010년대의 언어로 소환했다. 음악계와는 유리된 것처럼 여겨졌던, ‘응답하라 1988’의 아빠들 같은 캐릭터를 조명하되 그들이 가진 전형적이지 않은, 하지만 비범한 재능을 여과 없이 전시하며 또 다른 스타들을 만들어냈다. ‘박토벤’ 박현우와 ‘정차르트’ 정경천은 ‘전국노래자랑’ 출연에서도 꿈꾸지 못한 스타덤에 올랐다. 

요약하자면, 송가인은 비주류를 주류로, 유산슬은 엔터테인먼트가 아니었던 것을 엔터테인먼트로 각각 끌어들인 촉매제 역할을 했다. 유산슬의 노래 '사랑의 재개발'을 빌어 표현하자면 '트로트의 재개발'을 두 명이 해낸 것이다. 



이 트로트 붐은 봄바람처럼 스쳐지나가지 않을 것 같다. 후풍이 분다. ‘내일은 미스트롯’의 성공에 고무된 TV조선의 후속작 ‘내일은 미스터트롯’도 범상치 않다. 여기서 잠시 ‘미스트롯’의 초기로 돌아가 보자. 송가인이 등장하기 직전의 이 프로그램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트로트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1%가 채 되지 않는 스트리밍 시장에서의 비중. 온라인 스토어가 아닌 고속도로 휴게소의 주된 판매량(그것도 음반이 아닌 USB형태로!) 싸구려 ‘행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수익 모델 등등, 트로트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을 초기의 ‘미스트롯’는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다. 

비슷비슷하게 야릇한 화장을 하고 비슷비슷하게 야릇한 옷을 입은 젊은 여성들이 비슷비슷한 창법으로 퓨전 트로트를 부르는 상황은 ‘이러니 트로트가 고인물 소리를 듣지’라는 실소를 자아내기 충분했다. 적어도 송가인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미스터트롯’과 ‘나는 트로트 가수다’

미스터트롯2(왼쪽), 나는 트로트 가수다 포스터. [tv조선, mbc에브리원]

미스터트롯2(왼쪽), 나는 트로트 가수다 포스터. [tv조선, mbc에브리원]

‘미스터트롯’은 이런 선입견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다양한 캐릭터가 있고 동시대적 감각이 있다. 마치 퇴물 취급받던 씨름이 ‘씨름의 희열’이라는 프로그램으로 근육질의 훈남들의 스포츠로 재조명 받은 것처럼, 각각의 필살기를 장착한 젊은 남성 트로트 가수들의 매력대결로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남자 송가인’이 탄생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송가인이라는 꼭짓점을 선과 면으로 확장할 새 얼굴들이 등장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이에 힘입어 MBC에서도 ‘나는 트로트 가수다’라는 새 프로그램의 방영을 앞두고 있다. 조항조, 김용임, 금잔디 등 재야의 트로트 고수가 참가해 방청객의 평가를 받는다는 점에서는 ‘나는 가수다’와 같은 포맷이지만 진행자가 이덕화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세기를 대표할 음악프로그램인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의 MC였던 그가 트로트 예능 프로그램의 진행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이 프로그램의 과녁이 누구인지를 보여준다. 이덕화가 매력적 중저음으로 “부탁~해요”를 외치던 시절, 브라운관 TV 앞을 지키고 있던 청년은 이제 중장년이 됐다. ‘가요무대’는 너무 올드하지만 ‘케이팝 스타’에서는 동시대적 감화를 느끼기 어려운 이 세대에게 트로트는 적극적으로 찾아 듣지는 않아도, 노래방에서는 흔히 부르는 장르다. 미디어 컨텐츠가 아닌, 여가로서의 소비 대상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런 세대에게 송가인과 유산슬에 이어 ‘미스터트롯’과 ‘나는 트로트 가수다’는 높은 흡인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이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지표가 있다. 바로 송가인의 공식 팬클럽 '어게인'이다. 이 팬클럽은 팬덤 바깥에 존재하던 세력이 그 안으로 들어왔을 때 얼마나 큰 시장이 될 수 있고, 얼마나 강력한 화력을 장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실버 팬덤이 배워야 할 덕목

2019년 3월 개설된 송가인 팬카페 어게인의 회원 수는 5만3600명에 이른다. 50대가 절반 이상이고 60대와 40대가 뒤를 잇는다. 남성이 절반 이상이니 '중장년 남성'이라는 대중문화 소비의 변두리 계층이 주류인 셈이다. 주간지 '시사IN'의 보도에 따르면 이 카페의 활동지수는 네이버 팬 카페 중 1위며 회원수는 7위에 이른다. 오프라인 행사를 전국각지로 쫓아다니는 건 기본이며, 자녀들을 통해 '스트리밍 총공'하는 법을 배워 아이돌 팬덤 못지않은 행동력을 과시한다.
 
송가인의 유튜브 동영상 댓글은 젊은 세대의 그것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신세계’다. 정치 뉴스 댓글에서나 보던 문체로 송가인을 찬양하는 내용을 보고 있노라면 한 편으로는 웃음이 나고, 한 편으로는 경이가 든다. 지역 향우회나 등산이나 낚시 동호회 같은 '팬덤' 바깥의 모임이 한 가수와 한 장르의 팬덤으로 승화되는 모습은 마치 1990년대 아이돌 팬덤이 형성되던 시절의 그것과 닮아서다. 

이는 역으로, 그 시절 팬덤의 부작용을 우려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이돌 팬덤이 전투적 배타성을 극복하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추억처럼 회자되는 팬덤 간 전쟁이 실버 컨텐츠 세계에선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자정 작용을 거칠 수 있을까. 정치건, 문화건 '빠'는 '까'를 만들고 '까'도 '빠'를 만든다. 극단적 팬덤은 언제나 ‘안티’를 생성한다. 이를 깨달은 팬덤은 다른 팬덤을 포용하고, 서로를 응원한다. 트로트 붐이 스쳐지나가는 바람이 되지 않기 위해 명심해야할 덕목이다.






주간동아 2020.02.14 1226호 (p62~64)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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