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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민주주의의 적, 러시아 트롤군을 아시나요?

그 출발지이자 종결지가 될지도 모르는 우크라이나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21세기 민주주의의 적, 러시아 트롤군을 아시나요?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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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troll)은 북유럽 신화나 전설 속 덩치 큰 괴물 또는 장난기 많은 요정을 말한다. 주로 숲이나 동굴처럼 외딴곳에 살면서 인간을 악의 없이 놀려먹는 도깨비와 비슷한 존재였는데, 후대로 내려오면서 인간에 대한 악의로 가득한 그로테스크한 괴물의 이미지가 강화됐다.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 게임에 등장하는 몬스터는 크게 오크와 트롤로 나뉜다. 오크가 흉측한 외모로 한몫한다면 트롤은 거대한 덩치로 한몫한다. 특히 폴 앤더슨의 SF ‘세 개의 심장과 세 마리의 사자’(1961) 이후 아무리 큰 타격을 입어도 금방 회복하는 재생능력을 갖추게 됐다. 

몬스터로서 트롤은 거대한 덩치에 힘이 좋고 재생능력까지 탁월하지만 지능은 아둔한 존재다. 하지만 인터넷 트롤이라고 부를 때는 의미가 달라진다. 온라인상에서는 순전히 재미로 분란을 일으키는 악질적 유저를 뜻한다. ‘관종’이 자기 과시를 위해, 키보드 워리어가 분란 자체를 즐기기 위해 분란을 일으킨다면, 트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분란을 일으킨 뒤 멀찍이 물러나 불구경하듯 즐기는 사디스트에 가깝다. 북유럽 전설 속 트롤이 인간의 아기와 자기네 아기를 바꿔치기하는 체인질링(changeling)을 통해 인간 사회에 혼란과 반목을 불러일으킨 것에서 기원한다.


트롤, 인터넷 트롤, 러시아 트롤군

최근엔 ‘러시아 트롤군(Russia’s Troll Army)’ 또는 ‘러시안 웹여단(Russian Web Brigade)’이라는 용어가 외신과 번역서에 자주 등장한다. 인터넷 트롤 중에서도 러시아인을 뜻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거기엔 다른 정치적 함의가 더해진다. 민주주의 체제를 교란시키기 위해 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받아 조직적으로 허위정보와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여론 조작과 극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사이버심리전단을 가리킨다. 

한국 ‘댓글부대’를 떠올릴 만하다. 댓글부대는 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게시물에 지지 댓글을 달고 불리한 게시물에 악플을 달며 조회수 조작과 여론 조작에 머문다. 이런 작업을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자동적으로 수행하는 인터넷 봇(Internet bot)이 동원되기도 한다. 



러시아 트롤군은 이 수준을 뛰어넘는다. 가짜 소셜미디어 계정을 수백만 개 만들어 운영한다. 수백 만개의 가짜뉴스 사이트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그럴 듯한 가짜뉴스를 만들고 유통시킨다. 상대방에 유리한 가짜뉴스를 만든 뒤 이것이 가짜뉴스임을 만천하에 폭로하는 식으로 상대에 타격을 가한다. 심지어 지지단체는 물론 반대단체의 사이비 사이트까지 경쟁적으로 구축하고 양측의 치열한 논쟁까지 연출한다. 

댓글부대가 특정 세력에 유리한 여론 조성이 목표라면, 러시아 트롤군은 이를 넘어 뭐가 진짜고 뭐가 가짜인지 혼란을 조성하는 게 목표다. 이를 통해 민주적 토론에 염증을 느끼게 만들어 민주주의 자체를 황폐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댓글부대가 이판이냐 사판이냐를 놓고 줄다리기를 펼치는 수준에 머문다면 러시아 트롤군은 아예 ‘아사리판’을 만들어 민주주의라고 하면 진저리치게 하려는 것이다.


작전명 : 브렉시트 &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뉴욕 5번가의 트럼프타워.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뉴욕 5번가의 트럼프타워. [AP=뉴시스]

올해 국내에 번역된 티머시 스나이더 미국 예일대 교수의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와 ‘뉴욕타임스’ 서평가 출신인 미치코 가쿠타니의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에는 러시아 트롤군의 만행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특히 2016년 영국과 미국에서 각각 발생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에서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를 확인하면 기절초풍할 만하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세워진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IRA)’에 근무하는 수백 명은 서구민주주의를 교란, 훼손시키고 부식시키기 위한 사실상의 심리전단 부대다. 이들의 표적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재벌) 과두제를 위협하는 서구민주주의다. 구체적으로 서구민주체제의 주요 구성원인 미국과 유럽연합(EU),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분열, 약화시키는 것이다. 주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유튜브 같은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여론 분열과 이전투구 상황을 조성한다. 

브렉시트 때는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영국 유권자들을 상대로 EU 탈퇴를 지지하는 메시지를 수백 개 발송했다. 영국인을 가장해 직접 인터넷 토론에 뛰어들어 암약한 IRA 직원도 있었지만 트위터 봇을 통해 발송된 메시지가 3분의 1을 차지했다. 브렉시트 관련 글을 게시한 트위터 계정 419개가 IRA에 적을 두고 있었으며, 이 계정은 모두 미국 대선 기간 당시 트럼프 지지활동에 나섰다고 한다. IRA 외에도 러시아의 지령을 받은 유사조직이 여럿 있는 것으로 파악됐는데, 브렉시트 투표 당시 정치적 내용을 트위터에 올리는 봇의 90% 이상이 영국 바깥에 소재한 것이었다고 한다. IRA가 과거 영국의 골칫덩이였던 아일랜드공화국군의 약자임을 기억한다면 쓴웃음 짓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선거운동 기간의 상황을 보면 더 기가 막힌다. 2016년 한 해 동안 페이스북 계정 100만 개가량이 수천만 개의 ‘좋아요’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도구를 사용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짜뉴스를 뉴스피드에 밀어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놀란 페이스북이 2016년 11월 대선 직전에 폐쇄한 가짜계정만 580만 개에 이른다. 2018년 1월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페이스북에서 추정한 가짜계정 수는 6000만 개에 달한다. 

러시아의 개입이 확실한 IRA만 놓고 봤을 때 미국인을 가장해 470개의 페이스북 계정이 개설됐다. 이 중 6개 계정에 올라온 콘텐츠가 3억4000만 개의 공유를 받았으며, 최소 1억2600만 명이 이를 접한 것으로 조사됐다. IRA 측 계정으로 확인된 트위터 계정은 3814개로 조사됐고, 최소 140만 명의 미국인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트위터 메시지의 리트위트는 봇을 통해 이뤄지기 쉬운데 트위터가 뒤늦게 찾아낸 러시아 봇은 5만 개에 이르렀다. IRA를 빼고도 의심스러운 계정이 하루 100만 개씩 발견된다고 한다.


뿌리 깊은 러시안 커넥션

블라디슬라프 수르코프(왼쪽)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뉴시스]

블라디슬라프 수르코프(왼쪽)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뉴시스]

러시아가 단순히 자기 입맛에 맞는 트럼프의 당선을 자발적으로 도왔다고 생각하면 순진한 것이다. 러시아가 1990년대부터 트럼프를 파트너로 점찍고 대선후보로 키워왔다는 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러시아 마피아들은 1990년대부터 미국 뉴욕 5번가에 있는 트럼프타워의 아파트를 사고팔면서 돈세탁을 했다. 그 동쪽 끝 유엔본부 근처에 세워진 트럼프월드타워의 호화 아파트 중 3분의 1 또한 옛 소련 출신 인사나 단체가 구입했다. 플로리다에 있는 트럼프 부동산 매물 700개를 매입한 것은 국적 불명의 페이퍼컴퍼니들이었는데 그 역시 러시아 자본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2004년 트럼프가 파산했을 때 미국의 어떤 은행도 그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았으나, 유일하게 돈을 빌려준 은행이 도이체방크다. 흥미롭게도 도이체방크는 2011~2015년 러시아 고객을 위해 100억 달러 정도를 세탁했음이 드러났다. 트럼프는 그즈음 도이체방크에 진 채무의 상환을 거부했다. 대선 몇 주 전 트럼프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에게 2억8000만 달러의 대출을 연장해준 은행도 도이체방크였다. 트럼프의 맏아들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2008년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가진 수많은 자산에서 러시아인들이 압도적 비율을 차지한다. 엄청난 돈이 러시아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게 눈에 보인다.” 

대선후보 시절 트럼프가 미국의 오랜 전통을 깨고 소득세 신고를 공개하지 않은 이유가 어디 있을까. 이를 공개할 경우 러시아와 돈거래 내역이 추적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이 트럼프와 러시아의 커넥션을 의심하는 사람들의 추론이다. 

그렇게 파산한 부동산개발업자는 러시아의 후원을 받아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리고 그런 비현실을 현실로 바꿔치기하기 위해 ‘어프렌티스’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 배역을 연기하며 인기를 모았다. 트럼프가 러시아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에 가까운 존재라는 점은 그가 쏟아내는 메시지의 상당수가 러시아에서 생산한 것과 일치한다는 데서도 발견된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미국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음모론이 그랬다. 많은 사람은 이 가짜뉴스가 미국에서 생산됐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러시아국영방송 RT가 2010년부터 유포하기 시작한 것이다. 트럼프가 이 가짜뉴스의 확성기가 된 것은 그 1년 후인 2011년부터였다. 이처럼 인종, 이민, 총기 소지와 관련한 트럼프의 트위트 메시지가 푸틴 정부의 관점과 일치하는 것을 단순히 유유상종으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러시아 트롤군의 진군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있다. 2017년 프랑스 대선과 네덜란드 총선에서 극우세력의 지지율 급상승이라는 개가를 올렸다. 러시아 트롤군의 침략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나라가 최소 19개국에 이른다. 

그럼 러시아 트롤군의 목표는 뭘까. 러시아 독재자 푸틴은 왜 서방세계에 러시아 트롤군을 침투시켜 정치 분열과 여론 조작을 일삼는 것일까. 푸틴이 꿈꾸는 대러시아(옛 소련 영토를 러시아로 통합)로 세력 판도를 넓히는 데 최대 걸림돌이 EU와 나토이기 때문에 이를 분열시키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민주주의 흉내만 내는 푸틴 체제를 유지하려면 선진민주체제를 망가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환멸을 심어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미 하원 탄핵조사에 출석한 윌리엄 테일러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대사(위)와 탄핵 관련 하원 청문회에서 게시된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패턴 그래픽(오른쪽). [AP=뉴시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미 하원 탄핵조사에 출석한 윌리엄 테일러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대사(위)와 탄핵 관련 하원 청문회에서 게시된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패턴 그래픽(오른쪽). [AP=뉴시스]

스나이더 교수에 따르면 푸틴 체제는 푸틴이 죽고 난 후 누가 그 자리를 승계하느냐라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승계 문제가 불거지면 안정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서구 민주주의체제에 대한 국민적 선망이 커지게 되고 소수의 신흥재벌을 위한 이익공동체로서 러시아의 도둑정치(Kleptocracy)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이를 차단하려면 푸틴에게 적대적인 서방 민주국가들을 무질서와 혼란 상태로 몰아넣고 “민주주의 한다고 설치는 저 나라들의 꼴을 봐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주목받는 러시아 이데올로그가 블라디슬라프 수르코프(55)다. 포스트모던 연극연출가 출신으로 보리스 옐친 대통령실 행정부실장과 푸틴 정부의 대외경제담당 부총리를 역임한 수르코프는 ‘탈진실(Post-Truth)’을 정치현실에 주입시킨 인물로 꼽힌다. 그는 KGB(국가보안위원회) 출신인 푸틴을 옐친의 후계자로 삼고자 위기 상황을 조작한 뒤 이를 해결하는 영웅으로 푸틴을 부각시켰다. 이후로도 테러와 내전 등 위기 상황을 연출하고 그 해결자로 푸틴을 내세우면서 강력한 지도자 아래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는 정치를 미덕으로 삼는 ‘관리 민주주의’의 주창자이었다. 

‘러시아 허무주의의 대가’로 불리는 수르코프의 수법은 이렇게 요약된다. 현실과 모방이 뒤섞인 포스트모던한 세계관을 토대로 진짜와 가짜를 마구 뒤섞어버린 뒤 ‘어차피 세상에 진실 같은 것은 없다’는 허무주의를 주입함으로써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과 염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수르코프의 이런 수법이 해외에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부터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뿌리가 같다는 점에서 대러시아 실현을 위한 시금석 같은 나라다. 하지만 2012년 푸틴의 대통령 재선 이후 EU와 나토 가입을 서둘렀다. 초조해진 푸틴은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강제병합한 후에도 내전 상황을 조성하면서 영향력 확대를 멈추지 않았다. 러시아 트롤군이 만들어진 것도 반러 세력을 공격하고 친러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서방국가들이 푸틴을 맹공격하자 EU와 나토의 주축국인 영국, 미국을 직접 겨냥하게 된 것이다. 

트럼프에 대한 탄핵조사가 불거진 계기가 ‘우크라니아 스캔들’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우크라이나에서 기원한 러시아 트롤군이 다시 승전고를 울리게 될 것인가. 아니면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경고한 것처럼 “방심할 수 없는 외세의 책략”에 부화뇌동해 미국을 파괴할 회오리바람을 몰고 올 “교활하고 야심차며 파렴치한 인물”을 패퇴시키는 전환점이 될 것인가.






주간동아 2019.12.06 1217호 (p8~11)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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