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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정상회의 취소한 칠레, 청년실업률 20% 육박

불평등에 분노한 글로벌 봉기, 레바논·이라크 젊은 층으로 확산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정상회의 취소한 칠레, 청년실업률 20% 육박

칠레 국민 120만여 명이 수도 산티아고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ACN]

칠레 국민 120만여 명이 수도 산티아고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ACN]

‘유스퀘이크(youthquake)’는 영국 옥스퍼드사전이 2017년 선정한 올해의 단어다. 젊음(youth)과 지진(earthquake)의 합성어인 유스퀘이크는 젊은이들의 행동과 영향력으로 발생하는 중대한 문화적·정치적·사회적 변화를 뜻한다. 1960년대 패션잡지 ‘보그’의 편집장 다이애나 브릴랜드가 당시 영국에서 유행하던 청년 문화를 묘사하며 처음 사용했다. 유스퀘이크가 2017년 단어로 선정된 이유는 6월 실시된 영국 총선에서 집권여당인 보수당이 참패하고 노동당이 약진했는데 진보적 정책을 지지한 청년 표가 결과를 좌우했기 때문이다. 

최근 칠레, 레바논, 이라크 등 각국에서 분노한 청년층이 반정부 시위에 앞장서며 또 다른 의미의 유스퀘이크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앵그리 영’(angry young·분노한 젊은 층) 세대의 봉기 또는 반란이 새로운 트렌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칠레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APEC) 정상회의(11월 16~17일)와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5·12월 3~13일)가 취소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은 수도 산티아고의 지하철 요금 인상에 반발한 고교생과 대학생의 시위 때문이다. 칠레 정부는 10월 6일 국제유가 상승과 페소화 가치 하락을 이유로 산티아고의 출퇴근시간 등 피크타임대 지하철 요금을 800페소(약 1328원)에서 830페소(약 1378원)로 올렸다. 30페소 인상에 불과하지만 이에 반발한 고교생과 대학생들이 무임승차를 하거나 지하철 역사의 회전문을 파손하고 차량의 비상 브레이크를 작동시키는 등 저항운동을 벌였다.


누적된 불만 한꺼번에 폭발

칠레 산티아고 시민들이 지하철 요금 인상에 반대하며 시위하고 있다(왼쪽). 산티아고 한 지하철역에서 불에 타고 있는 전동차. [prensenza, Periodico El Progreso]

칠레 산티아고 시민들이 지하철 요금 인상에 반대하며 시위하고 있다(왼쪽). 산티아고 한 지하철역에서 불에 타고 있는 전동차. [prensenza, Periodico El Progreso]

10월 30일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
(APEC) 정상회의 취소를 
발표하고 있다. [Merco Press]

10월 30일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 (APEC) 정상회의 취소를 발표하고 있다. [Merco Press]

이렇게 시작된 반정부 시위가 갈수록 확산하면서 10월 25일 산티아고에서는 칠레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인 120만여 명(산티아고 전체 인구는 600만 명)의 시민이 참가한 시위가 열렸다. 수십 년간 누적된 고물가와 생활고, 빈부격차 등에 대한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었다. 혼란을 틈타 방화와 상점 약탈 등도 벌어졌다. 역사들이 파괴되는 바람에 지하철 운행도 사실상 중단됐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와 야간통행금지를 선포하고 군을 투입했음에도 시위가 계속돼 20명이 사망하는 등 엄청난 인적·물적 피해가 발생했다. 

결국 피녜라 대통령이 APEC 정상회의와 COP25를 개최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각종 수습책을 제시했지만 지금까지 시위는 진정되지 않고 있다. 다수의 국가 정상이 참석하는 대형 국제회의가 이처럼 개최 직전 취소된 것은 사상 처음이다. 1989년 창설된 APEC의 경우 해마다 열리는 정상회의가 중단되거나 취소된 적이 없었다. 피녜라 대통령은 지하철 요금 인상을 철회하는 것은 물론, 연금과 최저임금 인상안, 공공서비스 요금과 의료비 인하안, 법인세 감면 계획 철회 같은 세제 개편안 등도 내놓았다. 또 경제, 내무, 재무 등 장관 8명을 교체했으며 국가비상사태와 야간통행금지 조치도 해제했다. 



칠레에서 젊은 층이 주도한 반정부 시위가 이처럼 장기화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심각한 빈부격차와 양극화 때문이다. 칠레는 선진국 모임이라는 얘기를 들어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가운데 소득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다. 인구 1%가 부의 33%를 차지하고 있다. 칠레 노동자의 절반이 한 달 40만 페소(약 66만 원) 미만의 수입으로 살아간다. 시위대가 ‘30페소가 아니라, 30년이 문제다(NO SON 30PESOS, SON 30 ANOS)’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독재정권을 종식시킨 민주화 이후 30년이 지났지만 소득불평등은 더욱 나빠졌다. 칠레 역대 정부는 복지 혜택 확대 등 포퓰리즘 정책으로 하위계층인 서민들의 불만을 무마해왔다. 하지만 포퓰리즘 정책의 재원인 구리 등 천연자원의 가격이 지난해부터 세계경제 악화로 급락했다. 이 때문에 피녜라 대통령은 부채를 줄이고자 강력한 긴축정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경제상황이 나쁘다 보니 청년층(만 15~24세) 실업률은 19.2%에 달한다.


레바논 국민이 수도 베이루트에서 인간띠 잇기 시위를 벌이고 있다(왼쪽). 10월 29일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가 반정부 시위에 굴복해 사퇴를 발표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Anadolu]

레바논 국민이 수도 베이루트에서 인간띠 잇기 시위를 벌이고 있다(왼쪽). 10월 29일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가 반정부 시위에 굴복해 사퇴를 발표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Anadolu]

레바논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레바논 정부는 10월 17일 세수 증대를 위해 국민이 많이 쓰는 와츠앱(WhatsApp) 등 스마트폰 메신저 앱에 하루 20센트(약 230원) 세금을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반발한 국민들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항의 시위를 벌였다. 만성적인 민생고와 실업난에 고통받던 레바논 국민에게 ‘와츠앱 세금’은 누적된 분노에 불을 붙이는 도화선이 된 셈이다. 특히 10월 27일에는 국민 17만여 명이 참가해 국토 전체를 잇는 170km 인간 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국기를 몸에 감은 채 국가를 부르며 민생고와 실업난 해결, 부패 청산, 정권 퇴진 등을 촉구했다.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는 공무원 임금 50% 삭감, 균형예산 편성, 통신 분야 민영화 같은 개혁 조치로 시위 사태를 무마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이후 사임했다. 대표적 재벌 출신인 하리리 전 총리는 2009〜2011년 총리를 역임했으며, 2016년 12월 다시 총리로 선출됐다. 

레바논 시위 사태를 주도한 젊은 층이 분노한 이유는 실업난과 소득불평등에 대한 누적된 불만 때문이다. 게다가 민생고를 해결하지 않고 권력을 독점하며 부를 불리는 정치권의 부패도 청년층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인구 400만 명의 작은 나라 레바논은 국가 부채가 860억 달러(약 103조 원)로 국내총생산(GDP)의 150%나 된다. 35세 미만 청년층의 실업률 역시 37%로 심각한 수준이다. 반면 주요 정치인을 포함한 상위 0.1% 부자가 국민소득의 10분의 1을 소유하고 있다.


심각한 빈부격차와 양극화

이라크 국민이 경찰의 물대포 살포에도 반정부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왼쪽). 10월 31일 아델 압둘 마흐디 이라크 총리가 사임을 발표하고 있다. [Anadolu]

이라크 국민이 경찰의 물대포 살포에도 반정부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왼쪽). 10월 31일 아델 압둘 마흐디 이라크 총리가 사임을 발표하고 있다. [Anadolu]

이라크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두 달째 계속되고 있다. 아델 압둘 마흐디 총리가 10월 31일 책임지고 사퇴했지만 시위는 진정되지 않고 있다. 마흐디 총리는 내각 개편과 부정부패 척결, 총리와 국회의원의 급여 삭감 등 개혁안을 내놓았지만 국민의 불만을 잠재우지 못했다. 젊은 층이 주도한 이번 시위는 부정부패와 실업난 등 정부의 무능을 해결할 것을 촉구하며 10월 1일 시작됐다. 시위는 공식적인 지도자가 없음에도 빠르게 확산됐다. 

지난해 이라크의 전체 실업률은 7.9%였으며, 청년실업률은 그 2배에 달했다. 이라크는 석유매장량이 세계 4위 수준이지만 부패와 내전 등으로 국민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이라크 인구 4000만 명 중 22.5%가 하루에 1.9달러(약 2270원)에도 못 미치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 이라크 소셜미디어에는 ‘그 많은 석유는 어디로 가느냐’는 성토가 쏟아진다. 정부가 상당한 ‘오일머니’를 벌어들이면서도 정치권의 무능과 부패로 기초적인 공공서비스마저 이뤄지지 않자 국민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시위는 특정 종교 또는 정당들이 주도하거나 특정 정치색을 띠지 않으며, 종파 간 갈등이 아닌 실업률과 생활고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된 것이 특징이다.


정치 엘리트를 향한 분노

이처럼 청년층이 분노해 시위를 주도하는 현상은 선진국을 제외하고 각국의 전체 인구에서 젊은 층의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영국 ‘가디언’은 “전 세계 인구 77억 명 중 41%가 24세 이하”라면서 “이들은 유년 시절 글로벌 금융위기로 고통받으며 자라 경제상황의 구조적 모순에 일찌감치 눈을 떴다”고 분석했다. 젊은이의 교육 수준이 역사상 어느 때보다 높은 것도 시대적 상황에 대한 분노를 키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 ‘더타임스’는 1980년대 후반과 비교할 때 20대 초반 젊은 층에서 전문대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갖춘 비중이 칠레는 18%에서 90%, 홍콩은 13%에서 72%, 에콰도르는 25%에서 46%로 크게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이들 시위의 출발점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핵심에는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정치 엘리트를 향한 분노가 공통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은 “각국 시위 사태의 표면적 원인은 각각 뚜렷하게 다르지만 불평등과 부패라는 공통된 주제가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시위는 모두 특정 패턴이 있다”며 “정부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소수 정치계급이 부를 독차지하기 때문에 젊은 세대가 분노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에리카 체노웨스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세계경기 둔화와 빈부격차 심화, 실업률 상승으로 좌절하고 분노한 젊은 세대가 민주적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 정부를 변화시킬 수단은 거리 시위가 유일하다고 믿게 됐다”고 강조했다. 

각국 청년 시위의 또 다른 특징은 리더(지도자)가 없을 뿐 아니라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 확산된다는 점이다. 디지털에 익숙한 젊은 층은 그만큼 자율적인 동시에 집단적 공감도 빠르다. 니얼 퍼거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과거에는 시위를 조직하는 핵심 세력이 존재해 이들을 검거하면 시위가 멈췄다”며 “반면, 지금은 젊은이들이 소셜미디어를 매개로 수평 연대하는 특징이 있어 각국 정부가 리더 없는 시위를 가라앉히는 데 애를 먹고 있다”고 지적했다. 

각국에서 ‘앵그리 영’ 세대의 분노가 시위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지금, 정치권은 이들의 불만을 무마할 수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분야의 개혁에 고심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주간동아 2019.11.08 1213호 (p54~57)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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