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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의 새싹

“게임의 주인은 개발사가 아닌 유저”

블록체인 게임 엔진 개발사 ‘플라네타리움’의 서기준 대표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게임의 주인은 개발사가 아닌 유저”

플라네타리움의 ‘나인 크로니클’. [지호영 기자]

플라네타리움의 ‘나인 크로니클’. [지호영 기자]

2000년대 들어 게임은 더는 혼자 하는 놀이가 아니게 됐다. 인터넷을 통해 세계 각국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콘텐츠로 각광받았다. 개발사가 만들어놓은 세계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육성하는 MMORPG(다중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장르도 이때 등장했다. 가상세계에서 현재의 자신과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매력이 많은 사람을 매료시켰다. 지금이야 AOS(리그 오브 레전드가 대표적), FPS(1인칭 슈팅 게임) 장르에 밀린다고 하지만 여전히 MMORPG 애용자층은 두텁다. 덕분에 엔씨소프트의 MMORPG ‘리니지’와 블리자드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MMORPG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게임사가 게임 운영을 종료하면 유저들의 추억이 담긴 세계가 그대로 사라진다는 것. 수익 등을 이유로 게임사가 유저들과 상의 없이 게임세계의 설정을 일부 고치기도 한다. 게임 내에서는 유저가 주인공이라지만, 게임 속 세계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 존재는 개발사다. 

블록체인 게임 엔진 개발사 ‘플라네타리움’은 게임 주도권을 유저에게 돌려주려 한다. 유저가 게임 개발 및 조정 단계부터 참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새로운 시도에 국내외 게임 개발사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게임 개발사 유비소프트의 글로벌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앙트레프레너 랩’에 아시아 개발사로는 최초로 선정되기도 했다. 유비소프트는 ‘어쌔신 크리드’ ‘저스트 댄스’ ‘톰클랜시’ 시리즈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서기준 플라네타리움 대표를 10월 28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어떻게 블록체인과 게임을 연결할 생각을 하게 됐나. 

“넥슨에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게임을 개발했고, 이후 드롭박스에서 유틸리티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했다. 게임을 개발하다 유틸리티 프로그램을 만드니 갈증이 생겼다. 그래서 문서나 업무로 사람을 연결하는 것보다 감성과 즐거움으로 연결할 수 있는 방향을 찾게 됐다. 재미로 게임이나 관련 서비스 개발을 해보고 있었는데, 드롭박스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가 소개해줘 이더리움재단에 대해 알게 됐다. 블록체인을 접하면서 내가 원하는 게임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 게임 위해 블록체인 개발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원래 생각하던 게임은 어떤 것이었나. 

“원체 ‘이브 온라인’(SF 장르의 MMORPG 게임) 등 여러 사람이 교감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방식의 게임을 좋아한다.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유저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게임 개발이 가능하다. 처음에는 아는 개발자들을 모아 취미로 블록체인 RPG 개발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게임 개발 가능성에 확신을 갖게 됐고 개발에 착수했다.” 

블록체인에 게임을 얹는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과거 이더리움의 고양이 모으기 게임처럼 단순한 수집만 가능한 것 아닌가. 

“아니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다양한 게임을 만들 수 있다. 이더리움 등 기존 암호화폐는 가치 교환에 중점을 둬 복잡한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이 무리였다. 이 때문에 수집 등 단순한 게임만 얹을 수 있었다. 우리는 아예 오픈소스(소스가 공개된 프로그램.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고쳐 쓸 수 있다) 블록체인 라이브러리 ‘립플래닛(Libplanet)’을 새로 만들었다. 이제는 거의 모든 장르의 게임에 이를 적용할 수 있다” 

오픈소스로 블록체인을 개발한 이유가 있나. 

“2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개발자로 활동하면서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 가장 즐거웠다. 여러 사람이 모여 코드로 소통하는 것이 오픈소스의 매력이자 문화다. 게임을 만드는 방식에 좀 더 다양한 생각을 녹여낼 수 있고, 추후 유저가 게임에 참여할 때도 자유도를 높일 수 있다고 봤다.”


유저와 함께 콘텐츠 바꿔

플라네타리움 사무실. [지호영 기자]

플라네타리움 사무실. [지호영 기자]

그렇다면 블록체인을 적용한 게임은 기존 게임과 어떻게 다른가. 

“이전 게임이 게임사(회사)와 유저(고객)의 연결이었다면, 블록체인 적용 게임은 사람들끼리 연결되는 하나의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유저와 회사를 비롯해 게임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게임의 발전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게임 개발에 유저의 의견이 반영된다는 얘기인가. 

“기본 틀은 개발사가 내놓겠지만, 이후 게임이 나아갈 방향을 유저와 함께 결정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지금은 개발사가 핵심 재화의 희소성을 조정해 게임 내 경제나 세부 사항을 고칠 수 있다. 특정 유저의 계정을 개발사가 지워버리는 일도 간혹 발생한다. 하지만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게임에서는 개발사의 전횡이 불가능하다. 모든 유저가 블록체인에 참여하기 때문에 게임 내 작은 부분을 고치려 해도 다수 유저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유저가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공이 많아진다는 뜻 같다. 온라인 게임은 기획 과정에서 생긴 문제를 대규모 패치로 수정한다. 블록체인 기반의 게임은 대규모 수정이 어려운 만큼, 처음에 구조를 잘 잡아야 할 것 같다. 

“그보다 중요한 점은 일방적이지 않게 게임을 업데이트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게임들을 보면 유저 간 소통보다 개발사가 내려주는 콘텐츠를 유저가 소비하는 방식에 가깝다. 게임사가 콘텐츠를 공급하더라도 유저와 소통을 거친 다음에 공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클래식’의 출시 및 성공만 봐도 유저와 소통은 중요하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경우 개발사인 블리자드의 계속된 패치에 공감하지 못하는 유저들이 늘어났다. 일부 유저는 패치 이전의 서버를 따로 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개발사가 이를 거부했고, 결국 유저들이 패치 이전의 게임을 사설 서버로 운영해왔다. 해당 서버의 수익이 꽤 커지자 개발사가 직접 패치 이전의 ‘클래식’ 서버를 열었다. 그러자 게임 커뮤니티는 물론 유저들 사이에서도 기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보다 반응이 좋았다.” 

플라네타리움은 립플래닛을 이용한 게임 ‘나인 크로니클’을 올해 안에 내놓을 계획이다. 모바일 RPG 게임의 형식으로 캐릭터를 성장시키고 아이템을 모아가면서 준비한 스테이지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나인 크로니클’은 어떤 게임인가. 

“던전 클리어형 턴제 RPG로, 기본적으로는 기존 턴제 모바일 RPG의 문법을 따른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이템 착용에 전략적 요소를 추가했다는 것이다. 기존 RPG 게임의 아이템은 상성과 우열이 존재했다면, ‘나인 크로니클’의 아이템은 상성이 더 중요하다. 스테이지별 상성을 파악해 아이템을 선택해야 클리어할 수 있다. 최근 유행하는 오토체스류의 게임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아이템으로 패를 구성해 겨루는 게임이다.” 

지금 온라인 게임은 대부분 돈을 낸 만큼 게임을 이용하는 방식과 게임 이용은 공짜지만 게임 내 재화를 유료로 사는 ‘프리 투 플레이’ 방식으로 나뉜다. ‘나인 크로니클’은 과금 방식이 다를 것 같다. 

“여러 방식을 택할 수 있다. 블록체인 생태계만 제대로 기능한다면 개발사가 돈을 벌 수 있는 방식은 다양하다. 기본적으로는 코인 판매가 있다. 게임 코인을 100개만 찍겠다 가정하고 개발사인 우리가 20개를 갖고 나머지를 유저에게 판매하는 방식이다. 이외에 아이템이나 게임 내 화폐를 코인으로 만드는 방식도 있다. 개발사가 화폐나 아이템을 늘릴 수는 없지만 거래수수료를 받아 수익을 낼 수도 있다. 유저는 유저대로 게임 내에서 코인을 벌 수 있다. 블록체인이 오픈소스 방식이니 유저가 게임 내에서 새로운 콘텐츠나 스테이지를 만들고 이를 제작사가 코인으로 사는 것도 가능하다. 지금까지는 유저가 제작자에게 일방적으로 돈을 지급했다면, 블록체인 환경에서는 이 관계가 유동적이다. 기존 과금 방식과는 완전히 다르게 운영될 것이다.”


설득하려면 먼저 재미를 증명해야

다른 장르의 게임을 블록체인에 올릴 계획은 없나. 

“있다. ‘마인크래프트’ 형식의 샌드박스 장르와 실시간 MMORPG 장르를 올릴 계획이다. 사실 블록체인 게임을 만들겠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이 두 장르다. ‘마인크래프트’를 즐기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게임 세상에서 여러 명이 함께 자원을 채취해 집을 짓거나, 내부에서 맵을 이용해 게임을 만들어도 이를 쉽게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개인방송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공개할 수 있어도 이걸로는 부족하다. 블록체인 위에서 샌드박스형 게임이 돌아간다면 이를 해결할 수 있다. 유저가 만든 모든 창작품은 블록체인 위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맵을 아들이 물려받아 맵을 꾸미고, 그 맵에서 게임을 즐기는 일도 충분히 가능하다. 더 나아가 맵 에디팅을 통해 유저들이 완전히 새로운 게임을 만들고 이를 분리시킬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최근 유행하는 게임은 대부분 유저가 맵 에디터로 만든 ‘유즈 맵’에서 시작했다.” 

추후 개발 계획도 잡혀 있나. 

“굳이 플라네타리움이 해당 게임을 개발하지 않아도 된다. 다른 개발사와 협업해 진행해도 된다. 원래 플라네타리움의 궁극적 목표는 게임 개발이 아니라 블록체인 게임 개발 엔진을 만드는 것이다. ‘나인 크로니클’ 등을 출시하는 것도 설득하기 위해서다. 블록체인 게임 개발 엔진을 염두에 둔 곳은 대부분 게임 개발 후 상황만 설명한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다양한 게임을 올릴 수 있으니 개발은 개발사에 맡기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래서는 개발사의 참여가 늦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개발사를 설득하려고 게임을 만드는 것인가. 

“개발사와 유저를 동시에 설득할 계획이다. 일단 게임은 문화 콘텐츠다. 어떤 기술을 사용했느냐보다 얼마나 재미있느냐가 중요하다. 블록체인이 게임에 이용되려면 블록체인 기반 게임만이 갖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이를 보여주고자 직접 게임 개발에 나선 것이다. 올해 안에 ‘나인 크로니클’을 공개하고, 동시에 개발사들을 만나 블록체인 기반의 게임을 개발할 예정이다.”






주간동아 2019.11.08 1213호 (p42~45)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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