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23

2020.01.17

베이스볼 비키니

“LG 트윈스 팬들은 왜 제 편 선수들을 못 놓을까”

LG 연봉 대비 승리 수는 적어도, 구단 수익은 말 그대로 효율적

  •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신동윤 한국야구학회 데이터분과위원장

    kini@donga.com dyonshin@gmail.com

    입력2020-01-2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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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10월 9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9 KBO 리그’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 3차전 키움 히어로즈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4-2로 승리한 LG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뉴스1]

    2019년 10월 9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9 KBO 리그’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 3차전 키움 히어로즈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4-2로 승리한 LG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뉴스1]

    ‘주간동아’ 1220호에 ‘LG 팬들은 제 편 선수만 예쁘게 본다?’ 기사가 나간 뒤 많은 독자로부터 지지와 반론이 동시에 들어왔다. 그 가운데 열혈 LG 트윈스 팬이기도 한 신동윤 한국야구학회 데이터분과위원장이 보내온 반론을 소개한다.

    ‘머니볼은 21세기 프로야구의 워너비다. 효율적일 뿐 아니라 세련되고 힙하다.’ 

    마이클 루이스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머니볼 신화를 글로 재구성했을 때 키워드가 그랬듯, 머니볼을 부각하는 가장 간명한 방법은 ‘싸게 많이 이기는 팀’과 ‘돈 쓰고 못 이기는 팀’을 비교하는 것이다. 연봉 총액 338만750달러(약 39억 원)인 오클랜드가 1억1228만7143달러(약 1299억7240만 원)인 뉴욕 양키스와 싸우는 장면은 알기 쉽고 선명하다. 

    뉴욕 양키스가 팀 페이롤(연봉 총액) 1위, 사치세(팀 연봉 총액이 일정액을 넘어가면 부과하는 세금) 납부 실적 1위를 독점하던 마지막 시즌이 2013년이다. 이후 LA 다저스가 페이롤 1위, 사치세 1위에 주로 이름을 올렸다. 양키스의 별명은 ‘악의 제국’. 돈으로 비싼 선수들을 쓸어 모아 우승을 노린다는 의미다. 당시 양키스는 보스턴 레드삭스, 탬파베이 레이스에 뒤지며 아메리칸리그(AL) 동부 5개 팀 가운데 3위로 밀렸다. 흔히 효율성, 합리성의 상징으로 쓰는 ‘승당 페이롤’ 기준으로 보면 한심했다. 탬파베이는 승당 60만 달러를 쓰며 92승을 했고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PS)에 진출했다. 같은 해 오클랜드는 63만 달러당 1승을 하며 AL 서부 1위로 역시 PS에 나갔다. 반면 양키스는 승당 270만 달러를 쓰고도 지구 3위에 그치며 PS 진출에 실패했다.

    제국은 원래 ‘가성비’가 나쁘다

    2013년까지 선수들 연봉에 천문학적 금액을 쏟아부은 뉴욕 양키스. [GettyImages]

    2013년까지 선수들 연봉에 천문학적 금액을 쏟아부은 뉴욕 양키스. [GettyImages]

    그런데 승당 페이롤이 머니볼의 전부일까. ‘1승을 하는 데 얼마를 썼느냐’가 아니라, ‘1승을 통해 얼마를 벌었느냐’라고 물으면 결과는 달라진다. 그해 양키스는 승당 670만 달러(약 77억6195만 원)를 벌어들였다. 오클랜드와 탬파베이는 승당 대략 180만 달러를 벌었다. 



    승당 페이롤에서 탬파베이나 오클랜드가 아무리 ‘가성비’를 높여도 승당 ‘매출 효율’은 양키스와 대적 불가다. 같은 1승으로 버는 돈으로 치면 양키스는 오클랜드나 탬파베이보다 4배 가까이 효율적인 팀이다. 

    36년 동안 양키스를 이끌던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는 2008년을 끝으로 구단 운영을 아들에게 넘기고 물러났다. 아들 스타인브레너도 머니볼에 관심을 둘 법하다. ‘자, 우리도 이제 효율적으로 구단 운영을 해보자!’ 한데 양키스 팬들의 생각은 좀 달랐다. “머니볼? 이 무슨 개소리야. 우리는 양키스라고!” 

    양키스 팬들은 머니볼을 원하지 않았다. 페이롤당 1승의 효율이 아니라, 승당 매출 효율을 지향해야 할 빅 마켓 팀에게 가성비는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다. “우리는 양키스다. 돈이 문제야? 우리 지갑은 빵빵하다고. 가성비? 개나 줘버려.” 이게 양키스 팬의 정서였다.

    패배를 버티게 만든 것은 프랜차이즈 스타

    악의 제국을 세운 이래 양키스는 어느 한순간도 가성비가 좋았던 적이 없다. 그 대신 승당 매출 효율은 언제나 최고였다. 

    LG는 당연히 양키스가 아니다. 하지만 승당 페이롤이 유일한 가치일 수 없다는 점에서 비교할 만한 부분은 있다. LG는 지난 시즌 한국 프로야구 10개 팀 가운데 유일하게 100만 관중을 달성했다. LG의 19시즌 성적은 승수로 따지면 4위지만 홈 관중 수로 따지면 1위다. 덤으로 10년 연속 100만 관중 기록을 이어가는 유일한 팀으로 남았다. 

    결정적 순간은 2만5000석이 매진된 지난해 9월 29일 이동현의 은퇴 경기였다. 이동현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LG가 100만 관중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팬들을 독려했다. 3번의 수술을 겪으면서도 끊임없이 팀에 충성심을 보여준 베테랑 투수의 메시지에 팬들이 어찌 뜨거워지지 않을 수 있을까. 2016년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한 이후 그의 성적은 페이롤 대비 승리 기여도 측면에서 좋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니 이동현은 팀의 페이롤 기준 승리 효율을 떨어뜨린 존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프로야구팀에게 그것이 전부일 수 있나. 팬들은 승리를 원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여전히 팬으로 남아 있는 동안에만 그렇다. 아무리 많이 이기는 팀이라도 팬이 없으면 승리는 구단의 가치로 실현되지 못한다. 프로야구니까 이겨야 하지만, 프로야구이기 때문이 이기는 게 전부일 수 없다. 

    LG의 10년 연속 100만 관중 기록의 앞부분은 그야말로 참혹했던 암흑기를 포함한다. 승리가 전부라면 지구상에 LG 팬이라는 존재, 또 긴 암흑기에 내던져진 야구팬의 존재는 이미 사멸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남았고 이동현의 마지막 부탁이던 100만 명이라는 숫자를 채워냈다. 

    2010년 이후 승당 홈 관중 수가 가장 많았던 팀은 2012년 LG다. 59승(무승부 0.5승)이고, 평균 관중 수는 1만8798명(67경기)이니 승당 2만1028명이다. 8개 팀 중 7위를 했던 시즌이고 2002년 이후 10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한 시즌이다. 성적이 나빠서 팬들이 더 좋아했을 리는 없다. 하지만 연이은 패배에도 여전히 팀을 사랑하는 팬들이 있었다는 뜻이 된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까. 

    패배는 아프다. 열정적인 팬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LG 팬들에게는 이병규가 필요했다. 이동현이 필요했다. 박용택이 필요했다. 패배하는 팀의 팬이라도 응원하고 사랑할 대상이 필요하다. 그것마저 잃는다면 남는 것은 야구팬이기를 그만두는 것밖에 없다. 선택해야 한다. 승리 대신 사랑할 것을 찾거나 야구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거나. 

    수많은 LG 팬은 승리 대신 다른 것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승리 대신 팬들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어줄 대상이 필요했다. 더 많이 이기는 경쟁 팀들이 승리를 위해 응원을 바치는 동안 LG 팬들은 충성심을 공유하며 암흑기를 버텼다. 이동현과 이병규와 박용택은 특별했다. 그들이 특별하기도 했겠지만, 실은 우리가 그들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사랑하고 응원할 무언가가 필요했고, 열정을 투사할 어딘가가 필요했다. 그게 LG 팬들이 별스럽게 제 편 선수들을 예뻐하는 이유다.

    팬들이 키운 스타, 함부로 돌 던지지 말라

    2019년 10월 3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9 KBO 리그’ 포스트시즌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 LG 트윈스와 NC 다이노스의 경기에서 관중들이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뉴스1]

    2019년 10월 3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9 KBO 리그’ 포스트시즌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 LG 트윈스와 NC 다이노스의 경기에서 관중들이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뉴스1]

    LG 팬으로서 긴 패배의 세월이 영광스러우냐고 묻는다면 별로 그렇진 않다. 하지만 그 시간이 자랑스럽다. 암흑기가 길었으나 팬들은 그 시간을 견디며 여전히 LG 선수들을 사랑했다. 그것은 그들에 대한 사랑이면서 동시에 우리 스스로에 대한 위로였다. 

    선수 가치가 폄하되면 왜 팬들은 화를 낼까. 왜 LG 팬들은 특별히 더 많이 화를 낼까. 그 선수의 가치는 팬이 일궈낸 것이라 그렇다. 그 가치는 팀 성적과는 별개다. 페이롤당 승수가 가치의 전부라면 LG 팬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러니 LG 선수의 가치를 오직 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Wins Above Replacement·WAR)로 환산해 평가절하하는 것을 팬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건 선수의 가치일 뿐 아니라 LG 팬이 바쳐온 충성의 가치였기 때문이다. 

    프로니까 이겨야 한다는 말은 절반 이상 틀렸다. 세상 모든 야구팬의 절반은 매일 밤 패배한다. 야구라는 게임이 그렇다. 프로야구가 비즈니스로 성립하려면 이기는 효율도 필요하지만, 패배에도 불구하고 팬들이 여전히 팀과 선수를 사랑하게 하는 힘도 필요하다. 그게 없다면 스포츠로서 야구가 성립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비즈니스로서 야구는 성립하지 못한다. 

    데릭 지터는 양키스의 캡틴이었고 뉴욕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그가 커리어 마지막 4년 동안 받은 돈은 6000만 달러(약 694억8000만 원)다. 이 기간 페이롤당 승리 효율을 따지면 끔찍한 수준이다. 구단의 잘못된 판단이 초래할 결과는 아마 아닐 것이다. FA 계약을 한 2011년 그는 37세였고 이미 기량 하락이 눈이 보이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팀은 그에게 가성비가 엄청 나쁜 계약을 안겨줬고, 그는 2014년 동료와 팬들의 존경을 받으며 은퇴했다. 양키스가 가성비를 이유로 그를 내쳤다면 승당 최고 매출 효율을 내는 팀으로 남았을 수 있을까. 

    KBO 리그에서 2010년 이후 승당 홈 관중 동원 최하위는 어느 팀일까. 대부분 예상하는 그 팀이 맞다. 그래서 그들이 부끄러워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약한 팬덤, 빠듯한 재정 기반에도 키움 히어로즈는 많이 이겼다. LG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매력적이다. 

    프로야구는 이 모두를 긍정한다. 승당 비용 효율을 추구하는 팀이 있다면 승당 매출 효율을 추구하는 팀도 있어야 한다. 그게 진짜 ‘머니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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