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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공격한 이란, 중동 지역이지만 非아랍 국가

이란 지도자 하메네이는 ‘전설적 존재’ 칭호 받아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미군 공격한 이란, 중동 지역이지만 非아랍 국가

  • 한방에 정리한 이란의 역사와 종교
수니파와 시아파 분포도 초록이 시아, 파랑이 수니. [퓨리서치센터, 미 국무부]

수니파와 시아파 분포도 초록이 시아, 파랑이 수니. [퓨리서치센터, 미 국무부]

연초부터 중동에 전운이 짙어지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해외공작 특수부대 쿠드스의 사령관으로 ‘다크 나이트’로 불리던 가셈 솔레이마니 소장(이란군 최고계급)이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피살된 여파 때문이다. 이란은 중동에 있는 이슬람국가다. 하지만 아랍국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혼동한다. ‘중동=이슬람=아랍’이란 통념이 팽배해서다. 

이 셋은 범주가 다르다. 중동은 지역, 이슬람은 종교, 아랍은 민족이다. 중동(Middle East)은 유럽인이 붙인 지역명이다. 극동(Far East)과 달리 유럽과 인접한 아시아 국가가 모인 지역을 뜻한다. 처음엔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의 이집트로 구성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확장됐다. 지금은 아프리카 북부와 북서부 해안을 접한 나라 모두와 소말리아까지 포함할 때가 있다. 여기에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까지 중앙아시아국가 전체로 확장되고 있다. 그래서 지역 명을 쓸 때는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로 구별해 쓰는 것이 좋다. 

이를 중동이란 모호한 지역개념으로 뭉뚱그리는 이유엔 이들 나라가 이슬람국가라는 요소가 작동한다. 하지만 전통적 중동국가 중에서도 비이슬람 국가가 있으니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유대교국가다.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한 레바논은 국민의 40%가 기독교를 믿는다. 비중동 이슬람국도 많다. 세계 최대 이슬람국인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에 있다. 

아랍은 민족개념이다. 인종적으로는 서남아시아의 셈좀과 북아프리카의 햄족으로 구성되는 사람들 중에 아랍어를 사용하고 아랍족을 자처하는 문화적으로 확장된 민족개념이다. 그래서 모호하다. 보통 아랍연맹에 가입한 22개 이슬람국가를 아랍국으로 간주한다. 북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 일대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이들 지역 이슬람국가 중에서 아랍연맹에 들지 않은 큰 나라가 둘이나 있다. 터키와 이란이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세운 투르크족이 대다수인 터키는 8000만 명의 인구와 7853만ha의 영토를 자랑한다. 이란어를 쓰고 이란민족이 대다수를 구성하는 이란은 서남아시아 최대 인구(8300만 명)와 두 번째 큰 영토(1억7451만ha)를 자랑한다. 최대 영토국은 사우디아라비아(2억1500만ha)이지만 인구가 2800만 명밖에 안된다. 사우디가 아랍의 맹주는 될 수 있어도 중동이나 이슬람의 맹주가 되기 어려운 이유다.




유럽과 친연성이 가장 큰 이슬람국

이슬람국가 분포도(위). 중동의 확대-전통적 중동(주황), 확장된 중동(갈색), 중동과 연계된 지역(귤색) [월드아틀라스]

이슬람국가 분포도(위). 중동의 확대-전통적 중동(주황), 확장된 중동(갈색), 중동과 연계된 지역(귤색) [월드아틀라스]

사실 터키와 이란은 아랍에 비해 유럽에 더 가깝다. 터키는 지리적으로 유럽에 가까운데다 1922년 술탄제를 폐지하고 초대 대통령이 된 케말 파샤(1881~1938) 이후 유럽화(세속화)에 주력해왔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현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노골화하기 전인 2010년까지는 유럽연합(EU) 가입을 국가적 과제로 추진해왔다. 

역사적 뿌리를 살펴보면 이란은 유럽에 더 가깝다. 무엇보다 서양 대다수 민족과 같은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 그래서 어순도 서양언어와 같은 ‘주어+술어+목적어’로 이뤄진다. 이란이라는 국호 자체가 이들 어족의 공통조상인 아리안을 뜻한다. 터키의 투르크족이 13세기말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온 이주민족으로 한국어와 같은 알타이어계 언어를 쓴다는 점에서 이런 차이점은 더욱 뚜렷해진다. 

그럼에도 서양국가가 이란을 경원시하는 것은 이란인들이 세운 페르시아 제국의 침입으로부터 그리스문명을 지켜낸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전쟁의 기억 때문이다. 유럽문명의 원천으로 간주되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동쪽에 위치했기에 전제적 아시아 문명의 대명사가 된 탓이다. 

이란은 가장 오래된 문명을 세운 민족의 하나다. 기원전 6세기 세워진 페르시아 제국 이전에 메디아 왕조(기원전 728~550)가 있었고 로마제국에 맞섰던 파르티아(기원전 247~기원후 224)와 사산조 페르시아(226~651)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페르시아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 시절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았다. 기원전 7세기 자라투스트라(그리스어로 조로아스터)가 세운 이 종교는 유일신(아후라 마즈다) 신앙과 선과 악, 빛과 어둠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인류에게 각인시키며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렇게 1000년 가까이 서남아시아를 지배하던 이란민족은 7세기 예언자 무함마드의 등장과 함께 아랍인에게 주도권을 빼앗긴다. 632년 무함마드가 죽고 그를 계승한 초대 칼리프 아부 바크르가 651년 이란 전역을 정복한 이후 1000년 가까이 비(非)이란계 이슬람제국이나 몽골제국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이란인은 무슬림으로 개종하게 된다.


시아파 종주국

이란 사파비 왕조 창업자 이스마일 1세의 초상화 [위키피디아]

이란 사파비 왕조 창업자 이스마일 1세의 초상화 [위키피디아]

이슬람은 크게 3개 종파로 나뉜다. 전체 무슬림의 80% 이상을 점유하는 수니(Sunni)와 15%안팎의 시아(Shia) 그리고 5% 미만의 수피(Sufi)다. 

수니와 시아는 무함마드의 진정한 후계자 내지 대리자가 누구냐를 두고 갈린다. 시아는 아들이 없었던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이며 4대 칼리프인 알리(600?∼661)와 그 혈통에게만 정통성이 있다고 믿는다. ‘알리의 추종자들’이라는 뜻인 ‘시아트 알리’의 줄임말이 시아다. 이에 반해 수니는 무함마드 사후 5명의 칼리프와 그 후계자들에게 모두 정통성이 있다고 믿는다. 이들은 ‘순나(관습)을 따르는 사람들’을 뜻하는 ‘수니’를 자처한다. 마지막으로 수피는 철저한 자기부정을 통해 신과 합일을 모색하는 영성주의자다. 

이란은 시아파다. 처음부터 시아파였던 건 아니었다. 사파비 왕조(1501년~1736년)가 들어서기 전까진 수니파가 다수였다. 사파비 왕조를 세운 이스마일1세(1487~1524)는 1507년 티무르 제국이 무너지자 이란 전역을 평정하고 유프라테스 강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대제국을 세웠다. 

그는 이를 위해 이란민족주의를 적극 활용했다. 그 자신은 쿠르드계 아니면 투르크계였음에도 스스로 이란계라고 선포했고 페르시아어로 왕의 칭호인 ‘샤’를 부활시켰다. 그전까지 이슬람제국에선 칼리프나 에미르, 술탄 같은 아랍어 칭호를 사용한 것에 대한 차별화 전략이었다. 또 사파비 왕조가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 이후 950년 만에 재건된 이란제국이란 점도 앞세웠다. 7세기 이후 이란인들은 아랍제국과 몽골제국에서 유능한 행정 관료로 각광받았지만 독자적 국가가 없어 설움을 받아왔다는 점을 파고들어 강력한 구심점을 형성한 것이다. 사파비 왕조는 근대 이란의 원형으로 꼽히는 이유다. 

그 사파비 왕조를 세운 이스마일1세는 자신이 알리의 혈통을 계승한 7대 이맘 무사 알 카짐의 후손이라고 주장한 열혈 시아였다. 그로 인해 시아를 국교로 삼은 사파비왕조 시절을 거치며 이란인의 95%가 시아파로 개종했고 그 동쪽 영토의 상당수가 사파비 왕국에 편입된 이라크 역시 시아파 다수국가(65%)로 바뀌었다.


이원론적이고 초월론적인 나라

일본의 문명사가인 이즈쓰 도시히코가 쓴 ‘이슬람문화’에 따르면 이란이 시아파 종주국이 된 것을 단순한 역사적 산물만으로 볼 수는 없다. 시아파 교리가 이란의 문화적 전통과 부합하는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다른 종교와 달리 아랍인이 개창한 이슬람은 성(聖)과 속(俗)을 분리하지 않는다. 현실공동체의 문제를 다루는 정치와 영혼의 문제를 다루는 종교가 분리되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현세와 내세가 구별되긴 하지만 알라라는 하나의 신에 의해 통합된다. 그 어떤 종교보다 강력한 일원론이다. 

이에 반해 이란인들은 강력한 이원론자다.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으로 세상은 빛과 어둠, 선과 악, 성과 속의 이원론에 입각해 돌아간다고 믿었다. 그래서 현세의 문제에 대해선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내세와 관련해선 지극히 초월론적이다. 그들에게 현세는 존재의 천상적 차원과 악과 어둠의 차원이 투쟁하는 장소다. 

이런 이원론적이고 초월론적 세계관은 시아파의 세계관과 공명한다. 수니파는 알라의 말씀을 기록한 제1성전 ‘꾸란’과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록으로 제2성전으로 불리는 ‘하디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율법학자인 울라마가 최소한의 해석을 가미해 확립한 샤리아(이슬람법)에 입각한 삶에 자족한다. 반면 시아파는 가시적이고 표층적인 진리만 드러내는 샤리아에만 머물지 말고 심층적이고 근원적인 비의(秘意)인 하키카를 꿰뚫어야한다고 주장한다. 무함마드에 필적할 만큼 정통성 있는 영적 지도자(이맘)라 믿는 알리의 마지막 혈통인 무함마드 이븐 하산이 874년 다섯 살의 나이로 자취를 감춘 이래 진리와 정의가 은폐돼 있다는 시아파의 역사관과 궤를 같이 한다.


이맘의 나라

후홀라 호메이니 [GettyImages]

후홀라 호메이니 [GettyImages]

수니파가 심층은 없고 표층만 존재한다는 일원론자라면 시아파는 표층과 심층의 두 겹으로 세상이 존재한다고 믿는 이원론자다. 이런 수니와 시아의 차이를 현실에서 뚜렷이 보여주는 것이 이즈티하드다. 아랍어로 노력이라는 뜻의 이즈티하드는 꾸란과 하디스에 기초해 독자적 유권해석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수니파는 샤리아가 확립된 9세기 중반 이후 이를 금지시켰는데 이를 ‘이즈티하드 문 폐쇄’라고 부른다. 시아파는 일반 신도에겐 이를 금지시키지만 자타 공인된 소수정예의 율법학자에 한해 그 문을 열어 놨다. 

이란 율법학자는 크게 3단계로 나뉜다. 1단계는 ‘호자통 이슬람’이라 부르는 율법학자로 경전에 대한 전통적 해석을 토대로 신자들에게 지침을 내린다. 2단계부터는 이즈티하드가 가능한데 이들을 아랍어로 무즈타히드, 이란어로 아야톨라라고 부른다. 신의 징표라는 뜻이다. 시아파 신도라면 누구나 자신이 추종하는 아야톨라가 있어야 한다. 

이 아야톨라 가운데 학식과 인품이 절륜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인정된 사람을 ‘모방의 원천’이란 뜻의 ‘마르자에 타클리드’라고 부른다. 3단계다. 그것에 대한 이란어 호칭이 바로 대(大)아야톨라로 번역되는 ‘아야톨라 우즈마’다. 2017년 현재 살아 있는 아야톨라 우즈마는 86명이다. 

사파비왕조의 부활을 내걸었던 팔리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종교우위를 관철한 1979년 이란혁명을 이끈 루홀라 호메이니와 그를 계승한 현재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 역시 아야톨라 우즈마에 해당한다. 하지만 1989년 호메이니가 숨진 뒤 일종의 최상급 경칭으로서 현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전설적 존재를 뜻하는 이맘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그 계승자인 알리 하메네이 역시 이맘으로 불린다. 이원론적이었던 이란이 다시 성속합일의 일원론적 국가로 변질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좌다.






주간동아 2020.01.10 1222호 (p4~7)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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