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포인트 시사 레슨

드라마 같은 현실, 현실 같은 드라마

‘보좌관2’의 평행이론과 ‘펀치’의 오래된 미래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입력2019-12-13 15: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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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TBC 드라마 ‘보좌관2’의 최경철(정만식 분) 서울중앙지검장(왼쪽)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 제공 · jtbc, 동아DB]

    JTBC 드라마 ‘보좌관2’의 최경철(정만식 분) 서울중앙지검장(왼쪽)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 제공 · jtbc, 동아DB]

    드라마와 현실이 달리기를 한다. 드라마가 저만치 앞서가는 현실을 열심히 쫓아가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어느새 현실을 추월해 드라마가 먼저 결승선에 도착해 있을 때도 있다. 현실을 토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것이 훗날 현실이 돼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현실에선 ‘원칙수사’를 내건 검찰총장과 ‘검찰개혁’을 내건 법무부 장관이 충돌하더니 결국 장관이 낙마하고 일가족이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여당 대선후보로 거론되던 그 장관의 대타로 급기야 판사 출신인 5선 여성 국회의원이 발탁됐다. 정치권의 바람을 타지 않는다는 강골검사와 법조개혁을 외쳐온 여성 장관이 각을 세우는 모양새. 왠지 기시감(데자뷔)이 들지 않는가.

    윤석열 닮은 ‘보좌관2’의 최경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왼쪽)과 JTBC 드라마 ‘보좌관2’의 송희섭(김갑수 분) 법무부 장관. [뉴시스, 사진 제공 · jtbc]

    조국 전 법무부 장관(왼쪽)과 JTBC 드라마 ‘보좌관2’의 송희섭(김갑수 분) 법무부 장관. [뉴시스, 사진 제공 · jtbc]

    12월 10일 종영된 JTBC 드라마 ‘보좌관2-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대일 극본, 곽정환·오승렬 연출)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정치적으로 좌고우면하지 않고 한번 물면 절대 놓치는 법이 없다는 강골검사 최경철(정만식 분)이다. 

    그는 거물 정치인 송희섭(김갑수 분) 법무부 장관의 최측근인 주인공 장태준(이정재 분)의 구린내를 맡고 꽁지까지 따라붙는다. 경찰 출신인 장태준은 세상을 바꾸고자 검사 출신의 4선 의원인 송희섭을 여당 원내대표에 이어 법무부 장관에 앉힌 일등공신. 그 대가로 여당 공천을 받아 보선에서 당선, 오매불망하던 금배지까지 단다. 

    최경철의 레이더에 잡힌 장태준은 권력자 주변에 기생하는, 권모술수에 능한 모사꾼이다. 그래서 법무장관의 최측근이라는 걸 알면서도 정면수사에 나선다. 하지만 장태준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단칼에 베어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세상을 바꿔보겠다며 정치판에 뛰어들었고, 그러려면 먼저 금배지를 달아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를 위한 발판으로 여당 실세인 송희섭을 선택했고, 그의 아래서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야망을 키워온 인물이다. 그래서 금배지를 달자 조용히 송희섭이라는 거악 척결에 나선다. 



    이를 눈치챈 송희섭은 자신의 사냥개였던 장태준을 사냥하고자 통제하기 어려운 최경철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전격 발탁한다. 출세와는 담 쌓고 지낼 것 같던 최경철은 이에 힘입어 장태준에 대한 전방위 압박에 나선다. 능구렁이 같은 송희섭이 파놓은 함정을 요리조리 피해가면서 불도그 같은 최경철의 맹추적까지 따돌려야 하는 진퇴양난에 빠진 장태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그는 이이제이(夷以制夷) 카드로 기사회생한다. 

    자신의 것인 양 위장하고 송희섭의 아킬레스건을 최경철이 덥석 물게 만든 것이다. 사납게 물어뜯고 난 뒤 그 내용물이 법무부 장관의 비리 첩보임을 알게 된 최경철. 이번엔 그가 진퇴양난에 빠진다. 묻고 넘어가자니 검사로서 평생 지켜온 신념에 반하고, 계속 추적에 나서자니 자신을 중용한 상사에 대한 배은망덕이다. 우직한 신념 하나로 버텨온 최경철의 선택은 장태준의 예상대로 ‘성역 없는 수사’가 되고, ‘법꾸라지’처럼 매번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던 송희섭은 현직 법무장관으로는 최초로 구속된다. 


    윤석열 검찰총장(왼쪽)이 7월 25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리는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에 앞서 당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검찰총장(왼쪽)이 7월 25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리는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에 앞서 당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이런 최경철의 이미지는 현실 속 윤석열 검찰총장과 오버랩된다. 다부진 체격에 이마를 드러낸 짧은 헤어스타일의 외모는 물론, 법과 원칙에 따른 성역 없는 수사를 트레이드마크로 삼은 점에서도 판박이다. 드라마에선 “사람에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한다”는 그 유명한 발언을 직접 꺼내 들진 않았지만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 강골검사라는 점에선 닮은꼴이다. 

    물론 현실 속 윤석열은 서울중앙지검장이 아니라 검찰총장이 된 후 직속상관인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전방위 수사에 나섰고, 현직 장관 구속이라는 불상사로까지 비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드라마와 차별되는 면이 있다. 또 검찰 출신 4선 의원으로 종합비리세트에 가까운 송희섭과 법학자 출신으로 가족 문제 및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의 권한 남용으로 조사받고 있는 조 전 장관을 나란히 비교할 순 없다.

    ‘펀치’의 윤지숙 연상케 하는 추미애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왼쪽)와 SBS 드라마 ‘펀치’의 윤지숙(최명길 분) 법무부 장관. [뉴시스, 사진 제공 · SBS]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왼쪽)와 SBS 드라마 ‘펀치’의 윤지숙(최명길 분) 법무부 장관. [뉴시스, 사진 제공 · SBS]

    이 경우는 드라마가 현실을 열심히 따라간 경우일까. 조 전 장관이 취임 35일 만에 사임한 시점이 10월 14일이다. 드라마 방영은 11월 11일 시작됐다. 그러나 드라마가 편집을 제외하고 대부분 사전 제작됐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8월 9일 조 전 장관 내정 발표 이후 불거진 ‘조국 사태’를 옆으로 곁눈질하며 나란히 달렸다고 봐야 할 듯하다. 

    드라마가 현실을 앞질러 달린 경우도 있다. 12월 5일 문재인 대통령은 조 전 장관의 후임으로 추미애 의원을 지명했다. 추 장관 후보자는 12월 9일 인사청문회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일성으로 검찰개혁을 강조했다. 

    “검찰개혁을 향한 기대와 요구가 더 높아졌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검찰개혁의 요체라고 한다면 국민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윤 검찰총장에 대해 “서로 모르는 사이고, 헌법과 법률에 의한 기관 간 관계인 것이지, 더는 개인 간 관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지만 의례적 덕담이 빠져 있다는 점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여성 법무부 장관과 남성 검찰총장의 이런 긴장감 어디서 봤더라. 

    2014년 12월~2015년 2월 방영된 SBS 드라마 ‘펀치’(박경수 극본, 이명우·김효언 연출)를 기억하는가. ‘개룡남’으로 태어나 검사가 됐지만 이리저리 권력에 짓밟히면서 세상에 복수하기 위해 지옥행 급행열차에 올라탄 사나이 박정환(김래원 분)의 좌충우돌을 그린 드라마. 박정환은 여기서 악당 2명과 대결한다. 평생 충성을 맹세하고 온갖 지략을 동원해 검찰총수 자리에 앉혀준 흙수저 출신 마키아벨리스트 이태준(조재현 분) 검찰총장과 그런 그와 대조적으로 모든 검찰의 신망을 받는 법조 명망가 출신의 윤지숙(최명길 분) 법무부 장관이다.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두 마리 말이 앞만 보고 쎄리 뛰가뿌야지(막 뛰어가야지). 서로 노려만 보면 남들 보기 부끄러울 낀데….” 

    경상도 출신인 이태준이 검찰총장 후보자가 된 뒤 윤지숙 법무부 장관을 찾아갔다 면박을 당하자 내뱉은 말이다. 그런 이태준에게 윤지숙은 “국민이 바라보는 검찰은 이렇다”며 찻잔에 담긴 블랙커피를 보여준다. 공안검사 출신으로 정치권과 손잡고 줄타기를 벌인 이태준처럼 온통 시커멓게 물들었다는 암시다. 이어 설탕과 우유를 타면서 “청렴한 리더가 나서고 강직한 후배들이 뒤따르면, 우리 검찰도 조금은 깨끗해지겠죠”라며 검찰개혁을 강조한다. 자신이 설탕처럼 순백한, 청렴한 리더라는 소리다. 

    이전투구(泥田鬪狗)로 잔뼈가 굵은 이태준이 가만 있지 않는다. 티스푼에 설탕을 올려놓고 라이터불로 검게 그을린 뒤 커피에 타면서 “흰옷 입고 세상에 나섰지만도 흙도 묻고, 때도 타고, 남들은 야는 흰데 점마는 와 이리 시꺼멓노 하고 손가락질하지만서도. 장관님. 잊지 마이소. 이것도 설탕입니데이”라고 응수한다. 

    초임 검사 시절 철석같이 믿었던 윤지숙에게 배신당한 박정환은 이태준이 내려준 동아줄을 붙잡고 아등바등 살아남은 뒤 때는 잔뜩 묻었지만 의리 하나만은 진국이라는 이태준을 위해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한다. 결국 이태준이 검찰총장이 되면서 사실상 2인자에 올라 득의만만해진 박정환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긴다. 악성 뇌종양으로 6개월 시한부 인생 판정을 받은 것.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수술을 받다 의식을 잃자 이태준은 바로 자신의 허물을 박정환에게 다 뒤집어씌운다. 의식을 되찾은 박정환은 자신의 잘못된 선택에 책임지기로 결심하고 자신이 저지른 악업을 청산한 뒤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한다.

    이태준과 윤지숙 vs 윤석열과 추미애

    SBS 드라마 ‘펀치’의 윤지숙(최명길 분  ·  왼쪽)과 이태준(조재현 분). [사진 제공 · SBS]

    SBS 드라마 ‘펀치’의 윤지숙(최명길 분  ·  왼쪽)과 이태준(조재현 분). [사진 제공 · SBS]

    정치권력을 비판한 ‘추적자’(2012), 경제권력을 비판한 ‘황금의 제국’(2013)과 함께 박경수 작가의 권력 3부작으로 꼽히는 ‘펀치’는 검찰권력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없는 죄를 만들어내고 지은 죄를 덮어주며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에 빌붙어 스스로 거악이 돼가는 검찰의 추악한 모습을 정면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이태준과 윤지숙은 동전의 양면 같다. 이태준은 서민적 의리남으로 포장된 법비(法匪)의 우두머리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비상한 두뇌와 노회한 처세술로 자기세력을 만든 뒤 어르고 달래며 후배 검사들을 휘어잡는다. 내 사람이다 싶으면 철저히 끌어안고, 아니다 싶으면 잔인하게 짓밟는다. 

    반면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엘리트 코스만 밟은 윤지숙은 ‘법 앞의 평등’을 외치는 청렴강직의 화신이자 개혁의 상징이다. 백조처럼 고귀한 자태를 뽐내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큼은 예외라고 믿는, 뼛속까지 엘리트주의자다. 다른 사람의 악행은 천박한 짓이고 자신의 악행은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희생으로 포장한다. 

    이런 두 사람을 현실 속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게 고스란히 투영할 순 없다. 오히려 이태준과 윤지숙의 장점을 골고루 나눠 가졌다고 할 만하다.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고 따르는 후배가 많은 윤석열 총장은 원칙에 충실한 검사라는 평판 덕에 한직으로 밀려났다 기사회생한 경우다. 반대로 추 장관 후보자는 서민 가정 출신임에도 대쪽 같은 판결로 명성을 얻었고, 정치에 입문한 후에도 개혁적 이미지를 정치 자산 삼아 5선에 성공했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은 공통점이 더 많아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처한 위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위치에너지는 클 수밖에 없다.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지상과제로 삼은 검찰총장과 그런 검찰에 개혁의 메스를 대야 하는 법무부 장관으로 처지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그 둘을 싣고 나란히 달리는 쌍두마가 될지, 마주보고 달리는 철마가 될지는 지켜봐야 할 일.

    국민은 드라마의 비극적 결말만큼은 피하기를 바랄 뿐이다. ‘펀치’ 결말부에서 이태준은 징역 10년형, 윤지숙은 징역 15년형을 선고받는다. 주인공이 보스로 모셨던 인물과 사생결단의 대결을 펼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저지른 죄악을 고백한 뒤 처벌을 달게 받는다는 결말 등 여러모로 ‘펀치’를 빼닮은 ‘보좌관2’의 법무부 장관 송희섭은 징역 15년형을 언도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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